장사의 기술 -600년 병영상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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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주희춘
출판사항한국경제신문, 발행일:2014/01/15
형태사항p.261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4752943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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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개성상인을 뛰어넘는 조선 최고의 거상 이야기
600년 동안 이어져온 병영상인에게 경영의 답을 얻다!

1. 전라 병영상인의 600년 역사를 조명하고 그들만의 경영 기법과 장사의 비밀을 소개

“북에 개성상인, 남에 병영상인”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 최고의 거상 개성상인과 견주어지는 병영상인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병영상인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군사 시설인 전라병영이 강진군 병영면으로 옮겨오면서 세력을 형성한 상인 집단이다. 그런데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 600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강진일보 주희춘 편집국장이 5년 동안 취재하여 쓴 ≪장사의 기술―600년 병영상인의 비밀≫에는 이들의 태동부터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온 병영상인의 활약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해상무역가 장보고 장군으로부터 이어져오는 강진 병영상인의 상업 기질, 장사 노하우, 경영 기법, 기업가정신 등을 광범위하게 살핀 이 책은, 중농억상 정책을 펼치던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세력을 확대했던 병영상인만의 상업 역사와 노하우를 오늘날에 되살렸다는 의의를 갖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진단하는 현대는 모두가 세일즈하는 시대다(“To sell is Human”).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든 일은 세일즈”라는 것. 이 ‘상업의 시대’에 개성상인 못지않은 성실함과 기지를 갖추고, 전국적으로 다양한 판매망과 상품 수급망을 구축하며 독자적 세력을 키워나갔던 병영상인의 경영 마인드(‘밑바닥 정신’)를 오늘날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병영상인의 후예인 김주진 앰코테크놀로지 회장은 병영상인의 상업정신이 한국형 기업가정신의 원형을 이룬다고 판단,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고뇌하는 많은 이들에게 나아갈 바를 제시할 것이라고 추천했다.

2. 밑바닥 정신으로 어디를 가나 실패하는 법이 없었던 병영상인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까지는 상업을 장려하던 시대였다. 장보고의 해상무역, 개성상인과 의주상인들의 활발한 해외무역이 가능했던 이유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중농억상 정책으로 말미암아 상업이 철저히 소외되었다. 그럼에도 전남 강진에서 개성상인을 뛰어넘는 일단의 상인 집단이 출현하는데, 그들이 바로 병영상인이다. 병상(兵商)은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상인들과 달리 전국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시장에 발을 뻗은 특수한 상인 집단이었다.

“병영 사람들은 전국 어디에서 장사를 하든 실패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성냥이나 담배, 라이터돌 같은 것부터 팔면서 장사를 배웠기 때문에 물건을 취급하는 것이나 손님을 상대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가 없었죠. 전국의 시장을 병영상인이 재패한 큰 이유입니다.” (최인근 증언)

저자에 따르면 전라병영은 군사 시설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종합 물류회사였다.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관할하는 군대가 들어서면서 막대한 물품 소비처가 생긴 것. 병영성 주변에 2000호가 넘는 민가가 모여들었고, 병영과 민간에 물품을 공급하는 상인들이 필요했다. 병영상인은 그렇게 태동했다.

“전국에 쫙 깔려 있는 병영상인들을 통해 기물의 유통망을 꾀고 있었기 때문에,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싸게 들여온 물건은 손님들에게 그만큼 싸게 줄 수도 있고, 제값을 받으면 그만큼 이문이 많이 남았죠.” (김영실 증언)

그들의 무대는 전국이었다. 부산, 서울, 평양까지 물건을 사거나 팔러 다녔다. 병영성 설치로 인해 자연스럽게 상업에 뛰어둔 병영 사람들은 일정한 돈이 모이면 다른 시장으로 민들레 씨앗처럼 과감히 떠나갔다. 서울, 부산, 광주, 인천, 대전 등으로 시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 병영 사람들이 뿌리를 내렸다. 밑바닥부터 장사를 배운 사람들이라 어디를 가나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이 역사는 조선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3. 프로 근성, 신용과 친절, 근검과 절약으로 키워온 600년 병영상인

전국 5일장을 주름잡았던 병영상인의 역사와 경영 기법을 최초로 소개한 이 책은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우리 기업가들이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제시해준다. 작은 것을 크게 키우는 밑바닥 정신, 장사 아니면 안 된다는 프로 근성, 전국 각지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신용과 친절의 습관, 근검과 절약의 정신 등이 그들의 600년 역사를 키워준 장사의 비밀이다. 일견 너무 평범해 보이지만 장사의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며 사람을 중시했던 그들만의 상업 노하우다. 위기경영 시엔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조언했던 피터 드러커의 조언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의지들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뭐랄까, 프로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우리 같은 사람이 그냥 아마추어라면, 병영상인들은 장사 아니면 안 된다는 프로 근성을 가지고 있는 게 보통 사람들과 달랐어요.” (박영식 증언)

“장사는 신용과 친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분들이 강진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용과 친절이 있었기 때문일 거라 믿습니다. 상대방에게 신용을 주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지요. 오랜 상업의 역사가 신용과 친절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했을 것입니다.” (김정권 증언)

“아버님께서는 병영상인들이 말꼬리로 만든 붓 12자루만 있으면, 밖에 나가 1년 먹을 것을 벌어온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평생 근검과 절약으로 사업을 하셨지요.” (박관회 증언)

병영상인은 장보고의 후예답계 뱃길 장사에도 능했다. 청자뱃길이 그 증거다. 강진만을 통해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역적 특징이 큰 이유겠지만, 강진에 잠시 표류했던 네덜란드 상인 하멜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병영성의 건립과 역사를 함께하는 대상인 박기현 이야기, 현대 병영상인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 김충식과 김향수의 기업 이야기, 제주의 거상 김만덕과의 교류, 187년 후 병영성과 똑같은 경로를 밟는 경남 통제영 이야기, 현대까지도 병영상인의 역사를 이어오는 수많은 후예들의 증언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맛이다.

4. 병영상인의 600년 장사의 비밀

전국에 걸쳐 유통망을 갖추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다
병영상인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판매망과 상품 수급망을 가지고 있었다. 박기현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약재를 구입할 때 어떤 지역의 누구 편을 통해 구입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박기현이 짐꾼을 대동하고 직접 약재를 사러가기도 했지만 전국의 그 많은 시장을 일일이 다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병영상인을 백분 활용했고 거래장부에 그러한 기록들을 소상히 밝혀두었다. 이를 통해 그는 약재를 신속하게, 또 최대한 많이 확보할 수 있었으며, 전국 각지에 원활하게 판매할 수 있었다.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다
김충식은 30세를 전후해 아버지로부터 3000석 소출의 토지를 물려받았다. 그는 이것을 10여 년 만에 4만 석 소출의 토지로 재산을 늘리는 데 성공한다. 그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조선시대 지주들은 일반적으로 소출을 가지고 토지를 확장해가거나 고리대금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토지 운영 방식이 도입됐다. 바로 기업형 농장 경영 형태가 그것인데, 이러한 기업형 농장은 일본인들이 운영하고 있어서 조선 사람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김충식은 과감하게 자신의 호를 따서 강진에 동은농장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큰 수익을 올렸음에도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목포에 금릉회조부라는 해운회사를 세우는 등 그의 투자는 계속되었다.

도전 정신과 겸손이라는 미덕을 갖추다
아남산업 김향수 회장은 도전과 신의, 근검절약을 중시하며 기업을 경영한 전형적인 병영상인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는 거침없는 도전 정신과 겸손이라는 미덕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의 어떤 기업인도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반도체 산업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 정신만으로는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의 선구자라는 지위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당시 반도체 분야의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인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으며 겸허한 배움의 자세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돈만 자본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대로 그는 도전 정신과, 겸손을 중심으로 한 정신력 그리고 신용을 중시한 기업가이자 진정한 병영인이었다.

지리적 환경의 이점을 살리다
병영상인의 역사는 전라병영성이 축조되던 시기부터 시작됐다. 자연스레 여기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상업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병영상인은 이러한 시대적 환경을 백분 활용하면서 그들만의 장사 기술을 축적해나갔다. 장보고 역시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장사를 했던, 그야말로 장사꾼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우리가 완도라고 알고 있는 청해진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강진현에 소속돼 있었다. 그러므로 병영상인은 청해진을 중심으로 무역 활동을 펼쳤던 장보고의 후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장보고는 큰 포부와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시 해상왕으로 군림하며 국제무역을 이끌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청해진이 중국과 일본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는 이점과 강한 군사력을 잘 활용하여 그 일대의 해상무역을 장악할 수 있었다.

밑바닥 정신으로 버텨내다
병영상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전라도 병마절도사영 설치라는 시대적 상황과, 이어 그들이 최대한 장사 기지를 발휘해 전국적으로 다양한 판매망과 상품 수급망을 구축한 점, 어떤 고난도 이겨내는 그들의 ‘밑바닥 정신’ 등을 꼽을 수 있다. 오래전부터 병영 사람들은 성냥이나 담배, 라이터돌과 같은 작은 상품을 팔면서 밑바닥부터 장사를 배워왔다. 아주 작은 것부터 팔면서 물건을 취급하고 또 손님을 상대하는 장사 수완을 체득한 것이다. 객지에서 상업을 하려면 6~7년은 버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이 기간을 감내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병영 사람들은 밑바닥부터 줄곧 고생을 해왔기에, 이를 악문 채 버텨내고 전국의 시장 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병영 사람들은 전국 어디에서 장사를 하든지 실패하는 사람들이 없다시피 했다.

시장을 광범위하게 개척하다
훗날 병영성이 폐영되고 더 이상 그 이점을 누릴 수 없게 된 후손들은, 대신 절대적으로 왜소한 강진의 상업 규모를 극복하고자 전국의 시장으로 발을 뻗기 시작한다. 강진읍장을 시작으로 대구장, 장흥 대덕장, 용산장, 관산장, 장흥장을 순회하는 것을 기본으로 벌교, 보성, 순천, 여수까지 장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일정한 돈이 모이면 더 큰 시장을 찾아 전국으로 흩어졌다. 그 범위가 서울, 인천, 속초, 제주, 심지어 만주까지 전국의 웬만한 지역을 망라했다. 병영상인은 다른 상인들과 경쟁하며 때론 그곳을 장악하기도 하고, 때론 조용히 숨죽이면서 그들만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신용을 중시하고 동료를 배려하다
병영상인은 타 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할 때는, 병영 사람들이 그곳에서 먼저 시작한 업종은 철저히 피했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간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전통처럼 계속 이어졌다. 또한 병영상인은 신용과 친절을 중시했다. 이러한 신용과 친절, 배려심 등 장사에서 중요한 덕목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오랜 상업의 역사가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했다.

장사만 고집하는 프로 근성을 갖추다
한 곳에서 장사를 배우고 그 계통으로 독립을 해 장사를 시작하는 것은 병영상인의 오랜 전통이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장사가 아니라 오랜 세월 물건을 다루는 법과 사람을 관리하는 법을 익혔으니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낮았다. 이는 그들이 장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프로 근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다른 상인은 돈을 제법 만지게 되면 다른 일도 해보려고 시도하기 마련인데, 병영상인들 중엔 평생 장사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 작가 소개

저자 : 주희춘
전남 강진 병영상인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5년여 동안 시장 곳곳을 누볐다. 병영상인을 비롯하여 해상무역에 밝았던 선조들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실제로 고대 뱃길인 강진부터 제주까지, 고려시대 청자뱃길인 강진부터 강화도까지 뗏목을 타고 항해하기도 했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역사의 뒤안길에서 그늘로 사라지기 직전의 인물들을 발굴ㆍ소개하고 있다. 동양일보와 광남일보를 거쳐 현재 강진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 중이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남대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부 개성상인을 뛰어넘는 병영의 거상들
병영이 배출한 거상 박기현
김충식, 조선 최고 기업인을 꿈꾸다
병영상인의 표상, 아남산업 김향수 회장

2부 600년 역사에 숨겨진 장사의 비밀
전라병영에 사람과 물자가 몰렸다
병사들은 물건이 필요했다
거대한 종합 물류회사 전라병영성
전라병영 함락으로 와해된 상업 활동
장보고 선단에서 병영상인까지
국제무역이 활발했던 장보고 시대
찬란했던 청자뱃길
전통 상업기술, 다시 불꽃을 피우다
전라도 병영과 경상도 통영
최대 상업기지로 변모한 통영
하멜과 그의 일행들
제주의 김만덕, 병영상인을 만나다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

3부 민들레 씨앗처럼 뻗어나간 후예들
박기현의 후손들, 양조장에 진출하다
민들레 씨앗처럼 뻗어나가다
무명띠에 아기 업고 만주까지
삼륜화물차 위 꽃처럼 울긋불긋
장흥에 진출한 병영상인들
바다 건너 제주 땅이 멀지 않았네
전남의 기물시장 평정
한때 병영상인 천지였던 목포
광주 충장로에서 병영상인 만개하다
제주댁 할머니의 삶
물감장사로 돈을 모으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팔아라
작천·옴천 사람들도 상업은 일상사
병영상인과 개성상인의 만남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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