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국내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 컸다. 잡스는 2011년 신제품 발표회에서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플이 개발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에 딱 들어맞는 제품이 되어야 하며, 인간의 몸에 딱 들어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이해가 필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통념상 인문학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학문 영역이 아니다. 문학과 역사, 철학, 종교학, 언어학 등 인문과학 영역의 학문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인문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manities’는 인류, 인간성을 뜻하는 ‘humanity’의 복수형이며,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가장 먼저 썼다는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라틴어를 영어로 옮긴 말이기도 하다. 인류, 인간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니 도대체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인문학은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 지적인 자극을 통해 창의적인 인간을 키우기 위한 학문이다. 따라서 사전적 의미의 통념적 인문학은 개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는 언어적 적실성, 페이소스도 없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에 가장 반하는 개념 정의, 가장 인문학답지 못한 개념 정의가 지금 통용되는 인문학에 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만든 인문학의 색다른 정의”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인문학강좌’라는 강의를 개설해 ‘사랑과 결혼’ ‘일과 행복’ ‘도전과 모험’ 등 청춘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인생의 주제들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에세이를 써서 발표하게 하는 훈련을 통해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높이는 부수적인 교육 효과도 염두에 두었다.
강의는 성공적이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생각이 부쩍 자라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막연해하던 인문학에 대해 스스로 개념 정의를 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커리어 플랜에 멋지게 인문학의 옷을 입힐 수도 있게 되었다. 다음은 학생들과 소통하며 저자가 정리한 인문학의 정의다.
세상에 대한 물음
첫째, 인문학이란 물음이다. 세상과 나에 대한 성찰적 질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고, 행복한 인생인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 나를 알기 위한 질문이고, 세상을 알기 위한 질문이다. 문은 그래서 글월 문(文)이 아니라 물을 문(問)이다. 인문학(人文學)은 인문학(人問學)이다. 물음은 상상력을 키우고, 꿈을 직조하고, 나를 성장시킨다.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신이란 무엇인지, 품격 있는 삶은 어떤 삶인지에 대한 물음과 성찰이 인류의 문명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세상을 보는 눈
둘째, 인문학이란 눈이다. 사회를 보는 눈이고, 타인을 보는 눈이다. 내가 보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도 있고, 중립적일 수도 있고, 혹은 개판일 수도 있다. 맨눈으로 볼 때의 세상과 안경 낀 눈으로 볼 때의 세상은 다르다.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는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갈등과 분쟁, 전쟁을 지양하고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인문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문학에 대한 이러한 개념 정의에 따른 것이다.
핀셋과 힐링
셋째, 인문학은 핀셋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도구다. 핀셋에 묻어나오는 기억은 우중충한 것일 수도 있고,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그 기억 속에는 식민지배의 아픔과 개발독재의 상처가 있고, 멸망한 트로이에 대한 서사가 있다. 숙달된 의사가 들고 있는 핀셋은 정교하고, 정확하고, 치밀하다. 그러나 선무당이 들고 있는 핀셋은 사람 잡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들고 있는 핀셋이 숙달된 의사의 것일지, 선무당의 것일지는 인문고전에 대한 꾸준한 독서와 성찰, 글쓰기 훈련 등에 따라 달라진다. 핀셋에 솜을 묻히면 상처를 치료하는 도구가 된다. 그래서 인문학은 힐링이다. 상처를 잘 아물게 하고, 질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되돌려주는 중요한 도구다. 전쟁과 독재, 질곡, 반란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원인을 진단하고, 더불어 이것들이 남긴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것이 인문학의 고유한 학문적 의무다.
연대를 위한 공감능력
넷째, 인문학은 공감능력이다. 나의 말에, 나의 표정에, 나의 생각에, 나의 글에 누군가 공감해주는 것보다 더 달콤한 반응은 없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톡에 올린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면 행복하다. 공감은 사랑을 만들고, 연대를 만들고, 세상을 바꾼다. 인문학은 공감능력을 성장시켜준다. 세상에 관한 질문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기억을 끄집어내는 핀셋도 결국은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하다. 인(人)이라는 한자가 의미하듯이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는 존재다. 따라서 인문학은 개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이웃과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기 위한 사회적 학문이다.
통념을 넘어 통섭으로
문사철로 불리는 문학, 역사, 철학이 전통적인 인문학의 범주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의미의 인문학이다. 진정한 인문학적 사고를 위해서는 통념을 넘어서는 시각이 필요하다. 넓게 보면 세상의 모든 학문이 인문학이다.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영역도 인문학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분리된 채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상호 소통하면서 존재하는 유기체다. 사회와 인간, 예술과 인간의 존재양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간과 그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통섭적 시각으로 인식할 때 그 본질을 훨씬 잘 파악할 수 있다. 통념이 아니라 통섭적 접근이 인문학의 가치를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적 접근이다. 통념은 인문학 발전의 걸림돌이나, 통섭은 궁극적으로 인문학이 지향해야 하는 방법론적 목표다.
“고전의 바다에서 길어 올린, 청춘을 위한 인문학”
인문학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태동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문학이 흥기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보면 인문학이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들이 추구했던 인문학적 가치는 ‘정의롭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지성의 함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문학이란 현실에 순응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학문이며, 그 힘의 원천은 자유로운 지성에서 나온다.
《인문학을 부탁해》는 열다섯 권의 고전을 소개한다. 주로 신화와 역사, 철학, 문학 분야에서 길어 올린 보물이다. 긴 시간 동안 전문가들이 꼼꼼하게 검증한 보물들이다. 물론 고전이라는 보물섬에는 이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보물이 즐비하다. 저자는 꿈을 찾는 청춘들이 이 책에서 소개한 고전을 노로 삼아 더 넓은 인문학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박영규
대학 총장 출신의 늦깎이 인문학자다. 총장 재직 시절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준비하면서 손에 쥐게 된 고전의 매력에 푹 빠져 본격적인 인문학자의 길로 나섰다.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공기관 임원과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을 지낸 후 한서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중부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인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건양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정치학자에서 인문학자로 전향(?)한 이후 처음으로 펴낸 《인문학의 눈으로 본 행복한 국가와 정치》가 2015년 문화관광부의 세종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번에 출간하는 《인문학을 부탁해》는 중부대학교에서 개설했던 ‘인문학강좌’의 강의 내용에다 인문학의 일반적인 테마 몇 가지를 더 얹어 재구성한 인문학 개론서다. 이 책은 ‘인문학강좌’ 수업과 토론, 에세이 발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내 시야를 넓혀준 학생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말 | 인문학의 바다로 떠나는 항해
제01강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통념적 의미의 인문학과 그것의 문제점 | 거미줄, 물, 나무, 현미경 | 세상에 대한 물음 | 세상을 보는 눈 | 핀셋과 힐링 | 연대를 위한 공감능력 | 통념을 넘어 통섭으로 | 인문학다운 가치란 | 《우신예찬》과 비판정신 | 《유토피아》와 이상향 | 《돈키호테》와 정의의 페이소스
제02강 왜 인문학인가?
스티브 잡스와 인문학 | 인문학적 상상력과 지성의 힘 | 욕망의 눈 호기심 | 문명의 성장과 호기심 |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 | Think different
제03강 인문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인문학 공부, 어렵지 않다 | 인문학 공부는 고전 읽기다 | 인문학과 연애하라 | 연애에 필요한 준비물 | 연애의 전략과 테크닉 |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 인문학의 네 가지 경전 | 청춘의 도전정신과 낭만 | 시사성이 짙은 인문고전 | 철학적 깊이가 돋보이는 고전 | 인문학의 원류, 그리스 로마 시대 | 역사책은 반드시 원전을 읽어라 | 철학은 인문학의 콘크리트다 | 함께 읽어야 하는 다른 분야의 고전 | 적자생존의 원칙 | 똑똑해진다는 것의 의미
제04강 행복이란 무엇인가?
짜장면 한 그릇의 행복과 스테이크의 행복 | 부와 권력 | 꾸뻬 씨의 행복 | 그리스인 조르바의 행복 | 키높이 행복론 | 혜민 스님의 행복론 |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 | 행복의 제1조건, 중용 | 청춘의 행복 | 나는 행복한가?
제05강 나는 누구인가?
결핍존재 | 결핍을 해소하는 방법 | 생각하는 힘 | 이성과 자유 | 노동과 연대 | 세계개방성 | 불안존재 | 결단과 행동 | 게임 참여자 | 랑그와 파롤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 책임윤리
제06강 내 인생의 역사
청춘은 왜 피로한가? | 미래에 대한 불안감 | 피로를 푸는 청춘의 묘약 | ○○○와 함께한 나의 20년 | 승자의 역사와 패자의 역사 | 로마의 길과 만리장성 | 한반도의 로마, 고려왕조 | 도전과 응전 | 기다림의 미학
제07강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 시행착오라는 기회비용 | 돈 주고도 못 사는 산 체험 | 자유와 낭만 | 만남과 헤어짐의 교차로 | 자유로운 영혼, 신의 빈자리 | 청춘의 길 | 연어의 길 | 마음의 눈 | 몸의 비늘보다는 마음속을 봐다오 |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 연어의 욕망과 고래의 욕망 |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
제08강 시와 인문학
인문학의 시작과 끝 | 시 한 편의 시장가격 | 가지 않은 길 | 시와 청춘의 인문학 | 밥과 밥그릇 | 우체통이 빨간 이유 | 간이역을 돌아볼 여유
제09강 신화와 인문학
인문학의 아버지 | 이상향 | 시간과 공간 | 자연의 이치 | 역사의 탄생 | 무한도전 | 말(言), 말(馬), 돌(石) | 치욕의 대가(代價) | 자아 인식의 실패 | 광기와 페이소스 | 로미오와 줄리엣 | 정의란 무엇인가? | 불사(不死)의 꿈 | 근친상간과 문명 | 숙명과 운명
제10강 짜장면과 햄버거는 어떻게 인문학이 되는가?
졸업시즌의 제왕 짜장면 | 안도현의 《짜장면》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내 전공에 인문학의 옷을 입혀보자
제11강 첫사랑의 인문학
첫사랑은 봄이다 | 첫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사랑이다 | 첫사랑은 성장이다 | 첫사랑은 변화의 에너지다 | 첫사랑에는 마침표가 없다
제12강 사유의 확장과 인문학
낯선 대륙의 아리랑 | 인종주의에 대한 불편한 진실 | 낯섦을 바라보는 방식 | 타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 | 문명과 반문명 | 합리적 신탁과 주술적 관행 | 노동력의 교환과 망명 | 제국주의와 정체성의 파괴 | 아프리카의 정신, 죽음으로 항거하다 | 거북의 등짝이 갈라진 이유 | 익숙한 것에 대한 사유 | 권태와 무위의 도시 | 광기와 좌절된 욕망 | 세 표 후보와 메시아 | 휘슬 블로우어와 희극배우 | 학문의 실체 | 기계전문가와 힌두 경전 | 《미겔 스트리트》, 아프리카의 [서울의 달]
제13강 시간에 대한 기억장치와 인문학
염소의 축제, 기억이라는 핀셋 | 므네모시네와 우라니아 | 염소, 성적 악마성의 메타포 | 산토도밍고의 낯선 이방인 | 염소의 욕망과 실각의 배경 | 마조히즘적 소명의식 | 여명 | 짓밟힌 처녀성 | 염소를 제거하라! | 기억이라는 핀셋
제14강 역사의 상처를 인식하는 방법
스페인 내전과 6.25 전쟁 |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카밀로 호세 셀라의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사회경제적 모순과 내전의 뿌리 | 치스파의 죽음과 내전의 성격 | 가족 내 폭력과 분열상 | 내전의 전조 | 내전은 피할 수 없는 운명 | 내전에 대한 참회록, 영혼의 치유제 | 6.25와 전쟁의 상흔 |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 윤흥길의 〈장마〉 |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 김주영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제15강 인문학의 경전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 호의와 헌신 | 돈의 가치 | 직업과 신사 | 훈육의 명암 | 사랑과 신사 | 수신제가와 신사의 품격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 《돈키호테》의 탄생 배경 | 세상을 바로잡는 정의의 기사 | 권위를 깨부수는 해학의 페이소스 | 삯을 지불하는 것과 자리를 지키는 것 | 평등과 공정 | 남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 고난의 길 |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 | 이상향 둘시네아 | 아픔을 함께하는 것 | 새로운 모험 | 위작과 모작 | 사자의 기사 | 섬의 통치자 산초 판사 | 자유의 가치 | 작품의 가치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사람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 | 친부살해, 러시아적 광기의 서사 | 좌표를 잃은 자유주의자 | 예수를 쫓아낸 대심문관 | 구원의 빛
고전(번역본) 참고 목록
색인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국내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 컸다. 잡스는 2011년 신제품 발표회에서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애플이 개발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에 딱 들어맞는 제품이 되어야 하며, 인간의 몸에 딱 들어맞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적 이해가 필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통념상 인문학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학문 영역이 아니다. 문학과 역사, 철학, 종교학, 언어학 등 인문과학 영역의 학문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인문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humanities’는 인류, 인간성을 뜻하는 ‘humanity’의 복수형이며,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가장 먼저 썼다는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라틴어를 영어로 옮긴 말이기도 하다. 인류, 인간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니 도대체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인문학은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 지적인 자극을 통해 창의적인 인간을 키우기 위한 학문이다. 따라서 사전적 의미의 통념적 인문학은 개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는 언어적 적실성, 페이소스도 없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에 가장 반하는 개념 정의, 가장 인문학답지 못한 개념 정의가 지금 통용되는 인문학에 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만든 인문학의 색다른 정의”
이 책의 저자는 대학에서 ‘인문학강좌’라는 강의를 개설해 ‘사랑과 결혼’ ‘일과 행복’ ‘도전과 모험’ 등 청춘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인생의 주제들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보고자 했다. 에세이를 써서 발표하게 하는 훈련을 통해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을 높이는 부수적인 교육 효과도 염두에 두었다.
강의는 성공적이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생각이 부쩍 자라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막연해하던 인문학에 대해 스스로 개념 정의를 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커리어 플랜에 멋지게 인문학의 옷을 입힐 수도 있게 되었다. 다음은 학생들과 소통하며 저자가 정리한 인문학의 정의다.
세상에 대한 물음
첫째, 인문학이란 물음이다. 세상과 나에 대한 성찰적 질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고, 행복한 인생인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 나를 알기 위한 질문이고, 세상을 알기 위한 질문이다. 문은 그래서 글월 문(文)이 아니라 물을 문(問)이다. 인문학(人文學)은 인문학(人問學)이다. 물음은 상상력을 키우고, 꿈을 직조하고, 나를 성장시킨다.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신이란 무엇인지, 품격 있는 삶은 어떤 삶인지에 대한 물음과 성찰이 인류의 문명을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세상을 보는 눈
둘째, 인문학이란 눈이다. 사회를 보는 눈이고, 타인을 보는 눈이다. 내가 보는 사회는 정의로울 수도 있고, 중립적일 수도 있고, 혹은 개판일 수도 있다. 맨눈으로 볼 때의 세상과 안경 낀 눈으로 볼 때의 세상은 다르다.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는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갈등과 분쟁, 전쟁을 지양하고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인문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문학에 대한 이러한 개념 정의에 따른 것이다.
핀셋과 힐링
셋째, 인문학은 핀셋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도구다. 핀셋에 묻어나오는 기억은 우중충한 것일 수도 있고,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그 기억 속에는 식민지배의 아픔과 개발독재의 상처가 있고, 멸망한 트로이에 대한 서사가 있다. 숙달된 의사가 들고 있는 핀셋은 정교하고, 정확하고, 치밀하다. 그러나 선무당이 들고 있는 핀셋은 사람 잡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이 들고 있는 핀셋이 숙달된 의사의 것일지, 선무당의 것일지는 인문고전에 대한 꾸준한 독서와 성찰, 글쓰기 훈련 등에 따라 달라진다. 핀셋에 솜을 묻히면 상처를 치료하는 도구가 된다. 그래서 인문학은 힐링이다. 상처를 잘 아물게 하고, 질병을 낫게 하고, 건강을 되돌려주는 중요한 도구다. 전쟁과 독재, 질곡, 반란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원인을 진단하고, 더불어 이것들이 남긴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것이 인문학의 고유한 학문적 의무다.
연대를 위한 공감능력
넷째, 인문학은 공감능력이다. 나의 말에, 나의 표정에, 나의 생각에, 나의 글에 누군가 공감해주는 것보다 더 달콤한 반응은 없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톡에 올린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면 행복하다. 공감은 사랑을 만들고, 연대를 만들고, 세상을 바꾼다. 인문학은 공감능력을 성장시켜준다. 세상에 관한 질문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기억을 끄집어내는 핀셋도 결국은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하다. 인(人)이라는 한자가 의미하듯이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는 존재다. 따라서 인문학은 개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이웃과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기 위한 사회적 학문이다.
통념을 넘어 통섭으로
문사철로 불리는 문학, 역사, 철학이 전통적인 인문학의 범주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의미의 인문학이다. 진정한 인문학적 사고를 위해서는 통념을 넘어서는 시각이 필요하다. 넓게 보면 세상의 모든 학문이 인문학이다. 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영역도 인문학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분리된 채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상호 소통하면서 존재하는 유기체다. 사회와 인간, 예술과 인간의 존재양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간과 그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통섭적 시각으로 인식할 때 그 본질을 훨씬 잘 파악할 수 있다. 통념이 아니라 통섭적 접근이 인문학의 가치를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방법론적 접근이다. 통념은 인문학 발전의 걸림돌이나, 통섭은 궁극적으로 인문학이 지향해야 하는 방법론적 목표다.
“고전의 바다에서 길어 올린, 청춘을 위한 인문학”
인문학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태동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인문학이 흥기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보면 인문학이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들이 추구했던 인문학적 가치는 ‘정의롭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지성의 함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문학이란 현실에 순응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현실을 비판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학문이며, 그 힘의 원천은 자유로운 지성에서 나온다.
《인문학을 부탁해》는 열다섯 권의 고전을 소개한다. 주로 신화와 역사, 철학, 문학 분야에서 길어 올린 보물이다. 긴 시간 동안 전문가들이 꼼꼼하게 검증한 보물들이다. 물론 고전이라는 보물섬에는 이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보물이 즐비하다. 저자는 꿈을 찾는 청춘들이 이 책에서 소개한 고전을 노로 삼아 더 넓은 인문학의 바다로 항해를 떠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박영규
대학 총장 출신의 늦깎이 인문학자다. 총장 재직 시절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준비하면서 손에 쥐게 된 고전의 매력에 푹 빠져 본격적인 인문학자의 길로 나섰다.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으며, 중앙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공공기관 임원과 한국승강기대학교 총장을 지낸 후 한서대학교 국제관계학과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중부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인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건양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정치학자에서 인문학자로 전향(?)한 이후 처음으로 펴낸 《인문학의 눈으로 본 행복한 국가와 정치》가 2015년 문화관광부의 세종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번에 출간하는 《인문학을 부탁해》는 중부대학교에서 개설했던 ‘인문학강좌’의 강의 내용에다 인문학의 일반적인 테마 몇 가지를 더 얹어 재구성한 인문학 개론서다. 이 책은 ‘인문학강좌’ 수업과 토론, 에세이 발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내 시야를 넓혀준 학생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말 | 인문학의 바다로 떠나는 항해
제01강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통념적 의미의 인문학과 그것의 문제점 | 거미줄, 물, 나무, 현미경 | 세상에 대한 물음 | 세상을 보는 눈 | 핀셋과 힐링 | 연대를 위한 공감능력 | 통념을 넘어 통섭으로 | 인문학다운 가치란 | 《우신예찬》과 비판정신 | 《유토피아》와 이상향 | 《돈키호테》와 정의의 페이소스
제02강 왜 인문학인가?
스티브 잡스와 인문학 | 인문학적 상상력과 지성의 힘 | 욕망의 눈 호기심 | 문명의 성장과 호기심 |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 | Think different
제03강 인문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인문학 공부, 어렵지 않다 | 인문학 공부는 고전 읽기다 | 인문학과 연애하라 | 연애에 필요한 준비물 | 연애의 전략과 테크닉 |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 인문학의 네 가지 경전 | 청춘의 도전정신과 낭만 | 시사성이 짙은 인문고전 | 철학적 깊이가 돋보이는 고전 | 인문학의 원류, 그리스 로마 시대 | 역사책은 반드시 원전을 읽어라 | 철학은 인문학의 콘크리트다 | 함께 읽어야 하는 다른 분야의 고전 | 적자생존의 원칙 | 똑똑해진다는 것의 의미
제04강 행복이란 무엇인가?
짜장면 한 그릇의 행복과 스테이크의 행복 | 부와 권력 | 꾸뻬 씨의 행복 | 그리스인 조르바의 행복 | 키높이 행복론 | 혜민 스님의 행복론 |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 | 행복의 제1조건, 중용 | 청춘의 행복 | 나는 행복한가?
제05강 나는 누구인가?
결핍존재 | 결핍을 해소하는 방법 | 생각하는 힘 | 이성과 자유 | 노동과 연대 | 세계개방성 | 불안존재 | 결단과 행동 | 게임 참여자 | 랑그와 파롤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 책임윤리
제06강 내 인생의 역사
청춘은 왜 피로한가? | 미래에 대한 불안감 | 피로를 푸는 청춘의 묘약 | ○○○와 함께한 나의 20년 | 승자의 역사와 패자의 역사 | 로마의 길과 만리장성 | 한반도의 로마, 고려왕조 | 도전과 응전 | 기다림의 미학
제07강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 | 시행착오라는 기회비용 | 돈 주고도 못 사는 산 체험 | 자유와 낭만 | 만남과 헤어짐의 교차로 | 자유로운 영혼, 신의 빈자리 | 청춘의 길 | 연어의 길 | 마음의 눈 | 몸의 비늘보다는 마음속을 봐다오 |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 연어의 욕망과 고래의 욕망 |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
제08강 시와 인문학
인문학의 시작과 끝 | 시 한 편의 시장가격 | 가지 않은 길 | 시와 청춘의 인문학 | 밥과 밥그릇 | 우체통이 빨간 이유 | 간이역을 돌아볼 여유
제09강 신화와 인문학
인문학의 아버지 | 이상향 | 시간과 공간 | 자연의 이치 | 역사의 탄생 | 무한도전 | 말(言), 말(馬), 돌(石) | 치욕의 대가(代價) | 자아 인식의 실패 | 광기와 페이소스 | 로미오와 줄리엣 | 정의란 무엇인가? | 불사(不死)의 꿈 | 근친상간과 문명 | 숙명과 운명
제10강 짜장면과 햄버거는 어떻게 인문학이 되는가?
졸업시즌의 제왕 짜장면 | 안도현의 《짜장면》 | [햄버거에 대한 명상] | 내 전공에 인문학의 옷을 입혀보자
제11강 첫사랑의 인문학
첫사랑은 봄이다 | 첫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사랑이다 | 첫사랑은 성장이다 | 첫사랑은 변화의 에너지다 | 첫사랑에는 마침표가 없다
제12강 사유의 확장과 인문학
낯선 대륙의 아리랑 | 인종주의에 대한 불편한 진실 | 낯섦을 바라보는 방식 | 타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 | 문명과 반문명 | 합리적 신탁과 주술적 관행 | 노동력의 교환과 망명 | 제국주의와 정체성의 파괴 | 아프리카의 정신, 죽음으로 항거하다 | 거북의 등짝이 갈라진 이유 | 익숙한 것에 대한 사유 | 권태와 무위의 도시 | 광기와 좌절된 욕망 | 세 표 후보와 메시아 | 휘슬 블로우어와 희극배우 | 학문의 실체 | 기계전문가와 힌두 경전 | 《미겔 스트리트》, 아프리카의 [서울의 달]
제13강 시간에 대한 기억장치와 인문학
염소의 축제, 기억이라는 핀셋 | 므네모시네와 우라니아 | 염소, 성적 악마성의 메타포 | 산토도밍고의 낯선 이방인 | 염소의 욕망과 실각의 배경 | 마조히즘적 소명의식 | 여명 | 짓밟힌 처녀성 | 염소를 제거하라! | 기억이라는 핀셋
제14강 역사의 상처를 인식하는 방법
스페인 내전과 6.25 전쟁 |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카밀로 호세 셀라의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 사회경제적 모순과 내전의 뿌리 | 치스파의 죽음과 내전의 성격 | 가족 내 폭력과 분열상 | 내전의 전조 | 내전은 피할 수 없는 운명 | 내전에 대한 참회록, 영혼의 치유제 | 6.25와 전쟁의 상흔 |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 윤흥길의 〈장마〉 |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 김주영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제15강 인문학의 경전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 호의와 헌신 | 돈의 가치 | 직업과 신사 | 훈육의 명암 | 사랑과 신사 | 수신제가와 신사의 품격 |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 《돈키호테》의 탄생 배경 | 세상을 바로잡는 정의의 기사 | 권위를 깨부수는 해학의 페이소스 | 삯을 지불하는 것과 자리를 지키는 것 | 평등과 공정 | 남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 고난의 길 |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 | 이상향 둘시네아 | 아픔을 함께하는 것 | 새로운 모험 | 위작과 모작 | 사자의 기사 | 섬의 통치자 산초 판사 | 자유의 가치 | 작품의 가치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 사람은 무엇으로 구원받는가? | 친부살해, 러시아적 광기의 서사 | 좌표를 잃은 자유주의자 | 예수를 쫓아낸 대심문관 | 구원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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