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문화적·역사적 의미를
행성적, 지구적,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에서 탐구하다
2009년에 그의 연구의 전환점을 이루는 것이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역사의 기후: 네 가지 테제〉를 발표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그 후 2017년 3월,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만델 인문학 강연 강단에 섰다. 강연 내용 가운데 일부는 그의 저서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로 열매 맺었고, 다른 일부는 지금 이 책 《하나의 행성, 서로 다른 세계》로 통합되었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는 기후 변화와 인류세 문제를 역사 연구와 결합함으로써 인류의 역사가 우리 행성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해명하고, 그에 기초하여 현대 인류가 부딪힌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철학적 저작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이 책은 저자의 고유한 포스트 식민주의적 문제 제기, 즉 정치의 여러 세계라는 문제를 대지 시스템 과학의 하나의 행성적 관점과 결합함으로써 현재의 시급한 정치적 과제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고자 하는 논의를 전개한다. 물론 이러한 논의의 근저에는 세계와 지구와 행성 개념에 대한 분화한 논의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을 하나이면서도 여럿이고 여럿이면서도 하나인 것으로 파악하는 철학적 통찰이 놓여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서론: 행성과 정치적인 것”에서 논의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 1장 “팬데믹과 우리의 시간 감각”에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저자에 따르면 인위적 지구 온난화나 기후변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현재의 팬데믹 경험이야말로 분명히 인간 및 비인간과 관련된 문제에 새로운 물음과 관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산업적 자본주의의 지구화로 인해 1950년경에 시작된 인구·에너지 사용·온실가스 배출·해양 산성화 등의 거대한 가속은 기후변화와 팬데믹을 불러왔지만, 차크라바르티는 현재의 팬데믹 상황이 미생물에 대한 취약성과 매일같이 씨름하게 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새롭게 떠올리게 하는 시간 감각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미셸 푸코의 생명 권력, 데이비드 모렌스 등의 미생물 진화의 역사, 브뤼노 라투르의 인간과 비인간 및 대지의 얽힘에 대한 논의에 근거하여 지금까지와는 달리 인간적-근대적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 내부의 정의라는 전통적인 개념적 한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그들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전체 생명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정치로 나아가는 차크라바르티의 첫 번째 발걸음이다.
이러한 논의에 기초하여 2장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의 역사성”에서는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에서는 그저 언급하는 데 그쳤던 문제, 즉 ‘자연사’와 ‘인간사’의 분리의 근대적 기원과 그 분리에서 위기에 처한 것이 무엇인지의 문제를 탐구한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에서 논란이 된 주장 가운데 하나는 “기후 변화에 대한 인위 발생적 설명은 자연사와 인간 역사의 오래된 인간주의적 구별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인류세의 새로움은 계몽주의에서 인간이 자연과 거의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기후 개념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통된 연관성을 강조하는 상당한 연구에 주목함으로써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차크라바르티의 주요 목표는 해방적 인간주의자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늦게 기후를 의식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를 간과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근대성의 탈식민주의 역사학도 반식민지 근대화 민족주의만큼 환경적으로 맹목적이었던 것에 대한 좀더 근거 있는 설명을 전개한다. 차크라바르티는 탈식민주의 학자들도 역사가 인간 문제에 국한된다고 주장하는 역사철학자들로부터 강력한 인간/비인간의 구별을 물려받았으며, 이는 라투르와 프랑수아 아르토그가 인류세의 도전에서 진단하고 인간을 사물로 볼 필요를 수반하는 서로 다른 시간 감각의 혼돈과 해체를 설명한다고 시사한다.
마지막 장인 3장 “현재와 함께 머무르기”에서는 이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물음, 즉 서로 다른 세계를 갖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인 행성을 다룰 수 있는지의 문제를 성찰한다.
차크라바르티는 ‘원-근대’와 ‘후기 현대’와 같은 근대성의 다양한 버전에 관한 연구를 좀더 밀어붙여 그것들을 토착성 및 탈식민성의 주장과 병치시킨다. 그는 여기서 도나 해러웨이, 라투르와 데보라 다노스키 그리고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를 안내자로 하여 가령 에어컨의 냉매가 지구 온난화 완화에 대해 제기하는 딜레마를 설명하고, 나아가 이러한 관점 아래서 인도와 중국 같은 후기 근대가 제기하는 복잡한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역사학적 지향을 지닌 이러한 그 자신의 분석을 정치의 핵심으로 가져오는 차크라바르티의 철학적 인간학은 다양한 지적 전통에 대한 풍부한 읽기를 제공하고 생물학과 토착 유산을 연결하는 모범적 방식을 제시하며, 자본주의와 근대성 및 토착성 사이의 단층선을 협상하면서 ‘지적으로 그리고 역사적 차이를 뛰어넘어 친족을 만드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아니, 차크라바르티의 이 책이야말로 과학적 관점과 인문주의적 지식 전통의 다양한 입장을 끊임없이 오가며 친족을 만들고 있다.
물론 우리는 차크라바르티에게 윤리적으로 철저히 공명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족 만들기의 정치 감각이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 폭우를 비롯한 기상이변, 산불과 화재 폭풍, 팬데믹 등의 수많은 사건이 지구 시스템이라는 하나의 행성과 정치적 분단을 안고 있는 여러 인간 세계 사이에 심각한 어긋남을 드러내고 있다면, 그리고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인간 집단이 과연 긴급히 요구되는 하나의 행성적 행동 일정을 중심으로 함께 모일 수 있을까 하는 차크라바르티의 물음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다면, 현재 우리 눈앞에서 심화하고 있는 이 위기와 분열되고 무능력한 우리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차크라바르티가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듯이 우리 역시 인간과 비인간 및 자연에 관한 인식 모두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존재의 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Dipesh Chakrabarty)
1948년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콜카타 대학교 프레지던시 칼리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콜카타의 인도경영연구소(Indian Institute of Management Calcutta)에서 MBA 학위를 받은 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카고 대학교 역사·남아시아 언어·문명학 로런스 A. 킴튼 석좌교수이다. 시카고 대학교 영문학과·비교문학과·영상미디어학과·로스쿨·시카고현대이론센터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 문화·역사·언어대학원 특별객원교수이기도 하다. 서벌턴 연구(Subaltern Studies) 집단의 창립 일원이며, 〈아메리칸 히스토리컬 리뷰(American Historical Review)〉와 〈퍼블릭 컬처(Public Culture)〉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문명의 위기(The Crises of Civilization: Exploring Global and Planetary Histories)》 《근대성의 거처들(Habitations of Modernity: Essays in the Wake of Subaltern Studies)》 《유럽을 지방화하기》 《노동 계급의 역사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Working-Class History: Bengal, 1890~1940)》 등이 있다. 또한 《식민적인 것에서 포스트식민적인 것으로(From the Colonial to the Postcolonial: India and Pakistan in Transition)》와 《코스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을 공동 편집하기도 했다.
옮긴이 : 이신철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지은 책으로 《논리학》 《진리를 찾아서》 《철학의 시대》(이상 공저)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정치철학》 《조선사상사》 《헤겔 강의록 입문》 《미래 가능성》 《새로운 철학 교과서》 《트랜스크리틱》 《이성의 운명》 《헤겔 『논리의 학』 입문》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순수이성비판의 기초개념》 《학문론 또는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신화철학》 《칸트사전》 《헤겔사전》 《맑스사전》 《현상학사전》 《니체사전》 《유대 국가》 《헤겔의 서문들》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 《헤겔과 그의 시대》 《현대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 《독일 철학사》 《헤겔》 《헤겔 이후》 《이성의 운명》 《헤겔의 이성·국가·역사》 등이 있다.
목 차
머리말
서론: 행성과 정치적인 것
1 팬데믹과 우리의 시간 감각
2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의 역사성
3 현재와 함께 머무르기
감사의 글
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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