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 가마니 정도의 씨앗 중에 나무로 자랄 수 있는 씨앗은 얼마나 될까. 겨우 한 줌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남아 싹을 틔운 씨앗 중에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랄 나무는 또 얼마나 될까. 수백분의 일, 수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수백 년 이상 된 거목들은 존재 그 자체로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무를 강력한 생의 의지를 품은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수백 년 된 고목도 언제든 간단히 베어 버린다. 다양한 생명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던 많은 천연림은 무자비한 벌채와 인간의 필요 때문에 황폐해지거나 조화롭지 못한 단순림으로 변해 버렸다. 편리한 생활, 돈이 되는 일만 추구하는 인간들은 그래서 과거보다 풍요로워졌을까?
저자는 자연을 향한 이런 무자비한 태도는 ‘무지(無知)’에서 온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알지 못하면 공감도 애착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나무의 삶과 천연림의 기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커녕,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중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이런 반응은 근본적으로 ‘나무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숲에 사는 나무의 일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일부터 해 보자고 권유한다.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생의 의지를 표현하는 나무의 속마음에 귀 기울여 듣다 보면, 나무의 치열한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무라는 생명체에 경의를 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망가진 숲을 되살리고, 인간의 삶을 다시 풍요롭게 만드는 일에도 나설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잘 아는 것’이야말로 ‘다양한 종이 함께 사는 숲’, 즉, 거목의 숲이 돌아오게 하는 첫 걸음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활엽수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12종의 일상생활이 담겨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 학교에 들어가 성인이 되는 과정을 기록했다. 저자가 직접 보고 만지면서 그린 세밀한 그림과 꼼꼼한 기록에 담긴 나무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자식을 만들고 떠나보내는 부모나무의 노력, 천애고아의 삶을 꿋꿋이 버텨 가는 씨앗의 필사적인 마음을 만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퍼뜨려 싹을 틔우고 자라는 방법은 나무마다 매우 다양하다. 나무가 취한 생존방식은 경외감이 솟아날 정도로 신비하다. 각각의 나무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나무와 작은 씨앗의 마음에 귀 기울이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책에 소개되는 12종의 활엽수는 살아가는 장소, 즉 수변림, 교란지, 오래된 산림, 작은 틈새 등 나무가 좋아하는 생육장소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저자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오랜 시간 살핀 느릅나무, 개키버들, 왕가래나무, 자작나무, 물오리나무, 고로쇠나무, 그라이아나벚나무, 칠엽수, 층층나무, 물참나무, 일본목련, 밤나무의 일상생활은 필사적이고 치열하지만 저마다의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현대인들은 나무의 목소리를, 나무의 마음을 듣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이 책은 그런 이들에게 나무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듣고자 하면 그 마음을 들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한 번쯤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나무와 숲의 일생을 세밀하게 펼쳐 보인다.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곁을 지켜 온 소리 없이 강한 생명체인 나무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친절한 입문서가 되어 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세이와 겐지
1954년 일본 야마가타 현 쓰루오카 시 구로가와에서 태어났다. 첩첩산중 강과 들에서 뛰어놀았다. 홋카이도대학 농학부를 졸업했다. 홋카이도 임업시험장에서 활엽수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이후, 나무에 꽃이 피는 모습과 나무가 씨앗을 퍼뜨리는 정교한 구조에 경외감을 느끼며 관찰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종이 함께 사는 천연림에 매료되어 방치된 땅에 천연림을 모방해 나무를 심고 있다. 취미는 모닥불 피우기, 산나물과 나무 열매 채취하고 재배하기, 목공(木工)과 목공품 감상이다. 도호쿠대학 대학원 농학연구과 교수이며, 저서로 《다양한 종이 함께 사는숲(多種共存の森)》이 있으며, 편저와 공저로는 《발아생물학(發芽生物學)》, 《숲속 싹의 생태학(森の芽生えの生態學)》, 《수목생리생태학(樹木生理生態學)》, 《산림의 과학(森林の科學)》, 《일본수목지(日本樹木誌)》 등이 있다.
옮긴이 : 양지연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문화언론학을 전공했다. 공공기관에서 홍보와 출판 업무를 담당했으며 지금은 기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아빠는 육아휴직 중』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어이없는 진화』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맨발로 도망치다』 등이 있다.
목 차
글을 시작하며
말이 없는 나무 | 나무의 마음 | 무지의 무자비함 | 나무는 말한다 | 사는 곳에 따라−책의 구성
1 물가에 살다
느릅나무
푸근한 수형 | 개척의 목표 | 아름다운 계절에 흩날리다 | 꿈틀거리는 나방 애벌레 | 물가의 단순림 | 산중턱에 외따로 선 거목 | 언제 싹을 틔울지는 부모나무가 정한다 | 물가가 아닌 도심에 사는 거목
개키버들
산간 마을 풍경 | 화려한 개화 | 엄마의 노력 | 순식간에 나타난 씨앗 | 솜털은 길 안내인 | 작지만 재빠르게 성장하는 씨앗
왕가래나무
자유롭게 자라다 | 암꽃 핀 뒤 수꽃 피는 나무, 수꽃 핀 뒤 암꽃 피는 나무 | 암수딴그루로 진화하는 것일까 | 씨앗을 퍼뜨려 주는 도우미 |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씨앗이 작아도 만회할 수 있어 | 은은한 빛이 도는 옷장
2 환한 교란지에 살다
자작나무
물빛 하늘과 하얀 줄기 | 과학적 천연림 조성 시도의 첫 걸음 | 꽃가루받이를 위해 무리 짓다 | 바람 타고 여행 떠나는 수많은 씨앗 | 밝은 곳에서만 싹을 틔우다 | 한계를 극복하다 | 세 살 버릇 여든까지−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전거로
물오리나무
상처 봉합 | 교란지를 가로질러 걷다 | 꽃꽂이 | 싹이 트는 것을 돕는 온도 감지기 | 근균 | 단풍 들 새도 없이 | 강을 풍성하게
3 오래된 숲에 살다
고로쇠나무
초봄에 승부를 걸다 | 가을의 빛도 이용하다 | 한꺼번에 잎이 나다 | 어린아이부터 순서대로 | 꽃을 피우고 나서 잎이 나다 | 꽃의 비밀 | 임기응변 | 강인한 노목
그라이아나벚나무
우스꽝스런 꽃 | 씨를 날라 주는 새 | 얀젠−코넬 가설을 깨닫다 | 부모의 그늘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 | 부모와 떨어졌을 때 비로소 우뚝 서다 | 온대림도 열대림도 똑같은 구조 | 어린나무의 편평한 줄기 | 봄에 뻗은 가지를 가을에 떨어뜨리다 | 절약은 숲의 상식 | 인생의 봄날 | 순응−숲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 봄 산에 들뜨다
칠엽수
거목의 무리 | 거대한 씨앗 | 불꽃놀이 | 꽤 고집스런 친구−똑같은 행동을 평생 지속하다 | 노목의 시간 | 깊은 산중의 맛
층층나무
친근한 나무 | 부풀어 오른 흰 구름 | 검게 익어 가는 빨간 열매 | 나무 종류의 변화−다양한 종이 함께 살기 시작하다 | 국부 적응 |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무서운 병 | 부모에게서 떨어져 틈을 기다리다 | 가장 먼저 삼나무 숲에 진입−종다양성 회복의 선봉 | 원시림을 떠올리다
물참나무
곰이 꺾은 가지 | 밤에 운반되는 도토리 | 도토리에게 도움을 주는 쥐와 그렇지 않은 쥐 | 도토리가 큰 이유 | 관목과 원전 | 만일을 위해 뿌리에 모아 두다 | 다른 견해−틈새 종일까 | 북쪽의 극상종
4 숲속 빈 틈새에 자라다
일본목련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 향기를 가득 머금은 큰 꽃송이 | 로즈 매더가 엿본 버밀리온 | 건강한 싹 | 등수국과 친구
밤나무
산등성이에 모여 살다 | 상사리−곰이 머문 자리 | 흰빛을 띤 나무 | 꿀벌도 사람도 반기는 늦은 개화 | 꽃가루를 운반하는 곤충 | 뒤영벌이 베풀어 준 은혜 | 빈틈으로 열매를 옮겨 주는 쥐 | 낙천적인 밤나무와 인내심 강한 물참나무 | 왜 야생 밤은 재배종보다 작을까 | 외양간 기둥 | 따스한 거목
글을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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