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러라고 태어난 동물은 없다!
- 가장 슬픈 곳에서
- 가장 낮은 존재를 향한
- 가장 따뜻한 손길을 만나다.
* 하루에도 수천 개의 생명이 소멸하는 도살장을 가감 없이 해부한 수의사의 일기
* 먹이사슬의 맨 아래 칸에 있는 생명체의 권리에 대한 불편하고도 문학적인 질문
* “지금까지 읽은 동물보호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이지적이고 강렬한 책” 〈헬싱보리스 닥블라드〉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할까? “어떤 경우든 인간을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이 진짜 필요한 일인지 매번 고민해야 하며, 동물이 겪어야 할 고통을 가능한 한 줄여줘야 한다.”고 일찍이 생명외경 사상을 설파한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말한 바 있다. 인간은 동물들의 고통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으니, 그에 대해서 마땅한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수의사 리나 구스타브손이 쓴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가장 절실하고도 뜨거운 논의, 즉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모색하는 데 강렬한 영감을 던지는 책이다.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수의학을 공부한 저자는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다가,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축장 일에 지원한다. 동물보호 규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돼지, 소, 닭 등 식용육의 하역, 수송, 보관, 도축 과정에서 각오를 훌쩍 뛰어넘는 참혹한 장면을 마주하고, 그 먹먹한 날들을 묵묵히 일기로 남긴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도축장을 가감 없이 해부한 이 기록은 현대문명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 인간과 동물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 또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도축장의 생생한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참담하고 무력해질지 모른다. 단순히 도축 환경의 개선을 말하는 데 그칠 수 없는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도 같은 날들을 기록하며, 저자는 동물이 인간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하나뿐인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닌지 끊임없이 곱씹는다. 그렇게 책은 인간은 과연 동물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되물으며, 평범한 우리 인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 “수의사 리나 구스타브손의 충격적인 일기는 고기의 대량생산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를 기록한 문학적 기억이다.” 〈스벤스카 닥블라데트〉
저자는 첫 출근에서 왜 직장을 옮겼느냐(동물병원에서 도축장으로)는 질문을 받고 “예전부터 동물보호 쪽 일을 하고 싶어서”라고 답한다. 부여받은 임무는 도축이 시작되기 전에 돼지의 상태를 검사하는 일. 사람이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고기가 식탁에 오르지 못하도록, 질병의 징후가 보이는 돼지를 선별해야 한다. 전염병이 돌지 않는지 위생 상태를 살피는 것뿐 아니라, 폭력 등 비인도적 행위로 동물보호법을 위반하는지도 감시한다. 그리고 바로 출근 첫날, 비실비실 제대로 걷지 못한다는 이유로 살처분당하는 돼지를 눈앞에서 목격한다.
(돼지) 이마에 볼트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자 녀석의 몸이 뻣뻣해지다가 털썩 쓰러진다. … 돼지는 몸을 떨고 경련으로 움칠대며 이리저리 뒤치지만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 돼지가 조용해지기까지 30분이 걸린다. … 나는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심장은 방망이질을 해댄다. 운반 기사는 튀는 피를 피해 칸막이 벽 뒤로 몸을 숨긴다. 따분한 데다 스트레스를 받은 표정이다. … 돼지의 온몸이 자기 피로 범벅이다. 기사는 죽은 돼지를 도축작업장으로 싣고 간다. 이런 경우 한 번 더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14-15쪽)
그녀는 이렇게 현장에서 날마다 마주친 잔혹한 상황을 낱낱이 일기로 적어 나간다. 운반 과정에서 다리를 절지는 않는지 매를 맞아지는 않았는지 도대체 어디가 아픈지 수의사로서 꼼꼼히 살펴보던 녀석들이, 마취-방혈-탕박 등의 도축 공정을 거치며 고기가 되는 과정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했던 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섣부르게 목소리를 높이거나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묻어나는 문장들은 “비웃지 말고, 개탄하지 말고, 혐오하지 마라. 그렇지만 이해하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사뭇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죽음을 감지하고 패닉에 빠져 마취 설비로 들어가지 않으려 버티는 돼지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직원들에게는 누구보다도 단호했던 저자이기에, 동물에 대한 애잔한 연민 그리고 고통으로 얼룩진 현실에 대한 절망과 혼란을 감출 수 없는 문장들이기도 하다.
5년 6개월의 수의학 공부를 마친 후 나는 내가 더는 예전처럼 순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다시금 내가 여전히 참 순진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눈코 뜰 새 없이 빠른 속도와 어마어마한 물량,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선 나 자신이 너무나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거기에 순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과 싸웠고, 이곳으로 올 때 품었던 실용주의에 매달리려 애썼다. (39쪽)
피곤한 돼지는 물이 떨어지는 동안 가만히 누워 있다. 다른 녀석들은 일어나 코를 빛과 물을 향해 쳐든다. 물에 떨어진 햇살이 굴절된다. 갑자기 무지개가 생긴다. 몇 초 동안 고요하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햇빛과 가랑비에 젖어 쉬는 돼지들을 바라본다. 소음도 비명도 들리지 않고 오물도 시멘트 벽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평화의 이 순간만을 보고 듣는다. (58-59쪽)
☞ “정직하고 뛰어난 기록으로 독자들을
우리 문명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데리고 간다.” 〈예테보리스-포스텐〉
저자는 채식주의자이지만, 구내식당에서 고기를 먹는 다른 직원을 비난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인간이 무슨 권리로 동물을 ‘반려동물’과 ‘식용육’으로 나누는가 고민하지만,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몸을 담고 있는 자신도 자신이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존재할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책은 그런 저자를 닮았다. 대규모 축산이 야기하는 여러 문제를 분석하거나 해결책을 주장하려 들진 않는다. 다만 본인이 기꺼이 버텨낸 시간을 공감해 달라고 청하듯 써 내려갈 뿐이다.
돼지 한 마리가 트럭에서 비틀대며 걸어 나온다.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서서 용감하게 친구들을 쫓아가 보지만 또 쓰러지고 만다. 녀석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동물병원에 왔던 강아지들을 떠올린다. 그 녀석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었던 위로를 생각한다. 그들이 더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퍼서 울던 반려인들을 떠올린다. …
질병과 죽음과 맞서는 투쟁을 생각한다. 같은 투쟁을 바라보는 우리 평가가 얼마나 다른지도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욕망에 따라서만 주고 뺏는다. 시멘트 바닥에 앉은 외로운 돼지를 보며 그 모든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녀석을 숨을 헐떡이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로베르트가 볼트총을 들고 내 옆에 선다. “쏴요” 내가 말한다. (234쪽)
하지만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어두운 현실을 먼저 목도한 사람의 의무를 외면할 수 없다는 듯, 저자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날 것 그대로 자세히 묘사한 도축장의 모습은 우리 상상을 아득히 넘어선다. 그리고 이 책으로 그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우리는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관하여, 동물학대가 전제인 공장식 축산에 관하여, 그게 아니라면 윤리적인 사육은 과연 무엇인지에 관하여, 나아가 먹이사슬 밑바닥을 차지하는 생명과 노동에 관하여’ 어느새 불편한 마음으로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더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가스실 안을 들여다보자고 결심한다. … 녀석들의 비명을 나는 매일 듣는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르다. 이곳의 소리는 울부짖음이다. 녀석들이 이리저리 몸을 뒤채며 빠져나가려고, 숨 쉬려고 안간힘을 쓴다. 곤돌라 전체가 흔들린다. … 절망에 찬 마지막 한 번의 꽥 소리를 끝으로 녀석들의 목소리가 사라진다. … 사방이 고요하다. 인생을 이전과 이후로 가르는 그런 중차대한 순간들 중 하나다. …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다. 그 정도로 강렬하고 고통스러운 사투에. (201쪽)
겉만 보면 이곳은 모든 것이 정말로 그럴싸하다. 표준화된 작업 공정, 활발한 소통. 동물보호와 품질안전을 책임지는 책임자도 한 명씩 있다. 단속과 검사도 시행된다. 동물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전문 자격증을 갖고 있다. 파란 헬멧을 쓴 수의사 몇 사람이 매일 상황을 감독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지 않는 그 모든 것은 어찌할 것인가? 죽기 전의 고통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겐 동물의 감정과 바람과 생명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 (203쪽)
☞ “그동안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 있었지만,
농장 동물의 종착지인 도살장의 현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명보영 수의사,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
동물복지 선진국이라고 알려진 스웨덴조차도, 도축장은 고통스러운 죽음의 현장일 뿐이다. 동물보호에 누구보다도 진심이었기에 섬세하게 문제를 건의하고 설득하며 가혹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왔지만,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인 일상은 버거웠을 것이다. 저자의 사직으로 마무리되는 이 기록은 마지막까지도 죄책감과 미미한 희망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마침표는 아니다”라는 저자의 의연한 한마디 또한 묵직하게 남아 있다.
“희망이 없어 보여요. 7년 전에 기록된 내용인데, 지금이랑 똑같았어요.” 사직서를 내고, 나는 무의미하다는 기분을 쫓으려 애썼다. 그리고 혹시라도 동료들의 노력을 폄하하지는 않을까 조심한다. 마주 앉은 팀장이 말한다. “맞아요. 예전엔 위법 사항을 기록만 하고 추적하지는 않았죠. 동물보호는 정말 쉽지 않은 분야예요. 분명한 건, 우리가 여기서 감독하지 않으면 더 나빠질 뿐일 테죠. … 우리가 꼭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예요.” (211쪽)
계류장에 있으려니 헬레나가 동물보호 순찰을 돌러 내려온다. “돼지들이 왜 다치는지 알아냈어요?” “아니요.” “리나가 감독 관청에 아주 좋은 정보를 보냈던데요. 공급자도 기사도 다 알면서 규정을 어기고 절룩이는 돼지를 실어 보냈다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런 정보예요. 절룩이는 돼지가 너무 많이 와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기업에도 그에 관한 규정이 필요해요.” “그 기사분은 신고하라고 했어요. 그래야 축산 농가가 병든 돼지를 싣지 않는다고요. 헬레나가 그 문제에 관심을 보이니 잘 됐어요.” (242-245쪽)
2021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닭, 소, 돼지는 허용하면서 개고기는 금지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반려동물 가구가 600만을 넘은 현실을 잘 반영했고 식용견의 잔혹사가 더는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며 반겼다. 우리나라도 동물권과 생명권 논의가 더디게나마 진전되고 있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리나 구스타브손’ 덕분일 것이다.
살아 있는 존재를 도구로 대하며 거리낌 없이 고통을 주는 인간의 행위를 부끄러워할 줄 알았던 저자가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해 기록한 이 책이 ‘생명의 존엄’에 대한 질문의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작가 소개
저자 : 리나 구스타브손 Lina Gustafsson
동물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수의학을 공부했다.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개와 고양이를 치료하다가, 표현하지 못할 고통을 견뎌내지만 아무도 싸워주지 않는 동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국립식품청 수의직 공무원에 지원하여 2017년부터 도축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경험을 기록한 85일 동안의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 2020년 스웨덴 올해의 수의사 상 최종 결선 4인에 들었다. 닫기
역자 : 장혜경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교류처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심리학》, 《나는 이제 참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내 인생 내가 결정합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숲에서 1년》, 《나무 수업》,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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