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길 아래 도시가 있다”
뉴욕의 언더월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탐사록
고대에는 강압에 의해 지하에 살아야 했다. 로마의 노예들은 평생 광산에서 일하다 죽었고, 중세에 타타르 족이 침략했을 때 크림 반도 사람들은 수직으로 입구가 나 있는 구덩이에 숨어 지냈다. 19세기는 물론 20세기까지 지하 거주지에 빈곤한 노동자들이 산 경우도 있었다. 잉글랜드의 더비셔 벅스턴에서는 쥐꼬리만큼 돈을 받으며 노예 같은 취급을 받았던 석회 노동자들이 폐석 더미에 굴을 파고 살았다. 이런 인간 이하의 조건을 가진 지하 거주지는 산업혁명 이전의 역사 기록에만 등장할까? 아니다. 지금은 대도시 아래의 터널과 동굴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 지하 거주지는 여전히 존재하며, 심지어 번성하고 있다. 그중 화강암 암반 위에 수많은 공동과 굴이 벌집처럼 촘촘하게 연결되고 교차하는 개미탑 구조를 이루고 있는 뉴욕은, 지하철 노선이 총길이 1200킬로미터에 이르고 터널의 깊이가 지하 18층에 달하는 구간이 있는 등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지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지하 도시에 ‘두더지 인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제니퍼 토스는 199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일하는 동안 뉴욕의 지하 세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터널 노숙자들을 취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에 출간한 『두더지 인간들(The Mole People)』은 노숙자를 짐승에 비유하는 악의에 찬 소문의 근원을 밝히고, 노숙자들의 관점에서 터널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뉴욕 지하 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토스는 극화, 암시, 과장 등 문학적 기법의 사용과 부정확한 지형 정보,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들(노숙자들)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 점 등의 이유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계급구조에 따라 계층화된 미국의 사회적 지형과 모순을 성공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얻었다.
토스는 지하 노숙자들의 세계를 서술하면서 터널 생활의 현실뿐 아니라 그들이 이루고 사는 공동체, 20~50여 개 공동체 간의 의사소통 네트워크, 정부 기관 및 자선 프로그램, 비영리 단체와의 대립에서 대해서도 서술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일으키는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터널에서 만난 사람 한 명 한 명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지하 세계 노숙인들에 관한 진실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선다.
『두더지 인간들』은 두더지처럼 퇴화해버린 반(半)인간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과 똑같은 존엄성을 지닌 존재임을 말하는 터널 노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우리 시대 비극의 단면을 포착해낸 탐사 문학의 고전으로, 현재까지도 뉴욕의 지하 공간을 다룬 대부분의 책과 기사, 그리고 영상물이 참고로 할 만큼 터널 노숙자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 꼽힌다.
자본주의 문명의 하부, 지하 세계에서 안식을 찾은 사람들
『두더지 인간들』은 지상의 삶에서 쫓겨나 생존을 위해 지하 터널로 숨어든 뉴욕에서 가장 빈곤한 계급, 자본주의적 삶에서 철저히 소외된 노숙자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조차 기피하는 지하 노숙인은 버림받은 존재들의 세계에서도 철저히 버림받은 존재다. 그들은 경기 침체, 주택 부족, 불충분한 복지 예산 때문에 자본주의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일 뿐 아니라 안전을 위해, 간섭 없이 마약과 알코올에 취하기 위해, 또는 자식을 위탁가정에 보내지 않기 위해, 혹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자발적으로 지하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토스가 터널 노숙자를 취재한 1990년대 초에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뉴욕의 버려진 철도 터널이나 지하철 구간과 연결된 공간에 살았고, 1991년 당시에는 그랜드센트럴 역과 펜실베이니아 역에서만 6,000여 명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토스에 따르면, 대부분의 ‘두더지 인간’ 이야기는 그랜드센트럴 역에서 가장 깊은 곳인 지하 7층과 관련된 것들이다. 많은 노숙인이 처음에 승강장 아래에 정착했다가, 나중에 더 깊은 터널로 옮겨가는데, 깊이 내려갈수록 더욱 안정적이고 응집력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며, 구성원이 지상으로 나가는 빈도가 드물고 일상생활 대부분이 지하에서 이루어진다. 그중에는 일명 ‘콘도’와 ‘버마의 길’, ‘라이커 섬’처럼 한곳에 최대 200명이 사는 공동체도 있다.
토스는 노숙인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는 지하 생활자들을 묘사하기에 다소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홈리스 상태(homelessness)는 “개인을 사회구조의 네트워크에 속하게 하는 유대의 끈이 없거나 약해서 사회로부터 분리된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와 달리, 대부분의 지하 생활자들은 지상의 사회적 구조와는 분리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지하에서 대안적인 구조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즉 지하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집’은 없을지언정 지하는 그들에게 휴식과 소속의 공간으로서 ‘집’을 제공한다. 따라서 터널 노숙자들은 홈리스보다 하우스리스로 불리는 것을 선호하며 그들에게는 “따뜻한 아파트나 깨끗한 지상에서의 삶보다 비록 지하에 살더라도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지상의 세계에 붙들어 맬 유대의 끈이 없는 만큼 터널 노숙인들에게 지하의 ‘가족’ 공동체는 종종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강한 결속력을 가진다. 가출 청소년들의 경우, 더러 가난한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스스로 가족을 떠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탁가정 출신이거나 보육원 출신이다. 리버사이드 파크 북쪽 끝의 한 청소년 공동체의 맏형 노릇을 하는 카를로스는 아파트를 빌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적도 있지만,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이 모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다른 예로, 한때 CBS 보조 편집자, 모델로 활동을 하다가 마약과 실연으로 터널에 들어오게 된 버나드 아이작은 노숙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자들을 쫓아낸 후 ‘터널의 제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공병과 깡통을 팔아서 번 돈으로 공동체를 위해 직접 조리를 하고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터널 공동체에는 아이작처럼 노숙인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이 뒤집어진 세계에서 지옥은 하수구 위쪽에 있어”
지상의 가치를 전복하는 지하 세계의 생존법
토스가 그리는 지하 터널은 자본주의 체제의 부적응자들을 흡수하는 공간이자 지상의 가치에 도전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터널 노숙자 중에는 아주 깊은 곳으로 들어가 공동체에 소속되어 몇 년째 지상으로 나가는 일 없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종종 지상 세계에 대한 강한 환멸을 보이며,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랜드센트럴 역 지하에 정착한 200명으로 구성된 ‘J. C.의 공동체’는 마약과 술을 금지시키고 구성원 각자는 시장(mayor)부터, 간호사, 보급책 등 조직 안에서 분명한 자기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아이들이 영구적으로 사는 공동체로 이들에게 수학과 영어, 사회과학은 물론 윤리와 철학까지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 또 물이 새는 배관을 이용한 한증실과 낡은 배관을 개조한 체력단련실, 증기관을 이용한 조리실, 세탁실도 갖추고 있는 어엿한 공동체다. 이들은 자기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J. C.의 공동체’의 시장인 알리 엠이나 ‘친구들의 도시’의 시장인 샘은 스스로를 “지상의 사람들보다 나으며” “대안적 삶을 택한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 자신들의 공동체를 계급과 인종 문제가 없는 ‘인간교’ 혹은 돌봄과 보호, 소통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도덕’을 따르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유토피아적인 사회’에서 바라본 지상의 사회는 인간성이 파괴되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세계일 뿐이다.
『두더지 인간들』에서 지하 공간은 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이 해체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터널에서는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가, 소유보다는 점유가 우선시되는데, 노숙자들은 최소한의 노동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생필품을 수집하고 소비한다. 그들은 소방용 살수장치의 물을 이용해 샤워를 하며, 지하의 대형 증기관을 이용해 음식을 데우고, 전기를 훔쳐와 텔레비전과 음향시설을 즐기기도 한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토스는 터널 노숙자들이 자본주의의 심부인 맨해튼 바로 아래쪽에서 자본주의의 규칙에 도전하고 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을 해체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하지만 토스는 이런 공동체의 삶이 “종종 지상의 악습을 답습하며 때로는 더욱 억압적인 형태를 띠기도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친구들의 도시’의 시장인 샘은 40대 초반의 백인 남성으로 한때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연장자들도 다섯 살짜리 아이처럼 취급하며, 종종 마약에 취해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아무도 그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누구도 그의 허락없이 공동체를 떠나지 못하게 한다. 여자 노숙인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잃게 될까 봐 쉼터에 가는 것을 꺼리지만 터널 생활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 노숙인과 짝을 이루고 살면서 모든 주도권을 포기하는 자기모순을 보인다.
지하 공동체의 삶은 결코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토스가 서문과 후기에서 밝혔듯이 그가 만났던 많은 사람이 실종되거나 사망했고 지상으로 돌아간 친구는 거의 없었다. 터널 사람들은 토스에게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보살필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술이나 마약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희망과 기회를 어떻게 날려버릴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토스가 터널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물적 본성으로만 살아가는 반(半)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병들어 있는 지상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는 약속의 땅의 사람들도 아니었던 것이다.
추천사
“지하 세계의 단순한 물리적 지도가 아닌 사회, 문화적 지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책.” ―황은주, 「해설」에서
“토스는 신뢰할 만한 지하 세계의 안내자다. 세상에나! 토스와 함께 담을 넘고 맨홀로 들어가 녹슨 계단을 내려가서 널빤지를 건너고 시멘트 벽의 틈새를 통과하여, 우리는 한 경찰관이 ‘길 아래의 도시’라고 표현한 곳에 이른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토스는 독자를 이 밑바닥 세상으로 끌어당긴다.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 ―《라이브러리 저널》
“높은 이상과 아버지가 준 호신용 스프레이를 가슴에 품고 열린 마음, 열린 귀로 지하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토스가 이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를 담은 책과 함께 돌아왔다. 정직한 책이다. 무엇보다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닌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책이다.” ―짐 드와이어, 《워싱턴포스트》
“토스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늙은 수부’처럼 아무도 탐내지 않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녀는 분명 그동안 만난 얼굴들과 사연과 지하 세계의 풍경에 쫓기고 시달리는 저주받은 증인이다.” ―《뉴욕 옵저버》
▣ 작가 소개
저자 : 제니퍼 토스(Jennifer Toth)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런던, 뉴욕, 세인트루이스에서 역사학, 정치학, 철학을 공부하였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일하는 동안 뉴욕의 지하 세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터널 노숙자들을 취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두더지 인간들(The Mole People)』을 출간하였다.
역자 : 정해영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빌리 엘리어트』, 『리버보이』,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하버드 문학 강의』, 『반자본주의』, 『사랑에 빠진 단테』, 『이 폐허를 응시하라』, 『내 귀에 바벨 피시』, 『세계를 읽다, 프랑스』, 『세계를 읽다, 터키』 등이 있다.
해설 : 황은주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퍼듀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저자의 말
서문
1 집을 찾아서
2 세빌의 이야기
3 맥의 전쟁
4 지하의 사람들
5 지하 공간
6 바워리 스트리트
7 법과의 동거
8 헬스 키친
9 아이들
10 뿌리
11 버나드의 터널
12 터널 예술
13 그래피티
14 가출 청소년들
15 터널 구제활동
16 어둠의 천사
17 역사와 문학, 문화 속의 지하
18 부랑자
19 할렘의 조직 폭력배
20 J. C.의 공동체
21 친구들의 도시
22 여성들
23 자말의 사연
24 블레이드의 양면성
후기
참고문헌
해설
“길 아래 도시가 있다”
뉴욕의 언더월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탐사록
고대에는 강압에 의해 지하에 살아야 했다. 로마의 노예들은 평생 광산에서 일하다 죽었고, 중세에 타타르 족이 침략했을 때 크림 반도 사람들은 수직으로 입구가 나 있는 구덩이에 숨어 지냈다. 19세기는 물론 20세기까지 지하 거주지에 빈곤한 노동자들이 산 경우도 있었다. 잉글랜드의 더비셔 벅스턴에서는 쥐꼬리만큼 돈을 받으며 노예 같은 취급을 받았던 석회 노동자들이 폐석 더미에 굴을 파고 살았다. 이런 인간 이하의 조건을 가진 지하 거주지는 산업혁명 이전의 역사 기록에만 등장할까? 아니다. 지금은 대도시 아래의 터널과 동굴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 지하 거주지는 여전히 존재하며, 심지어 번성하고 있다. 그중 화강암 암반 위에 수많은 공동과 굴이 벌집처럼 촘촘하게 연결되고 교차하는 개미탑 구조를 이루고 있는 뉴욕은, 지하철 노선이 총길이 1200킬로미터에 이르고 터널의 깊이가 지하 18층에 달하는 구간이 있는 등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지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 지하 도시에 ‘두더지 인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제니퍼 토스는 199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일하는 동안 뉴욕의 지하 세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터널 노숙자들을 취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에 출간한 『두더지 인간들(The Mole People)』은 노숙자를 짐승에 비유하는 악의에 찬 소문의 근원을 밝히고, 노숙자들의 관점에서 터널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뉴욕 지하 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토스는 극화, 암시, 과장 등 문학적 기법의 사용과 부정확한 지형 정보,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들(노숙자들)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 점 등의 이유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계급구조에 따라 계층화된 미국의 사회적 지형과 모순을 성공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얻었다.
토스는 지하 노숙자들의 세계를 서술하면서 터널 생활의 현실뿐 아니라 그들이 이루고 사는 공동체, 20~50여 개 공동체 간의 의사소통 네트워크, 정부 기관 및 자선 프로그램, 비영리 단체와의 대립에서 대해서도 서술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일으키는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터널에서 만난 사람 한 명 한 명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지하 세계 노숙인들에 관한 진실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선다.
『두더지 인간들』은 두더지처럼 퇴화해버린 반(半)인간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과 똑같은 존엄성을 지닌 존재임을 말하는 터널 노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우리 시대 비극의 단면을 포착해낸 탐사 문학의 고전으로, 현재까지도 뉴욕의 지하 공간을 다룬 대부분의 책과 기사, 그리고 영상물이 참고로 할 만큼 터널 노숙자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 꼽힌다.
자본주의 문명의 하부, 지하 세계에서 안식을 찾은 사람들
『두더지 인간들』은 지상의 삶에서 쫓겨나 생존을 위해 지하 터널로 숨어든 뉴욕에서 가장 빈곤한 계급, 자본주의적 삶에서 철저히 소외된 노숙자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조차 기피하는 지하 노숙인은 버림받은 존재들의 세계에서도 철저히 버림받은 존재다. 그들은 경기 침체, 주택 부족, 불충분한 복지 예산 때문에 자본주의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일 뿐 아니라 안전을 위해, 간섭 없이 마약과 알코올에 취하기 위해, 또는 자식을 위탁가정에 보내지 않기 위해, 혹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자발적으로 지하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토스가 터널 노숙자를 취재한 1990년대 초에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뉴욕의 버려진 철도 터널이나 지하철 구간과 연결된 공간에 살았고, 1991년 당시에는 그랜드센트럴 역과 펜실베이니아 역에서만 6,000여 명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토스에 따르면, 대부분의 ‘두더지 인간’ 이야기는 그랜드센트럴 역에서 가장 깊은 곳인 지하 7층과 관련된 것들이다. 많은 노숙인이 처음에 승강장 아래에 정착했다가, 나중에 더 깊은 터널로 옮겨가는데, 깊이 내려갈수록 더욱 안정적이고 응집력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며, 구성원이 지상으로 나가는 빈도가 드물고 일상생활 대부분이 지하에서 이루어진다. 그중에는 일명 ‘콘도’와 ‘버마의 길’, ‘라이커 섬’처럼 한곳에 최대 200명이 사는 공동체도 있다.
토스는 노숙인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는 지하 생활자들을 묘사하기에 다소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홈리스 상태(homelessness)는 “개인을 사회구조의 네트워크에 속하게 하는 유대의 끈이 없거나 약해서 사회로부터 분리된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와 달리, 대부분의 지하 생활자들은 지상의 사회적 구조와는 분리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지하에서 대안적인 구조를 유지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즉 지하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집’은 없을지언정 지하는 그들에게 휴식과 소속의 공간으로서 ‘집’을 제공한다. 따라서 터널 노숙자들은 홈리스보다 하우스리스로 불리는 것을 선호하며 그들에게는 “따뜻한 아파트나 깨끗한 지상에서의 삶보다 비록 지하에 살더라도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지상의 세계에 붙들어 맬 유대의 끈이 없는 만큼 터널 노숙인들에게 지하의 ‘가족’ 공동체는 종종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강한 결속력을 가진다. 가출 청소년들의 경우, 더러 가난한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스스로 가족을 떠난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탁가정 출신이거나 보육원 출신이다. 리버사이드 파크 북쪽 끝의 한 청소년 공동체의 맏형 노릇을 하는 카를로스는 아파트를 빌릴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적도 있지만,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이 모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공동체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다른 예로, 한때 CBS 보조 편집자, 모델로 활동을 하다가 마약과 실연으로 터널에 들어오게 된 버나드 아이작은 노숙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자들을 쫓아낸 후 ‘터널의 제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공병과 깡통을 팔아서 번 돈으로 공동체를 위해 직접 조리를 하고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터널 공동체에는 아이작처럼 노숙인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이 뒤집어진 세계에서 지옥은 하수구 위쪽에 있어”
지상의 가치를 전복하는 지하 세계의 생존법
토스가 그리는 지하 터널은 자본주의 체제의 부적응자들을 흡수하는 공간이자 지상의 가치에 도전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터널 노숙자 중에는 아주 깊은 곳으로 들어가 공동체에 소속되어 몇 년째 지상으로 나가는 일 없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종종 지상 세계에 대한 강한 환멸을 보이며,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랜드센트럴 역 지하에 정착한 200명으로 구성된 ‘J. C.의 공동체’는 마약과 술을 금지시키고 구성원 각자는 시장(mayor)부터, 간호사, 보급책 등 조직 안에서 분명한 자기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아이들이 영구적으로 사는 공동체로 이들에게 수학과 영어, 사회과학은 물론 윤리와 철학까지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 또 물이 새는 배관을 이용한 한증실과 낡은 배관을 개조한 체력단련실, 증기관을 이용한 조리실, 세탁실도 갖추고 있는 어엿한 공동체다. 이들은 자기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J. C.의 공동체’의 시장인 알리 엠이나 ‘친구들의 도시’의 시장인 샘은 스스로를 “지상의 사람들보다 나으며” “대안적 삶을 택한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 자신들의 공동체를 계급과 인종 문제가 없는 ‘인간교’ 혹은 돌봄과 보호, 소통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도덕’을 따르는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유토피아적인 사회’에서 바라본 지상의 사회는 인간성이 파괴되고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세계일 뿐이다.
『두더지 인간들』에서 지하 공간은 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이 해체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터널에서는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가, 소유보다는 점유가 우선시되는데, 노숙자들은 최소한의 노동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생필품을 수집하고 소비한다. 그들은 소방용 살수장치의 물을 이용해 샤워를 하며, 지하의 대형 증기관을 이용해 음식을 데우고, 전기를 훔쳐와 텔레비전과 음향시설을 즐기기도 한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토스는 터널 노숙자들이 자본주의의 심부인 맨해튼 바로 아래쪽에서 자본주의의 규칙에 도전하고 자본주의적인 생활양식을 해체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하지만 토스는 이런 공동체의 삶이 “종종 지상의 악습을 답습하며 때로는 더욱 억압적인 형태를 띠기도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친구들의 도시’의 시장인 샘은 40대 초반의 백인 남성으로 한때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연장자들도 다섯 살짜리 아이처럼 취급하며, 종종 마약에 취해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아무도 그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누구도 그의 허락없이 공동체를 떠나지 못하게 한다. 여자 노숙인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잃게 될까 봐 쉼터에 가는 것을 꺼리지만 터널 생활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 노숙인과 짝을 이루고 살면서 모든 주도권을 포기하는 자기모순을 보인다.
지하 공동체의 삶은 결코 유토피아적이지 않다. 토스가 서문과 후기에서 밝혔듯이 그가 만났던 많은 사람이 실종되거나 사망했고 지상으로 돌아간 친구는 거의 없었다. 터널 사람들은 토스에게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보살필 수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술이나 마약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희망과 기회를 어떻게 날려버릴 수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토스가 터널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물적 본성으로만 살아가는 반(半)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병들어 있는 지상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는 약속의 땅의 사람들도 아니었던 것이다.
추천사
“지하 세계의 단순한 물리적 지도가 아닌 사회, 문화적 지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책.” ―황은주, 「해설」에서
“토스는 신뢰할 만한 지하 세계의 안내자다. 세상에나! 토스와 함께 담을 넘고 맨홀로 들어가 녹슨 계단을 내려가서 널빤지를 건너고 시멘트 벽의 틈새를 통과하여, 우리는 한 경찰관이 ‘길 아래의 도시’라고 표현한 곳에 이른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토스는 독자를 이 밑바닥 세상으로 끌어당긴다.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 ―《라이브러리 저널》
“높은 이상과 아버지가 준 호신용 스프레이를 가슴에 품고 열린 마음, 열린 귀로 지하 세계를 누비고 다녔던 토스가 이제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를 담은 책과 함께 돌아왔다. 정직한 책이다. 무엇보다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닌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책이다.” ―짐 드와이어, 《워싱턴포스트》
“토스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늙은 수부’처럼 아무도 탐내지 않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녀는 분명 그동안 만난 얼굴들과 사연과 지하 세계의 풍경에 쫓기고 시달리는 저주받은 증인이다.” ―《뉴욕 옵저버》
▣ 작가 소개
저자 : 제니퍼 토스(Jennifer Toth)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런던, 뉴욕, 세인트루이스에서 역사학, 정치학, 철학을 공부하였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일하는 동안 뉴욕의 지하 세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터널 노숙자들을 취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 『두더지 인간들(The Mole People)』을 출간하였다.
역자 : 정해영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빌리 엘리어트』, 『리버보이』,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하버드 문학 강의』, 『반자본주의』, 『사랑에 빠진 단테』, 『이 폐허를 응시하라』, 『내 귀에 바벨 피시』, 『세계를 읽다, 프랑스』, 『세계를 읽다, 터키』 등이 있다.
해설 : 황은주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퍼듀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저자의 말
서문
1 집을 찾아서
2 세빌의 이야기
3 맥의 전쟁
4 지하의 사람들
5 지하 공간
6 바워리 스트리트
7 법과의 동거
8 헬스 키친
9 아이들
10 뿌리
11 버나드의 터널
12 터널 예술
13 그래피티
14 가출 청소년들
15 터널 구제활동
16 어둠의 천사
17 역사와 문학, 문화 속의 지하
18 부랑자
19 할렘의 조직 폭력배
20 J. C.의 공동체
21 친구들의 도시
22 여성들
23 자말의 사연
24 블레이드의 양면성
후기
참고문헌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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