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 협박과 회유, 구속과 고문을 물리치고 걸어간 어머니의 길
‘전태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전태일의 영정을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오열하는 젊은 어머니의 사진이 마음속에 각인된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로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41년간을 줄곧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노동자·시민과 함께하던 운동가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는 이 역시 여전히 많을 것이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은 ‘전태일의 어머니’, 나아가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던 이소선의 한평생을 실제 구술과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한 권으로 정리하고 그려 낸 책이다.
1970년 11월 13일, 이소선의 아들 전태일은 청계천 시장상가 피복제조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말을 외치며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인 끝에 세상을 떠났다. 새까맣게 그을린 몸으로 죽어 가던 아들 전태일과 ‘네가 못 다 이룬 것을 내가 꼭 이루겠다’는 평생의 약속을 한 이후로, 이소선은 이전까지 살아왔던 꼭 그만큼의 시간 동안, 자신이 했던 약속을 실천하며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 나갔다. 그렇게 그는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6년 9월 3일은 이소선이 세상을 떠난 지 만 5년이 되는 날이다.
자주적인 노동운동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70년대 한국의 노동 풍토 속에서, 운동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 이소선은 오직 아들의 뜻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전태일과 뜻을 함께했던 친구들, 그리고 청계의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한 끝에 ‘청계피복노조’라는 자주민주적 노동운동의 싹을 틔웠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웠다. 또한 노동자의 권익을 쟁취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모든 민중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독재정권의 엄혹한 탄압 아래에서 민주세력과 함께 민주화투쟁에도 발 벗고 나섰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때로는 ‘여간첩’ 소리를 듣고, 경찰과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세 번의 수감생활을 거쳤고, 재산을 챙겨주겠다며 숱한 회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꿋꿋하고 당당한 태도로 민주사회, 노동해방을 꿈꾸며 싸워 나가는 노동자 시민과 함께했으며 험난한 파도를 기꺼이 헤쳐 나갔다.
인간차별에 저항한 이소선의 생애
- 개가한 어머니, 근로정신대 탈출, 빈농에서 도시빈민으로
이소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전태일의 어머니로 불리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간 여성이고, 인간이었을까? 『노동자의 어머니-이소선 평전』에서는 ‘전태일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로서의 이소선은 물론이고 그러한 규정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면모가 잘 드러나도록 이소선의 삶을 꼼꼼히 그려 냈다. 이소선이 직접 구술했던 내용을 이야기 형식으로 정리해, 한 인간으로서의 이소선을 가감 없이 접할 수 있다.
이소선은 식민지 조선, 달성군(지금의 대구)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항일운동에 가담했던 아버지가 일제에게 살해당한 후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가 박실의 정씨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그는 ‘데려온 자식’으로서 많은 차별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또한 열여섯의 나이에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1년간 강제노역을 하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소선은 ‘사람대접을 해 달라’며, 현실에 굴하지 않고 놀라울 만큼 당당하게 기존 질서에 항의하는 아이였다. 자신을 차별하는 박실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을 어른을 직접 찾아가 이를 시정해 달라 요구하는가 하면, 근로정신대에서는 일제 관리자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따져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순간적인 판단력과 기지를 이용해 목숨을 걸고 근로정신대를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때로 무용담처럼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어릴 때부터 일관되었던 그의 거침없는 성격과, 부당함에 대해서는 참지 않고 당당하게 따져서 고치려 했던 기질을 엿보게 한다.
1947년 전상수와 결혼한 이소선은 태일, 태삼, 순옥, 순덕 네 명의 자녀를 낳고 키우게 된다. 그러나 집안 사업의 부침과 예기치 않은 재해 등이 번번이 그들을 거꾸러뜨려, 고향을 떠난 이소선의 가족은 대구, 부산, 서울로 떠돌며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그 과정에서 가난을 헤쳐 나가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던 이소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가슴이 찡하고, 때로는 무릎을 치게 하며, 때로는 웃음이 나게 만든다. 『전태일 평전』 등을 통해서도 일부 접할 수 있는 일화와 사건들을 이소선의 시각을 통해 또 다른 각도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차별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이소선은 평생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는 전태일 분신사건 이전부터 이후까지, 차별과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정신이 이소선의 평생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전태일뿐만 아니라 이후 어머니와 같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전태삼, 전순옥을 비롯한 자녀들, 또 그와 함께했던 노동자 시민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노조운동과 민주화의 역사와 함께한 생애
이소선의 삶을 따라가며 읽는 일은 대한민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읽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1970년, 이소선과 삼동회 멤버들(전태일의 친구들)이 전태일의 뜻을 이어 천신만고 끝에 세워 낸 청계피복노동조합은 한국 현대 노동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줄기 중 하나였으며, 70년대의 몇 안 되는 민주노조의 하나였다. 청계피복노조가 겪은 탄압과 실패, 성공과 승리의 역사는 이 땅의 노동조합이라는 존재가 걸어온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설립조차 쉽지 않았던 청계노조는 그 후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쟁취, 내부분열, 강제해산, 복구, 합법노조 인정 등 굽이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전태일이 죽음으로써 일으킨 불씨를 친구들과 어머니 이소선이 살려낸 것이었다. 위태롭게, 그러나 꺼지지 않고 살아남은 이 작은 민주노조의 불꽃을 80년에 들어선 전두환 군부정권은 강제해산이라는 명목으로 짓밟아 버린다. 하지만 꺼진 듯했던 그 불씨 속에서 청계피복노조는 84년 복구되어 다시 민주노조운동의 불을 밝힌다. 이것이 1985년 최초의 기업별노조 간 연대파업인 구로동맹파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노동자 대투쟁은 전노협과 업종노조를 통한 전국적인 조직으로 연결되었고, 이것이 민주노총의 탄생과 같은 결실을 낳는 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험난했던 과정에서 이소선은 늘 그 투쟁의 당사자 일원으로 현장에 직접 참여했던 것은 물론이고 헌옷을 팔아 번 돈으로 노조의 활동비를 대고, 운동가들이 먹을 밥을 짓는 등 힘든 일을 도맡으며 노동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하는 정신적 지주였다.
1990년대 이후의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져 가는 현실에서도 노년의 이소선은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고, 원로로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집회에 나가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2011년, 마지막 눈을 감던 날까지 그는 노동자가 하나되어 투쟁함으로써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는 세상을 위해 불철주야 온 힘과 마음을 기울였다. 민주사회의 건설 없이는 제대로 된 노동자의 삶도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민주화운동 또한 적극적으로 해 나갔다. 독재정권하에서 늘어가는 열사와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모아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을 창립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수십여 년간 그가 교류하며 힘을 합치고 마음을 나누어 온 사람들 가운데는 문익환 목사, 이희호 여사처럼 저명한 인물들도 있는가 하면 그들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의 당사자들로서 누구 못지않게 힘껏 고민하고, 싸우고, 실천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자의 어머니-이소선 평전』에는 이소선의 행보에 함께했던 그들의 면면이 하나하나 씨실날실처럼 촘촘히 그려져 있다. 그 면면들은 곧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의 만인보와도 같다.
구술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초상
- 청계노조 운동의 한가운데서 이소선과 함께했던 저자 민종덕
이소선의 모든 연설은 즉석연설이다. 이 즉석연설이야말로 가장 이소선다운 연설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전태일입니다. 내 아들 전태일이라고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태일, 전태일 하고 외치니까 전태일입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무슨 전태일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권리를 찾고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외치는 사람 모두가 전태일입니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이소선의 연설은 꾸미거나 정제되거나 한 것이 아니라 평소 그냥 말하듯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때로는 길어지기도 해 행사 진행자가 진땀을 빼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진솔한 얘기였다. 권력자들을 향한 거침없는 욕설도 있다.
검사의 심문이 이어졌다.
“피고, 피고가 근로자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면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해 사회불안이 현저하게 야기되는데, 이 틈을 이용해 북괴가 내려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소선은 또다시 울화통이 터졌다.
“배고파서 임금 인상을 해 달라고 하는데 이북하고 무슨 상관이냐!”
이소선이 소리를 지르니 재판이 중단되었다. (…)
“판사나 검사나 다 똑같은 놈이구먼, 판사라고 해서 검사와는 다른 점이 있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한술 더 뜨네! 재판장이나 검사가 먼저 뒈져야 우리가 살 수 있지 안 그러면 우리가 정말로 다 죽겠다.”
『노동자의 어머니-이소선 평전』은 1990년 회갑 기념으로 냈던 이소선의 구술회상록 『어머니의 길』을 바탕으로, 당시 이소선으로부터 구술을 받아 정리했던 전 청계노조 위원장 민종덕이 이후의 행적을 추가하고 기존의 내용도 대폭 보완하여 새롭게 집필한 책이다.
1974년,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민종덕은 당시 전태일의 일기를 읽고 충격과 감화를 받아 직접 쌍문동으로 이소선을 찾아갔다. 그때부터 그는 청계피복노조의 일원으로서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실현하기 위해 운동에 매진했고, 노조 대의원, 사무장, 지부장 등의 직책을 두루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이소선이 부당하게 구속을 당했을 때는 격렬한 항의농성과 투신으로 항의하기도 했고, 강제해산되었던 청계노조를 복구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으며, 87년에는 이소선과 함께 수배생활을 헤쳐 나가기도 했다. 이렇듯 가까운 거리에서 각별하게 교류하고 보필하고 지켜본 사이였기에, 이소선의 삶에 펼쳐졌던 다양한 고비와 국면을 이 책을 통해 더욱더 생생하게 그려 낼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가상대화 형식으로 그려져 있는 ‘에필로그’ 또한 이소선이 타계하였을 때 민종덕이 염습 장면을 직접 지켜보며 적었던 기록을 옮긴 것이다.
민종덕은 이소선으로부터 직접 듣고 정리했던 구술의 내용과,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해 나가며 경험했던 기억, 그리고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기록자료들을 망라하여 이 책을 쓰는 데 활용했다. 사실관계는 다시금 확인하고 빠진 내용을 보완하여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역사, 나아가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함께한 이소선의 한평생을 총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정리해 냈다. 국면마다 당시의 상황과 역사적 의의도 짚어 냈다. 그는 이 책의 집필이 이소선 어머니와의 오랜 ‘약속’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민종덕
195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대 말 가족이 이농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1974년 전태일의 일기를 접하고, 자신의 길이 전태일을 따라 사는 것이라 결심하고 곧바로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을 찾아갔다. 평화시장에 취직해서 일하다 1975년부터 청계피복노조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해 지역위원, 대의원, 운영위원, 총무부장, 사무장, 지부장 등을 지냈고 1984년에는 청계피복노조의 복구를 주도적으로 구상하고 실행했다. 『전태일 평전』의 출판과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광주백서』 제작 및 배포에도 참여했다. 『지역노조란 무엇인가?』 등을 집필했고, 『한국노동운동 20년의 결산과 전망』, 『전태일 전집』 등을 기획했다. 2001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를 지냈고 2005년에는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전태일 거리 및 전태일 다리 조성에 관여했다. 현재 전남 구례로 귀촌해 현재 전남 구례로 귀촌해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지리산 사람들’ 활동 및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견학자 안내 등을 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약속
식민지의 딸
밑바닥 인생
너의 분신, 우리의 터전
대결
어둠의 시대
어둠을 가르는 몸짓
작은 혁명
승승장구
목숨을 걸고
새날은 오려는가
서울의 봄
피바람의 계절
어둠 속의 모색
부활
합법성 쟁취를 위하여
서노련을 둘러싼 분열과 투쟁
비약
전 국민의 전태일
죽음, 죽음, 죽음이여! 열사여!
노동자의 전국적 조직화
정권이 교체됐다 한들
살아오는 전태일, 다가오는 사람세상
이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태일이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에필로그
후기 | 참고 및 인용 문헌 | 『어머니의 길』 서문 | 이소선 연보 | 찾아보기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 협박과 회유, 구속과 고문을 물리치고 걸어간 어머니의 길
‘전태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전태일의 영정을 끌어안고 고통스럽게 오열하는 젊은 어머니의 사진이 마음속에 각인된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로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41년간을 줄곧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노동자·시민과 함께하던 운동가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는 이 역시 여전히 많을 것이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평전』은 ‘전태일의 어머니’, 나아가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던 이소선의 한평생을 실제 구술과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한 권으로 정리하고 그려 낸 책이다.
1970년 11월 13일, 이소선의 아들 전태일은 청계천 시장상가 피복제조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말을 외치며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인 끝에 세상을 떠났다. 새까맣게 그을린 몸으로 죽어 가던 아들 전태일과 ‘네가 못 다 이룬 것을 내가 꼭 이루겠다’는 평생의 약속을 한 이후로, 이소선은 이전까지 살아왔던 꼭 그만큼의 시간 동안, 자신이 했던 약속을 실천하며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그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 나갔다. 그렇게 그는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6년 9월 3일은 이소선이 세상을 떠난 지 만 5년이 되는 날이다.
자주적인 노동운동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70년대 한국의 노동 풍토 속에서, 운동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닌 이소선은 오직 아들의 뜻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전태일과 뜻을 함께했던 친구들, 그리고 청계의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한 끝에 ‘청계피복노조’라는 자주민주적 노동운동의 싹을 틔웠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웠다. 또한 노동자의 권익을 쟁취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모든 민중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독재정권의 엄혹한 탄압 아래에서 민주세력과 함께 민주화투쟁에도 발 벗고 나섰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때로는 ‘여간첩’ 소리를 듣고, 경찰과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으며, 세 번의 수감생활을 거쳤고, 재산을 챙겨주겠다며 숱한 회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꿋꿋하고 당당한 태도로 민주사회, 노동해방을 꿈꾸며 싸워 나가는 노동자 시민과 함께했으며 험난한 파도를 기꺼이 헤쳐 나갔다.
인간차별에 저항한 이소선의 생애
- 개가한 어머니, 근로정신대 탈출, 빈농에서 도시빈민으로
이소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전태일의 어머니로 불리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 왔으며,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간 여성이고, 인간이었을까? 『노동자의 어머니-이소선 평전』에서는 ‘전태일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로서의 이소선은 물론이고 그러한 규정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면모가 잘 드러나도록 이소선의 삶을 꼼꼼히 그려 냈다. 이소선이 직접 구술했던 내용을 이야기 형식으로 정리해, 한 인간으로서의 이소선을 가감 없이 접할 수 있다.
이소선은 식민지 조선, 달성군(지금의 대구)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항일운동에 가담했던 아버지가 일제에게 살해당한 후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가 박실의 정씨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그는 ‘데려온 자식’으로서 많은 차별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또한 열여섯의 나이에 근로정신대에 끌려가 1년간 강제노역을 하다 목숨을 걸고 탈출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소선은 ‘사람대접을 해 달라’며, 현실에 굴하지 않고 놀라울 만큼 당당하게 기존 질서에 항의하는 아이였다. 자신을 차별하는 박실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을 어른을 직접 찾아가 이를 시정해 달라 요구하는가 하면, 근로정신대에서는 일제 관리자들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따져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순간적인 판단력과 기지를 이용해 목숨을 걸고 근로정신대를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때로 무용담처럼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어릴 때부터 일관되었던 그의 거침없는 성격과, 부당함에 대해서는 참지 않고 당당하게 따져서 고치려 했던 기질을 엿보게 한다.
1947년 전상수와 결혼한 이소선은 태일, 태삼, 순옥, 순덕 네 명의 자녀를 낳고 키우게 된다. 그러나 집안 사업의 부침과 예기치 않은 재해 등이 번번이 그들을 거꾸러뜨려, 고향을 떠난 이소선의 가족은 대구, 부산, 서울로 떠돌며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그 과정에서 가난을 헤쳐 나가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던 이소선 가족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가슴이 찡하고, 때로는 무릎을 치게 하며, 때로는 웃음이 나게 만든다. 『전태일 평전』 등을 통해서도 일부 접할 수 있는 일화와 사건들을 이소선의 시각을 통해 또 다른 각도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차별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이소선은 평생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책에 담긴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는 전태일 분신사건 이전부터 이후까지, 차별과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정신이 이소선의 평생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전태일뿐만 아니라 이후 어머니와 같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던 전태삼, 전순옥을 비롯한 자녀들, 또 그와 함께했던 노동자 시민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노조운동과 민주화의 역사와 함께한 생애
이소선의 삶을 따라가며 읽는 일은 대한민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읽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1970년, 이소선과 삼동회 멤버들(전태일의 친구들)이 전태일의 뜻을 이어 천신만고 끝에 세워 낸 청계피복노동조합은 한국 현대 노동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줄기 중 하나였으며, 70년대의 몇 안 되는 민주노조의 하나였다. 청계피복노조가 겪은 탄압과 실패, 성공과 승리의 역사는 이 땅의 노동조합이라는 존재가 걸어온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설립조차 쉽지 않았던 청계노조는 그 후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쟁취, 내부분열, 강제해산, 복구, 합법노조 인정 등 굽이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전태일이 죽음으로써 일으킨 불씨를 친구들과 어머니 이소선이 살려낸 것이었다. 위태롭게, 그러나 꺼지지 않고 살아남은 이 작은 민주노조의 불꽃을 80년에 들어선 전두환 군부정권은 강제해산이라는 명목으로 짓밟아 버린다. 하지만 꺼진 듯했던 그 불씨 속에서 청계피복노조는 84년 복구되어 다시 민주노조운동의 불을 밝힌다. 이것이 1985년 최초의 기업별노조 간 연대파업인 구로동맹파업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노동자 대투쟁은 전노협과 업종노조를 통한 전국적인 조직으로 연결되었고, 이것이 민주노총의 탄생과 같은 결실을 낳는 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험난했던 과정에서 이소선은 늘 그 투쟁의 당사자 일원으로 현장에 직접 참여했던 것은 물론이고 헌옷을 팔아 번 돈으로 노조의 활동비를 대고, 운동가들이 먹을 밥을 짓는 등 힘든 일을 도맡으며 노동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하는 정신적 지주였다.
1990년대 이후의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져 가는 현실에서도 노년의 이소선은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했고, 원로로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집회에 나가 노동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2011년, 마지막 눈을 감던 날까지 그는 노동자가 하나되어 투쟁함으로써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는 세상을 위해 불철주야 온 힘과 마음을 기울였다. 민주사회의 건설 없이는 제대로 된 노동자의 삶도 불가능하다는 인식하에 민주화운동 또한 적극적으로 해 나갔다. 독재정권하에서 늘어가는 열사와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모아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을 창립해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수십여 년간 그가 교류하며 힘을 합치고 마음을 나누어 온 사람들 가운데는 문익환 목사, 이희호 여사처럼 저명한 인물들도 있는가 하면 그들만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의 당사자들로서 누구 못지않게 힘껏 고민하고, 싸우고, 실천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자의 어머니-이소선 평전』에는 이소선의 행보에 함께했던 그들의 면면이 하나하나 씨실날실처럼 촘촘히 그려져 있다. 그 면면들은 곧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의 만인보와도 같다.
구술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초상
- 청계노조 운동의 한가운데서 이소선과 함께했던 저자 민종덕
이소선의 모든 연설은 즉석연설이다. 이 즉석연설이야말로 가장 이소선다운 연설이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전태일입니다. 내 아들 전태일이라고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태일, 전태일 하고 외치니까 전태일입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무슨 전태일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권리를 찾고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외치는 사람 모두가 전태일입니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이소선의 연설은 꾸미거나 정제되거나 한 것이 아니라 평소 그냥 말하듯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때로는 길어지기도 해 행사 진행자가 진땀을 빼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진솔한 얘기였다. 권력자들을 향한 거침없는 욕설도 있다.
검사의 심문이 이어졌다.
“피고, 피고가 근로자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면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해 사회불안이 현저하게 야기되는데, 이 틈을 이용해 북괴가 내려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소선은 또다시 울화통이 터졌다.
“배고파서 임금 인상을 해 달라고 하는데 이북하고 무슨 상관이냐!”
이소선이 소리를 지르니 재판이 중단되었다. (…)
“판사나 검사나 다 똑같은 놈이구먼, 판사라고 해서 검사와는 다른 점이 있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한술 더 뜨네! 재판장이나 검사가 먼저 뒈져야 우리가 살 수 있지 안 그러면 우리가 정말로 다 죽겠다.”
『노동자의 어머니-이소선 평전』은 1990년 회갑 기념으로 냈던 이소선의 구술회상록 『어머니의 길』을 바탕으로, 당시 이소선으로부터 구술을 받아 정리했던 전 청계노조 위원장 민종덕이 이후의 행적을 추가하고 기존의 내용도 대폭 보완하여 새롭게 집필한 책이다.
1974년,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민종덕은 당시 전태일의 일기를 읽고 충격과 감화를 받아 직접 쌍문동으로 이소선을 찾아갔다. 그때부터 그는 청계피복노조의 일원으로서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실현하기 위해 운동에 매진했고, 노조 대의원, 사무장, 지부장 등의 직책을 두루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이소선이 부당하게 구속을 당했을 때는 격렬한 항의농성과 투신으로 항의하기도 했고, 강제해산되었던 청계노조를 복구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으며, 87년에는 이소선과 함께 수배생활을 헤쳐 나가기도 했다. 이렇듯 가까운 거리에서 각별하게 교류하고 보필하고 지켜본 사이였기에, 이소선의 삶에 펼쳐졌던 다양한 고비와 국면을 이 책을 통해 더욱더 생생하게 그려 낼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가상대화 형식으로 그려져 있는 ‘에필로그’ 또한 이소선이 타계하였을 때 민종덕이 염습 장면을 직접 지켜보며 적었던 기록을 옮긴 것이다.
민종덕은 이소선으로부터 직접 듣고 정리했던 구술의 내용과, 오랜 시간 곁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해 나가며 경험했던 기억, 그리고 접근하기 어려운 다양한 기록자료들을 망라하여 이 책을 쓰는 데 활용했다. 사실관계는 다시금 확인하고 빠진 내용을 보완하여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역사, 나아가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함께한 이소선의 한평생을 총체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정리해 냈다. 국면마다 당시의 상황과 역사적 의의도 짚어 냈다. 그는 이 책의 집필이 이소선 어머니와의 오랜 ‘약속’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민종덕
195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1960년대 말 가족이 이농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1974년 전태일의 일기를 접하고, 자신의 길이 전태일을 따라 사는 것이라 결심하고 곧바로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을 찾아갔다. 평화시장에 취직해서 일하다 1975년부터 청계피복노조에서 노동운동에 투신해 지역위원, 대의원, 운영위원, 총무부장, 사무장, 지부장 등을 지냈고 1984년에는 청계피복노조의 복구를 주도적으로 구상하고 실행했다. 『전태일 평전』의 출판과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광주백서』 제작 및 배포에도 참여했다. 『지역노조란 무엇인가?』 등을 집필했고, 『한국노동운동 20년의 결산과 전망』, 『전태일 전집』 등을 기획했다. 2001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를 지냈고 2005년에는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전태일 거리 및 전태일 다리 조성에 관여했다. 현재 전남 구례로 귀촌해 현재 전남 구례로 귀촌해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지리산 사람들’ 활동 및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견학자 안내 등을 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약속
식민지의 딸
밑바닥 인생
너의 분신, 우리의 터전
대결
어둠의 시대
어둠을 가르는 몸짓
작은 혁명
승승장구
목숨을 걸고
새날은 오려는가
서울의 봄
피바람의 계절
어둠 속의 모색
부활
합법성 쟁취를 위하여
서노련을 둘러싼 분열과 투쟁
비약
전 국민의 전태일
죽음, 죽음, 죽음이여! 열사여!
노동자의 전국적 조직화
정권이 교체됐다 한들
살아오는 전태일, 다가오는 사람세상
이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태일이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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