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 성선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다
유전자는 인간과 동물을 어디까지 결정할까?
유전자는 생김새도 만들고, 일정 수준의 행동양식도 조종한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질병에 관해서는 발병 여부와 발병 시기까지 결정한다. 초파리의 행동에도 유전자가 관여하는 부분이 있다. 수컷 초파리는 암컷에게 이렇게 구애를 한다. ‘암컷을 쫓아다니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ng)→짧은 스킨십으로 유혹하는 태핑(tapping)→쫓아다니는 구애행동인 채이스(chase)→날개를 움직여 만든 소리로 노래하기(singing)→교미(attemptin copulation)’의 과정을 밟는다. 이런 초파리 구애행동의 각 과정은 모두 유의미한 유전학적 연구 모델로 설정이 가능하다. 특히 암컷이 수컷의 노래를 듣는 과정은 동물이 어떻게 소리를 구분하는지를 밝히는 데에 일조하고 있는데, 유전자가 망가져서 음치가 된 수컷 초파리는 암컷이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캐나다 오타와대학의 김우재 교수는 스스로를 ‘초파리 야동 전문가’라 부른다. 하루에도 수천 번 초파리가 교미를 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여 데이터를 얻는다. 김우재 교수가 초파리 교미를 연구하는 이유는 교미 자체가 바로 성선택(sexual selection)이고, 성선택이야말로 자신의 유전물질을 대물림하기 위해 유전자가 행동을 결정하는 결정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김우재 교수가 《네이처뉴로사이언스》에 실은 「어떻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면 초파리 수컷이 섹스를 오래하는가」 같은 논문의 주제는 황당해 보이지만, 유전자와 환경이 동물의 행동양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밝히는 결정적 발견이다. 김우재 교수는 초파리 성선택 분야 연구에서 손꼽히는 과학자이며, 이 분야 데이터를 독점하고 있는 세계에서도 주목하는 과학자다.
수컷 초파리의 10퍼센트는 수컷 초파리의 꽁무니를 쫓으며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수컷의 10퍼센트는 동성애 성향을 갖는다는 것인데, 이런 결과는 동성애가 유전적 질환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이의 일종이라는 결정적 근거가 된다. 그런데 이런 발견들이 언론을 거치면 ‘동성애는 유전적 결함 때문에 생긴다’로 와전된다. 김우재 교수 스스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이런 해석이다. 유전학자들은 유전자가 행동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연구하는 사람들이지만, 유전자는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되새김질 한다. 그리고 유전자보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행동이 무엇일까를 항상 먼저 고민한다. 대한민국 대표 유전학자, 완전초파리 과학자 ‘완초’ 김우재 교수가 들려주는 유전학은 어떤 이야기일까.
2. 인간과 닮은 초파리. 진화론과 분자생물학을 통합하다!
그런데 왜 하필 초파리일까?
XY염색체를 가졌으면 (일반적으로) 모두 인간 남성이고, XX염색체를 가졌으면 여성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초파리의 성(姓)을 결정하는 유전자도 Y염색체 위에 있다. 그래서 XY염색체를 가진 초파리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수컷이다. 또 초파리의 염색체 개수는 23개씩 두 쌍, 총 46개다. 인간의 염색체 개수와 같다. 생물학 연구 생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쥐의 염색체 개수는 42개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과 초파리는 400개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초파리는 유전학뿐만 아니라 발생학, 진화와 같이 생물학 연구 전반에 걸쳐 널리 이용되는 모델생물이다.
하지만 초파리가 생물학에서 중요한 모델생물인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생물학은 크게 두 가지 갈래가 있다. 이론과 현상을 논거로 들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다양한 생물들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이 하나고, 실제 실험실에서 실험을 통해 생물의 생리현상을 밝히는 실험생물학이 다른 하나다. 『종의 기원』 찰스 다윈과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생물학을 대표하는 과학자이고, ‘멘델의 유전법칙’의 멘델이나 DNA의 구조를 밝힌 왓슨&크릭은 실험생물학을 대표하는 과학자다. 비슷하게 보이겠지만, 이 두 갈래는 생물을 대하는 근원적 질문이 다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첨예하게 대립했다.
절대 섞일 수 없을 것만 같던 두 진영은 ‘초파리’를 매개로 극적으로 타협한다. 초파리 연구의 대부 격인 토마스 헌트 모건의 제자들은 ‘초파리’를 가지고 유전체 분석을 통한 종(種)분화 연구, 염기 서열 분석을 통한 유전자 분석 연구 등을 진화생물학과 실험생물학 두 분야를 넘나들며 광범위하게 수행했다. 이를 계기로 두 진영 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경쟁적으로 학문에 임하지 않고, 서로의 연구결과를 가감 없이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초파리 연구자들의 학풍도 일조했다. 초파리는 생물학의 두 갈래를 극적으로 통합한 가교, 판문점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파리는 생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모델생물이다.
대한민국 기초과학을 살리기 위해 사회를 외면하지 않는 과학자의 실제적 목소리
기초과학은 정말로 돈이 안 될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기초과학에 왜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잃었다. 이때 미국 기초과학을 극적으로 살린 한 사람이 의미 있는 보고서를 써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을 설득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주역 중 한 사람인 버니바 부시가 쓴, ‘기초과학을 증진시키면 곧 응용으로 이어지고 돈을 벌 수 있다’라는 단선적 역사관을 담은 「과학, 영원한 개척자」이다.
‘기초과학을 증진시키면 곧 응용으로 이어지고 돈을 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기초과학 연구자인 김우재 교수는 이 보고서가 ‘뻥’이라고 말한다. 버니바 부시가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초과학이 죽을 것 같아서’ 대통령과 국민을 속여 미국의 기초과학을 살렸다고 김우재 교수는 평한다. 나아가 버니바 부시는 의사결정, 예산집행의 과정에 과학자가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돈은 안 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연구들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이 미국과 다른 길을 가게 된 이유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과학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정부 주도하에 돈이 되는 과학에만 투자받을 수 있었던 과학계의 구조적 결함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기초과학은 늘 가난했고, 그래서 뒤쳐졌다 말한다.
한국의 과학 정책에 끊임없이 쓴소리를 하는 김우재 교수는 여기에 한마디 덧붙인다. “대중은 변화를 바라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으로 과학자를 뽑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한발씩 늦는 것이 문제다.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할 때 뒤처지는 사람은 대개 정치인이다.” 실제로 김우재 교수는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이하 ESC)’에서 활동하며 과학에 대한 헌법의 기술을 수정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개헌안 발의에도 동참한다. ‘과학은 언제나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라는 모토아래 과학의 진정한 과학화를 꿈꾸는 그의 이상(理想)을 함께 꿈꿔보자.
스낵 사이언스, 언제 어디서든 쉽고 재미있게 읽는 유쾌한 과학 토크
2015년 1월에 스낵 사이언스 시리즈 1, 2권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1: 이정모의 공룡과 자연사』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이정모 관장이 공룡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공룡의 멸종과 인류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푸근한 입담을 과시한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2: 이명현의 외계인과 UFO』는 한국 세티(SETI) 이명현 위원장이 외계 지적 생명체와 탐사, 그리고 신비한 우주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3권 『과학하고 앉아있네 3: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에 이어 출간된 『과학하고 앉아있네 4: 김상욱의 양자역학 더 찔러보기』는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가 가볍게 접근하는 양자역학 이야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심오한 양자역학의 세계를 깊이 있게 파헤친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5: 윤성철의 별의 마지막 모습, 초신성』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윤성철 교수가 우주 팽창의 비밀을 알려준 초신성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친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6: 김대수의 사랑에 빠진 뇌』는 동물행동학과 신경과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랑을 탐구하며, 『과학하고 앉아있네 7: K박사의 태양계 탐사하기』는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8: 선창국의 지진 흔들어보기』는 국내 최고의 지진 전문가와 함께 경주지진과 포항지진의 차이점을 파악하고, 한국형 지진이 무엇인지, 한국형 지진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함께 논의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10분 내외로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문화 트렌드”를 말하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는 이 같은 ‘스낵 사이언스(Snack Science)’를 표방한다. 즉, ‘지금-여기’의 과학적 이슈와 주제를 골라, 우리 모두의 폭넓은 공감을 추구하고자 한다. 과학을 즐기고 소비하는 목적은 단순히 학술적 접근이나 상세하게 파헤치며 지식을 쌓는 것에 있지 않다. 이 시리즈는 오히려 그와 반대로, 대중의 눈높이와 함께하며 쉽고 재미있고 가볍게 읽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장실에 갈 때,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재미있게 듣고 나서 그 내용을 다시 읽거나 골라 읽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책이다.
스낵 사이언스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는 가벼운 분량이라 읽을 때 부담감이 없다. 진행자 원종우의 재치 있는 입담과 대담자로 출연하는 각 분야 과학자들의 전문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토크가 책을 통해 술술 읽힌다. 방송에서 나온 대담을 그대로 글로 옮겨 과학적인 내용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든다. 진지하고 심각한 과학 이야기가 아닌 가볍고 편한 과학 이야기를 언제 이렇게 읽을 수 있을까? 책은 가벼운 분량이지만 그 주제와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해당 주제에 꼭 필요한 부분을 집약하여 담아내고 있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또한 유명한 과학자와 과학 관계자들을 이 시리즈를 통해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바로 ‘듣는 재미를 읽는 즐거움으로 승화’시킨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무엇? 과학과 대중의 고품격 컬래버레이션
‘과학’이라고 하면 막연히 어렵고 딱딱하고 일반적인 대중들과는 거리감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과학에 관심이 있어 무언가를 소비하려고 해도, 그 ‘막연한 어려움’ 때문에 선뜻 다가서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대중에게 성큼 다가가 과학은 어렵고 딱딱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몸소 느끼게 해주며, 과학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책이 바로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동명의 과학전문 팟캐스트 방송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과학 전반에 걸쳐 다방면으로 일하는 ‘과학과 사람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2013년 5월부터 대학로 벙커1에서 과학 토크쇼를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매주 공개 토크쇼를 진행 중이다. 과학 강의나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통해 과학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팟캐스트에서 조회수 약 3,500만을 기록하며, 최고 인기 과학 팟캐스트로 자리매김했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는 과학이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데 앞장서면서, 대중들과 함께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나누는 고품격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추구한다. 다양한 과학자 및 과학 관계자들을 공개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과학 토크쇼를 접하는 자리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원종우
필명 파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20대 중반에 인디레이블 운동을 주창, 스스로 록 뮤지션으로 데뷔하고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이후 영국에서 다시 음악을 전공했다. 1999년 《딴지일보》에 합류, 15년 동안 음악, 문화, 역사, 과학 등을 주제로 수백 편의 글을 썼다. 2008년 SBS 창사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로 휴스턴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2012년에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유럽편》을 출간해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4년에는 과학과 역사, 우주적 상상력을 결합한 다큐멘터테인먼트 《태양계 연대기》를 출간해 과학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근에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전념해 팟캐스트 방송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로 1년 6개월 만에 35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며, 벙커원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공개 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과학자, 작가,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과학 전시, 강연, 공연을 기획·연출하면서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저 :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해 사회성 곤충 연구는 한국이 지원하지 않는 기초과학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초파리 행동유전학의 창시자인 시모어 벤저의 제자, 유넝 잔Yuh Nung Jan에게 사사했으며,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그 의사결정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와, 그 행동의 진화적 의미 또한 교미시간의 결정이 인간의 시간인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본업인 행동유전학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한국사회의 과학이 부패한 권력과 영혼 없는 관료사회에 유린당할 때, 혹은 한국사회의 과학이 박정희식의 경제발전 패러다임을 벗어나 건강하게 자리잡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 있을 때 글을 써 의견을 낸다. 한겨레 <야! 한국사회>에 3년이 넘게 겨우 1700여 자의 글로 매달 과학자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고, 과학자로 연구해온 주제들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과학자가 비뚤어진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독설을 퍼붓고 대통령을 욕해야 하는 세상이 얼른 끝나고, 과학자가 초파리의 교미행동만 연구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4차산업혁명을 싫어한다.
목 차
초파리는 인간과 많이 닮았다?
유전학의 흑역사, 우생학
유전되는 것은 무엇일까?
생물학의 두 가지 갈래
생물학의 두 갈래를 통합한 초파리
돈이 안 되는 기초과학?
더 많은 개체를 남긴 유전자가 더 많이 살아남는다
상식적인 과학, 상식적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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