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우리의 종말이다.”
“현재 여섯 번째 대멸종이 한창이다.
우리는 공룡의 멸종 이후 최대의 대멸종을 겪는 중이다.
인간이 이 대멸종을 일으켰고, 오직 인간만이 이 대멸종을 멈출 수 있다.”
10분마다 한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멸종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문제는 그 속도에 있다. 현재 종의 멸종은 정상적인 진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100배, 어쩌면 1,000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유엔 세계생물다양성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하루에 150종이 멸종하고, 21세기 말까지 100만 종이 절멸할 위험이 있다. 10분마다 한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전 지구를 곤경에 빠뜨린 코로나19 또한 이러한 대멸종의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종의 멸종 원인 중 하나인 서식 구역의 파괴가 없었다면 이와 같은 전염병의 대유행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었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종 보호 활동가이자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디르크 슈테펜스는 독일 주간지 [차이트]의 환경 전문 기자 프리츠 하베쿠스와 함께 현재 한창 진행 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을 기후 위기보다 더한 인류 최대의 난제로 규정한다. 기후 위기는 우리가 사는 방식을 위협하지만, 대멸종은 우리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대멸종에 대한 진단 및 해법은 급진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밖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기심을 인간이 가진 본성 중 하나로 인정하며 적으로 삼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들에 따르면, 보호해야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공룡이 멸종할 때와 같은 대량 절멸이 일어나더라도 몇백만 년 후에 자연은 다시 예전 수준으로 종 다양성을 회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존재하는 한, 자연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사라질 뿐이다. 보호해야 하는 쪽은 자연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하키스틱 곡선과 지구가 부담할 수 있는 한계
우리 인간이 현재 한창 진행 중인 대멸종에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우리가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지구에서 단 하나의 동물 종이 이토록 지배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래로 인간의 활동은 급격히 증가한다. 소위 ‘인류세’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추세를 “대가속Great Accelat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기상학자 빌 슈테펜은 이 대가속의 과정을 24개의 그래프로 보여준다. 사회경제적 경향을 보여주는 12개의 그래프와 지구 시스템의 경향을 보여주는 12개의 그래프로 말이다. 이 그래프들에서 모든 곡선은 아주 오랫동안 완만하게 상승하다가 20세기 중반부터 급상승하는 동일한 양상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그래프들의 곡선에는 ‘하키 스틱 곡선’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곡선은 호모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이 곧 자연 파괴의 과정이었음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책 중간의 그래프 참조)
우리는 “물건들의 폭정, 과잉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는 중”(73쪽)이다. 우리는 지구의 모든 곳을 정복하고,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인간이 지구에 얼마나 많은 부담을 지우고 있는지에 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기술권technosphere의 무게 즉 우리 인간이 제작하여 지구 곳곳에 뿌려 놓은 모든 것의 무게는 생물권의 무게biospehere 즉 지구에 사는 모든 것의 무게보다 8배 더 나간다. 문명의 총 무게는 30조 톤이다. 2019년에 한 해 동안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을 우리가 모두 소비한 날, 즉 ‘지구 생태 용량 초과의 날’은 7월 29일이었다. 20년 전인 2000년에는 아직 11월 1일이었다. 인류는 이미 40년 전부터 지구가 재생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회복력 연구자 요한 록슈트룀이 이끄는 연구팀은 10년 전에 지구의 부담 한계 9개를 제시했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들이 초과되면, 지구 시스템은 인간의 삶을 현재처럼 안락하게 해주는 균형 상태를 벗어난다. 그 9개의 한계를 모두 넘어야 우리의 현재 문명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만 넘어도 충분하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그 지구적 한계 9개 가운데 7가지를 정량화해냈다. 오존 구멍, 담수 사용, 바닷물의 산성화, 기후 변화, 토지 사용, 물질 순환의 교란, 종의 멸종이 그것이다. 록슈트룀의 연구에 근거해,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후 변화와 생물지구화학적 순환들에서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오직 한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바로 ‘파국적catastrophic’이라는 단어다.”(99-100쪽)
세계 인구의 증가, 소비의 폭증, 부족해지는 자원,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생활양식, 물질 순환의 교란, 여섯 번째 대멸종의 시작과 더불어 생명의 역사는 결정적인 단계에 진입했다. 공룡이 멸종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소행성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우리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작디작은 생명체
자연 안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생존이 생각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아주 작은 생명체의 활동에 기대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그 생명체들 덕분에 숨을 쉰다. 그 생명체들에 우리가 붙인 이름은 규조류다.
우주에 떠 있는 우주인들은 때때로 거대한 규조류의 집단이 대양에서 연기처럼 너울거리는 것을 본다. 일부 집단은 길이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런 집단 속에는 미세한 규조류 개체들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이 들어 있다. 그리고 많은 개체 각각이 광합성을 한다. 태양에너지의 도움으로 규조류는 대기 속 이산화탄소와 물을 양분으로 변환한다. 이 탁월한 과정이 지구에 사는 다양한 형태의 생명을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 모든 날갯짓과 지느러미의 펄떡임, 모든 걸음과 호흡이 그 광합성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빛을 칼로리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산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산소가.
지구의 진짜 폐는 규조류와 그 친척인 플랑크톤이다. 이들로부터 우리의 호흡과 생명에 필수적인 산소의 절반 이상이 유래한다. 기후 위기가 현재 수준보다 훨씬 더 심각해지지 않은 것도 이들 덕분이다. 인간이 생산하는 이산화탄소의 많은 부분을 이들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없다면, 무게의 총합이 4억 톤에 달할 만큼 많은 크릴새우도 없을 것이다. 크릴새우는 물고기와 고래의 먹이다. 물고기와 고래가 크릴새우를 먹고 배출하는 배설물은 나머지 규조류에 들러붙어 ‘바다 눈’을 이뤄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규조류는 에티오피아의 사막으로, 아마존 분지로, 남극과 북극으로 끝없이 이동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여행하건 간에, 당신의 여행은 항상 규조류에게로 가는 여행이다.”(83쪽)
이를테면 우리가 상어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도 상어라는 단일한 종의 생존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상어는 생태계 시스템 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호초를 찾아오는 상어가 점점 더 줄어들면, 창꼬치가 증가할 수 있다. 창꼬치는 주로 비늘돔을 잡아먹고, 비늘돔은 산호에 붙은 조류를 갉아먹는다. 비늘돔이 없으면, 산호 폴립은 조류로 뒤덮여 질식하고, 산호초는 죽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모든 종이 시련을 겪는다. 호모사피엔스도 예외가 아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약 5억의 인구가 산호초의 풍부한 물고기를 식량원으로 삼으니까 말이다.”(94쪽) 상어의 개체 감소가 산호초의 죽음과 물고기의 감소로,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 인간의 곤란이라는 귀결을 낳는 것이다.
우리는 북극곰이나 코알라, 판다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종이 처한 상황을 연민을 가지고 바라본다. 하지만 대멸종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이와 같은 극소수 종에 관한 문제가 전혀 아니다. 우리에게 낯선,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쩌면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채 사라지고 있는 종들의 멸종이 훨씬 더 크고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한 종들의 멸종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는 바가 없다.
핵심은 과학과 권력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잘 안다. 생태 위기를 과학적 사실과 당위로서 주장하고 호소해봐야 쇠귀에 경 읽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본주의와 자유 시장을 생태 위기의 원흉으로 몰아세워 봐야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시장은 이익을 좇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뿐이다. 이기심은 이타심과 더불어 진화가 우리 안에 심어 놓은 본성이다. 멸종의 경악스러운 규모를 접하고도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따름인 사람들이 경기 침체의 위협 앞에서는 공황에 빠져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난다. 저자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구체적인 경제와 정치의 맥락 속에서 생태 문제에 접근한다. 이익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면 자본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이라는 괴물을 돈으로 길들이면, 일이 훨씬 더 잘 풀린다.”(210쪽) 이를테면, 기업들이 공짜로 이용해온 생태계 서비스를 생산물의 경제적 가치 평가에 반영하고, 환경 관련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생태 관세’를 부과하는 식이다. 즉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볼 때, “현재 우리의 경제는 생태적으로 볼 때 이중적이다. 이익의 사유화에 관해서는 자본주의적이면서 환경 훼손이라는 비용에 관해서는 사회주의적이다.”(214쪽) 녹색 사업은 이익이 많이 나고 자연 파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밑지는 사업이 되도록 만들면 된다.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자는 이들의 파격적인 주장처럼, 생태 문제를 경제 문제로 변환하자는 이들의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가치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저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250년 전 노예제가 폐지되었듯이, 우리가 문제 제기, 세력 규합, 규제, 새로운 질서의 수립, 굳히기의 과정을 통해 생태 위기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코로나19 대유행에 세계가 대처한 방식을 보며 이들은 정치에서도 미래의 낙관적인 가능성을 본다. “최근 역사에서 정치적 결정이 이토록 일방적으로 과학 지식에 의존한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유행병은 이데올로기, 견해, 당리당략적 전술이 발붙일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다. …… 핵심은 과학과 권력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다. 과학은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고, 정치는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한다.”(282쪽) 저자들에 따르면, 낙관주의는 우리의 의무다. 상상하는 것만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세를 바람에서 숲 냄새가 나는 시대로 상상하자. 냇물이 우리에게 들어와 수영하라고 권하고, 아침에 우리가 집을 나설 때 지빠귀가 노래하는 시대로.”
작가 소개
지은이 : 디르크 슈테펜스
1967년생.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자이다. 독일의 가장 유명한 종 보호 활동가인 그는 ‘생물다양성 10년’을 위한 유엔 대사이자 세계자연기금WWF과 제인 구달 연구소의 독일 대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사반세기 넘게 세계 곳곳을 답사하며 지구의 자연 시스템에 관하여 보도해왔으며, 종 다양성 보호를 기본법에 포함시켜 달라는 청원을 선도한 생물다양성 재단의 공동창립자이다. 이런 다양한 공로를 인정받아 바이로이트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이 : 프리츠 하베쿠스
1990년생. 독일 주간지 『차이트』의 환경 전문 기자다. 그가 보도하는 주제는 전 세계의 자연적 다양성의 파괴와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다. 그의 기사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2018년에 올해의 기자로 선정되었으며, 과학 저널리즘을 위한 홀츠브링크상을 받았다.
옮긴이 : 전대호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칸트의 공간론에 관한 논문으로 같은 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서 독일학술교류처의 장학금으로 라인 강가의 쾰른에서 주로 헤겔 철학을 공부했다. 헤겔의 논리학에 나오는 양적인 무한 개념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던 중 유학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 번역가로 정착했다. 영어와 독일어를 우리말로 옮기는데, 대개 과학책과 철학책을 일거리로 삼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썼으며 신춘문예로 등단해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시집으로 『가끔 중세를 꿈꾼다』 『성찰』이 있다. 『철학은 뿔이다』를 썼고, 『정신현상학 강독 1』을 옮기고 썼다. 『인터스텔라의 과학』 『위대한 설계』 『기억을 찾아서』 『로지코믹스』 『헤겔』(공역) 『초월적 관념론 체계』 『나는 뇌가 아니다』를 비롯한 많은 책을 번역했다.
목 차
1 참된 사랑 ― 고독의 시대의 자연
2 팽창 ― 어리석은 거위 증후군: 많을수록 더 좋다
3 우리는 함께일 때 강하다 ― 종 다양성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
4 인류세 ― 멸종이 일어나는 이유
5 강의 고소 ― 인간이 아닌 생물도 권리를 가진다면 어떻게 될까
6 이타적인 흡혈박쥐 ― 생태 시대의 자본주의
7 붕괴 아니면 반란 ― 익숙한 세계의 종말
8 비상사태 ― 생태 시대의 민주주의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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