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최근 메갈리아/워마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작년 여름 인터넷에 갑자기 등장한 메갈리아는 각종 논란을 일으키며,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인터넷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대학교 화장실에 사이트 홍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소극적 운동으로 시작했으나, 이내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시위를 주도하며 물의를 빚었고, 남자어린이를 성추행하고 싶다는 보육교사 출신 회원의 발언, 커피 심부름시키는 남자 상사에게 부동액을 타먹였다는 발언, 윤봉길·안중근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비하 짤방 등이 차례로 유출되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사태는 올 여름 넥슨의 성우 교체 사건으로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인증한 성우에 대해 게이머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넥슨은 성우를 교체했고, 메갈리아는 이를 부당해고로 규정하며 넥슨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이에 진보 정당과 언론, 유명 논객과 페미니스트, 웹툰 작가들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며 가세하자, 사태는 이들 대 일반 네티즌(과 게이머와 독자) 간의 온·오프라인 논쟁으로 비화했다.
메갈리아/워마드에 반대하는 측은 그들을 남성혐오를 조장하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배척하는 반면,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측은 그들의 자극적인 발언이 어디까지나 그동안 인터넷에 만연했던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일 뿐이라고 변호한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인 메갈리아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가? 메갈리아가 여성혐오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미러링을 할 뿐이라는 주장은 과연 진실인가? 이 책은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일베의 사상》으로 한국 인터넷 지형도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분석해 왔던 저자 박가분은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는 ‘메갈리아 신드롬’을 분석한다. 메갈리아/워마드의 출현 배경과 실태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내세우는 ‘미러링’이라는 명분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또한 현재 인터넷에 만연한 젠더 혐오의 진정한 원인을 탐구하고, 건전한 인터넷 공론장의 회복 방안을 모색한다.
메갈리아의 거짓 신화와 출생의 비밀
메갈리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먼저 그들의 공식 건국신화를 들어보자. 태초에 여성혐오가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여성이 인터넷 공간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가 시작되던 2015년 5월 30일, 홍콩에 간 한국 여성들이 메르스 의심환자로 진단받았음에도 격리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는 이들을 비하하는 악플로 넘쳐났다. 그러나 이것이 와전된 사실임이 밝혀지자, 성난 여성 유저들은 메르스갤러리로 몰려가 그동안의 여성혐오 발언을 남성을 대상으로 미러링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운영자가 게시글들을 삭제하기 시작했고, 이에 여성 유저들은 그간의 자료를 아카이빙할 독립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탄생했다고 알려진 메갈리아를 대다수의 진보언론과 여성단체는 이제까지 억압받던 소수자·약자·피해자의 정당한 대항이라는 프레임에서, ‘여성혐오 발언에 미러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커뮤니티’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인터넷 상의 대중운동 사이트’라며 동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들의 오판은 무엇보다 메갈리아가 내세우는 건국신화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추적하여 재구성한 메갈리아의 출현 과정은 사뭇 다르다. 골자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메갈리아의 모태는 디시인사이드의 대표적 여초 사이트인 남자연예인갤러리(이하 남연갤)다. 이들은 2014년부터 ‘여자 일베’라고 불릴 정도로 일베 용어를 거부감 없이 사용하며 각종 혐오·비하 발언을 즐겼다. 하루 종일 남자아이돌에 대한 루머와 비방을 만들어내며 놀던 이들에게 ‘외모지상주의’와 ‘성적 대상화’는 일상적 대화 코드였다. 자기가 동경하는 연예인에 대한 숭배는 마음에 들지 않는 연예인, 나아가 현실의 비루하고 못생긴 일반인 남성에 대한 혐오로 옮아가기 일쑤였다.
남연갤의 본격적인 남성혐오 발언은 (메갈리아의 주장과 달리) 메르스갤러리 점령 사건 이전, 아니 메르스갤러리가 생성되기도 전인 2015년 5월 26일의 이른바 ‘강된장남 사건’ 때부터 이미 유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5월 29일 오전, 최초의 메르스 감염자가 카타르에서 귀국한 남성이라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남성혐오 발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그날 오후 메르스갤러리가 만들어졌을 때, 최초로 올라온 혐오 발언 역시 (다시금 메갈리아의 주장과 달리) 여성혐오가 아닌 남성혐오 글이었다. 실제로 남연갤에 “라며니(남연갤 유저)들아 메르스갤 가서 김치남 까자 전염병 시발점은 68 할애비”라는 선동 글이 올라온 직후 메르스갤러리는 남성혐오 발언으로 도배되었다.
누가 미러링을 갖다 붙였나?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연예인이 있으면 다른 갤러리로 원정을 가서 분탕질을 치고 어그로를 끄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던 남연갤 유저들에게 이러한 ‘남혐 물타기(여론몰이)’로 메르스갤러리를 점령한 사건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홍콩에서 격리를 거부한 여성들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메르스갤러리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있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누가, 무슨 의도로 두 사건의 인과를 도치시킨 후 ‘미러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기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때마침 페이스북에 개설된 ‘메갈리아’(현재는 메갈리아4) 페이지는 메르스갤러리의 남성혐오 발언을 소개하며 ‘여기에는 이러이러한 미러링의 의미가 있다’는 점잖은(?) 해설을 붙이며 메르스갤러리의 언행을 사상적으로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메르스갤러리가 남성혐오라는 공격충동을 발산하는 이드였다면, 메갈리아 페이지는 이를 사후 정당화하는 자아·초자아였던 셈이다. ‘남성혐오가 아닌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다(일명 여혐혐)’라는 식의 사후 합리화는 SNS와 언론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상당수 언론은 실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 논리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하지만 정작 메르스갤러리 점령을 주도한 남연갤 유저들은 이러한 사상적 정당화에 대해 “미러링은 개뿔”이라며 냉소하고 있다. 애초에 자신들이 미러링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재밌어서 일베 말투와 혐오 발언을 즐겼고, 메르스갤러리의 점령 목적도 여혐 공론화 따위에 있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한 커뮤니티 유저들의 흔한 여론몰이에서 시작된 작은 사건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커졌을까? (저자는 일베와 메갈리아 모두를 병명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모종의 정신병적 증후라는 의미에서 ‘신드롬’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일정 정도 설명할 수 있다. 남연갤이 메르스갤러리를 점령하고 남성혐오 발언을 쏟아내자 ‘여성시대’ 같은 여초 커뮤니티들에서의 유입이 활발해졌다. 이들에게 이곳은 평소 쌓였던 남혐 정서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여혐의 온상인 일베의 말투까지 그대로 흉내 내며 신기해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쓰레기가 놓여 있으면 평소 규범을 잘 지키던 시민도 ‘이곳은 쓰레기를 버려도 괜찮은 곳’이라고 스스로 납득해버리고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탈을 방치한 결과, 그것이 잘못된 신호를 주어 결국 이처럼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낳기에 이른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가
메갈리아가 출현한 직후 여성주의와 진보 진영은 일제히 이들을 ‘대안적-하위 공론장’의 출현,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탄생’이라며 환영했다. 메갈리아의 실상을 아는 네티즌들에게는 무척 경악스러운 평가지만, 이는 거꾸로 진보적 지식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몰이해를 시사해준다.
많은 연구자들이 인터넷을 특유의 개방성과 공개성 때문에 현실의 공론장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공론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고(이해 가능성),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진리성), 같은 도덕규범을 공유해야 하고(정당성), 무엇보다 그 표현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며 절충점을 찾아가려는 의욕을 보여야 한다(진실성). 이것은 면대면面對面의 수평적 관계, 즉 친구나 동료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상당수 인터넷 커뮤니티는 이러한 조건들에 위배된다. 악의적인 어그로와 패드립이 판치는 가운데 상대의 진심을 믿고 벌이는 토론이란 거의 불가능하다(진실성). 또한 게시글에 대한 ‘조작’ 시비가 끊이지 않으며, 사실관계를 왜곡해도 마땅한 검증 수단이 없다(진리성).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은어와 말투, 관행, 친목질이 다반사이며(이해 가능성), 메갈리아와 일베처럼 회원들의 혐오 발언을 조장해 사회규범을 일부러 조롱하기까지 한다(정당성).
인터넷 공간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벌이는 공론장 담론은 현실 앞에 무력할 뿐이다. 반사회적 혐오 커뮤니티에 몰입하는 이들을 찾아가 속내를 인터뷰한다 해도 소득은 거의 없다. 마이크를 들이대는 순간 그들은 평소 인터넷에서 취하던 방약무인한 태도와는 달리, 현실의 차별이 싫어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불쾌한 시선과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들이 싫어서라는 이성적 답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의식의 합리화, 자기정당화의 필터링을 거쳐 내놓는 이러한 대답은 진정한 이유가 아니다. 장소가 사람을 만든다. 이제부터라도 질문의 초점을 현실과 인터넷 공간의 간극을 초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가에 맞춰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불필요한 낭만화(메갈리아)와 악마화(일베) 사이에서 동요해왔다.
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혐오 발언에 탐닉하는가
그렇다면 젠더 혐오가 인터넷 상에 이토록 만연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성혐오의 원인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 성비 불균형이다. 산아제한과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으로 여아 낙태가 유행하면서 지금의 20대에 상당한 성비 불균형이 누적돼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1986~1995년생의 평균 성비 113.2). 이들 ‘잉여 남성’ 인구가 결혼과 연애 시장에서 여성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폄하함으로써 자신의 상대적 가치를 확보하려는 ‘절망적인 가격 흥정 전략’을 펼치는 것이 바로 여성혐오 발언이 만연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못 마실 우물에 독을 타는 심보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상의 여성혐오 발언에 공감한다는 10~30대 남성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그렇다면 인구학적으로 결혼의 가망이 보이지 않는 10~20퍼센트의 결혼 적령기 미혼 남성이 여성을 만날 가망이 있는 나머지 30~40퍼센트의 남성을 인터넷을 매개로 여성혐오 측으로 끌어들였다고 결론 내려야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지나친 억측일 것이다.
이보다는 결혼과 연애가 남녀 모두에게 ‘불공정거래’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데이트 비용과 결혼 비용이 과도하다고 느끼며, 급기야 결혼을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한편 더 일찍부터 인터넷 상에서 결혼 포기 의사를 밝혀온 다수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으로 인한 가사노동의 전가와 경력 단절에 의한 임금 격차가 결혼으로 얻는 것보다 더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결혼과 연애가 서로에게 불공정거래라는 인식의 밑바탕에는,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남성이 가족 부양의 의무를 떠안았던 기존의 가부장적 사회계약에 남녀 어느 쪽도 더 이상 납득할 수 없게 된 현실 변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남녀 간의 인구 불균형이나 경제 불평등보다, 저자가 인터넷 혐오 발언의 주요 원인으로 강조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또래문화의 결핍과 또래집단 간의 단절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저 아이가 나를 때렸으니 나도 저 아이를 때려야겠다”)라는 인과응보의 정의다. 그런 아이들이 또래집단에서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고 결국 화해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즉 아동기의 앙갚음의 논리를 포기하고 황금률(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고,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도 하라)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줄곧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에 시달린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데 필수적인, 또래집단 간의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소할 아이들만의 사회적 공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렇게 자란 젊은이들에게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현실에 결핍된 또래문화의 거의 유일한 대체재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온라인상의 또래집단이 대규모화될수록 그들 간의 단절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네 상의 젠더 혐오 발언은 이제까지의 남녀 간의 수직적(가부장적) 관계로 인한 갈등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수평적 또래집단 간의 갈등에 가깝다. 유아기에서 청소년기 사이에 해소했어야 할 그 갈등을 자율적으로 풀어낸 경험이 부족하기에, 인간관계의 문제를 무차별적인 혐오로 분출하는 부정적 ‘뒷담화’만이 번성하게 된 것이다. 이때 멀쩡한 성인도 자기도 모르는 새 아동기로 퇴행하고 만다. 소위 ‘미러링’이란 아동기의 인과응보의 정의, 앙갚음의 논리의 다른 이름이다. 자꾸만 아동기로 강박적으로 퇴행하는, 인터넷에 대규모로 존재하는 젊은 남녀들을 어떻게 현실의 교류 공간으로 불러낼 것인가, 그들 사이에 어떻게 긍정적 또래압력이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를 이제라도 고민해야 한다.
혐오 발언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장치가 시급하다
일베와 메갈리아에서 양산되는 인터넷 혐오 발언을 ‘서로를 존중하자’거나 ‘인권의식을 고취하자’라는 식의 계몽주의적 당위론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혐오 발언에 탐닉하는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이나 인권규범을 몰라서 그런 짓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 그럼에도 나는 이런 짓을 계속할 거야”라는 냉소주의가 이들의 기본 태도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메갈리아가 내세우는 미러링의 논리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미러링은 메갈리아와 같은 ‘난반사’의 미러링이 아니라 ‘정반사’의 미러링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일베 보도로 일반인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듯, 언론과 학계에서 인터넷 혐오 발언의 실태를 구체적인 수치와 키워드를 통해 대중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주기만 해도 문제의 커뮤니티에 대한 그릇된 환상과 쓸데없는 감정싸움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다. 이 책 역시 양두구육의 메갈리아의 실체를 대중 앞에 노출시키려는 이러한 ‘햇볕 비추기’의 일환이다.
둘째, 인터넷 혐오 발언에서도 네트워크 사회에서 통용되는 ‘8 : 2의 법칙’은 유효하다. 즉 소수 혐오 발언자가 다수의 혐오 글을 올린다. 사안 별로 혐오 발언을 가장 적극적으로 게시하는 소수 악플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과 체계적 관리를 고려해볼 만하다.
셋째, 인터넷 공간에서 행해지는 혐오 발언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환경설계가 필요하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SNS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혐오 발언의 현황을 주기적으로 노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현재 혐오 발언의 주요 키워드가 무엇인지, 각 발언이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지는지, 주로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길거리의 미세먼지 농도 전광판처럼, 인터넷 공간의 주요 결절점에 사회적 전광판을 설치하여 정량화된 ‘혐오지수’를 게시하자는 흥미로운 제안이다.
덧붙여, 포털 뉴스기사 댓글창 등에 특정 커뮤니티가 몰려와 화력을 과시하며 여론을 조작할 때, 바이러스를 감지한 백신 프로그램이 작동하듯 자동으로 경고등이 뜨면서 최근 급증한 유입 경로를 표시해준다거나, 기사 댓글에 가장 많이 도배를 한 사람들의 아이디를 공개하는 방법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요컨대, 인터넷 상의 혐오 발언을 하나의 ‘오염물질’처럼 간주하여 사회 전체가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개?돼지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이러한 환경을 내버려둔 채 이상적 시민사회와 공론장 규범만을 되뇌는 담론은 공허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임시처방일 뿐이며, 근본 원인인 남녀간·세대간의 사회경제적 불안정과 불평등의 해소, 또래집단 간의 문화적 결핍과 단절을 치유할 생활세계의 설계를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박가분
1980년대 후반생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집안이 만난 동서화합의 가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서울 모처에 있는 대학의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다. 학생자치 인문사회과학 도서관 ‘생활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약관의 나이에 2006년부터 시작했던 네이버 블로그 ‘붉은서재’에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인문/철학 서적에 대한 서평과 이런저런 개인적인 썰을 올리며 ‘청년논객’이라는 허명(虛名)을 얻었으며 2010년 블로그의 포스팅들을 묶어서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후 마이클 샌댈 열풍에 대한 비판적 논평인 《무엇이 정의인가》(2011)의 공저자로 참여.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한겨레의 ‘2030 잠금해제’ 칼럼의 필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환멸을 느끼다가 결국 개인적인 진로 모색과 취미생활(덕질)에 매진하고 있던 중 세간에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베’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일게이들의 사상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번 책에서는 문체를 바꾸느라 머리털이 조금 빠졌지만, 일베는 그렇다 치고 일베 신드롬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고 한다. 자주 눈팅하는 사이트는 루리웹 유머 게시판이고 반 다크 홈과 마이 리틀 포니를 좋아한다. 좌우명은 ‘딥 다크 판타지’와 ‘프렌드십 이즈 매직’이다. 일베에 전하고 싶은 말로는 ‘일게이들아 이 정도면 ㅍㅌㅊ?’라고 한다.
▣ 주요 목차
서문_ 메갈리아 신드롬, 어떻게 볼 것인가
1부.메갈리아 신화를 넘어서
1장_다르면서도 비슷한 일베와 메갈리아
일베의 부침 | 메갈리아의 건국신화 | 메갈리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 메르스 신화는 없다 | 서로를 거울에 비추는 일베와 메갈리아
2장_사이버폭력과 메갈리아의 사건사고
묻지 마 폭력과 이유를 갖다붙인 폭력 | 사례 연구: 인터넷 마녀사냥 | 메갈리아/워마드의 사건사고
2부. 혐오의 시대와 돌팔이 의사
3장_사람들은 왜 인터넷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까
위기에 처한 인터넷 공론장 | 인터넷과 환경권력 | 전쟁터로 변해가는 인터넷 | 메갈리아에 대한 슬픈 짝사랑
4장_인권 담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남녀관계가 자신에게 불공정거래라 생각하는 젊은이들 | 또래문화의 단절과 뒷담화의 공동체 |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죄책감을 강요한다
5장_충격요법은 효과가 없다
충격요법을 애용한 돌팔이 의사들 | 왜 언론은 강남역 살인사건 때 통계를 소홀히 보았을까 | 공감 능력을 도구화하는 세상
6장_혐오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메갈리아/워마드를 둘러싸고 인터넷에서 대논쟁이 일다 | 진보진영 일부가 메갈리아를 옹호하다 | 냉소주의자에게는 약도 없다 | 혐오 발언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 장치를 마련하자 | 더 나은 대안은 현명한 독자들의 몫
최근 메갈리아/워마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작년 여름 인터넷에 갑자기 등장한 메갈리아는 각종 논란을 일으키며,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인터넷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대학교 화장실에 사이트 홍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소극적 운동으로 시작했으나, 이내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시위를 주도하며 물의를 빚었고, 남자어린이를 성추행하고 싶다는 보육교사 출신 회원의 발언, 커피 심부름시키는 남자 상사에게 부동액을 타먹였다는 발언, 윤봉길·안중근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비하 짤방 등이 차례로 유출되면서 큰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사태는 올 여름 넥슨의 성우 교체 사건으로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인증한 성우에 대해 게이머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넥슨은 성우를 교체했고, 메갈리아는 이를 부당해고로 규정하며 넥슨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이에 진보 정당과 언론, 유명 논객과 페미니스트, 웹툰 작가들이 메갈리아를 지지하며 가세하자, 사태는 이들 대 일반 네티즌(과 게이머와 독자) 간의 온·오프라인 논쟁으로 비화했다.
메갈리아/워마드에 반대하는 측은 그들을 남성혐오를 조장하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배척하는 반면,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측은 그들의 자극적인 발언이 어디까지나 그동안 인터넷에 만연했던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일 뿐이라고 변호한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인 메갈리아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가? 메갈리아가 여성혐오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미러링을 할 뿐이라는 주장은 과연 진실인가? 이 책은 이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일베의 사상》으로 한국 인터넷 지형도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분석해 왔던 저자 박가분은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는 ‘메갈리아 신드롬’을 분석한다. 메갈리아/워마드의 출현 배경과 실태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내세우는 ‘미러링’이라는 명분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또한 현재 인터넷에 만연한 젠더 혐오의 진정한 원인을 탐구하고, 건전한 인터넷 공론장의 회복 방안을 모색한다.
메갈리아의 거짓 신화와 출생의 비밀
메갈리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먼저 그들의 공식 건국신화를 들어보자. 태초에 여성혐오가 있었고, 이로 인해 많은 여성이 인터넷 공간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가 시작되던 2015년 5월 30일, 홍콩에 간 한국 여성들이 메르스 의심환자로 진단받았음에도 격리를 거부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는 이들을 비하하는 악플로 넘쳐났다. 그러나 이것이 와전된 사실임이 밝혀지자, 성난 여성 유저들은 메르스갤러리로 몰려가 그동안의 여성혐오 발언을 남성을 대상으로 미러링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운영자가 게시글들을 삭제하기 시작했고, 이에 여성 유저들은 그간의 자료를 아카이빙할 독립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다.
이렇게 탄생했다고 알려진 메갈리아를 대다수의 진보언론과 여성단체는 이제까지 억압받던 소수자·약자·피해자의 정당한 대항이라는 프레임에서, ‘여성혐오 발언에 미러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커뮤니티’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인터넷 상의 대중운동 사이트’라며 동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들의 오판은 무엇보다 메갈리아가 내세우는 건국신화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추적하여 재구성한 메갈리아의 출현 과정은 사뭇 다르다. 골자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메갈리아의 모태는 디시인사이드의 대표적 여초 사이트인 남자연예인갤러리(이하 남연갤)다. 이들은 2014년부터 ‘여자 일베’라고 불릴 정도로 일베 용어를 거부감 없이 사용하며 각종 혐오·비하 발언을 즐겼다. 하루 종일 남자아이돌에 대한 루머와 비방을 만들어내며 놀던 이들에게 ‘외모지상주의’와 ‘성적 대상화’는 일상적 대화 코드였다. 자기가 동경하는 연예인에 대한 숭배는 마음에 들지 않는 연예인, 나아가 현실의 비루하고 못생긴 일반인 남성에 대한 혐오로 옮아가기 일쑤였다.
남연갤의 본격적인 남성혐오 발언은 (메갈리아의 주장과 달리) 메르스갤러리 점령 사건 이전, 아니 메르스갤러리가 생성되기도 전인 2015년 5월 26일의 이른바 ‘강된장남 사건’ 때부터 이미 유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5월 29일 오전, 최초의 메르스 감염자가 카타르에서 귀국한 남성이라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남성혐오 발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그날 오후 메르스갤러리가 만들어졌을 때, 최초로 올라온 혐오 발언 역시 (다시금 메갈리아의 주장과 달리) 여성혐오가 아닌 남성혐오 글이었다. 실제로 남연갤에 “라며니(남연갤 유저)들아 메르스갤 가서 김치남 까자 전염병 시발점은 68 할애비”라는 선동 글이 올라온 직후 메르스갤러리는 남성혐오 발언으로 도배되었다.
누가 미러링을 갖다 붙였나?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연예인이 있으면 다른 갤러리로 원정을 가서 분탕질을 치고 어그로를 끄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던 남연갤 유저들에게 이러한 ‘남혐 물타기(여론몰이)’로 메르스갤러리를 점령한 사건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홍콩에서 격리를 거부한 여성들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메르스갤러리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있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누가, 무슨 의도로 두 사건의 인과를 도치시킨 후 ‘미러링’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기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때마침 페이스북에 개설된 ‘메갈리아’(현재는 메갈리아4) 페이지는 메르스갤러리의 남성혐오 발언을 소개하며 ‘여기에는 이러이러한 미러링의 의미가 있다’는 점잖은(?) 해설을 붙이며 메르스갤러리의 언행을 사상적으로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메르스갤러리가 남성혐오라는 공격충동을 발산하는 이드였다면, 메갈리아 페이지는 이를 사후 정당화하는 자아·초자아였던 셈이다. ‘남성혐오가 아닌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다(일명 여혐혐)’라는 식의 사후 합리화는 SNS와 언론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상당수 언론은 실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그 논리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하지만 정작 메르스갤러리 점령을 주도한 남연갤 유저들은 이러한 사상적 정당화에 대해 “미러링은 개뿔”이라며 냉소하고 있다. 애초에 자신들이 미러링을 의식하지 않은 채 그저 재밌어서 일베 말투와 혐오 발언을 즐겼고, 메르스갤러리의 점령 목적도 여혐 공론화 따위에 있지 않았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한 커뮤니티 유저들의 흔한 여론몰이에서 시작된 작은 사건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커졌을까? (저자는 일베와 메갈리아 모두를 병명으로 특정할 수는 없지만 모종의 정신병적 증후라는 의미에서 ‘신드롬’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범죄심리학에서 말하는 ‘깨진 유리창 이론’으로 일정 정도 설명할 수 있다. 남연갤이 메르스갤러리를 점령하고 남성혐오 발언을 쏟아내자 ‘여성시대’ 같은 여초 커뮤니티들에서의 유입이 활발해졌다. 이들에게 이곳은 평소 쌓였던 남혐 정서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여혐의 온상인 일베의 말투까지 그대로 흉내 내며 신기해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쓰레기가 놓여 있으면 평소 규범을 잘 지키던 시민도 ‘이곳은 쓰레기를 버려도 괜찮은 곳’이라고 스스로 납득해버리고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일탈을 방치한 결과, 그것이 잘못된 신호를 주어 결국 이처럼 커다란 사회적 논란을 낳기에 이른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가
메갈리아가 출현한 직후 여성주의와 진보 진영은 일제히 이들을 ‘대안적-하위 공론장’의 출현,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탄생’이라며 환영했다. 메갈리아의 실상을 아는 네티즌들에게는 무척 경악스러운 평가지만, 이는 거꾸로 진보적 지식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몰이해를 시사해준다.
많은 연구자들이 인터넷을 특유의 개방성과 공개성 때문에 현실의 공론장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공론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고(이해 가능성),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진리성), 같은 도덕규범을 공유해야 하고(정당성), 무엇보다 그 표현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며 절충점을 찾아가려는 의욕을 보여야 한다(진실성). 이것은 면대면面對面의 수평적 관계, 즉 친구나 동료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상당수 인터넷 커뮤니티는 이러한 조건들에 위배된다. 악의적인 어그로와 패드립이 판치는 가운데 상대의 진심을 믿고 벌이는 토론이란 거의 불가능하다(진실성). 또한 게시글에 대한 ‘조작’ 시비가 끊이지 않으며, 사실관계를 왜곡해도 마땅한 검증 수단이 없다(진리성). 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은어와 말투, 관행, 친목질이 다반사이며(이해 가능성), 메갈리아와 일베처럼 회원들의 혐오 발언을 조장해 사회규범을 일부러 조롱하기까지 한다(정당성).
인터넷 공간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벌이는 공론장 담론은 현실 앞에 무력할 뿐이다. 반사회적 혐오 커뮤니티에 몰입하는 이들을 찾아가 속내를 인터뷰한다 해도 소득은 거의 없다. 마이크를 들이대는 순간 그들은 평소 인터넷에서 취하던 방약무인한 태도와는 달리, 현실의 차별이 싫어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불쾌한 시선과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들이 싫어서라는 이성적 답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의식의 합리화, 자기정당화의 필터링을 거쳐 내놓는 이러한 대답은 진정한 이유가 아니다. 장소가 사람을 만든다. 이제부터라도 질문의 초점을 현실과 인터넷 공간의 간극을 초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가에 맞춰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불필요한 낭만화(메갈리아)와 악마화(일베) 사이에서 동요해왔다.
왜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혐오 발언에 탐닉하는가
그렇다면 젠더 혐오가 인터넷 상에 이토록 만연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성혐오의 원인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 성비 불균형이다. 산아제한과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으로 여아 낙태가 유행하면서 지금의 20대에 상당한 성비 불균형이 누적돼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1986~1995년생의 평균 성비 113.2). 이들 ‘잉여 남성’ 인구가 결혼과 연애 시장에서 여성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폄하함으로써 자신의 상대적 가치를 확보하려는 ‘절망적인 가격 흥정 전략’을 펼치는 것이 바로 여성혐오 발언이 만연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못 마실 우물에 독을 타는 심보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상의 여성혐오 발언에 공감한다는 10~30대 남성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그렇다면 인구학적으로 결혼의 가망이 보이지 않는 10~20퍼센트의 결혼 적령기 미혼 남성이 여성을 만날 가망이 있는 나머지 30~40퍼센트의 남성을 인터넷을 매개로 여성혐오 측으로 끌어들였다고 결론 내려야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지나친 억측일 것이다.
이보다는 결혼과 연애가 남녀 모두에게 ‘불공정거래’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다.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부담해야 하는 데이트 비용과 결혼 비용이 과도하다고 느끼며, 급기야 결혼을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한편 더 일찍부터 인터넷 상에서 결혼 포기 의사를 밝혀온 다수의 젊은 여성들은 결혼으로 인한 가사노동의 전가와 경력 단절에 의한 임금 격차가 결혼으로 얻는 것보다 더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결혼과 연애가 서로에게 불공정거래라는 인식의 밑바탕에는,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하고 남성이 가족 부양의 의무를 떠안았던 기존의 가부장적 사회계약에 남녀 어느 쪽도 더 이상 납득할 수 없게 된 현실 변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남녀 간의 인구 불균형이나 경제 불평등보다, 저자가 인터넷 혐오 발언의 주요 원인으로 강조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또래문화의 결핍과 또래집단 간의 단절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저 아이가 나를 때렸으니 나도 저 아이를 때려야겠다”)라는 인과응보의 정의다. 그런 아이들이 또래집단에서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고 결국 화해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즉 아동기의 앙갚음의 논리를 포기하고 황금률(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고,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도 하라)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줄곧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에 시달린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데 필수적인, 또래집단 간의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소할 아이들만의 사회적 공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렇게 자란 젊은이들에게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현실에 결핍된 또래문화의 거의 유일한 대체재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온라인상의 또래집단이 대규모화될수록 그들 간의 단절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네 상의 젠더 혐오 발언은 이제까지의 남녀 간의 수직적(가부장적) 관계로 인한 갈등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수평적 또래집단 간의 갈등에 가깝다. 유아기에서 청소년기 사이에 해소했어야 할 그 갈등을 자율적으로 풀어낸 경험이 부족하기에, 인간관계의 문제를 무차별적인 혐오로 분출하는 부정적 ‘뒷담화’만이 번성하게 된 것이다. 이때 멀쩡한 성인도 자기도 모르는 새 아동기로 퇴행하고 만다. 소위 ‘미러링’이란 아동기의 인과응보의 정의, 앙갚음의 논리의 다른 이름이다. 자꾸만 아동기로 강박적으로 퇴행하는, 인터넷에 대규모로 존재하는 젊은 남녀들을 어떻게 현실의 교류 공간으로 불러낼 것인가, 그들 사이에 어떻게 긍정적 또래압력이 작동하도록 할 것인가를 이제라도 고민해야 한다.
혐오 발언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장치가 시급하다
일베와 메갈리아에서 양산되는 인터넷 혐오 발언을 ‘서로를 존중하자’거나 ‘인권의식을 고취하자’라는 식의 계몽주의적 당위론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인터넷에서 혐오 발언에 탐닉하는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이나 인권규범을 몰라서 그런 짓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 그럼에도 나는 이런 짓을 계속할 거야”라는 냉소주의가 이들의 기본 태도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메갈리아가 내세우는 미러링의 논리를 역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의 미러링은 메갈리아와 같은 ‘난반사’의 미러링이 아니라 ‘정반사’의 미러링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일베 보도로 일반인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듯, 언론과 학계에서 인터넷 혐오 발언의 실태를 구체적인 수치와 키워드를 통해 대중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주기만 해도 문제의 커뮤니티에 대한 그릇된 환상과 쓸데없는 감정싸움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다. 이 책 역시 양두구육의 메갈리아의 실체를 대중 앞에 노출시키려는 이러한 ‘햇볕 비추기’의 일환이다.
둘째, 인터넷 혐오 발언에서도 네트워크 사회에서 통용되는 ‘8 : 2의 법칙’은 유효하다. 즉 소수 혐오 발언자가 다수의 혐오 글을 올린다. 사안 별로 혐오 발언을 가장 적극적으로 게시하는 소수 악플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과 체계적 관리를 고려해볼 만하다.
셋째, 인터넷 공간에서 행해지는 혐오 발언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환경설계가 필요하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SNS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혐오 발언의 현황을 주기적으로 노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현재 혐오 발언의 주요 키워드가 무엇인지, 각 발언이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지는지, 주로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길거리의 미세먼지 농도 전광판처럼, 인터넷 공간의 주요 결절점에 사회적 전광판을 설치하여 정량화된 ‘혐오지수’를 게시하자는 흥미로운 제안이다.
덧붙여, 포털 뉴스기사 댓글창 등에 특정 커뮤니티가 몰려와 화력을 과시하며 여론을 조작할 때, 바이러스를 감지한 백신 프로그램이 작동하듯 자동으로 경고등이 뜨면서 최근 급증한 유입 경로를 표시해준다거나, 기사 댓글에 가장 많이 도배를 한 사람들의 아이디를 공개하는 방법 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요컨대, 인터넷 상의 혐오 발언을 하나의 ‘오염물질’처럼 간주하여 사회 전체가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개?돼지처럼 행동하게 만드는 이러한 환경을 내버려둔 채 이상적 시민사회와 공론장 규범만을 되뇌는 담론은 공허할 뿐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임시처방일 뿐이며, 근본 원인인 남녀간·세대간의 사회경제적 불안정과 불평등의 해소, 또래집단 간의 문화적 결핍과 단절을 치유할 생활세계의 설계를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박가분
1980년대 후반생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집안이 만난 동서화합의 가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서울 모처에 있는 대학의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다. 학생자치 인문사회과학 도서관 ‘생활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약관의 나이에 2006년부터 시작했던 네이버 블로그 ‘붉은서재’에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인문/철학 서적에 대한 서평과 이런저런 개인적인 썰을 올리며 ‘청년논객’이라는 허명(虛名)을 얻었으며 2010년 블로그의 포스팅들을 묶어서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후 마이클 샌댈 열풍에 대한 비판적 논평인 《무엇이 정의인가》(2011)의 공저자로 참여. 2012년과 2013년 사이에 한겨레의 ‘2030 잠금해제’ 칼럼의 필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환멸을 느끼다가 결국 개인적인 진로 모색과 취미생활(덕질)에 매진하고 있던 중 세간에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베’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일게이들의 사상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번 책에서는 문체를 바꾸느라 머리털이 조금 빠졌지만, 일베는 그렇다 치고 일베 신드롬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고 한다. 자주 눈팅하는 사이트는 루리웹 유머 게시판이고 반 다크 홈과 마이 리틀 포니를 좋아한다. 좌우명은 ‘딥 다크 판타지’와 ‘프렌드십 이즈 매직’이다. 일베에 전하고 싶은 말로는 ‘일게이들아 이 정도면 ㅍㅌㅊ?’라고 한다.
▣ 주요 목차
서문_ 메갈리아 신드롬, 어떻게 볼 것인가
1부.메갈리아 신화를 넘어서
1장_다르면서도 비슷한 일베와 메갈리아
일베의 부침 | 메갈리아의 건국신화 | 메갈리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 메르스 신화는 없다 | 서로를 거울에 비추는 일베와 메갈리아
2장_사이버폭력과 메갈리아의 사건사고
묻지 마 폭력과 이유를 갖다붙인 폭력 | 사례 연구: 인터넷 마녀사냥 | 메갈리아/워마드의 사건사고
2부. 혐오의 시대와 돌팔이 의사
3장_사람들은 왜 인터넷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할까
위기에 처한 인터넷 공론장 | 인터넷과 환경권력 | 전쟁터로 변해가는 인터넷 | 메갈리아에 대한 슬픈 짝사랑
4장_인권 담론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남녀관계가 자신에게 불공정거래라 생각하는 젊은이들 | 또래문화의 단절과 뒷담화의 공동체 |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죄책감을 강요한다
5장_충격요법은 효과가 없다
충격요법을 애용한 돌팔이 의사들 | 왜 언론은 강남역 살인사건 때 통계를 소홀히 보았을까 | 공감 능력을 도구화하는 세상
6장_혐오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메갈리아/워마드를 둘러싸고 인터넷에서 대논쟁이 일다 | 진보진영 일부가 메갈리아를 옹호하다 | 냉소주의자에게는 약도 없다 | 혐오 발언에 대한 모니터링과 규제 장치를 마련하자 | 더 나은 대안은 현명한 독자들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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