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진보적 문화이론가 강내희 교수의 정년을 기념하는 동료와 후학들의 논문 모음. 이들 모두는 좌파의 미래를 새롭게 창안하고자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발상을 내보인다. 찬란한 미래에 살아보고 싶다면 당신이 꼭 읽어야 할 책!!]
『좌파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은 중앙대 강내희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그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운동했던 후배, 학문 동지, 제자들이 함께 참여해 만든 책이다. 13명의 필자들은 대학뿐 아니라, 교육운동, 문화운동, 사회운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운동가들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좌파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그렇다면 우선 좌파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이 질문부터 해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전 지구화, 이윤율 하락과 금융파생상품의 요동, 부채의 가중에 따른 자본주의의 근본적 위기국면, 봉건적 전제군주 사회로의 역주행,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이데올로기 적대 사회에서 좌파의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정치, 사회의 장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 좌파의 소멸을 가져오는 조건이기보다는 오히려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계기를 열게 해 줄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좌파의 미래라는 문제설정은 좌파를 위한 미래라기보다는 좌파로 인한 변혁의 미래이며, 대문자 변혁주체의 미래라기보다는 실질적 변혁주체로서 좌파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
좌파가 미래를 설계한다고 하면 통상 사회변혁을 위한 총체적인 이념을 설정하고, 거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세우며, 특정하고 단일한 목적을 향해 한 길로 달려가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도식적, 인식론적 수준의 설계는 지금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작 좌파가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 질문을 하지 않는 채 좌파를 관념적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관념적 우파와 대립시켜 어떤 실천의 내용과 방법을 미리 결정해 놓는다. 그래서 그런 도식과 인습에 식상한 사람들은 좌파가 변혁을 위해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미래의 진보적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보려 든다.
누구에게나, 어느 사회나 자신의 미래가 있듯이 좌파에게도 미래가 있다. 다만 그 상상을 현실화하는 설계와 방법에 있어 이견과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기억해야 할 점은 지배계급, 지배체제에 맞서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했던 변혁 주체들의 연대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역사적 유산들을 거울삼아 지금 우리가 위기의 국면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좌파의 미래, 아니 한국사회의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일이다. 미래의 좌표를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경로를 맵핑하고 서로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지도독법도 익혀야 하고, 오랜 여정에 지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내구력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설계의 방법을 찾고자 정치, 경제, 사회, 인문, 문화 분야의 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러나 좌파임을 잊지 않고 모두가 함께 기꺼이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구상해 보고자 하였다. 그 세상은 좌파만의 미래가 아니고, 모두의 미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열 세 사람의 필자들은 이 뜻을 때로는 정교하게, 때로는 대범하게 각자의 글에 담았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사회변혁의 정치경제적 이행]이란 제목으로 주로 사회변혁을 위한 이행의 다양한 지점들을 검토하고 있다. 먼저 박영균은[문제는 정치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변혁이론이 1980년대의 사회과학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치철학으로 이행하는 점을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좌파의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는 지난 20여 년 간 집중시켜 온 ‘정치철학’의 장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철학의 실천’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적 실천’에도 불구하고 더욱 축소되어 가고 있는 ‘좌파의 정치적 영향력’, ‘정치적 장에서 물리적 힘의 약화’에 대해 사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즉 좌파의 실제적인 정치적 힘을 키우기 위한 정치철학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좌파의 정치적 실천의 강화를 위해 “‘정치의 실패’가 보여주는 부르주아 정치의 한계를 ‘소유권’의 해체 전략과 함께 사유하면서 양자를 동시에 지양하는 이중의 노동해방 전략”과 “이중의 노동해방 전략을 대안적 정치권력의 구성적 차원에서 ‘대의제’를 넘어서 대중의 자기 통치라는 ‘자치의 원리’로 발전”시킬 것을 요청한다.
천보선은[변혁적 주체형성 문제와 맑시즘 교육론의 재구성]이란 글에서 변혁적 주체형성을 위해 맑스주의 교육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맑스, 그람시, 비고츠키의 저서를 분석하면서 교육이 변혁이론에 기여하는 역할을 넘어서, 변혁이론으로서 교육론의 구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인간발달의 보편적, 개별적 과정’에 초점을 두어 진행한 비고츠키의 연구에 주목하면서 그의 논의를 통해 개인적 과정과 집단적 과정의 통합과 제도권 밖의 성인교육을 통한 변혁적 주체형성의 과제를 맑스주의 교육론의 재구성의 대안으로 삼고 있다.
고정갑희의[경제의 전환: 가부장체제적 경제에서 적녹보라적 경제로]는 경제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문제설정을 자본주의체제에서 가부장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국주의적 가치, 계급성종체계적 가치, 산업화-서구화-남성화된 가치 개념들과 경합하거나 대안이 될 가치개념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필자는 이 개념을 ‘적녹보라적 가치’로 잠정적으로 제안한다. 현재의 경제를 가부장체제와 연동하여 보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가치를 고려하고, 적녹보라 경제를 상상”할 것을 제안한다.
정성진의[참여계획경제 대안의 쟁점과 과제]는 참여계획경제에 대한 그간의 다양한 논쟁들을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참여계획경제론은 맑스 공산주의의 핵심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조절 메커니즘을 구체화하고 제도화한 성과”지만, “이를 완결된 닫힌 모델로 정식화 ? 절대화하는 것은 맑스의 공산주의 이념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분명히 한다. 대신 “한편에서는 참여계획경제의 경계를 맑스의 ‘초기 공산주의’ 국면에 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초기 공산주의’ 국면에서 이미 현재화되기 시작한 노동의 폐지 경향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 연속혁명적으로 ‘발전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홍석만의[자본주의 위기와 민주적 사회화]는 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 질서의 중대한 변화의 징조로 부채 전쟁의 메커니즘을 들고 있다. 20조가 넘는 전 세계 금융자산과 1천 200조에 달하는 파생 금융상품의 거래는 “전 세계 곳곳에서 금융 불안과 거품을 양산하고 있다.” 홍석만은 이런 부채 경제의 전쟁에서 “은행의 국유화?사회화와 함께 신용제도의 사회적 통제를 확대”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2부 [자본주의 비판과 좌파의 상상력]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것을 견뎌내고, 새롭게 극복하기 위한 좌파들의 다양한 상상도를 발견할 수 있다.
심광현의[21세기 진보전략의 밑그림: 다중스케일 분석의 관점에서 본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변증법]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려는 반자본주의 세력들 간의 대립을 협력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21세기 진보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심광현은 진보세력 간 협력의 구체적인 해법을 [다중스케일 접근법]으로 풀고자 한다. “다중스케일 접근법이란 서로 스케일이 다른 거시적인 분석과 미시적인 분석을 양자택일 하는 대신 양자 간의 상호작용적인 관계 분석에 초점을 두는 접근 방법”으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적-녹-보라 연대’의 실천 과제를 이 방법론으로 매우 정교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비환원주의적인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의 다층적 순환구조를 전체적으로 고찰하여 기존의 전략들의 상이한 수준들을 규명하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위치시키고 연결하여 생산양식의 변화와 주체양식의 변화를 ‘일치시키는 과정’을 가시화” 하려는 것이 이 글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진보전략이다.
한편 이도흠은[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란 글에서 자본주의 붕괴의 필연성을 다섯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디지털혁명과 공유경제, 재생에너지 혁명, 코뮌 건설, 대중의 저항”을 자본주의 붕괴를 짐작할 수 있는 조건들로 판단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확고부동하게 우리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이러한 다섯 가지 요인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라는 게 이 글의 주장이다.
이명원의[인문학의 이율배반―제도인문학과 비제도인문학을 동시에 넘어서기]는 인문학의 좁은 활동 영역을 스스로 넘어서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문학자란 누구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참여한 ‘강단인문학’ ‘대안인문학, ‘희망의 인문학’ ‘대중인문학’ ‘지식협동조합’의 실천 사례를 설명하면서 “‘인문학주의’의 유심론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새로운 정치경제학에 대한 유물론적 사유를 빠르고 넓게 촉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창은의[시와 혁명: 김수영과 김남주, 혁명을 꿈꾼 시인들]은 대표적인 혁명시인 김수영과 김남주의 생애와 시를 분석하면서 혁명을 망각하고 있는 최근 시 문단의 탈정치적 경향들을 비판한다. 김수영과 김남주의 혁명시의 차이를 “자율과 자치”로 설명하면서 오창은은 “자율과 자치를 위해서는 타인에 의존함으로써 자신의 불완전성이 보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의존하면서도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것, 그러한 자율과 자치의 혁명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미래 세대 시인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3부 [문화연구와 문화운동의 새로운 설계]는 문화연구와 문화운동의 담론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좌파의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게 해준다.
임춘성의[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의 흐름과 문화연구]는 중국의 포스트사회주의 담론 구성을 위해 다양한 지적 실천을 하는 중국 현지 지식인들을 소개한다. 이 글은 리쩌허우의 사상사론을 그 시원으로 설정하고, 첸리췬의 마오쩌둥 사상 연구, 왕후이의 사상사론, 쑨거의 동아시아론을 비롯해서, 비판적 문화연구를 제창하고 수행하고 있는 리퉈, 다이진화, 왕샤오밍의 논의를 추적하면서 중국의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이 한국의 좌파 담론의 논쟁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서동진의[역사유물론과 문화연구 (1)―‘시대구분’이라는 방법]과 이동연의[문화연구의 이론적 전화와 ‘주체’의 문제]는 함께 비교하면서 읽어볼 만한 글이다. 먼저 서동진의 글은 역사유물론의 ‘시대구분’이란 관점으로 역사적 문화연구를 바라보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주로 에티엔 발리바르와 프레드릭 제임슨의 논의를 언급하면서 그가 생각하는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시대구분은 “말 그대로 연속적인 역사적인 시간을 각각의 단계로 분할하는 ‘분류의 방법’이 아니다.” 문화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비판, 역사적 대상으로 문화가 규정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관점으로 시대구분을 제시한다. 서동진은 이는 문화라는 대상을 이중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유물론적 시대구분은 “주어진 객관적 대상으로서 문화적 실천, 의미, 제도, 양식 등을 인식하고자 애쓰지만 동시에 그것이 주어진 객관적 현실을 전유하고 매개하려는 시도로서 파악함으로써 문화를 대상이자 주체로서, 물질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것으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지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대구분의 역사유물론적 인식을 통해 문화의 대상과 분석을 이중화하고, 자율성과 타율성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며, 문화의 자기동일성을 부정하는 것이 서동진이 주장하고자 하는 기본 관점이다.
이에 비해 이동연은 역사적 문화연구의 핵심적인 토픽이라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비판’과 ‘정체성의 정치학’이 최근 문화연구의 이론지형에서 ‘정동의 정치학’과 ‘주체성의 정치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 글은 주로 문화연구에서 정치경제 담론이 주는 의미를 설명하고 푸코의 이론을 통해 ‘주체성의 정치학’의 이론적 재구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체성의 정치학에서 미진한 주체의 저항적 계기들을 정치철학의 주체이론으로 메우고자 한다.
이원재의[예술행동을 둘러싼 사회적 실천과 연대]는 “예술행동 또는 행동주의 예술이 최근 한국의 사회운동 현장 곳곳에서 다양하게 확산”되는 상황에 주목하며 대추리, 용산, 희망버스, 콜트?콜텍, 세월호 사건에 개입하는 예술행동의 의미들을 분석한다. 그가 보기에 “민주화 운동의 역사 속에서 예술운동의 중요한 가치이자 원리로서 다양한 현장 예술, 노동자 문화의 궤적을 만들어왔던 행동주의 미학이 예술행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존의 재현으로서의 예술실천이 아닌 예술행동의 사회적 관계맺기의 미학적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급진적이고 좀 더 주체적이고, 좀 더 연대하는 예술행동을 제안한다.
▣ 작가 소개
고정갑희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신대 교수
박영균 : 건국대학교, 철학
서동진 :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사회학
심광현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문화연구
오창은 :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
이도흠 : 한양대학교, 국문학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문화연구
이명원 :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원재 : 문화연구자, [문화연대] 활동가
임춘성 : 목포대학교, 중문학/문화연구
정성진 :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천보선 : [진보교육연구소]
홍석만 : 주간 [워커스] 편집장
▣ 주요 목차
1 부 사회변혁의 정치경제적 이행
문제는 정치다! 박영균
변혁적 주체형성 문제와 맑시즘 교육론의 재구성 천보선
경제의 전환: 가부장체제적 경제에서 적녹보라적 경제로 고정갑희
참여계획경제 대안의 쟁점과 과제 정성진
자본주의 위기와 민주적 사회화 홍석만
2부 자본주의 비판과 좌파의 상상력
21세기 진보전략의 밑그림: 다중스케일 분석의 관점에서 본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변증법 심광현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탐색 이도흠
인문학의 이율배반―제도인문학과 비제도인문학을 동시에 넘어서기 이명원
시와 혁명―김수영과 김남주, 혁명을 꿈꾼 시인들 오창은
3부 문화연구와 문화운동의 새로운 설계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의 흐름과 문화연구 임춘성
역사유물론과 문화연구 (1)―‘시대구분’이라는 방법 서동진
문화연구의 이론적 전화와 ‘주체’의 문제 이동연
예술행동을 둘러싼 사회적 실천과 연대 이원재
[진보적 문화이론가 강내희 교수의 정년을 기념하는 동료와 후학들의 논문 모음. 이들 모두는 좌파의 미래를 새롭게 창안하고자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발상을 내보인다. 찬란한 미래에 살아보고 싶다면 당신이 꼭 읽어야 할 책!!]
『좌파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은 중앙대 강내희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그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운동했던 후배, 학문 동지, 제자들이 함께 참여해 만든 책이다. 13명의 필자들은 대학뿐 아니라, 교육운동, 문화운동, 사회운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식인-운동가들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좌파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은 어떻게 다를 것인가? 그렇다면 우선 좌파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이 질문부터 해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전 지구화, 이윤율 하락과 금융파생상품의 요동, 부채의 가중에 따른 자본주의의 근본적 위기국면, 봉건적 전제군주 사회로의 역주행,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찬 이데올로기 적대 사회에서 좌파의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정치, 사회의 장에서 벌어지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 좌파의 소멸을 가져오는 조건이기보다는 오히려 좌파의 새로운 실천적 계기를 열게 해 줄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좌파의 미래라는 문제설정은 좌파를 위한 미래라기보다는 좌파로 인한 변혁의 미래이며, 대문자 변혁주체의 미래라기보다는 실질적 변혁주체로서 좌파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
좌파가 미래를 설계한다고 하면 통상 사회변혁을 위한 총체적인 이념을 설정하고, 거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세우며, 특정하고 단일한 목적을 향해 한 길로 달려가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도식적, 인식론적 수준의 설계는 지금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작 좌파가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기 질문을 하지 않는 채 좌파를 관념적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관념적 우파와 대립시켜 어떤 실천의 내용과 방법을 미리 결정해 놓는다. 그래서 그런 도식과 인습에 식상한 사람들은 좌파가 변혁을 위해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미래의 진보적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보려 든다.
누구에게나, 어느 사회나 자신의 미래가 있듯이 좌파에게도 미래가 있다. 다만 그 상상을 현실화하는 설계와 방법에 있어 이견과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기억해야 할 점은 지배계급, 지배체제에 맞서 더 나은 삶,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했던 변혁 주체들의 연대는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역사적 유산들을 거울삼아 지금 우리가 위기의 국면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좌파의 미래, 아니 한국사회의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일이다. 미래의 좌표를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경로를 맵핑하고 서로 연결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지도독법도 익혀야 하고, 오랜 여정에 지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내구력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설계의 방법을 찾고자 정치, 경제, 사회, 인문, 문화 분야의 필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러나 좌파임을 잊지 않고 모두가 함께 기꺼이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구상해 보고자 하였다. 그 세상은 좌파만의 미래가 아니고, 모두의 미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열 세 사람의 필자들은 이 뜻을 때로는 정교하게, 때로는 대범하게 각자의 글에 담았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사회변혁의 정치경제적 이행]이란 제목으로 주로 사회변혁을 위한 이행의 다양한 지점들을 검토하고 있다. 먼저 박영균은[문제는 정치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변혁이론이 1980년대의 사회과학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치철학으로 이행하는 점을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좌파의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는 지난 20여 년 간 집중시켜 온 ‘정치철학’의 장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철학의 실천’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정치철학적 실천’에도 불구하고 더욱 축소되어 가고 있는 ‘좌파의 정치적 영향력’, ‘정치적 장에서 물리적 힘의 약화’에 대해 사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즉 좌파의 실제적인 정치적 힘을 키우기 위한 정치철학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좌파의 정치적 실천의 강화를 위해 “‘정치의 실패’가 보여주는 부르주아 정치의 한계를 ‘소유권’의 해체 전략과 함께 사유하면서 양자를 동시에 지양하는 이중의 노동해방 전략”과 “이중의 노동해방 전략을 대안적 정치권력의 구성적 차원에서 ‘대의제’를 넘어서 대중의 자기 통치라는 ‘자치의 원리’로 발전”시킬 것을 요청한다.
천보선은[변혁적 주체형성 문제와 맑시즘 교육론의 재구성]이란 글에서 변혁적 주체형성을 위해 맑스주의 교육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맑스, 그람시, 비고츠키의 저서를 분석하면서 교육이 변혁이론에 기여하는 역할을 넘어서, 변혁이론으로서 교육론의 구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인간발달의 보편적, 개별적 과정’에 초점을 두어 진행한 비고츠키의 연구에 주목하면서 그의 논의를 통해 개인적 과정과 집단적 과정의 통합과 제도권 밖의 성인교육을 통한 변혁적 주체형성의 과제를 맑스주의 교육론의 재구성의 대안으로 삼고 있다.
고정갑희의[경제의 전환: 가부장체제적 경제에서 적녹보라적 경제로]는 경제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문제설정을 자본주의체제에서 가부장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국주의적 가치, 계급성종체계적 가치, 산업화-서구화-남성화된 가치 개념들과 경합하거나 대안이 될 가치개념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필자는 이 개념을 ‘적녹보라적 가치’로 잠정적으로 제안한다. 현재의 경제를 가부장체제와 연동하여 보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적녹보라 패러다임에 입각한 가치를 고려하고, 적녹보라 경제를 상상”할 것을 제안한다.
정성진의[참여계획경제 대안의 쟁점과 과제]는 참여계획경제에 대한 그간의 다양한 논쟁들을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참여계획경제론은 맑스 공산주의의 핵심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의 조절 메커니즘을 구체화하고 제도화한 성과”지만, “이를 완결된 닫힌 모델로 정식화 ? 절대화하는 것은 맑스의 공산주의 이념과 부합되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분명히 한다. 대신 “한편에서는 참여계획경제의 경계를 맑스의 ‘초기 공산주의’ 국면에 한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초기 공산주의’ 국면에서 이미 현재화되기 시작한 노동의 폐지 경향을 확장하는 것을 통해, 연속혁명적으로 ‘발전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한다.
홍석만의[자본주의 위기와 민주적 사회화]는 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 질서의 중대한 변화의 징조로 부채 전쟁의 메커니즘을 들고 있다. 20조가 넘는 전 세계 금융자산과 1천 200조에 달하는 파생 금융상품의 거래는 “전 세계 곳곳에서 금융 불안과 거품을 양산하고 있다.” 홍석만은 이런 부채 경제의 전쟁에서 “은행의 국유화?사회화와 함께 신용제도의 사회적 통제를 확대”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2부 [자본주의 비판과 좌파의 상상력]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것을 견뎌내고, 새롭게 극복하기 위한 좌파들의 다양한 상상도를 발견할 수 있다.
심광현의[21세기 진보전략의 밑그림: 다중스케일 분석의 관점에서 본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변증법]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려는 반자본주의 세력들 간의 대립을 협력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21세기 진보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심광현은 진보세력 간 협력의 구체적인 해법을 [다중스케일 접근법]으로 풀고자 한다. “다중스케일 접근법이란 서로 스케일이 다른 거시적인 분석과 미시적인 분석을 양자택일 하는 대신 양자 간의 상호작용적인 관계 분석에 초점을 두는 접근 방법”으로 최근 부상하고 있는 ‘적-녹-보라 연대’의 실천 과제를 이 방법론으로 매우 정교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비환원주의적인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의 다층적 순환구조를 전체적으로 고찰하여 기존의 전략들의 상이한 수준들을 규명하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위치시키고 연결하여 생산양식의 변화와 주체양식의 변화를 ‘일치시키는 과정’을 가시화” 하려는 것이 이 글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진보전략이다.
한편 이도흠은[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란 글에서 자본주의 붕괴의 필연성을 다섯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디지털혁명과 공유경제, 재생에너지 혁명, 코뮌 건설, 대중의 저항”을 자본주의 붕괴를 짐작할 수 있는 조건들로 판단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확고부동하게 우리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이러한 다섯 가지 요인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라는 게 이 글의 주장이다.
이명원의[인문학의 이율배반―제도인문학과 비제도인문학을 동시에 넘어서기]는 인문학의 좁은 활동 영역을 스스로 넘어서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문학자란 누구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참여한 ‘강단인문학’ ‘대안인문학, ‘희망의 인문학’ ‘대중인문학’ ‘지식협동조합’의 실천 사례를 설명하면서 “‘인문학주의’의 유심론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새로운 정치경제학에 대한 유물론적 사유를 빠르고 넓게 촉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오창은의[시와 혁명: 김수영과 김남주, 혁명을 꿈꾼 시인들]은 대표적인 혁명시인 김수영과 김남주의 생애와 시를 분석하면서 혁명을 망각하고 있는 최근 시 문단의 탈정치적 경향들을 비판한다. 김수영과 김남주의 혁명시의 차이를 “자율과 자치”로 설명하면서 오창은은 “자율과 자치를 위해서는 타인에 의존함으로써 자신의 불완전성이 보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의존하면서도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것, 그러한 자율과 자치의 혁명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미래 세대 시인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3부 [문화연구와 문화운동의 새로운 설계]는 문화연구와 문화운동의 담론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좌파의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게 해준다.
임춘성의[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의 흐름과 문화연구]는 중국의 포스트사회주의 담론 구성을 위해 다양한 지적 실천을 하는 중국 현지 지식인들을 소개한다. 이 글은 리쩌허우의 사상사론을 그 시원으로 설정하고, 첸리췬의 마오쩌둥 사상 연구, 왕후이의 사상사론, 쑨거의 동아시아론을 비롯해서, 비판적 문화연구를 제창하고 수행하고 있는 리퉈, 다이진화, 왕샤오밍의 논의를 추적하면서 중국의 ‘신좌파와 자유주의 논쟁’이 한국의 좌파 담론의 논쟁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서동진의[역사유물론과 문화연구 (1)―‘시대구분’이라는 방법]과 이동연의[문화연구의 이론적 전화와 ‘주체’의 문제]는 함께 비교하면서 읽어볼 만한 글이다. 먼저 서동진의 글은 역사유물론의 ‘시대구분’이란 관점으로 역사적 문화연구를 바라보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주로 에티엔 발리바르와 프레드릭 제임슨의 논의를 언급하면서 그가 생각하는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시대구분은 “말 그대로 연속적인 역사적인 시간을 각각의 단계로 분할하는 ‘분류의 방법’이 아니다.” 문화의 자기동일성에 대한 비판, 역사적 대상으로 문화가 규정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관점으로 시대구분을 제시한다. 서동진은 이는 문화라는 대상을 이중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유물론적 시대구분은 “주어진 객관적 대상으로서 문화적 실천, 의미, 제도, 양식 등을 인식하고자 애쓰지만 동시에 그것이 주어진 객관적 현실을 전유하고 매개하려는 시도로서 파악함으로써 문화를 대상이자 주체로서, 물질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것으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라는 지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대구분의 역사유물론적 인식을 통해 문화의 대상과 분석을 이중화하고, 자율성과 타율성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며, 문화의 자기동일성을 부정하는 것이 서동진이 주장하고자 하는 기본 관점이다.
이에 비해 이동연은 역사적 문화연구의 핵심적인 토픽이라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비판’과 ‘정체성의 정치학’이 최근 문화연구의 이론지형에서 ‘정동의 정치학’과 ‘주체성의 정치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 글은 주로 문화연구에서 정치경제 담론이 주는 의미를 설명하고 푸코의 이론을 통해 ‘주체성의 정치학’의 이론적 재구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체성의 정치학에서 미진한 주체의 저항적 계기들을 정치철학의 주체이론으로 메우고자 한다.
이원재의[예술행동을 둘러싼 사회적 실천과 연대]는 “예술행동 또는 행동주의 예술이 최근 한국의 사회운동 현장 곳곳에서 다양하게 확산”되는 상황에 주목하며 대추리, 용산, 희망버스, 콜트?콜텍, 세월호 사건에 개입하는 예술행동의 의미들을 분석한다. 그가 보기에 “민주화 운동의 역사 속에서 예술운동의 중요한 가치이자 원리로서 다양한 현장 예술, 노동자 문화의 궤적을 만들어왔던 행동주의 미학이 예술행동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존의 재현으로서의 예술실천이 아닌 예술행동의 사회적 관계맺기의 미학적 의미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급진적이고 좀 더 주체적이고, 좀 더 연대하는 예술행동을 제안한다.
▣ 작가 소개
고정갑희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신대 교수
박영균 : 건국대학교, 철학
서동진 : 계원조형예술대학교, 사회학
심광현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문화연구
오창은 : 문학평론가, 중앙대 교양학부대학 교수
이도흠 : 한양대학교, 국문학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문화연구
이명원 :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원재 : 문화연구자, [문화연대] 활동가
임춘성 : 목포대학교, 중문학/문화연구
정성진 :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천보선 : [진보교육연구소]
홍석만 : 주간 [워커스] 편집장
▣ 주요 목차
1 부 사회변혁의 정치경제적 이행
문제는 정치다! 박영균
변혁적 주체형성 문제와 맑시즘 교육론의 재구성 천보선
경제의 전환: 가부장체제적 경제에서 적녹보라적 경제로 고정갑희
참여계획경제 대안의 쟁점과 과제 정성진
자본주의 위기와 민주적 사회화 홍석만
2부 자본주의 비판과 좌파의 상상력
21세기 진보전략의 밑그림: 다중스케일 분석의 관점에서 본 생산양식과 주체양식의 변증법 심광현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탐색 이도흠
인문학의 이율배반―제도인문학과 비제도인문학을 동시에 넘어서기 이명원
시와 혁명―김수영과 김남주, 혁명을 꿈꾼 시인들 오창은
3부 문화연구와 문화운동의 새로운 설계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의 흐름과 문화연구 임춘성
역사유물론과 문화연구 (1)―‘시대구분’이라는 방법 서동진
문화연구의 이론적 전화와 ‘주체’의 문제 이동연
예술행동을 둘러싼 사회적 실천과 연대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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