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진화evolution!
인류의 세계관을 바꾼 위대한 사상혁명
지금까지 진화론을 생물학 이론의 하나로만 알았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진화론은 생물학에 머물지 않았다. 과학으로만 남지도 않았다. 진화론은 인류의 사상체계 전반을 흔들었다. 그래서 진화론을 다윈 혁명Darwinian Revolution이라 한다.
진화론은 기존의 종교적 관념을 뒤흔들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독교 신화의 자리를 앗아갔고, 만물은 인간을 향해 진보한다는 인간중심주의도 무너뜨렸다.
진보적인 학자들은 진화론으로 사회의 본성과 발달에 대한 다양한 논제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진화론이 인간 사회의 진보적 경향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라며 반겼다.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은 같은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이라는 아이디어를 환영했다. 조금의 방해도 받지 않는 치열한 경제활동(생존경쟁)이 생물학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에 매료되었다. 군사력으로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적 팽창의 정당성을 진화론에서 찾은 것이다.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 불리는 이 모든 사상적 전환, 세계관의 변화. 이것이야말로 다윈 혁명의 진면목이다.
모든 것은 진화로 수렴된다
사회사적 시각으로 풀어본 진화론, 그 투쟁의 과학혁명
이 책은 인류 과학의 진정한 혁명인 진화론이 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다루고 있다. 원제는 ‘다윈 혁명Darwinian Revolution’이지만, 결코 다윈에만 논의의 초점을 맞춘 책도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다윈 혁명’이란 다윈이라는 천재적 영웅에 의해 일어나고 진행된 혁명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의 다윈 혁명이란 진화론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과학적 생물관의 등장과 그에 영향을 받은 사회적?문화적?종교적?정치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책은 1800년대 영국에 대한 사회사적인 분석에서 시작한다. 당시 영국의 인구 변화와 사회계층의 이동, 도시 노동자가 증가하는 상황과 우후죽순처럼 대학들이 설립되는 상황을 통해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설명한다. 그 뒤를 이어서 지질학, 생물학, 과학철학에서의 변화를 짚어낸 뒤 다윈의 시대로 접어든다.
마치 거대한 직소 퍼즐이 서서히 모양을 갖춰 가듯이 19세기 영국에 대한 사회사적인 분석과 과학계 전반의 이야기를 펼쳐 가다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다윈과 진화론으로 수렴되는 과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윈이 등장한 이후에 다시 부채꼴처럼 활짝 이야기가 펼쳐지며, 새로운 과학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문화, 종교, 정치적 변화를 폭넓게 서술하고 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수많은 원인과 흔적들이 어느 순간 하나(다윈 혁명)로 수렴되었다가 다시 수많은 결과와 형태로 번져 나가는 광대한 풍경을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19세기 영국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진화론이라는 사상혁명의 탄생과 그 후폭풍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과학사 서술의 모범을 보여 준다.
창조과학에 맞서 진화론을 지켜낸
생물철학의 개척자, 마이클 루스의 대표작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루스는 과학사?과학철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이다. 특히 생물철학philosophy of biology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잘 알려졌으며, 다윈과 진화론 연구에 있어서 그동안 과학의 영역에서만 다뤄져 온 진화론을 철학 및 종교 분야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연구 경향의 결과물로, 다윈이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영웅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1800년대 중반 영국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다윈과 진화론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마이클 루스는 또한 학술적인 성과물 이외에도 과학에 올바른 지위를 부여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의 이름을 학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린 유명한 사건이 있다. 바로 1982년 미국에서 창조과학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한 아칸소 주 법령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진화론 측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법정에 선 그는 과학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하며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이를 통해 창조과학이 패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 그가 ‘과학의 조건’으로 강조한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과학은 맹목적이고 변치 않는 자연의 규칙성(자연법칙)에 기초해야만 한다.
2. 과학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 가능해야 한다.
3. 과학은 경험적 실재에 비추어 검증 가능testable해야 한다.
4. 과학은 반증 가능falsifiable해야 한다.
5. 과학은 잠정적tentative이어야 한다.
진화는 어떻� 탄생하게 되었는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 진화의 길을 닦다
고대 그리스까지만 해도 진화에 관한 아이디어는 보편적이었다. 각 생물 집합이 다른 생물 집합에서 나왔으며, 그 유래가 최초의 생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으로만 ‘진화’라는 말을 쓴다면, 전혀 틀리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체계와 기독교가 퍼지면서 이러한 원시 진화론은 갑자기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중세가 끝날 때까지 이 둘의 철학과 기독교의 창세기가 결합하여 정적인 세계관을 떠받치고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이런 완고한 상상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으니, 바로 뉴턴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물리학의 탄생과 생물학?지질학의 발전이었다.
특히 1830년대의 영국에서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당시 영국은 산업 분야에선 유럽에서 가장 앞섰으면서도 정치?사회?종교적인 면에서는 가장 보수적이었고, 대학 체계 역시 근대 산업국가의 요구에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과학자들뿐 아니라 대학에 속하지 않은 여러 과학자들이 직업으로서의 과학, 즉 프로 과학자의 길을 개척한다. 이는 곧 과학자들이 더 이상 전시와 왕실을 위한 연금술, 점성술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연구활동을 펼칠 수 있음을 뜻한다.
당시의 과학에서는 특히 지질학과 생물학에서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지질학은 동일과정론과 격변론으로 나뉘어 지구 역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고, 과학철학에서는 허셜의 참원인 학설과 휴얼의 ‘귀납의 통곬’(통섭) 이론이 등장했다. 또한 종교에서는 오랜 계시종교적 전통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1832년 찰스 라이엘은 《지질학 원리》 2권을 통해 생물 기원 문제에 대한 논의의 초석을 깔아놓았다. 물론 생물이 하등한 꼴에서 진보한 꼴로 진화한다는 주장을 거부했지만, 라이엘의 주장은 진화에 대한 논의의 초석을 깔았다고 볼 수 있다.
과학사의 필연, 진화의 탄생
라이엘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목적에서, 1844년에 익명으로 《창조의 자연사가 남긴 흔적들》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진화에 관한 사변을 잔뜩 담고 있던 이 책은 단숨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혹독한 비난에도 시달렸다. 여기서 익명의 저자는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생물 세계에도 법칙이 있고, 이 법칙에 모든 생물이 종속될 뿐 아니라 이 법칙에 따라 생물이 진보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다윈이 아니라 로버트 체임버스라는 학자이자 출판업자였다.
당시까지 과학적 견지에서 펼치던 진화론은 중요한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즉 생물은 최초의 형태에서 세련된 꼴로 진화해 가되, 종국에는 사람을 향해 뻗어간다는 인간중심주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인간중심주의라기보다는 종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관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 1840년대에 비교해부학자 리처드 오언은 이전의 진보론에 담긴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했다. 즉 사람을 향해 뻗어 가는 진보는 없으며, 생물이 저마다 특정 생태자리에 맞춰 분화하고 적응한다는 것이다. 헉슬리와 후커는 진화론자가 아니었으나 1850년대에 이르면서 차차 진화론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버트 스펜서는 자연선택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리고 얼프리드 월리스는 자연선택에 대한 논문을 써서 다윈에게 보냈다. 이렇게 1850년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사상가들이 다윈이 올 길을 닦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오다
“모든 생물이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존경쟁이 일어난다. 모든 생물은 자연 수명을 사는 동안 알이나 씨앗을 여럿 생산하기에 …… [언젠가는] 파멸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기하급수적 증가 원리에 따라, 순식간에 그 수가 터무니없이 늘어나 어느 곳도 그들을 부양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생존할 수 있는 수보다 많은 개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 생존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
다윈이 ‘생존경쟁’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작성한 이 글에서는 맬서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즉 다윈에게 진화라는 개념은 온전히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다윈은 맬서스를 읽자마자 힘과 압력의 관점에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무언가가 생물계에 모종의 압력을 가하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자신의 꼴을 바꾸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윈의 태도는 명확했다. 모든 생물은 최초의 원시적인 꼴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으며, 그 최초의 뿌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다윈은 다른 모든 것들처럼 사람과 사람의 기원 또한 깨지지 않는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뉴턴의 우주처럼 지구상의 생물도 법칙에 의해 추동되고 움직이는 존재이며, 여기에는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아직 온전히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다윈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집안 분위기, 그리고 함께 어울렸던 런던의 지성 공동체의 분위기 아래 종교에 대해 자유로이 사고할 수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신문, 서평지, 등 수많은 매체가 열광했다. 성직자와 연설가 들은 책에 담긴 상스러운 학설을 성토했고, 헉슬리와 후커 같은 이들은 상대편 못지않게 격한 말로 다윈을 찬미했다. 자연선택, 성선택, 유전, 변이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분분한 의견 속에서도 많은 동조자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과학계에서 다윈은 분명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다윈의 이론에 온전히 동조할 수 없었다. 매력적인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사상체계를 완전히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과학을 바꾸다, 세상을 바꾸다!
진화론에서 사회다윈주의까지, 세상을 바꾼 다윈 혁명
진화라는 아이디어는 단숨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진화만이 생물 기원 문제에 과학적 답을 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주의 논란은 과학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났고, 그 중심에는 종교가 있었다. 다윈의 의도와는 달리 다윈에게 가해진 거의 모든 공격은 “원숭이 문제”였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면 신의 존재는 물론 인간의 고귀한 가치 또한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화론은 과학 이외의 영역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냈다. 과학에 특별한 관심도 없거나 지식도 없는 사람들도 진화론에 반응을 보였고, 자기들의 학설에 진화론을 끌어들였다. 진화론은 먼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를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진화론적 시각을 가지면 사회의 본성과 발달에 대한 다양한 논제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진화론이 인간 사회의 진보적 경향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라며 반겼다.
또한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자유방임 경제를 정당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화론을 반겼다. 치열한 (경제적) 생존경쟁이 생물학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정당성을 끌어낸 무리도 있었다. 이렇듯 진화는 과학을 넘어 철학, 종교, 정치를 변화시켰다.
진화의 탄생이라는 다윈 혁명은 단 하나의 것이 아니다. 그 혁명에는 여러 다른 면모, 다른 원인, 다른 결과 들이 있었다. 흔히 종교에 대해 과학이 승리를 거둔 것으로 그 혁명을 그리지만, 다윈 혁명을 전체적으로 살피면 이는 틀린 생각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일어난 여러 변화 속에서 다윈의 혁명은 한편으로는 원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결과이기도 했다. 다윈 혁명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뜻 깊은 움직임 가운데 하나였다.
▣ 작가 소개
저 : 마이클 루스
Michael Ruse
생물철학philosophy of biology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과학철학자로 특히 다윈과 진화론 연구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석학이다. 과학의 영역에서 다뤄져 온 진화론을 철학 및 종교 분야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82년 미국에서 창조과학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한 아칸소 주 법령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진화론 측 증인으로 나와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입증하는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하며 창조과학이 패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35년간 캐나다 구얼프 대학교 교수로 있었다. 구얼프 대학교에서 퇴직한 뒤 지금까지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과학사/과학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 왕립학술원 회원이며, 미국과학진흥회 회원이다.
《생물학의 철학적 문제들》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다윈과 설계》 《진화 전쟁》 《다윈의 패러다임》 등 20여 권의 저서와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학술지 《생물과 철학Biology and Philosophy》을 창간하여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았다. 수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1979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다.
역 : 류운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왜 다윈이 중요한가》 《대멸종》 《원자폭탄, 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 《노벨상 가이드》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세계관의 균열
제2장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과학
제3장 오래된 믿음을 의심하다
제4장 생명 기원 논쟁
제5장 생물은 진보하는가?
제6장 다윈의 길을 닦은 사람들
제7장 ''종의 기원'', 혁명의 시작
제8장 새로운 과학의 탄생
제9장 다윈, 종교와 철학을 뒤엎다
제10장 세상을 바꾼 다윈의 과학혁명
주석
20년 뒤의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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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evolution!
인류의 세계관을 바꾼 위대한 사상혁명
지금까지 진화론을 생물학 이론의 하나로만 알았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진화론은 생물학에 머물지 않았다. 과학으로만 남지도 않았다. 진화론은 인류의 사상체계 전반을 흔들었다. 그래서 진화론을 다윈 혁명Darwinian Revolution이라 한다.
진화론은 기존의 종교적 관념을 뒤흔들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독교 신화의 자리를 앗아갔고, 만물은 인간을 향해 진보한다는 인간중심주의도 무너뜨렸다.
진보적인 학자들은 진화론으로 사회의 본성과 발달에 대한 다양한 논제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진화론이 인간 사회의 진보적 경향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라며 반겼다.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자들은 같은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이라는 아이디어를 환영했다. 조금의 방해도 받지 않는 치열한 경제활동(생존경쟁)이 생물학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에 매료되었다. 군사력으로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적 팽창의 정당성을 진화론에서 찾은 것이다.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 불리는 이 모든 사상적 전환, 세계관의 변화. 이것이야말로 다윈 혁명의 진면목이다.
모든 것은 진화로 수렴된다
사회사적 시각으로 풀어본 진화론, 그 투쟁의 과학혁명
이 책은 인류 과학의 진정한 혁명인 진화론이 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다루고 있다. 원제는 ‘다윈 혁명Darwinian Revolution’이지만, 결코 다윈에만 논의의 초점을 맞춘 책도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다윈 혁명’이란 다윈이라는 천재적 영웅에 의해 일어나고 진행된 혁명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의 다윈 혁명이란 진화론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과학적 생물관의 등장과 그에 영향을 받은 사회적?문화적?종교적?정치적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책은 1800년대 영국에 대한 사회사적인 분석에서 시작한다. 당시 영국의 인구 변화와 사회계층의 이동, 도시 노동자가 증가하는 상황과 우후죽순처럼 대학들이 설립되는 상황을 통해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설명한다. 그 뒤를 이어서 지질학, 생물학, 과학철학에서의 변화를 짚어낸 뒤 다윈의 시대로 접어든다.
마치 거대한 직소 퍼즐이 서서히 모양을 갖춰 가듯이 19세기 영국에 대한 사회사적인 분석과 과학계 전반의 이야기를 펼쳐 가다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다윈과 진화론으로 수렴되는 과정이 펼쳐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윈이 등장한 이후에 다시 부채꼴처럼 활짝 이야기가 펼쳐지며, 새로운 과학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문화, 종교, 정치적 변화를 폭넓게 서술하고 있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수많은 원인과 흔적들이 어느 순간 하나(다윈 혁명)로 수렴되었다가 다시 수많은 결과와 형태로 번져 나가는 광대한 풍경을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19세기 영국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진화론이라는 사상혁명의 탄생과 그 후폭풍을 자세하게 묘사하며, 과학사 서술의 모범을 보여 준다.
창조과학에 맞서 진화론을 지켜낸
생물철학의 개척자, 마이클 루스의 대표작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루스는 과학사?과학철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학자이다. 특히 생물철학philosophy of biology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잘 알려졌으며, 다윈과 진화론 연구에 있어서 그동안 과학의 영역에서만 다뤄져 온 진화론을 철학 및 종교 분야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연구 경향의 결과물로, 다윈이라는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영웅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1800년대 중반 영국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다윈과 진화론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마이클 루스는 또한 학술적인 성과물 이외에도 과학에 올바른 지위를 부여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의 이름을 학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린 유명한 사건이 있다. 바로 1982년 미국에서 창조과학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한 아칸소 주 법령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진화론 측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법정에 선 그는 과학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하며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증명하였고, 이를 통해 창조과학이 패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 그가 ‘과학의 조건’으로 강조한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과학은 맹목적이고 변치 않는 자연의 규칙성(자연법칙)에 기초해야만 한다.
2. 과학은 자연법칙에 의해 설명 가능해야 한다.
3. 과학은 경험적 실재에 비추어 검증 가능testable해야 한다.
4. 과학은 반증 가능falsifiable해야 한다.
5. 과학은 잠정적tentative이어야 한다.
진화는 어떻� 탄생하게 되었는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 진화의 길을 닦다
고대 그리스까지만 해도 진화에 관한 아이디어는 보편적이었다. 각 생물 집합이 다른 생물 집합에서 나왔으며, 그 유래가 최초의 생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으로만 ‘진화’라는 말을 쓴다면, 전혀 틀리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체계와 기독교가 퍼지면서 이러한 원시 진화론은 갑자기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중세가 끝날 때까지 이 둘의 철학과 기독교의 창세기가 결합하여 정적인 세계관을 떠받치고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이런 완고한 상상력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으니, 바로 뉴턴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물리학의 탄생과 생물학?지질학의 발전이었다.
특히 1830년대의 영국에서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당시 영국은 산업 분야에선 유럽에서 가장 앞섰으면서도 정치?사회?종교적인 면에서는 가장 보수적이었고, 대학 체계 역시 근대 산업국가의 요구에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과학자들뿐 아니라 대학에 속하지 않은 여러 과학자들이 직업으로서의 과학, 즉 프로 과학자의 길을 개척한다. 이는 곧 과학자들이 더 이상 전시와 왕실을 위한 연금술, 점성술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연구활동을 펼칠 수 있음을 뜻한다.
당시의 과학에서는 특히 지질학과 생물학에서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지질학은 동일과정론과 격변론으로 나뉘어 지구 역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었고, 과학철학에서는 허셜의 참원인 학설과 휴얼의 ‘귀납의 통곬’(통섭) 이론이 등장했다. 또한 종교에서는 오랜 계시종교적 전통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1832년 찰스 라이엘은 《지질학 원리》 2권을 통해 생물 기원 문제에 대한 논의의 초석을 깔아놓았다. 물론 생물이 하등한 꼴에서 진보한 꼴로 진화한다는 주장을 거부했지만, 라이엘의 주장은 진화에 대한 논의의 초석을 깔았다고 볼 수 있다.
과학사의 필연, 진화의 탄생
라이엘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목적에서, 1844년에 익명으로 《창조의 자연사가 남긴 흔적들》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진화에 관한 사변을 잔뜩 담고 있던 이 책은 단숨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혹독한 비난에도 시달렸다. 여기서 익명의 저자는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생물 세계에도 법칙이 있고, 이 법칙에 모든 생물이 종속될 뿐 아니라 이 법칙에 따라 생물이 진보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다윈이 아니라 로버트 체임버스라는 학자이자 출판업자였다.
당시까지 과학적 견지에서 펼치던 진화론은 중요한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즉 생물은 최초의 형태에서 세련된 꼴로 진화해 가되, 종국에는 사람을 향해 뻗어간다는 인간중심주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인간중심주의라기보다는 종교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관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 1840년대에 비교해부학자 리처드 오언은 이전의 진보론에 담긴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했다. 즉 사람을 향해 뻗어 가는 진보는 없으며, 생물이 저마다 특정 생태자리에 맞춰 분화하고 적응한다는 것이다. 헉슬리와 후커는 진화론자가 아니었으나 1850년대에 이르면서 차차 진화론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버트 스펜서는 자연선택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리고 얼프리드 월리스는 자연선택에 대한 논문을 써서 다윈에게 보냈다. 이렇게 1850년대를 거치는 동안 많은 사상가들이 다윈이 올 길을 닦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오다
“모든 생물이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 때문에 불가피하게 생존경쟁이 일어난다. 모든 생물은 자연 수명을 사는 동안 알이나 씨앗을 여럿 생산하기에 …… [언젠가는] 파멸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기하급수적 증가 원리에 따라, 순식간에 그 수가 터무니없이 늘어나 어느 곳도 그들을 부양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생존할 수 있는 수보다 많은 개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 생존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찰스 다윈, 《종의 기원》
다윈이 ‘생존경쟁’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작성한 이 글에서는 맬서스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즉 다윈에게 진화라는 개념은 온전히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다윈은 맬서스를 읽자마자 힘과 압력의 관점에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무언가가 생물계에 모종의 압력을 가하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자신의 꼴을 바꾸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윈의 태도는 명확했다. 모든 생물은 최초의 원시적인 꼴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으며, 그 최초의 뿌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다윈은 다른 모든 것들처럼 사람과 사람의 기원 또한 깨지지 않는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뉴턴의 우주처럼 지구상의 생물도 법칙에 의해 추동되고 움직이는 존재이며, 여기에는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아직 온전히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다윈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집안 분위기, 그리고 함께 어울렸던 런던의 지성 공동체의 분위기 아래 종교에 대해 자유로이 사고할 수 있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신문, 서평지, 등 수많은 매체가 열광했다. 성직자와 연설가 들은 책에 담긴 상스러운 학설을 성토했고, 헉슬리와 후커 같은 이들은 상대편 못지않게 격한 말로 다윈을 찬미했다. 자연선택, 성선택, 유전, 변이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분분한 의견 속에서도 많은 동조자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과학계에서 다윈은 분명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다윈의 이론에 온전히 동조할 수 없었다. 매력적인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사상체계를 완전히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과학을 바꾸다, 세상을 바꾸다!
진화론에서 사회다윈주의까지, 세상을 바꾼 다윈 혁명
진화라는 아이디어는 단숨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진화만이 생물 기원 문제에 과학적 답을 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윈주의 논란은 과학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났고, 그 중심에는 종교가 있었다. 다윈의 의도와는 달리 다윈에게 가해진 거의 모든 공격은 “원숭이 문제”였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면 신의 존재는 물론 인간의 고귀한 가치 또한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진화론은 과학 이외의 영역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냈다. 과학에 특별한 관심도 없거나 지식도 없는 사람들도 진화론에 반응을 보였고, 자기들의 학설에 진화론을 끌어들였다. 진화론은 먼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를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진화론적 시각을 가지면 사회의 본성과 발달에 대한 다양한 논제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들은 진화론이 인간 사회의 진보적 경향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라며 반겼다.
또한 생존경쟁에 기초한 자연선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자유방임 경제를 정당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화론을 반겼다. 치열한 (경제적) 생존경쟁이 생물학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종들끼리 벌이는 생존경쟁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정당성을 끌어낸 무리도 있었다. 이렇듯 진화는 과학을 넘어 철학, 종교, 정치를 변화시켰다.
진화의 탄생이라는 다윈 혁명은 단 하나의 것이 아니다. 그 혁명에는 여러 다른 면모, 다른 원인, 다른 결과 들이 있었다. 흔히 종교에 대해 과학이 승리를 거둔 것으로 그 혁명을 그리지만, 다윈 혁명을 전체적으로 살피면 이는 틀린 생각이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일어난 여러 변화 속에서 다윈의 혁명은 한편으로는 원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결과이기도 했다. 다윈 혁명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뜻 깊은 움직임 가운데 하나였다.
▣ 작가 소개
저 : 마이클 루스
Michael Ruse
생물철학philosophy of biology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과학철학자로 특히 다윈과 진화론 연구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석학이다. 과학의 영역에서 다뤄져 온 진화론을 철학 및 종교 분야에서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82년 미국에서 창조과학을 진화론과 동등하게 취급하도록 한 아칸소 주 법령에 대한 위헌 소송에서 진화론 측 증인으로 나와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님을 입증하는 다섯 가지 요건을 제시하며 창조과학이 패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35년간 캐나다 구얼프 대학교 교수로 있었다. 구얼프 대학교에서 퇴직한 뒤 지금까지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과학사/과학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캐나다 왕립학술원 회원이며, 미국과학진흥회 회원이다.
《생물학의 철학적 문제들》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다윈과 설계》 《진화 전쟁》 《다윈의 패러다임》 등 20여 권의 저서와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학술지 《생물과 철학Biology and Philosophy》을 창간하여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았다. 수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1979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대표작이다.
역 : 류운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왜 다윈이 중요한가》 《대멸종》 《원자폭탄, 그 빗나간 열정의 역사》 《노벨상 가이드》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세계관의 균열
제2장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과학
제3장 오래된 믿음을 의심하다
제4장 생명 기원 논쟁
제5장 생물은 진보하는가?
제6장 다윈의 길을 닦은 사람들
제7장 ''종의 기원'', 혁명의 시작
제8장 새로운 과학의 탄생
제9장 다윈, 종교와 철학을 뒤엎다
제10장 세상을 바꾼 다윈의 과학혁명
주석
20년 뒤의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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