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싸워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신간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원제 Lob der Feigheit)》는 비겁함과 겁쟁이를 위한 책이다. 지은이는 프란츠 M. 부케티츠(Franz M. Wuketits).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의 생명과학 전임교수이며 콘라드로렌츠(Konrad Rorenz)진화ㆍ인지과학연구소의 부소장으로 있다. 《사회생물학 논쟁》《자연의 재앙, 인간》《진화는 진화한다》《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이타적 과학자》《멸종, 사라진 것들》등의 책을 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용기 또는 용감한 행동, 모험에 대한 도전 같은 말을 듣고 자랐다. 우리 중에 겁쟁이가 있으면 언제나 놀림 받고 소외되기 십상이다. 용기 있는 행동은 늘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았고 영웅들은 사후에도 많은 찬양과 존경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세계 영웅 위인전은 대표적인 모범사례다. 하지만 겁쟁이를 위한 기념관이나 비겁한 자를 위한 송가(頌歌)는 없다. 이제 비겁함과 겁쟁이를 예찬할 때가 온 것이다. 좀더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겁쟁이야말로 생물의 기본적 활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죽은 영웅은 너무나 많고 살아 있는 겁쟁이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 점이 바로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를 쓰게 된 지은이의 동기이다. 많은 나라와 사회에서 칭송받는 용감한 병사와 전사들은 수세기 동안 “용기”의 희생양이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들의 행동이 남은 자에게 찬양받고 기념비로 새겨진다한들 그들에게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는 자살폭탄 테러는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집단의 행위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일부 동정을 받을지는 몰라도 박수칠 만한 가치는 없다.
오늘날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고자 하는 사회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러한 행위는 의미 없는 어리석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만 잃게 할 뿐이다. 범죄에 가까운 이념이나 신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는 지나치게 겁이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며 이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위해 선행을 할 가능성도 많다. “겁쟁이”는 어떤 상황에서는 아슬아슬한 행보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죽음이 두려워 명령을 거부하고 전쟁터를 벗어난 탈영병의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탈영병의 운명은 군법정에서 가름하겠지만, 이 같은 관점에서 겁쟁이를 옹호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미국의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까지 많은 학자와 사상가를 인용하며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를 썼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은 이 책 요소요소에서 매우 유용하게 적용된다.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은 겁쟁이에게 있었다
자연은 언제나 중립적이다. 인간도 자연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존재이므로 자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가치를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윈의 자연선택에 따른 적자생존의 개념에서 말하는 “적자(適者)”란 가장 용감하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인”이다. 우리는 여기서 배워 깨달아야 한다. 배움에서 얻은 통찰력은 수상쩍은 이념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요구하고 재앙의 늪으로 몰아가려는 수많은 음험한 시도를 무시할 것이다.
다윈의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는 자연에서 “가장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적 오해가 인간사회에서도 원용(援用)된 결과 사회적 다윈주의가 생겨났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라는 지독하게 타락한 이념집단의 생성에 일조했으며 그것은 바로 수많은 희생자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념적 오해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만약 다윈과 그의 생명에 대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오해는 사라질 것이며 자연선택론이 사실은 겁쟁이들을 옹호하는 이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윈의 선택이론과 종의 진화는 가장 강한 발톱과 이빨을 지닌 개체가 승리한다고 하는 자연의 잔인한 투쟁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다.
다윈이 세운 가장 중요한 가설 중의 하나는 같은 종에 속한 모든 개체는 서로 경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력한 경쟁상대는 바로 자신이 속한 종(種) 안에 있다는 것이다. 몽구스의 경쟁상대는 코브라가 아니라 다른 몽구스이며 사자의 싸움 상대는 가젤이 아니라 다른 사자이다. 그리고 인간의 경쟁 상대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의 동료이기도 하다.
살아남기 위해 동족끼리 끊임없이 싸우는 현장에서 항상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자생존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한 종족이 평균적인 수명 안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의미와도 거리가 멀다. 요약하자면 살아남은 동물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서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혔다. 생물계에서 객관적인 “힘”의 기준이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중요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예를 들어 당나귀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짐꾼 당나귀의 경우 고된 일에도 불구하고 길게는 백 살까지 살 수 있다. 따라서 진화의 법칙에는 고정된 “비밀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른 서로 다른 생존전략만 있을 뿐이다.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다윈의 이론을 적응이론(Anpassungstheorie)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생물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해 살아간다는 것이 다윈 이론의 중요한 부분인데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적자생존의 법칙은 겁쟁이의 생존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이 등식은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최전방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젊은 병사는 다윈의 관점으로 보면 적자가 아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 높은 절벽 위에서, 달리는 기차의 지붕 위에서 뛰어 내리거나 동물원의 곰 우리로 뛰어드는 젊은이도 적자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적자란 무엇보다 태도의 문제이다. 건강과 웰빙에 사로잡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적자란 자신의 직장에서 죽어라고 일한 다음 마라톤까지 완주하는 사람이 아니며 휴일에 극단적인 스포츠로 몸을 단련하는 사람이 아님을 종종 잊어버린다. 적자란 이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고통을 애써 감추려고 남몰래 약으로 아픔을 이겨내려는 우리 시대의 비정상적인 생활 방식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참 잘못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급속도로 번져가는 경제적 스트레스 때문에 전체적으로 현대인은 건강이 약화되어 병치레가 잦고 고통이 늘어가는 현상은 인류에게 큰 손해이다. 현대는 “속도 전쟁이다. 속도에 뒤처지면 도태된다”라고 독려하는 기업 책임자들의 주장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첨단 기계문명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언젠가 그 첨단 문명의 기계화가 우리의 머리 위에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죽은 자는 누워 있지만 살아남은 자는 서 있다.
-엘리아스 카네티
겁쟁이가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강제로 설정한 수많은 종류의 미심쩍은 이념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지금이야말로 비겁함과 겁쟁이의 미덕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비겁자란 여러 상황 속에서 숨거나 도망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며 용기를 증명하려 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가능한 오래 살아남으려 한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을 방해받거나 위협받지 않는 한 타인에게 적대감을 품는 일이 없으며 국가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혹여 자신에 대한 보복조차 묵묵히 감내하며 그 결과 세속에서 물러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래의 재앙은 피할 수 있다. 정치가가 즐거이 자신이 하는 일을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계획을 우리 자신의 계획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믿고 자칭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의 수상쩍은 설계도에 맹목적으로 환호하지 않을 만큼 비겁함과 겁쟁이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정치가가 없어도 우리는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비겁함은 그리고 겁쟁이는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삶이 재앙에 내몰리는 것을 막아줌으로 하나의 미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겁쟁이는 다른 종족을 해치거나 죽이는 것에 쾌감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오래 살아남은 것에 대해 행복을 느낄 뿐이다.
▣ 작가 소개
저자 프란츠 엠 부케티츠(Franz M. Wuketits)
저자는 빈(Wien) 대학교의 생명과학 전임교수이며 여러 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부케티츠는 또 알텐베르크(Altenberg)에 있는 콘라드로렌츠(Konrad Rorenz) 진화·인지과학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고 있다. 수십 권의 도서를 집필했으며 그중 《사회생물학 논쟁》《자연의 재앙, 인간》《진화는 진화한다》《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이타적 과학자》《멸종, 사라진 것들》이 국내에서 번역되었다.
역자 이덕임
역자는 동아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인도의 뿌나(Pune University) 대학원 인도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오스트리아 빈 대학 독일어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발적 가난》《선택의 논리학》《과학백과》《하늘을 흔드는 사람-러비야 카디르 저서전》등 많은 도서를 번역했다.
▣ 주요 목차
들어가기 전에
00 부덕不德에 대한 예찬
01 용기 있는 자들의 비참함
02 다윈의 이론
03 위장과 속임수
04 겁쟁이들의 생존에 대하여
05 비겁함의 도덕
06 광신에 맞서
07 새로운 미덕에 대한 변론
용어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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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싸워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신간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원제 Lob der Feigheit)》는 비겁함과 겁쟁이를 위한 책이다. 지은이는 프란츠 M. 부케티츠(Franz M. Wuketits).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의 생명과학 전임교수이며 콘라드로렌츠(Konrad Rorenz)진화ㆍ인지과학연구소의 부소장으로 있다. 《사회생물학 논쟁》《자연의 재앙, 인간》《진화는 진화한다》《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이타적 과학자》《멸종, 사라진 것들》등의 책을 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용기 또는 용감한 행동, 모험에 대한 도전 같은 말을 듣고 자랐다. 우리 중에 겁쟁이가 있으면 언제나 놀림 받고 소외되기 십상이다. 용기 있는 행동은 늘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았고 영웅들은 사후에도 많은 찬양과 존경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세계 영웅 위인전은 대표적인 모범사례다. 하지만 겁쟁이를 위한 기념관이나 비겁한 자를 위한 송가(頌歌)는 없다. 이제 비겁함과 겁쟁이를 예찬할 때가 온 것이다. 좀더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겁쟁이야말로 생물의 기본적 활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죽은 영웅은 너무나 많고 살아 있는 겁쟁이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이 점이 바로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를 쓰게 된 지은이의 동기이다. 많은 나라와 사회에서 칭송받는 용감한 병사와 전사들은 수세기 동안 “용기”의 희생양이 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들의 행동이 남은 자에게 찬양받고 기념비로 새겨진다한들 그들에게나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는 자살폭탄 테러는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집단의 행위에 만족한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일부 동정을 받을지는 몰라도 박수칠 만한 가치는 없다.
오늘날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고자 하는 사회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러한 행위는 의미 없는 어리석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만 잃게 할 뿐이다. 범죄에 가까운 이념이나 신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는 지나치게 겁이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며 이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위해 선행을 할 가능성도 많다. “겁쟁이”는 어떤 상황에서는 아슬아슬한 행보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죽음이 두려워 명령을 거부하고 전쟁터를 벗어난 탈영병의 경우처럼 말이다. 물론 탈영병의 운명은 군법정에서 가름하겠지만, 이 같은 관점에서 겁쟁이를 옹호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미국의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까지 많은 학자와 사상가를 인용하며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를 썼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은 이 책 요소요소에서 매우 유용하게 적용된다.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은 겁쟁이에게 있었다
자연은 언제나 중립적이다. 인간도 자연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존재이므로 자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가치를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윈의 자연선택에 따른 적자생존의 개념에서 말하는 “적자(適者)”란 가장 용감하거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삶과 생존을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는 개인”이다. 우리는 여기서 배워 깨달아야 한다. 배움에서 얻은 통찰력은 수상쩍은 이념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요구하고 재앙의 늪으로 몰아가려는 수많은 음험한 시도를 무시할 것이다.
다윈의 이론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는 자연에서 “가장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적 오해가 인간사회에서도 원용(援用)된 결과 사회적 다윈주의가 생겨났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라는 지독하게 타락한 이념집단의 생성에 일조했으며 그것은 바로 수많은 희생자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념적 오해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만약 다윈과 그의 생명에 대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오해는 사라질 것이며 자연선택론이 사실은 겁쟁이들을 옹호하는 이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윈의 선택이론과 종의 진화는 가장 강한 발톱과 이빨을 지닌 개체가 승리한다고 하는 자연의 잔인한 투쟁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다.
다윈이 세운 가장 중요한 가설 중의 하나는 같은 종에 속한 모든 개체는 서로 경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강력한 경쟁상대는 바로 자신이 속한 종(種) 안에 있다는 것이다. 몽구스의 경쟁상대는 코브라가 아니라 다른 몽구스이며 사자의 싸움 상대는 가젤이 아니라 다른 사자이다. 그리고 인간의 경쟁 상대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그의 동료이기도 하다.
살아남기 위해 동족끼리 끊임없이 싸우는 현장에서 항상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자생존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한 종족이 평균적인 수명 안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의미와도 거리가 멀다. 요약하자면 살아남은 동물은 어떤 의미에서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서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혔다. 생물계에서 객관적인 “힘”의 기준이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중요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예를 들어 당나귀는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짐꾼 당나귀의 경우 고된 일에도 불구하고 길게는 백 살까지 살 수 있다. 따라서 진화의 법칙에는 고정된 “비밀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따른 서로 다른 생존전략만 있을 뿐이다. 수많은 진화생물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다윈의 이론을 적응이론(Anpassungstheorie)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생물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해 살아간다는 것이 다윈 이론의 중요한 부분인데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적자생존의 법칙은 겁쟁이의 생존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이 등식은 인간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최전방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젊은 병사는 다윈의 관점으로 보면 적자가 아니다.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 높은 절벽 위에서, 달리는 기차의 지붕 위에서 뛰어 내리거나 동물원의 곰 우리로 뛰어드는 젊은이도 적자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적자란 무엇보다 태도의 문제이다. 건강과 웰빙에 사로잡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적자란 자신의 직장에서 죽어라고 일한 다음 마라톤까지 완주하는 사람이 아니며 휴일에 극단적인 스포츠로 몸을 단련하는 사람이 아님을 종종 잊어버린다. 적자란 이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이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뜻한다. 고통을 애써 감추려고 남몰래 약으로 아픔을 이겨내려는 우리 시대의 비정상적인 생활 방식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참 잘못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급속도로 번져가는 경제적 스트레스 때문에 전체적으로 현대인은 건강이 약화되어 병치레가 잦고 고통이 늘어가는 현상은 인류에게 큰 손해이다. 현대는 “속도 전쟁이다. 속도에 뒤처지면 도태된다”라고 독려하는 기업 책임자들의 주장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첨단 기계문명화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언젠가 그 첨단 문명의 기계화가 우리의 머리 위에서 무너지고 말 것이다.
죽은 자는 누워 있지만 살아남은 자는 서 있다.
-엘리아스 카네티
겁쟁이가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강제로 설정한 수많은 종류의 미심쩍은 이념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지금이야말로 비겁함과 겁쟁이의 미덕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때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비겁자란 여러 상황 속에서 숨거나 도망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며 용기를 증명하려 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가능한 오래 살아남으려 한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을 방해받거나 위협받지 않는 한 타인에게 적대감을 품는 일이 없으며 국가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혹여 자신에 대한 보복조차 묵묵히 감내하며 그 결과 세속에서 물러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우리가 지나간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래의 재앙은 피할 수 있다. 정치가가 즐거이 자신이 하는 일을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계획을 우리 자신의 계획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믿고 자칭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의 수상쩍은 설계도에 맹목적으로 환호하지 않을 만큼 비겁함과 겁쟁이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정치가가 없어도 우리는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비겁함은 그리고 겁쟁이는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의 삶이 재앙에 내몰리는 것을 막아줌으로 하나의 미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겁쟁이는 다른 종족을 해치거나 죽이는 것에 쾌감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오래 살아남은 것에 대해 행복을 느낄 뿐이다.
▣ 작가 소개
저자 프란츠 엠 부케티츠(Franz M. Wuketits)
저자는 빈(Wien) 대학교의 생명과학 전임교수이며 여러 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부케티츠는 또 알텐베르크(Altenberg)에 있는 콘라드로렌츠(Konrad Rorenz) 진화·인지과학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고 있다. 수십 권의 도서를 집필했으며 그중 《사회생물학 논쟁》《자연의 재앙, 인간》《진화는 진화한다》《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이타적 과학자》《멸종, 사라진 것들》이 국내에서 번역되었다.
역자 이덕임
역자는 동아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인도의 뿌나(Pune University) 대학원 인도철학과를 졸업했으며 오스트리아 빈 대학 독일어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발적 가난》《선택의 논리학》《과학백과》《하늘을 흔드는 사람-러비야 카디르 저서전》등 많은 도서를 번역했다.
▣ 주요 목차
들어가기 전에
00 부덕不德에 대한 예찬
01 용기 있는 자들의 비참함
02 다윈의 이론
03 위장과 속임수
04 겁쟁이들의 생존에 대하여
05 비겁함의 도덕
06 광신에 맞서
07 새로운 미덕에 대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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