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불로장생을 꿈꿔온 인간, 포스트휴먼이 되다
인류는 지난 300여 년간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진화했다.
현대 과학과 바이오 기술이 일구어낸 성과는 SF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법했던 상상의 영역에 어느덧 근접했다. 인류는 지난 300여 년간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진화했다. 100세 시대의 도래를 앞둔 시점에서 길어진 인생을 잘 설계하고 적절한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몸에서는 어떤 정신적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의학 기술과 바이오 기술의 수준은 어디쯤 이르러 있을까?
현대 의학은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여겨져온 우리 몸의 작동 원리를 속속들이 파악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감염병과의 전쟁에서도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고, 백 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수명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유전공학자들은 신의 도구라 할 만한 유전자 편집 기술을 손에 쥐고 생명의 설계도를 샅샅이 훑어 나쁜 유전자를 제거하고 좋은 유전자를 잘 살려 쓰는 법을 터득했다. 수렵채집인의 몸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잘못된 습관이 만들어낸 불일치 질환과 비만에 시달리며 건강 수명을 위협받지만, 한편에서는 오랫동안 사망 원인 1위 자리를 지켜온 암을 만성질환으로 강등시키고, 살 빠지는 갈색 지방을 발견해 비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인간이 인체의 설계를 이해하고 이를 고쳐 쓰고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과학기술을 이전까지 누적된 지식과 기술 발전을 토대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고 진화하는 밈으로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체를 수십 년간 온전히 냉동 보존하는 기술이다. 영면에 드는 대신 영하 196도의 차가운 냉동고를 선택한 사람들은 단지 부활과 영생을 꾀하는 마음으로 비싼 값을 치르는 게 아니다. 이들은 장기 이식이나 제대혈 보관, 유전자 치료를 비롯해 뇌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세포 복구를 위한 나노 기술, 머지않아 장거리 우주여행을 떠날 탐사대를 위한 인공 동면 기술에 이르기까지 생명공학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냉동 보존 기술이 기여하길 바란다.
우리는 과학기술이라는 밈에 둘러싸인 채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과학기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자연선택에 휘둘릴 수밖에 없던 호모사피엔스에서 스스로 진화를 이끄는 포스트휴먼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척박한 환경과 유전자의 상호작용으로 빚어진 인간의 신체는 풍요로운 환경에 노출되자 단 몇 세대 만에 온갖 불일치 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 무분별한 항생제 복용으로 수백만 년 동안 공존해왔던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파괴되어 전에 없던 병에 걸리고 내성이 생긴 나쁜 병원균의 공격에는 더욱 취약해졌다. 스마트폰과 로봇 청소기, 우주여행이 가능한 세상에서 여전히 수렵채집인의 몸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스스로를 치료할 기술이 있어도 아프고 병드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
기술이 발달하면 사회 환경은 바뀌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당신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고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발전시킨 기술로 인해 누구도 불행해져서는 안 된다.
현대 의학은 어떤 생명체도 피해갈 수 없었던 노화를 하나의 질병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체 시계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텔로미어의 존재를 발견했고 노화를 일으키는 다양한 징표들을 찾아냈다. 원인을 알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 법이다. 노화를 멈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약물들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의 도래는 여력 있는 사람에게는 축복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무직, 빈곤, 질병, 소외와 같은 장수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여전히 모색 중이고 우리 사회는 아직 100세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과학의 수레바퀴는 인간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면 일반 대중도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을 실감하고 탄성을 지른다. 10여 년 전 신의 도구라 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를 발견한 두 명의 과학자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래 연구자들의 실험실에는 유전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첨단 장비, 윤리적 논란에서 벗어나 뜻대로 분화시킬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 인간의 장기를 몸에 지닌 이종 동물의 사육장이 들어섰다. 노화되고 병든 몸을 고치고 갈아 끼울 수 있는 놀라운 성취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유전자 편집 기술을 암과 난치병, 장애를 극복하는 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자녀가 아무런 위험 부담 없이 뛰어난 외모와 운동 능력, 높은 지능을 지닌 데다 병에도 걸리지 않는 몸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애당초 인류는 놀라운 지적 능력을 동원해 이를 종의 번영에 십분 활용해왔다. 인간은 끊임없이 실험하고 성취하고 획득하려 들 테고 결국 선택하는 것보다 선택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기 전에 우리는 현대 바이오 기술의 빛나는 성취들이 온전히 ‘멋진 신세계’를 열어줄 수 있을지 되물어야 한다. 1932년에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 속 유전자 카스트 세상이 펼쳐지거나, 인간이 지닌 한계를 모른 채 무리하게 정도를 넘어서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공진화해온 우리 몸의 설계 덕분에 인류가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화의 종말, 유전자 치료제, 인공 장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인간과 과학기술의 공존을 모색하는 포스트휴머니즘
이 책에서 우리는 현대 과학이 도달한 성취들과 머지않아 이루어낼 성취들을 한데 살펴볼 수 있다. 노화를 막는 방법, 암과 난치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 망가진 장기를 대체하는 인공 장기, 인간과 기계를 결합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에 이르기까지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놀라운 기술들의 상당 부분은 이미 투명해진 상태로 인간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는 단지 의식주와 관련한 환경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와 자연선택이 만들어낸 오래된 설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만성질환, 자가면역질환, 비만,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콩도르세는 “과학은 인간이 완전성에 도달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여기에는 과학적 진보가 반드시 도덕적 진보와 결합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도덕적 진보란 이성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선한 덕성이 사회의 근간이 되어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저자는 과학기술이라는 신의 망치가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불평등을 확산시키지 않도록 과학기술의 현주소와 그 파급력에 대해 이성의 안테나를 세우고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과학기술이 가장 발전한 시대에 태어나 과학의 수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미 발전한 과학기술이 문제를 낳는다고 해서 이를 과거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 자동차를 타고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해 씀으로써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지만, 심지어 환경주의자들조차 자동차와 전기 없는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오늘날의 과학기술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하나씩 안전장치를 마련해나가야 한다.
수십 년 후의 우리 혹은 다음 세대는 과학기술이 바꿔놓은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스스로 짊어진 책임을 깨닫고 맡은 바 역할을 주체적으로 해나가려면 알고자 하고 물어야 한다. “인류를 포스트휴먼으로 진화시키는 바이오 기술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작가 소개
저자 : 양은영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다년간 출판사에서 SF 소설과 인문서, 과학교양서를 기획하고 만들었다. 이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현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과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연과학적 호기심을 채우면서 융합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다. 지은 책으로 빅히스토리 시리즈 『제국은 어떻게 나타나고 사라지는가?』가 있다.
목 차
-프롤로그 × 진화에 맞선 바이오 기술의 도전
CHAPTER 1. 불로장생의 과학
-불로불사의 꿈
× 수명 연장을 향한 욕망 × 최초의 냉동인간 × 부활을 기다리는 사람들 × 냉동인간을 만드는 기술 × 온전한 나로 되살아나기
-생명 연장의 과학
× 호모 헌드레드 시대 × 생체 시계의 바로미터, 텔로미어 × 노화는 질병이다 × 노화의 징표 × 길고 멋진 인생
CHAPTER 2. 풍요로운 문명의 역습
-우리 몸에 기록된 진화의 연대기
× 수렵채집인의 몸 × 농경의 두 얼굴 × 현대인의 역설
-풍요가 안겨준 현대인의 병
× 만병의 황제, 암 × 만성질환 × 품위 있는 죽음과 퇴행성 질환
CHAPTER 3. 비만과의 전쟁
-비만의 시대
× 먹방과 다이어트 × 비만은 가난을 먹고 자란다 × 슈퍼 사이즈 칠드런
-비만을 부르는 호르몬
× 비만과 당뇨의 악순환 × 만성 스트레스와 뱃살 × 음식 중독
-다이어트의 과학
× 살 빠지는 지방 × 갈색 지방을 공략하다 × 운동을 해야 하는 진짜 이유 ×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CHAPTER 4. 건강의 열쇠 마이크로바이옴
-미생물 인간
× 미생물 유전체 지도 × 발견의 순간들 × 면역 전쟁
-마이크로바이옴의 세계
× 생후 3년 안에 결정된다 × 장에서 뇌까지 연결된 고속도로 × 금보다 값어치 있는 똥 × 위생 가설과 오래된 친구 가설
-미생물과의 공생
× 붉은 여왕의 질주 × 프로바이오틱스에게 프리바이오틱스를
CHAPTER 5. 유전자가위, 신의 도구인가
-진화의 방향을 바꾸다
× 옥자가 나타났다 × 유전자의 구조와 역할 × 유전자 변형인가 편집인가 × 육종, 진화를 가속해서 얻은 것 × 생명을 편집하는 도구
-생명의 설계자가 되어
× 고장 난 유전자를 편집하다 ×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 기적의 항암 치료제 × 아기를 주문하시겠습니까?
CHAPTER 6. 인간의 미래, 포스트휴먼
-인간의 몸을 갈아 끼우다
× 갈아 끼우고 싶지만 × 몸 바깥에서 만들어진 장기 × 종을 뛰어 넘는 키메라 장기
-멋진 신세계
× 트랜스휴먼의 도래 × 트랜스휴먼에서 포스트휴먼으로
-에필로그 × 도덕적 진보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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