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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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홍성욱
출판사항책세상, 발행일:2012/12/20
형태사항p.273 국판:23
매장위치자연과학부(B2)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70138268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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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하이브리드 철학자 홍성욱의 새로운 과학사
그림에 담긴 과학의 비밀, 과학에 담긴 역사의 비밀을 풀다

이 책은 한 장의 그림에서 출발했다. 르네상스기에 활동한 이탈리아 엔지니어 아고스티노 라멜리의〈책 바퀴(독서 기계)〉. 그림 속 독서 기계가 당시에 실제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 기계가 세상에 선보인 것은 198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였다. 르네상스기에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이 현대의 과학기술로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의 손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기술학자이자 학문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의 접점에서 사유해온 서울대 홍성욱 교수는 이 그림 한 장을 계기로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예술로 확장되었으며, 더 나아가 예술과 기술, 과학과 미학,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담긴 인간적인 요소들을 융합한 열한 편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냈다.

이 책은 과학과 관련된 또는 과학에서 사용해온 이미지 자료들(회화·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펴낸 책의 표지 그림, 권두화, 스케치 등)을 매개로 과학의 역사를 새롭게 독해한다. 주요 인물과 사건을 연대기로 서술하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하는 과학사, 몸과 감정을 가진 과학자들이 수행해온 진짜 과학의 생생한 역사, 구체적인 역사의 맥락 위에서 이미지를 매개로 복원하는 풍성한 과학의 역사,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맥락으로 읽는 인문적·융합적 과학사이다.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이성을 통해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 ‘과학’, 그러나 과학의 역사는 냉정한 이성으로 진리를 발견해온 역사로만 기술될 수 없다. 과학의 역사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는 이미지들, 이러한 이미지들을 읽는 것은 과학을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파악하는 작업이다. 이 책은 이미지를 통해 과학의 숨은 역사를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게 다룸으로써, 로봇처럼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과학을 더 흥미롭고, 더 생동감 있게,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과학의 역사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역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0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그리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서도 말해지지 않은 역사

거의 모든 과학사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과학의 전통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근대 과학의 역사는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천문학을 시발점으로 일어난 ‘과학혁명’ 이후로부터 기술되어 있다. 과학혁명 이후 유럽의 과학은 18세기 계몽사조와 관계 맺으며 발전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뉴턴 과학을 합리성과 계몽의 상징으로 부각시켰고, 계몽사조의 시대정신을 집대성한《백과전서encyclop?die》는 과학과 이성을 근대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했다. 19세기에는 생물학의 과학혁명이라 할 다윈의 진화론이 제창되었고, 과학자의 전문 직업화와 과학의 제도화 또한 급속히 진행되었다. 1831년에 ‘과학자scientist’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20세기에는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새로운 시공 개념을 창안해 물리학 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이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과학의 역사이다. 이 책은 이처럼 거시적 과학사 속에 숨은 역사를 그림을 통해 파헤치고 있다. 역사학 분야에서 미시사에 관한 관심이 뜨거워진 것은 꽤 오랜 일이다. 하지만 과학사에서는 그러한 영향이 미미했다. 사회학자 크라카우어는 “거시사는 불완전하다……미시사를 동반하지 않는 거시사는 이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될 수 없다”라고 했다. 이 책은 거시적 차원에 머물러 있던 과학사의 지평을 미시적 차원까지 확장함으로써 우리에게 과학의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숨은 역사를 푸는 세 가지 열쇠 미시사 연구의 지향점은 실제로 과거를 살았던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림을 통한 과학의 숨은 역사를 발굴하는 일은 “목소리가 없는” 과학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보이지 않는” 과학자들에게 모습을 부여하면서 “피와 살을 가진 과학”을 복원해내는 일이다. 저자 홍성욱은 이러한 작업을 세 가지 열쇠로 풀어냈다. 첫 번째 열쇠는 이미지의 역사·문화적 해석이다. 이 열쇠는 과학에서 사용된 여러 이미지들을 당시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위치시켜 이미지 독해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 두 번째 열쇠는 새롭게 해석된 이미지들에 주목해 새로운 과학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대순으로 나누어진 듯 보이는 1부에서 3부까지의 구성을 각각 다면체, 컴퍼스, 나무 이미지에 따라 새로운 내러티브로 전개할 수도 있다. 세 번째 열쇠는 이처럼 새롭게 쓰인 과학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가 제시안 세 개의 열쇠를 가지고 새로운 과학의 문을 열어나가다 보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과학의 이미지를 새롭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1부에서는 과학과 예술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과학과 예술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렸다. 특히 다면체 이미지들을 소재로 과학의 탄생과 더불어 근대 과학혁명 이전 점성술과 천문학, 연금술과 화학의 구분이 모호했던 중세의 과학을 소개한다. 또한 다면체와 더불어 발전한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과학혁명에 이르기까지, 코페르니쿠스보다 덜 알려진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와 케플러를 자세히 다루었고, 유명한 갈릴레오 또한 그의 달 관찰 그림을 매개로 새롭게 재해석하면서 당시의 과학과 예술, 예술과 종교,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탐구했다.

2부에서는 주로 과학자들의 저술에서 볼 수 있는 책 표지 그림, 권두화 등을 소재로 이성과 근대성으로 대표되는 근대 과학 이면에 숨겨진 상상력, 여성성, 주변성을 복원한다. 블레이크의 그림 〈뉴턴〉에서 컴퍼스를 들고 세상을 재고 있는 신 유리즌 혹은 유리즌에 복종하는 아비아스의 모습을 통해 근대 과학의 신이라 칭해진 뉴턴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프랑스 계몽사상을 집대성한《백과전서》에 권두화에 담겨진 이성과 상상력의 이중주를 들려준다. 또, 누구보다도 뛰어난 과학자였으나 철학자의 연인 혹은 과학자의 아내로서 누구누구 부인으로만 칭해졌던, 샤틀레 부인과 라부아지에 부인의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재조명했다. 또한 라부에지에 부인이 그린 실험실 풍경을 통해 과학자들의 조수로서 실험을 도왔지만 어둠 속에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양지로 불러내기를 시도했다. 과학의 역사에서 주변부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복원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과학의 역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과학 활동은 이렇듯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3부에서는 뇌구조 이미지, 나무 이미지, 변형 프리온 이미지들을 소재로 현대 과학을 조망한다.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뇌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오랫동안 인간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어온 뇌에 관한 인간의 오랜 탐구를 그림을 통해 동서양의 철학을 비교하기도 하고, 뇌의 구조와 역할을 설명하면서 생각의 방, 작은 인간, 네트워크 등으로 시각화되는 뇌과학의 연구과 이미지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생명의 나무로 대표되는 나무 이미지는 지금 우리가 다시금 환기해야 할 다윈 진화론에 담겨 있는 생명 사상을 일깨우고, 생명의 나무와 닮은 기술의 나무를 통해 과학 기술 발전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최근까지 이슈가 되고 있는 광우병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변형 프리온 이미지 모델들을 비교하면서 이미지 인식, 이미지와 실재의 상호 구성을 역설한다.

전체적으로는 역사 서술 방식을 따라 통사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이처럼 이미지를 매개로 이미지 속 숨어 있는 의미들을 독해하여 과학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열한 편의 이야기들 속 140여 개의 모자이크를 맞추다 보면 숨어 있던 과학의 역사가 복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모자이크 첫 번째 조각―철학, 과학, 예술, 다면체에서 시작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수학, 특히 기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계를 형상의 세계와 이미지의 세계로 나누고 형상의 세계를 기하학의 세계로 탐구했다. 기하학은 신이 창조한 완벽한 형상의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였다. 플라톤은 다섯 가지 정다면체로 세상을 설명했고, 그의 제자이면서도 정반대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열세 가지 준정다면체로 세상을 설명했다. 이들의 다면체는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에 의해 복원·탐구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화가들과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다면체 이미지는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와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상상을 실재로 구현하게 하는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특히 20세기 회화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에셔의 그림에는 다면체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특히 그의 작품〈별〉에는 수많은 다면체 형상의 별이 검은 우주에 떠 있는데,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를 덮는 순간 독자들은 그 별들에 알맞은 다면체의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과 예술의 관계는 언제부터 멀어지게 되었을까? 그 시발점을 갈릴레오에게서 찾는 이들이 있다. 지동설을 주장해 교황청으로부터 종교 재판까지 받았던 갈릴레오의 우주관에 한 가지 오점이 있었는데, 플라톤의 다섯 가지 다면체를 이용해 여섯 개의 행성 궤도를 설명한 바 있는 천문학자 케플러가 밝힌 행성의 타원 운동을, 갈릴레오는 죽는 날까지 수용하지 않았다. 갈릴레오의 미학적 취향에 타원은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플라톤이 회화보다 조각을 형상의 세계에 가까운 예술로 보고 더 우월하다고 평한 데 반해, 회화를 조각보다 우월한 예술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림은 깊이가 없는 공간에 깊이를 부여함으로써 2차원 평면의 세계를 3차원으로 승격시키면서 새로운 실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학적 취향이 뚜렷하고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갈릴레오는 오히려 과학과 예술을 결별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왜일까? 갈릴레오가 예술가보다 신분이 낮은 수학 교수였을 때는 예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저작을 예술처럼 보이게 하려 노력했지만, 궁정 철학자가 된 후에는 철학보다 위계가 낮은 예술과 관계를 멀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갈릴레오뿐만이 아니라 17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현상이었다.

#2 모자이크 두 번째 조각―컴퍼스를 들고 있는 뉴턴과《백과전서》권두화에 담긴 비밀

과학혁명의 종결자 뉴턴, 신이 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자의 대표 주자였던 뉴턴은 당시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초인적인 보편 원리와 법칙을 파악한 신으로 여겨졌다. 이를 비판하며〈뉴턴〉이라는 그림을 남긴 윌리엄 블레이크는 뉴턴을 상상력과 감정을 박탈당하고 이성만 남은 신, 유리즌에 빗댔다. 유리즌은 블레이크가 인간의 이성만을 내세우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자 만들어낸 신으로〈태고의 나날들〉에 등장한다. 그 그림에서 유리즌은 컴퍼스로 세상을 창조하고(혹은 재고) 있는데,〈뉴턴〉에 등장하는 모델 또한 자와 컴퍼스를 들고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 이 그림의 모델은 신에게 절대 복종하는 아비아스라는 것이 정설이다. 즉 블레이크에게 뉴턴은 이성의 신 유리즌에 절대 복종하며 복잡한 세상을 간단하게 재단하려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블레이크는 “신이여 제발 우리를 깨어 있게 해주옵소서 / 외눈박이 시각과 뉴턴의 잠으로부터”라는 시를 지었고, 뉴턴의 과학을 ‘외눈박이 시각’이라고 명명했다. 또 “예술은 생명의 나무이고, 과학은 죽음의 나무이다”라고 과학을 비판했다. 이렇게 과학과 예술은 완전한 결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성과 상상력의 이중주 하지만 이성과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가들이 편찬한 스물여덟 권짜리《백과전서》에도 상상력의 산물은 담겨 있다. 이 백과사전은 열일곱 권이 텍스트로, 열한 권이 도판으로 구성되었는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백과전서》제1권의 권두화이다. 이 권두화는, 학문을 이성(철학), 기억(역사), 상상력(시학)으로 나누는 베이컨의 분류법에 의거해《백과전서》의 지식을 분류한 달랑베르의 철학을 담아 그려졌는데, 그림의 중앙이 철학, 오른쪽이 역사, 왼쪽이 시학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림을 좀 더 세밀하게 보면 그림이 마치 이등분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달랑베르는 백과전서 지식의 분류에서 역사를 매우 자세히 구성했으나 그림에서는 이런 부분이 거의 드러나 있지 않고 오히려 구석에 숨어 있는 듯 보인다. 반면 달랑베르가 역사에 비해 간소하게 분류한 시학 즉 상상력의 뮤즈가 훨씬 더 강조되어 있다. 달랑베르와 디드로에게 상상력은 진리와 지혜를 추구하는 이성에 비해 부차적인 존재였다. 그렇지만 그림에서는 상상력의 세계가 그림 왼편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이성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데 대해서 역사학자 셰리프는 이 권두화를 그린 코생이 그림에 자신의 철학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눈에 보기에는 백과사전을 편집한 달랑베르와 디드로의 철학을 충실이 반영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의 철학과 사뭇 다른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 코생의 그림은 이성과 상상력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거의 없음을 역설하고 있다. 달랑베르나 디드로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움이 진리고, 진리가 아름다움이다”라고 말한 영국 시인 키츠의 철학에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과전서의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왜 이 책의 부제가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림의 전체적인 형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에 기초해 진리가 밝혀지고, 인류는 이렇게 하나의 진리를 밝히고 또 다른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3 모자이크 세 번째 조각―생명과 기술의 진화와 나무 이미지

다윈의 진화론 이전에는 세상 만물이 각자의 고유한 자리가 있고 그 자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존재의 대연쇄’ 모델이 일반적이었다. 이 모델은 낮은 자리에 광물을 두고 높은 자리에 천사를 두는 식으로, 만물의 위계질서를 표현할 수 있는 ‘계단’이나 ‘사다리’ 이미지를 메타포로 삼았다. 그러나 존재의 대연쇄 모델이 정교해지면 정교해질수록 어디에도 넣을 수 없는 변종이나 잡종 같은 존재가 속속 발견되었다. 이즈음 다윈은 “노예제를 목격하고 이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기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다윈 연구가 데스몬드와 무어는 밝히고 있다. 다윈은 이처럼 노예제에 대한 비판과 다른 종에 대한 사랑을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나의 원형에서 가지를 치듯 변형해온 다윈의 가지치기식 진화론은 생명의 가계나무 즉 ‘진화의 계통수’로 표현될 수 있다. 이러한 다윈의 나무 이미지는 위계질서를 없애고 태초의 생명체로부터 진화해온 종의 변화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담아낸 메타포로 쓰였다.

그러나 실제로 ‘생명의 나무’로 가장 널리 알려진, 독일의 진화론자 헤켈의 나무에는 위계질서가 뚜렷이 표현되어 있다. 헤켈은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았지만 종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진화의 나무 가장 높은 곳에 인간을 앉혀놓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공각기동대〉에 바로 이 헤켈의 ‘생명의 나무’가 등장하는데, 마지막 전투에서 인간의 뇌를 가진 기계인 주인공 쿠사나기는 생명의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인간에 총알을 퍼붓는다. 사이보그들이 진화의 나무에서 인간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기술 또한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생명과 닮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기술 문명이 비판받는 데에는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비인간성, 인간에게 총알을 퍼붓는 사이보그 이미지가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의 역사로서의 과학의 역사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감으로써 과학 기술에 인간성을 회복하고 인문적인 과학의 미래를 그려나가도록 우리에게 새로운 인문-과학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그 매개가 되는 이미지는 생각을 전달하고 표현할 뿐만 아니라, 인식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다. 즉 이미지는 세상을 반영하고, 구성하고, 만들어나간다. 이러한 이미지는 건조하고 삭막하게 느껴지는 과학에서조차 인간적인 요소를 발견하게 한다. 저자의 서문에서 느껴지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만큼이나 말이다.

“나는 (예술을 전공하는) 아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아내는 과학기술의 세상에만 파묻혀 있던 나를 예술이라는 넓은 세상으로 인도했고, 역사를 통해 나타난 과학과 예술의 관계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이끌었다. 네 살이 된 아들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아이가 서고, 걷고, 말하는 걸 보면서, 이 아이도 재미있어할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방식으로는 아빠 노릇을 잘 못해도 재미있는 과학사 책을 써서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은이 홍성욱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를 전공하여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박사후과정을 거쳐, 같은 대학교 과학기술사철학과 종신교수,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디브너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의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홍성욱의 과학 에세이》,《과학은 얼마나》,《하이브리드 세상 읽기》,《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Wireless―From Marconi’s Black-box to the Audion》(MIT Press),《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잡종, 새로운 문화읽기》등이 있다. 엮고 옮긴 책으로는《뇌과학, 경계를 넘다》,《융합이란 무엇인가》,《인간, 사물, 동맹, 뉴턴과 아인슈타인》,《과학 그 위대한 호기심》,《201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남성의 과학을 넘어서》,《인문학으로 과학 읽기》등이 있다.《신의 과학에서 인간의 과학으로》라는 책을 집필 중이며, 최근에는 과학의 이미지, 성공하는 융합과 실패하는 융합, 연구 그룹의 창의성, 백남준의 비디오 신시사이저, 과학 다큐멘터리 같은 과학기술학(STS) 분야의 여러 주제들을 연구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내면서
미리 알아두면 좋은 아주 간단한 과학사

제1부 근대 과학의 탄생
01 플라톤과 아르키메데스의 다면체-예술과 과학의 경계
다면체와 형상의 세계
다면체 르네상스
02 어둠의 과학, 빛의 과학-튀코 브라헤의 ‘하늘의 성’
천문학과 튀코 브라헤
천공의 성 vs 지하의 암실
브라헤의 우주관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03 우주의 질서와 과학의 진보-케플러의 세계관
우주를 관통하는 플라톤의 다면체
《루돌핀 테이블》 표지화에 담긴 케플러의 생각
04 갈릴레오와 달-과학과 예술의 만남과 헤어짐
갈릴레오 갈릴레이, 과학과 예술의 결별을 초래한 장본인?
망원경과 별의 소식
매끄러운 수정구 혹은 울퉁불퉁하고 불완전한 달

제2부 이성과 근대성
05 뉴턴과 블레이크-과학적 세계관의 완성과 그 비판자들
과학혁명의 종결자?
신이 된 과학자
예술과 과학의 갈등, 블레이크의 구부정한 뉴턴
06 샤틀레 부인과 볼테르?철학자의 연인에서 여성 과학자로
뉴턴에게 빠진 연인
샤틀레 부인의 변심과 라이프니츠
07 이성, 진보와 백과전서-이성과 상상력의 이중주
계몽사조 프로젝트
달랑베르와 지식의 분류
《백과전서》 권두화의 숨은 의미
08 실험실에서 지워진 존재-라부아지에 부인과 라부아지에의 조수들
화학혁명과 라부아지에 부부
그 많던 실험실 조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제3부 오래된 이야기와 현대 과학의 이미지
09 ‘생각의 방’, 뇌의 이미지들-보이지 않는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뇌 구조와 뇌 속의 작은 인간
세 개의 방에서 네트워크로
10 생명의 나무, 진화의 나무, 기술의 나무-친숙하고도 이상한 나무 이미지들
진화의 계통수
생명의 산호초
기계 속의 다윈
11 프리온의 이미지와 위험 체감도-이미지와 실재의 상호구성
광우병과 변형 프리온
이미지의 선택과 위험 인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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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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