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거대 농축산업과 글로벌 전염병의 연결 고리를 찾아서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_거대 농축산업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지정학』은 사스, 조류와 돼지 인플루엔자, 에볼라 마코나, Q 열, 지카 등을 비롯 최근 몇십 년 동안 유행한 여러 신형 전염병의 유전적 재결합의 양상, 발상지와 확산 경로 등이 초국적 거대 농축산업(Agribusiness)의 생산과 유통 경로 등과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추적한다.
진화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롭 월러스는 인플루엔자의 특성과 인체 감염 메커니즘, 바이러스의 유전적 재조합이 특정 단백질과 RNA 등의 차원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전문적인 설명을 들려준다. 인체 헤르페스 바이러스, 카포시육종 바이러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등이 서로 도와가며 진화하는 과정을 규명하는 내용은 흥미진진하다. 인종과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르고 종수도 다르다는 내용도 흥미롭다.
초국적 거대 농축산업과 신형 전염병의 관계를 들여다보자. 책에서 언급하는 거대 농축산업 기업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기업 중 100개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 15개 모두의 25%를 점유하고 있다. 곡물 회사 카길은 세계 팜유 생산의 20~25%를 차지하고, 세계 가금류 생산의 4분의 3은 4개의 다국적 기업(독일 EW 그룹, 헨드릭스 제네틱스, 그리모 그룹 등)이 차지하고 있다.
H5N1 조류 인플루엔자가 중국 광둥에서 시작되고 지속적으로 변형이 출현한 것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 남부에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외국 자본이 대량 투입된 뒤의 변화와 연결된다. 농부들은 토지 이용권을 팔 수 있게 되었고 국내외 기업들이 달려들어 이 땅을 헐값에 임대계약한 뒤 공장식 단일 작물 농장이 더욱 활성화되었다. 닭 7만 마리가 한 지역에서 키워지며 종축-사육-도축-가공에 이르는 과정이 수직적으로 통합되고 세계 농업생산망과 통합되었다. 농민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의료 혜택과 건강보험이 후퇴하며 감염에 취약해졌다. 이 시기, 변형, 재조합된 혈청형이 감염시킨 상품이 국제 무역을 통해 수출되었다.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멕시코에서 2009년 H1N1 바이러스가 출현하게 만든 것은 스미스필드라는 미국 기업임이 강력하게 의심받는다. 그 몇 해 전 미국 회사들이 멕시코에 옥수수, 콩, 밀,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을 덤핑으로 팔자 농민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미국 회사의 하위 계약자가 되며 멕시코 농장들은 돌연변이성 병원균에 노출되게 된다. 2006년 미국 양돈업계에는 돼지 인플루엔자가 작은 규모로 여러 번 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2013 ~ 2015년 서아프리카에서 11,000명 가까이 목숨을 앗아간 데에는 외국 기업들이 땅을 사고 숲을 파헤치고 농장이 늘어났던 변화가 있었다. 야생 박쥐가 농장으로 들어왔고 변형된 바이러스가 농부들을 감염시켰다.
저자는 이런 계통지리학적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이나 각국 정부, 기업들로부터 압력을 받아 왔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또 각국의 연구자들의 실명을 거론해가며 비판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책의 여러 부분에서 기업과 결탁된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한 때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위키리크스의 미 국무부 외교전문들을 분석해 유전자변형(GM) 농업을 각국에 강요하는 미국을 고발한 내용도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호응을 받은 데이비드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에 대해서도, 콰먼이 인구 증가와 국제 수송, 기후 변화와 삼림 파괴, 항생제를 맞는 가축 등 생태학적 시스템을 비판하지만 그 위에 있는 자본의 회로, 기업의 책임을 외면해 버린다고 비판한다.
질병을 넘어서는 시각을 가져야 질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 구조적 원헬스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_거대농축산업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지정학』은 복잡한 상호 의존성을 가진 바이러스의 생태학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접근뿐 아니라 역사, 지리학적 연구가 통합될 때 세계적 질병을 보는 감각이 생긴다며, 여러 역사적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16세기 송나라 시대 중국 남부의 오리 농장과 곡물 농사, 유통이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생산량과 유통량이 늘어나면서도 지역의 경관 속에 19세기까지도 유지되고 있었음을 들려준다. 미국 남부의 면화 농장과 노예제의 실상, 태국의 사례, 커피 생산 방식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개미와 여러 곤충들의 공생을 통해 커피나무가 열매를 맺게 되고 병원균과 해충으로부터 서로를 지키는 자연의 메커니즘은 복잡하고도 신비로운데, 저자는 이런 원리를 통해 앞으로의 농업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여러 작물을 섞어 키우고, 가금류도 공장식이 아니라 농가의 뒷마당에서 키우던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는 습지와 야생의 물지 서식지를 되살리며 세계의 공중 보건 역량을 키워야 한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건강 생태학의 기초가 되는 소유권, 생산, 역사적 유물, 문화 인프라 등을 통합한 ‘구조적 원헬스’라는 관점을 제안한다. 치료나 도축, 백신만으로는 또다시 등장할 새로운 병원균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소비하는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기업화된 농경지가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연구한다거나 이들 상품이 수출되는 항공운송이나 보험, 교육 등의 서비스까지 분류하는 등 다양한 연구들을 소개하고 있다.
롭 월러스는 2020년 4월 15일에 열린 ‘세계화된 먹거리체계, 불평등,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웨비나(웹-세미나)에서 ‘코로나19 이후 농업’에 대해 “자본의 기업형 농업에 의해 희생돼 온 농촌을 살리고, 농민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며 “산업적 농업 대신 가축과 작물의 다양성이 담보되는 농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시도들을 여러 가지 소개하고 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흙을 볏집으로 덮고 구획을 정해 땅을 쉬게 하고, 유기농으로 지역 농민들이 연대해 가는 작은 실험들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아이오와주 농업장관 선거에 지속가능한 농업 전문가이자 낙농업자 티키가 출마해서 비록 낙선했지만 높은 득표를 했던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오랫동안 관행 농법에 문제제기하며 유기농과 조합형 생산, 유통을 추진해온 분들이 없지 않다. 그것이 당장 초국적 농산업과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대체하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앞에 닥친 팬데믹에 맞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 책은 그러한 새로운 성찰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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