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마르크스는 왜 자신의 글을 고쳐갔나
에스에프 영화를 보면 시간의 문이 열리는 장면에서 어느 순간 주인공만 빼고 주위의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모습이 나온다. 우리는 자신만 빼고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 있다는 듯이 사회를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마르크스의 고민 중 하나는 사회를 그릴 때 정적인 이미지로 순간 포착을 하면서도 움직이는 측면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멈추어 있는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두 시간성을 어떻게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니까 “텍스트의 저자는 사회를 분석하려 할 때 어떤 장면에서는 뭔가 정지되어 있는 스틸 신을 넣어 좀 더 해부학적으로 살펴보고, 또 어떤 장면에선 달려가는 신을 넣어 이번에는 움직이는 변화를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분석하기에 자본주의를 연구하려면 한편에는 거울이라는 정지 상태를 통해 시간이 고정된 그림 속에서 보여줘야 하는 뭔가가 있고(이를테면 화폐), 다른 한편에는 자본의 운동, 재생산처럼 시간 속 변화 국면에서 설명해야 하는 게 있다.”
마르크스의 글쓰기 여정이 수없이 반복된 다시 쓰기의 과정이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고정되어 있는 동시에 변화하는 관계를 역사 속에서,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서술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이상 독자는 상이한 시간성이 혼재되어 있는 『자본』 같은 텍스트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한 가닥씩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적어도 세 가지 상이한 시간성이 중첩되어 있다
『자본』의 서술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시간대를 다루는 서술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시간성을 결합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자본』 1권 1편은 가치형태론을 다루는데, 가치형태론은 화폐라는 ‘거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은 청년 마르크스가 좋아했던 메타포이기도 하다. “거울 메타포의 핵심은 바로 거울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 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는 시간, 운동과 역사가 없는 시간이다. 1권 ‘상품’ 장에서 거울을 통해 고정된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 이후에는 움직이는 시간성 속에서 ‘운동’을 준비하며 자본을 ‘역사’ 속으로 확장해 설명한다.
그런데 운동하는 시간성이라도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다. 우리는 ‘되풀이’라는 말을 쓸 때 시간을 배제하는 큰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그것은 그 이면에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이 적절히 작동할 때만 지탱되는 것이다. 되풀이가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일임을 뒤늦게 아는 것은 그 관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되풀이를 깨는 좀 더 의외의 일이 발생하는 시간성을 상정할 필요가 생긴다. 마르크스는 되풀이를 깨는 갑작스러운 전환이나 변화에 대해서도 설명을 덧붙이려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같은 움직이는 시간성이지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성이 하나 있고, 그와 달리 스토리가 반전되듯 기존 궤도를 벗어나 이탈하는 것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변동의 시간성이 분기할 수 있다. 현실 속엔 그런 경우가 정말 발생한다.”
두 움직이는 시간성 중 전자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재생산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 하고, 후자인 또 하나의 두드러진 변동의 시간성은 계급투쟁이라는 말과 결부해 설명한다. 그러나 “이 시간성만이 계급투쟁의 특권적 장소는 아니며, 재생산 영역도 사회적 적대와 투쟁에 이미 연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마르크스는 이 두 번째 시간성의 역사적 변동의 특징을 그에 앞서 서술한 재생산의 논리로 환원해 설명될 수 없지만 또 그와 무관한 귀결로 가는 것도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계급투쟁이라는 측면을 더욱 부각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본』을 읽을 때 적어도 세 가지 시간성을 만나게 된다.
정세: 변수가 생기는 순간 그림은 이미 달라져 있다. 상황은 유사해 보일지라도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 같은 격변의 시대에 마르크스의 부재는 ‘비판적 분석’의 공백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민중들과 맞서는 상대방에 대한 면밀한 탐색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 또 자기 자신을 이 정세의 일부로 긴밀히 포함시킨 전제에서 출발해 정세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의 부재도 크게 느껴진다.
마르크스 자신이 기존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싸웠던 사람이다. 마르크스의 분석처럼 자본주의의 재생산 순환과정은 엄밀하며 그 틈을 비집고 파고드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싸움은 우선 정세와 세력 관계를 아는 것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정세를 분석하여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마르크스 읽기가 기여할 것이다.
에스에프나 영화에서 “과거로 건너간 주인공이 문이 닫힌 나머지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뒷산 약수터의 암벽에 갔다가 문을 발견했는데 다음에 다시 찾아가보면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다는 상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의 문은 정세에 관한 비유로 딱 어울려 보인다. 정해진 궤도에 따라 움직이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지만 어딘가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장소는 일정한 방식으로 반복되지도 않고 똑같은 곳에 잠복해 있지도 않다. 지난번에 그렇게 싸워봐서 잘되었으니까 6개월 지난 지금 똑같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워보면 과연 잘될까. 정세는 절대로 되풀이되지 않는다. 변수가 생기는 순간 그림은 이미 달라져 있다. 그 순간 세력 관계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즉 ‘생각하는 마르크스’의 과제는 역사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행한 사유와 판단은 시간이 지나면 그 유효성이 상실될 수 있다. 상황은 유사해 보일지라도,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생각하는 마르크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함유하며, 또 ‘정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작가의 글
“마르크스의 강점은 머리가 손보다 빨리 돌아간다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손이 책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머리는 자기가 쓰고 있는 책이 문제가 있다는 걸 재빨리 간파해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염두에 두다가, 손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자마자 다시 또 보완 작업을 위해 스스로를 내모는 것이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앞에 쓴 글의 요지가 틀렸다고 비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작가 소개
저 : 백승욱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주립대학에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의 객원연구원과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와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중국의 노동자와 노동정책 : ''단위체제''의 해체』『문화대학명 :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중국 노동자의 기억의 정치』『자본주의 역사강의』『''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가 있고, 역서로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행의 시대』『철학에 대하여』『노동의 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마르크스와 더불어 생각하기
추상화할 수 있는 힘
분석, 세상을 부순 다음 다시 세우는 벽돌 쌓기
음표로 그려진 책 또는 벽돌로 지은 집
추상에서 구체로 진행해야 한다
물신숭배의 완성을 분석하기
세 가지 시간: 마르크스의 거울 1
마르크스는 왜 자신의 글을 계속 고쳐갔나
적어도 세 가지 시간이 있다
화폐: 마르크스의 거울 2
가치형태론에 등장한 거울
전지적 자리에 올라선 화폐
노동력: 거울이 아닌 적대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생산력을 가진 존재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이라니?
재생산: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성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이게 하는 핵심 기제
자본주의적 재생산은 자동적이지 않다
개인적 소유: 마르크스의 미래 전망
사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를 넘어선 개인적 소유
『자본』에서 출구를 찾는 일
리듬을 읽는 눈
마르크스는 어떻게 자신의 사유 세계를 수립했는가
: 인식론적 단절의 계기로서 [포이어바흐 테제]
프랑스혁명의 철학으로서 헤겔이라는 계기
포이어바흐에 의한 청년헤겔파의 구원
돌파구로서 포이어바흐, 『헤겔 법철학 비판』
파리에서 실제 ‘노동’을 만나다, 『경제학-철학 수고』
포이어바흐 테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과 철학: 테제 11
시민사회론을 부정하다: 테제 9, 테제 10
실천의 유물론: 테제 5, 테제 8
관계의 존재론: 테제 1
저기 저쪽에서 여기 이쪽으로: 테제 7, 테제 4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 테제 6
칸트 대 헤겔, 『독일 이데올로기』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자본』을 이해하려면
‘(정치)경제학 비판’은 어떻게 다른가
개념적 구성물로서 『자본』을 본다
『자본』 집필 계획의 변경
『자본 Ⅰ』의 독해
시작의 어려움, 가치형태론
노동력 상품과 자본주의의 편향적 기술 진보(또는 불변자본 편향적 축적)
『자본 Ⅱ』?『자본 Ⅲ』의 독해
『자본 Ⅱ』와 자본주의 회계 제도
『자본 Ⅱ』에서 심화하는 정치경제학 비판
『자본 Ⅲ』과 이윤율의 ‘자본주의적 성격’
『자본 Ⅲ』에서 자본주의 신비화의 완성
노동-거울
숨겨진 자본주의 세계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 마르크스와 사회적인 것
경제학 비판과 사회적인 것의 갈래
사회적 관계의 존재론
중단된 기획으로서 소유의 문제 설정
소유론 차원에서의 단절과 연속
『자본』에서 소유의 문제 설정
푸코와 통치성: ‘자연화’의 질문
정치경제학 비판과 사회적인 것의 삼중 공간
교환의 세 층위 또는 세 공간
사회적인 것은 물신숭배의 영역에서만 확인된다
사회성의 전도: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사회성을 대변한다
재생산의 ‘자연성’ 또는 재생산의 위기
‘자연성’으로 재생산이 문제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
물신숭배적 구조의 재생산
사회적인 것의 또 다른 공간, ‘사회적인 것 2’
사회적인 것 1과 사회적인 것 2: das Gesellschaftliche와 das Soziale
사회적인 것 2에서 전개되는 ‘정치’
마르크스의 사유는 어떻게 확장되는가
: 발리바르와 ‘정치의 개조’
왜 발리바르인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까지
어떻게 정치의 종언으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을까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를 넘어
어떻게 동일화와 개인의 특이성이 동시에 제기될 수 있을까
프로이트
마르크스
스피노자
세계화라는 정세 조건
자본-노동 변증법이 마치 작동하지 않는 듯한 상황
정치의 개조 1: 인권의 정치
차이와 특이성에 기초한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정치의 개조 2: 시빌리테의 정치
탈동일화/동일화의 운동
마르크스의 난점과 공백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 과잉결정과 이데올로기
모순과 과잉결정
왜 과잉결정 개념이 제기되었는가
‘모순의 존재 조건이 모순 내부에 반영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모순은 역사적 모순이다
이데올로기
실천으로서 이데올로기의 긍정성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생산하다’
라캉의 상징계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호명은 기능주의인가?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는가?
자본-역사
인문, 마르크스에게 말걸기
인문
내가 타인의 해방을 위한 조건
나 자신, 타인, 구조
‘자기 스스로’라는 지점
스승과 부끄러움
마르크스
마르크스, 불귀의 점
마르크스의 질문들
정치경제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윤리
타인과의 관계
분노를 넘어서는 윤리
억압받는 자의 위엄
윤리 비판
비움이 쓸모가 된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행하려는 사람’
인간관계의 윤리
‘기여자起予者’
바리케이드 위에 서기
역사의 천사
벼랑에 서기가 아닌, 벼랑이 되기
참고 문헌
주요 개념어 찾아보기
마르크스는 왜 자신의 글을 고쳐갔나
에스에프 영화를 보면 시간의 문이 열리는 장면에서 어느 순간 주인공만 빼고 주위의 모든 것이 정지해 있는 모습이 나온다. 우리는 자신만 빼고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춰 있다는 듯이 사회를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마르크스의 고민 중 하나는 사회를 그릴 때 정적인 이미지로 순간 포착을 하면서도 움직이는 측면까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멈추어 있는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두 시간성을 어떻게 동시에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니까 “텍스트의 저자는 사회를 분석하려 할 때 어떤 장면에서는 뭔가 정지되어 있는 스틸 신을 넣어 좀 더 해부학적으로 살펴보고, 또 어떤 장면에선 달려가는 신을 넣어 이번에는 움직이는 변화를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분석하기에 자본주의를 연구하려면 한편에는 거울이라는 정지 상태를 통해 시간이 고정된 그림 속에서 보여줘야 하는 뭔가가 있고(이를테면 화폐), 다른 한편에는 자본의 운동, 재생산처럼 시간 속 변화 국면에서 설명해야 하는 게 있다.”
마르크스의 글쓰기 여정이 수없이 반복된 다시 쓰기의 과정이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고정되어 있는 동시에 변화하는 관계를 역사 속에서,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어떻게 서술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이상 독자는 상이한 시간성이 혼재되어 있는 『자본』 같은 텍스트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한 가닥씩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적어도 세 가지 상이한 시간성이 중첩되어 있다
『자본』의 서술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시간대를 다루는 서술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시간성을 결합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자본』 1권 1편은 가치형태론을 다루는데, 가치형태론은 화폐라는 ‘거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은 청년 마르크스가 좋아했던 메타포이기도 하다. “거울 메타포의 핵심은 바로 거울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 시간이 정지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는 시간, 운동과 역사가 없는 시간이다. 1권 ‘상품’ 장에서 거울을 통해 고정된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 이후에는 움직이는 시간성 속에서 ‘운동’을 준비하며 자본을 ‘역사’ 속으로 확장해 설명한다.
그런데 운동하는 시간성이라도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다. 우리는 ‘되풀이’라는 말을 쓸 때 시간을 배제하는 큰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그것은 그 이면에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이 적절히 작동할 때만 지탱되는 것이다. 되풀이가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일임을 뒤늦게 아는 것은 그 관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되풀이를 깨는 좀 더 의외의 일이 발생하는 시간성을 상정할 필요가 생긴다. 마르크스는 되풀이를 깨는 갑작스러운 전환이나 변화에 대해서도 설명을 덧붙이려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같은 움직이는 시간성이지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성이 하나 있고, 그와 달리 스토리가 반전되듯 기존 궤도를 벗어나 이탈하는 것처럼 보이는 또 하나의 변동의 시간성이 분기할 수 있다. 현실 속엔 그런 경우가 정말 발생한다.”
두 움직이는 시간성 중 전자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재생산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려 하고, 후자인 또 하나의 두드러진 변동의 시간성은 계급투쟁이라는 말과 결부해 설명한다. 그러나 “이 시간성만이 계급투쟁의 특권적 장소는 아니며, 재생산 영역도 사회적 적대와 투쟁에 이미 연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마르크스는 이 두 번째 시간성의 역사적 변동의 특징을 그에 앞서 서술한 재생산의 논리로 환원해 설명될 수 없지만 또 그와 무관한 귀결로 가는 것도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계급투쟁이라는 측면을 더욱 부각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자본』을 읽을 때 적어도 세 가지 시간성을 만나게 된다.
정세: 변수가 생기는 순간 그림은 이미 달라져 있다. 상황은 유사해 보일지라도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 같은 격변의 시대에 마르크스의 부재는 ‘비판적 분석’의 공백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민중들과 맞서는 상대방에 대한 면밀한 탐색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 또 자기 자신을 이 정세의 일부로 긴밀히 포함시킨 전제에서 출발해 정세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의 부재도 크게 느껴진다.
마르크스 자신이 기존 세계와 끊임없이 불화하고 싸웠던 사람이다. 마르크스의 분석처럼 자본주의의 재생산 순환과정은 엄밀하며 그 틈을 비집고 파고드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싸움은 우선 정세와 세력 관계를 아는 것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정세를 분석하여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마르크스 읽기가 기여할 것이다.
에스에프나 영화에서 “과거로 건너간 주인공이 문이 닫힌 나머지 현재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뒷산 약수터의 암벽에 갔다가 문을 발견했는데 다음에 다시 찾아가보면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다는 상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의 문은 정세에 관한 비유로 딱 어울려 보인다. 정해진 궤도에 따라 움직이며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지만 어딘가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의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장소는 일정한 방식으로 반복되지도 않고 똑같은 곳에 잠복해 있지도 않다. 지난번에 그렇게 싸워봐서 잘되었으니까 6개월 지난 지금 똑같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싸워보면 과연 잘될까. 정세는 절대로 되풀이되지 않는다. 변수가 생기는 순간 그림은 이미 달라져 있다. 그 순간 세력 관계를 다시 살펴봐야 한다.”
즉 ‘생각하는 마르크스’의 과제는 역사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수행한 사유와 판단은 시간이 지나면 그 유효성이 상실될 수 있다. 상황은 유사해 보일지라도, 판단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생각하는 마르크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함유하며, 또 ‘정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작가의 글
“마르크스의 강점은 머리가 손보다 빨리 돌아간다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손이 책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머리는 자기가 쓰고 있는 책이 문제가 있다는 걸 재빨리 간파해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염두에 두다가, 손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자마자 다시 또 보완 작업을 위해 스스로를 내모는 것이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앞에 쓴 글의 요지가 틀렸다고 비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작가 소개
저 : 백승욱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주립대학에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의 객원연구원과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와 사회진보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중국의 노동자와 노동정책 : ''단위체제''의 해체』『문화대학명 : 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중국 노동자의 기억의 정치』『자본주의 역사강의』『''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 세계체계 분석으로 본 미국 헤게모니의 역사』가 있고, 역서로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행의 시대』『철학에 대하여』『노동의 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마르크스와 더불어 생각하기
추상화할 수 있는 힘
분석, 세상을 부순 다음 다시 세우는 벽돌 쌓기
음표로 그려진 책 또는 벽돌로 지은 집
추상에서 구체로 진행해야 한다
물신숭배의 완성을 분석하기
세 가지 시간: 마르크스의 거울 1
마르크스는 왜 자신의 글을 계속 고쳐갔나
적어도 세 가지 시간이 있다
화폐: 마르크스의 거울 2
가치형태론에 등장한 거울
전지적 자리에 올라선 화폐
노동력: 거울이 아닌 적대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생산력을 가진 존재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이라니?
재생산: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성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이게 하는 핵심 기제
자본주의적 재생산은 자동적이지 않다
개인적 소유: 마르크스의 미래 전망
사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를 넘어선 개인적 소유
『자본』에서 출구를 찾는 일
리듬을 읽는 눈
마르크스는 어떻게 자신의 사유 세계를 수립했는가
: 인식론적 단절의 계기로서 [포이어바흐 테제]
프랑스혁명의 철학으로서 헤겔이라는 계기
포이어바흐에 의한 청년헤겔파의 구원
돌파구로서 포이어바흐, 『헤겔 법철학 비판』
파리에서 실제 ‘노동’을 만나다, 『경제학-철학 수고』
포이어바흐 테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과 철학: 테제 11
시민사회론을 부정하다: 테제 9, 테제 10
실천의 유물론: 테제 5, 테제 8
관계의 존재론: 테제 1
저기 저쪽에서 여기 이쪽으로: 테제 7, 테제 4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 테제 6
칸트 대 헤겔, 『독일 이데올로기』
『자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자본』을 이해하려면
‘(정치)경제학 비판’은 어떻게 다른가
개념적 구성물로서 『자본』을 본다
『자본』 집필 계획의 변경
『자본 Ⅰ』의 독해
시작의 어려움, 가치형태론
노동력 상품과 자본주의의 편향적 기술 진보(또는 불변자본 편향적 축적)
『자본 Ⅱ』?『자본 Ⅲ』의 독해
『자본 Ⅱ』와 자본주의 회계 제도
『자본 Ⅱ』에서 심화하는 정치경제학 비판
『자본 Ⅲ』과 이윤율의 ‘자본주의적 성격’
『자본 Ⅲ』에서 자본주의 신비화의 완성
노동-거울
숨겨진 자본주의 세계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 마르크스와 사회적인 것
경제학 비판과 사회적인 것의 갈래
사회적 관계의 존재론
중단된 기획으로서 소유의 문제 설정
소유론 차원에서의 단절과 연속
『자본』에서 소유의 문제 설정
푸코와 통치성: ‘자연화’의 질문
정치경제학 비판과 사회적인 것의 삼중 공간
교환의 세 층위 또는 세 공간
사회적인 것은 물신숭배의 영역에서만 확인된다
사회성의 전도: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사회성을 대변한다
재생산의 ‘자연성’ 또는 재생산의 위기
‘자연성’으로 재생산이 문제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
물신숭배적 구조의 재생산
사회적인 것의 또 다른 공간, ‘사회적인 것 2’
사회적인 것 1과 사회적인 것 2: das Gesellschaftliche와 das Soziale
사회적인 것 2에서 전개되는 ‘정치’
마르크스의 사유는 어떻게 확장되는가
: 발리바르와 ‘정치의 개조’
왜 발리바르인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까지
어떻게 정치의 종언으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을까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를 넘어
어떻게 동일화와 개인의 특이성이 동시에 제기될 수 있을까
프로이트
마르크스
스피노자
세계화라는 정세 조건
자본-노동 변증법이 마치 작동하지 않는 듯한 상황
정치의 개조 1: 인권의 정치
차이와 특이성에 기초한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정치의 개조 2: 시빌리테의 정치
탈동일화/동일화의 운동
마르크스의 난점과 공백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 과잉결정과 이데올로기
모순과 과잉결정
왜 과잉결정 개념이 제기되었는가
‘모순의 존재 조건이 모순 내부에 반영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모순은 역사적 모순이다
이데올로기
실천으로서 이데올로기의 긍정성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생산하다’
라캉의 상징계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호명은 기능주의인가?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는가?
자본-역사
인문, 마르크스에게 말걸기
인문
내가 타인의 해방을 위한 조건
나 자신, 타인, 구조
‘자기 스스로’라는 지점
스승과 부끄러움
마르크스
마르크스, 불귀의 점
마르크스의 질문들
정치경제 비판과 이데올로기 비판
텍스트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윤리
타인과의 관계
분노를 넘어서는 윤리
억압받는 자의 위엄
윤리 비판
비움이 쓸모가 된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행하려는 사람’
인간관계의 윤리
‘기여자起予者’
바리케이드 위에 서기
역사의 천사
벼랑에 서기가 아닌, 벼랑이 되기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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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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