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사회주의는 현대의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토피아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인간성이 늘 자리 잡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과학에 중독되다시피 했던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지난 시대에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동굴 속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었을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가브리엘 타르드는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젠 지나버린 과거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사회주의는 목표가 아니라 가야 할 방향
“사회주의는 오랫동안,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현대의 유토피아이다.”
우리 시대는 유토피아를 잃어버렸고 더는 꿈꾸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진보적인 정치단체마저도 유토피아를 그리기보다는 하나의 현실을 개혁하는 데만 치중한다. 그 대안마저도 자본주의를 조금 인간적으로 바꾸는 선에서 멈춘다(그러나 ‘착한 자본주의’가 과연 존재할까?). 누구나 이 시대의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다. 바꿔야 한다는 것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의미로 유토피아를 그리고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추구하지 않는 건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추구했던 ‘정의로운 사회’ 같은 비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토피아를 더 열렬하게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갈망해야 할 곳’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유토피아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습관적인 연상을 깨는 능력, 즉 얼핏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는 평범하고 틀에 박힌 ‘정상normal’의 지배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약자의 불행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곤경에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유토피아 사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매우 고통스럽게 경험하는 사안들에 대답을 제시한다. 유토피아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정치가와 이론적 지도자들의 영역인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도 아니다. 유토피아는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라는 골치 아픈 질문에 대답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우만은 사회주의를 ‘생동하는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지금도 여전히 현대의 유토피아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회주의를 탐험하고 있다.
바우만은 인류 역사에서 사회주의가 실현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말만 사회주의였을 뿐 전체주의에 불과했다. 바우만에게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모든 고통으로부터 ‘어제보다 더 많이’ 해방시키고자 영원히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그것이 성취되었다고, 경험적 실제라고 선언되는 순간 창조력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지 못하여,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상대화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새로운 지평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즉 바우만에게 사회주의란 목표가 아니라 그곳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유토피아 사유를 멈춘 당신이 읽어야 할 책
이 책은 바우만이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 시리즈를 펴내기 전에 쓴 것이다(초판은 1976년에 나왔고, 2010년에 나온 개정판을 번역했다). 오래된 저작이지만, 전혀 옛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말들이 너무나 많다. 또 바우만의 사상의 흐름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바우만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바우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바우만의 현대성 분석과 소비사회 비판이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 사회주의라는 ‘생동하는 유토피아’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의 역할을 분석하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바우만은 이 책을 더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해 쓴 것으로 보인다. 즉 가장 주요한 대상은 지식인이다. 바우만은 여러 차례 본문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바우만은 그 자신이 지식인계급으로서 자본주의의 지배문화와 일대 전투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바우만은 지식인들이 더 대담하게 유토피아를 꿈꾸고 탐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미래로 향하게 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며, ‘바로 지금 여기’라는 현실과 맞서 싸우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유토피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한때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가 이제는 언급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자극을 받을 것이다. 또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위한 지식인의 역할
“모든 중요한 가치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억압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내면화한 민중 자신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이 사람들 적성에 맞는지 묻는 대신 사람들이 그 일에 적합한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목적을 이루기보다 그것을 도구화하는 데만 열중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재화들이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사회적 행위의 수단도 평등하지 않으며, 약자는 계속 약한 위치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이미 운명처럼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노동자는 자신을 지배하는 자들과 그 체제에 스스로 복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도장을 찍고, 그것을 조직하는 데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일에 따르고, 월급봉투를 집으로 가져감으로써 매일매일 고용주의 권력을 옹호한다.”
바우만은 그람시의 용어인 헤게모니를 빌려 이 상황을 설명한다. 그람시는 계급 간의 관계, 특히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했다. 즉 지배계급은 헤게모니를 통해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것은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의 문화생활 속에 존재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시대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좀처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바우만은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지식인계급을 특히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도 아니고, 비판적인 시도에 가담하지 않기로 서약한 충직한 지식 노동자도 아닌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넓은 관점에서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회의 부조리가 치료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회적 위치 탓에 사회주의의 선봉 역할을 하도록 보내진 집단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식인일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언제나 지식인들에게 할당하는 역할이다. 지식인들은 단지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주는 역할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을 통해 대안적인 사회로 이끄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바우만은 모든 중요한 가치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억압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내면화한 민중 자신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사고 체계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상식을 보류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탐구한다는 것은 대다수 민중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중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는 낙원을 찾아 떠나는 불확실한 모험보다, 지금 현재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지옥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곳으로 만드는, 혹은 그것이 너무 나빠지지는 않게 하는 확실한 길을 훨씬 더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식인뿐이라는 것이다. 바우만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하는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문화를 통해 이를 설명하면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내일이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부르주아 문화는 상식을 완벽하게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현실과 현실성과 합리성의 유일한 대변자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과제는 이제 내일이 오늘과 어떻게 다를지 논하는 것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먼저 내일이 달라져야 하고 실제로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바우만은 기존 미숙하고 경직된 사회주의 담론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동안 사회주의는 경제 문제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유재산 폐지나 생산수단과 관련한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이 문제로 대중을 설득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미 대중은 기존 자본주의 문화의 헤게모니에 잠식된 상태이며, 이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다른 모든 해결책도 술술 풀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유재산권은 소외의 가장 눈에 띄는 결과이자 수단이지만 그게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유재산을 폐지하는 것은 이제 현대 사회주의자들의 마음속에서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마법 같은 힘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또 사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자유’를 억압한 것도 문제로 지적한다. 바우만은 평등과 자유는 양립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자유 속에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이란 자유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지 않는 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우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문화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생활방식, 신념, 가치 등에 저항하고 대안을 창출하는 문화로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는 새로운 문화가 그것을 제거해버리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현대인의 일상생활은 자본주의적 문화로 잠식되어 있다. 언뜻 무해해 보이는 이 문화들은 현대인들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소비로 정의된 삶에 가둬두고, 인간의 행위를 단조로운 반복 속에 단단히 묶어두며, 지배체제에 복종하는 것을 합리성으로 위장시킨다.
바우만은 “문화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을 피할 수 없는 일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화혁명’을 언급한다. 문화혁명으로서 이 자본주의 문화를 없애지 않는 한 인간의 주체성 회복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지점은 구체적인 권력과 수단이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하는 헤게모니 문화에,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상식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 헤게모니를 뒤집고 대중의 상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어떤 대안적인 헤게모니 문화가 현재 헤게모니 문화와 그 상식의 기반을 조금씩 무너뜨릴 때만 새로운 대안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지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수많은 모순이 튀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세상은 좀체 변하지 않는다. 변해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바우만의 말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유토피아적인 생각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가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 크게 요동을 칠 징후로 봐도 좋을 것이다.”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그곳을 향해 대담한 모험을 해보는 것도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의 현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지그문트 바우만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등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났다. 이스라엘로 건너갔지만, 시온주의의 공격성과 팔레스타인의 참상에 절망을 느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잠시 가르치다 1971년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교와 바르샤바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다.
바우만은 1980년대 초까지 정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갈등을 중점 연구했다. 이후 안토니오 그람시, 게오르그 짐멜의 영향을 받아 관심 영역을 확장했고, 이어 자크 데리다,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조르조 아감벤 등의 이론을 폭넓게 수용하며 홀로코스트, 근대, 탈근대, 계급, 세계화, 소비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방대한 연구 성과에 비해 다소 늦게 주목을 받았다. 64세 때인 1989년에 발표한 『근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라는 책을 펴낸 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90년대 탈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명성을 쌓았고, 2000년대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 시리즈[Liquid Modernity(2000), Liquid Love(2003), Liquid Life(2005), Liquid Fear(2006), Liquid Times(2007)]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유동하는 근대’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ㆍ제도ㆍ풍속ㆍ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바우만의 독창적인 핵심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탈근대의 조건을 모호성, 불확실성, 상대성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다른 포스트모던 사상가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마르크시즘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가며 회의주의가 아닌 실천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평을 얻고 있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을, 1998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과 함께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바우만의 학문 이력은 2002년 국내에 『자유』가 처음 번역되면서 알려졌다. 바우만의 시선은 전 지구를 포괄할 정도로 넓고, 인간 심리의 저 어두운 밑바닥까지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는 『모두스 비벤디』, 『새로운 빈곤』, 『액체 근대』, 『유동하는 공포』,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등이 번역되어 있다.
역 : 윤태준
한양대학교 철학과와 카네기멜론대학교 Logic and Computation and Scientific Methodology 과정에서 논리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법가, 절대 권력의 기술》과《단단한 공부》《긍정지능》《동양의 세계지도》,《역사를 기억하라》가 있다.
▣ 주요 목차
1. 유토피아와 현실 7
2. 유토피아와 현대사회 27
3.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문화 67
4.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구조 89
5. 유토피아와 상식 119
6. 사회주의 실험 143
7. 문화로서 사회주의 187
8. 변화와 연속성 213
9. ‘저 너머’, 또 한 번의 대담한 탐험 249
옮긴이의 말 267
미주 273
찾아보기 281
사회주의는 현대의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토피아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인간성이 늘 자리 잡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과학에 중독되다시피 했던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지난 시대에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동굴 속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었을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가브리엘 타르드는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젠 지나버린 과거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사회주의는 목표가 아니라 가야 할 방향
“사회주의는 오랫동안,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현대의 유토피아이다.”
우리 시대는 유토피아를 잃어버렸고 더는 꿈꾸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진보적인 정치단체마저도 유토피아를 그리기보다는 하나의 현실을 개혁하는 데만 치중한다. 그 대안마저도 자본주의를 조금 인간적으로 바꾸는 선에서 멈춘다(그러나 ‘착한 자본주의’가 과연 존재할까?). 누구나 이 시대의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다. 바꿔야 한다는 것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의미로 유토피아를 그리고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추구하지 않는 건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추구했던 ‘정의로운 사회’ 같은 비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토피아를 더 열렬하게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갈망해야 할 곳’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유토피아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습관적인 연상을 깨는 능력, 즉 얼핏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는 평범하고 틀에 박힌 ‘정상normal’의 지배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약자의 불행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곤경에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유토피아 사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매우 고통스럽게 경험하는 사안들에 대답을 제시한다. 유토피아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정치가와 이론적 지도자들의 영역인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도 아니다. 유토피아는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라는 골치 아픈 질문에 대답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우만은 사회주의를 ‘생동하는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지금도 여전히 현대의 유토피아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회주의를 탐험하고 있다.
바우만은 인류 역사에서 사회주의가 실현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말만 사회주의였을 뿐 전체주의에 불과했다. 바우만에게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모든 고통으로부터 ‘어제보다 더 많이’ 해방시키고자 영원히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그것이 성취되었다고, 경험적 실제라고 선언되는 순간 창조력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지 못하여,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상대화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새로운 지평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즉 바우만에게 사회주의란 목표가 아니라 그곳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유토피아 사유를 멈춘 당신이 읽어야 할 책
이 책은 바우만이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 시리즈를 펴내기 전에 쓴 것이다(초판은 1976년에 나왔고, 2010년에 나온 개정판을 번역했다). 오래된 저작이지만, 전혀 옛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말들이 너무나 많다. 또 바우만의 사상의 흐름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바우만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바우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바우만의 현대성 분석과 소비사회 비판이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 사회주의라는 ‘생동하는 유토피아’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의 역할을 분석하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바우만은 이 책을 더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해 쓴 것으로 보인다. 즉 가장 주요한 대상은 지식인이다. 바우만은 여러 차례 본문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바우만은 그 자신이 지식인계급으로서 자본주의의 지배문화와 일대 전투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바우만은 지식인들이 더 대담하게 유토피아를 꿈꾸고 탐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미래로 향하게 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며, ‘바로 지금 여기’라는 현실과 맞서 싸우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유토피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한때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가 이제는 언급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자극을 받을 것이다. 또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위한 지식인의 역할
“모든 중요한 가치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억압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내면화한 민중 자신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이 사람들 적성에 맞는지 묻는 대신 사람들이 그 일에 적합한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목적을 이루기보다 그것을 도구화하는 데만 열중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재화들이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사회적 행위의 수단도 평등하지 않으며, 약자는 계속 약한 위치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이미 운명처럼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노동자는 자신을 지배하는 자들과 그 체제에 스스로 복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도장을 찍고, 그것을 조직하는 데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일에 따르고, 월급봉투를 집으로 가져감으로써 매일매일 고용주의 권력을 옹호한다.”
바우만은 그람시의 용어인 헤게모니를 빌려 이 상황을 설명한다. 그람시는 계급 간의 관계, 특히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했다. 즉 지배계급은 헤게모니를 통해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것은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의 문화생활 속에 존재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시대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좀처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바우만은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지식인계급을 특히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도 아니고, 비판적인 시도에 가담하지 않기로 서약한 충직한 지식 노동자도 아닌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넓은 관점에서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회의 부조리가 치료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회적 위치 탓에 사회주의의 선봉 역할을 하도록 보내진 집단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식인일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언제나 지식인들에게 할당하는 역할이다. 지식인들은 단지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주는 역할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비판을 통해 대안적인 사회로 이끄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바우만은 모든 중요한 가치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억압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내면화한 민중 자신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사고 체계와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상식을 보류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탐구한다는 것은 대다수 민중에게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중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는 낙원을 찾아 떠나는 불확실한 모험보다, 지금 현재 발을 디디고 있는 이 지옥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곳으로 만드는, 혹은 그것이 너무 나빠지지는 않게 하는 확실한 길을 훨씬 더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식인뿐이라는 것이다. 바우만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하는 시민사회의 헤게모니 문화를 통해 이를 설명하면서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내일이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부르주아 문화는 상식을 완벽하게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현실과 현실성과 합리성의 유일한 대변자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과제는 이제 내일이 오늘과 어떻게 다를지 논하는 것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먼저 내일이 달라져야 하고 실제로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바우만은 기존 미숙하고 경직된 사회주의 담론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동안 사회주의는 경제 문제에만 너무 치중한 나머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사유재산 폐지나 생산수단과 관련한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이 문제로 대중을 설득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미 대중은 기존 자본주의 문화의 헤게모니에 잠식된 상태이며, 이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다른 모든 해결책도 술술 풀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유재산권은 소외의 가장 눈에 띄는 결과이자 수단이지만 그게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유재산을 폐지하는 것은 이제 현대 사회주의자들의 마음속에서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마법 같은 힘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또 사회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자유’를 억압한 것도 문제로 지적한다. 바우만은 평등과 자유는 양립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자유 속에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이란 자유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지 않는 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우만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반문화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생활방식, 신념, 가치 등에 저항하고 대안을 창출하는 문화로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는 새로운 문화가 그것을 제거해버리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현대인의 일상생활은 자본주의적 문화로 잠식되어 있다. 언뜻 무해해 보이는 이 문화들은 현대인들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소비로 정의된 삶에 가둬두고, 인간의 행위를 단조로운 반복 속에 단단히 묶어두며, 지배체제에 복종하는 것을 합리성으로 위장시킨다.
바우만은 “문화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을 피할 수 없는 일로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화혁명’을 언급한다. 문화혁명으로서 이 자본주의 문화를 없애지 않는 한 인간의 주체성 회복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지점은 구체적인 권력과 수단이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하는 헤게모니 문화에,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상식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 헤게모니를 뒤집고 대중의 상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어떤 대안적인 헤게모니 문화가 현재 헤게모니 문화와 그 상식의 기반을 조금씩 무너뜨릴 때만 새로운 대안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지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수많은 모순이 튀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세상은 좀체 변하지 않는다. 변해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바우만의 말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유토피아적인 생각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가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 크게 요동을 칠 징후로 봐도 좋을 것이다.”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그곳을 향해 대담한 모험을 해보는 것도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의 현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지그문트 바우만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다.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등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 1968년 공산당이 주도한 반유대 캠페인의 절정기에 교수직을 잃고 국적을 박탈당한 채 조국을 떠났다. 이스라엘로 건너갔지만, 시온주의의 공격성과 팔레스타인의 참상에 절망을 느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에서 잠시 가르치다 1971년 리즈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하며 영국에 정착했다. 1990년 정년퇴직 후 리즈대학교와 바르샤바대학교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활발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다.
바우만은 1980년대 초까지 정통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 갈등을 중점 연구했다. 이후 안토니오 그람시, 게오르그 짐멜의 영향을 받아 관심 영역을 확장했고, 이어 자크 데리다,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조르조 아감벤 등의 이론을 폭넓게 수용하며 홀로코스트, 근대, 탈근대, 계급, 세계화, 소비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방대한 연구 성과에 비해 다소 늦게 주목을 받았다. 64세 때인 1989년에 발표한 『근대성과 홀로코스트(Modernity and The Holocaust)』라는 책을 펴낸 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90년대 탈근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명성을 쌓았고, 2000년대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과 인간의 조건을 분석하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 시리즈[Liquid Modernity(2000), Liquid Love(2003), Liquid Life(2005), Liquid Fear(2006), Liquid Times(2007)]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유동하는 근대’란 기존 근대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ㆍ제도ㆍ풍속ㆍ도덕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는 바우만의 독창적인 핵심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탈근대의 조건을 모호성, 불확실성, 상대성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다른 포스트모던 사상가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마르크시즘의 문제의식을 이어나가며 회의주의가 아닌 실천적 전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평을 얻고 있다.
1992년에 사회학 및 사회과학 부문 유럽 아말피 상을, 1998년 아도르노 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투렌과 함께 “지금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스투리아스 상을 수상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탈근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바우만의 학문 이력은 2002년 국내에 『자유』가 처음 번역되면서 알려졌다. 바우만의 시선은 전 지구를 포괄할 정도로 넓고, 인간 심리의 저 어두운 밑바닥까지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는 『모두스 비벤디』, 『새로운 빈곤』, 『액체 근대』, 『유동하는 공포』,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등이 번역되어 있다.
역 : 윤태준
한양대학교 철학과와 카네기멜론대학교 Logic and Computation and Scientific Methodology 과정에서 논리학을 전공했다. 옮긴 책으로 《법가, 절대 권력의 기술》과《단단한 공부》《긍정지능》《동양의 세계지도》,《역사를 기억하라》가 있다.
▣ 주요 목차
1. 유토피아와 현실 7
2. 유토피아와 현대사회 27
3.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문화 67
4.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구조 89
5. 유토피아와 상식 119
6. 사회주의 실험 143
7. 문화로서 사회주의 187
8. 변화와 연속성 213
9. ‘저 너머’, 또 한 번의 대담한 탐험 249
옮긴이의 말 267
미주 273
찾아보기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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