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까다로웠던 ‘기록’ 과정
‘진짜 역사’를 고민하다
임대식은 역사학자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역사문제연구소의 [역사비평] 편집주간을 지내고 몇 권의 책에 짧은 글을 실은 것 외에는 오직 역사공부에만 몰두했다.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강원도의 움막에서 ‘숨어’ 지냈다.
그런 저자가 박원순을 ‘기록’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물론 박원순은 저자의 관심인물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주로 연구한 저자에게 현대사의 고비마다 모습을 드러낸 박원순은 중요한 공붓거리였다. 하지만 역사학자로서 살아있는 인물을 기록한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박원순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선거기간 동안 그에게 쏟아진 근거 없는 네거티브 공세를 보며 저자는 박원순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막연히 박원순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사실에 근거해 박원순의 삶을 복원하고 공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비난과 거짓 자화자찬은 분열만 일으킨다. ‘진짜 역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 그것도 현실정치인에 대해 책을 쓰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역사학자로 시종하려는 나에게 일탈이고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박원순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박원순이란 한 인간을 사실대로 기록하려 고투한 결과물이라고 감히 자부한다.”(8~10쪽)
2014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간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작업에 들어갔다. 현실정치인으로 데뷔한 2011 서울시장 보궐선거일까지를 기록하기로 하고 1년의 작업시간을 설정해 많은 자료를 검토했다. 박원순이 워낙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모은 자료만 ‘수백 권을 상회할’ 분량이었다.
박원순과의 인터뷰도 착실히 진행했다. ‘시청 직원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었지만 자료와 그의 증언을 비교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뿐만 아니라 박원순 본인도 잊고 지냈던 사실을 다시 기억해내기도 했다. 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인권변호사가 되기까지의 내용이었다. 이 모든 사실은 몇 번의 검토를 거쳐 책에 수록될 수 있었다.
출간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었지만 정치공세를 우려해 결국 출간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예상치 못한 부침을 겪었다. 그래도 진실을 기록하는 값이라 생각하고 의지를 꺾지 않았다.
“사마천은 [사기]를 기록하기 위해 궁형의 수모를 감수했다. 사관은 그 기록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 책은 역사공부의 총화이고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내 본연의 일이라고 여기며 감히 공개하기로 결정했다.”(11~12쪽)
“정치인의 자전적 책들이 대부분 대필이라는 것은 암묵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오로지 저자의 것이고 사실 고증에 충실한 기록이다. 여느 정치인의 자서전처럼 수많은 참모와 보좌관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고 자료 정리를 위해 워크숍을 열지도 않았다. 혹시라도 안팎에서 각종 요구가 쏟아질지 몰라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오류가 있을까 봐 두려워하며 고독으로 박원순의 삶을 기록했다. [박원순이 걷는 길]이 한 정치인의 개인적 이야기를 넘어 훌륭한 역사서인 이유다.
개천에서 난 용
사회의 얽힌 매듭을 풀다
저자가 기록한 박원순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 풍족하지 않은 가정환경 때문에 박원순과 형만이 대학교육을 받았다. 박원순은 재수를 거쳐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학생 일부가 유인물을 뿌리고 잡혀간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몇몇 학생이 잡혀간 친구들을 ‘구출’하자며 논의했는데 평소 얌전히 공부만 하던 박원순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른 친구들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역시 재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한 박원순은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한다. ‘긴급조치 9호’에 반발한 ‘오둘둘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명당한다. 구치소에서 4개월 만에 출소한 박원순은 법원사무관 시험에 응시해 강원도 정선의 등기소장으로 발령받는다. ‘청년 영감’으로 생애 첫 공직생활을 경험한다.
이후 서울대학교 복학기회를 포기하고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한다. 그해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 평생의 멘토인 조영래를 만난다. 이듬해 강난희를 소개받아 결혼하는데 박원순은 첫 만남에서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며 “세상의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결혼 후 시위전력에도 불구하고 검사로 임용된다. 성격상 누군가를 취조하고 벌주는 일이 맞지 않았던 박원순은 “맞지 않는 옷” 검사직을 일 년 만에 그만둔다. 바로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데 오둘둘 시위로 알게 된 선배들과 계속 관계를 가지면서 점차 인권변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민변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김근태 고문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우 조교 성추행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보도지침 사건,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김상원 폭행치사 사건, 노무현 구속사건 등 당시 굵직한 인권변론 사건에 빠지지 않았다. 박원순은 특히 변론서 작성에 뛰어났는데, 대한변협의 [인권보고서] 발간을 주도했고, [국가보안법 연구] 집필을 시작했다.
1990년 조영래가 “이제 좀더 넓은 세상을 살펴보게”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자 박원순은 해외유학길에 나선다. 런던정경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등에서 2년 동안 공부한다.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그의 활동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유학 시절 얻어온 것이다.
귀국한 박원순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참여연대를 조직한다. 곧 ‘상근’ 사무처장이 되면서 “욕망의 열차에서 뛰어내린다.”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민운동에 투신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공적 영역 개혁, 내부고발자 지원, 부패방지법 제정운동, 자본권력 및 국가권력 감시, 복지와 국민권익 증진에 힘썼다. 특히 낙천낙선운동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참여연대가 안정궤도에 오르자 박원순은 아름다운재단을 창립한다.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국 최초의 공익 변호사 그룹인 ‘공감’과 역시 한국 최초의 재활용 운동 단체인 아름다운가게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상과 만해상, 단재상을 받았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가 일정궤도에 오르자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창립한다. 희망제작소는 지역 활성화에 집중했다. 박원순 본인이 직접 각 지역을 돌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외에도 많은 일을 벌였는데 잘 진행되던 일들이 자꾸 엎어졌다. 국정원의 개입 때문이었다. 결국 박원순은 이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곧 국정원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다. 물론 박원순은 승소했다.
이처럼 어지러운 상황이 지나자 주변에서 정치 참여를 권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피하듯 떠난 백두대간 종주에서 결국 정치 참여를 결심하고 만다.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순 없었다. 단지 “한반도의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한 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묵상하고 또 묵상”했을 뿐이다. 운명 같은 결정이었다.
박원순이 걸었던 길
박원순이 걸어갈 길
박원순은 쉬지 않고 걸어왔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열심히 개척했다. 좌충우돌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저자는 박원순의 이러한 삶을 ‘불가사의’라고 표현한다. 서울대학교 복학기회가 있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것, 장래가 보장되는 검사직을 일 년 만에 그만둔 것, 변호사로서 가질 수 있는 명예와 부를 포기하고 시민운동에 투신한 것, 자신이 만든 단체가 커지면 늘 물러나 새로운 단체를 꾸리는 것 등 박원순은 삶의 고비마다 불가사의한 선택을 해왔다.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했다.
“이러한 성과를 내고 널리 지지를 받은 것은 그가 공익을 향한 불굴의 헌신과 함께 ‘동행’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동안 같은 길을 가더라도 남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었다.”(406쪽)
물론 [박원순이 걷는 길]은 박원순의 ‘공적’만을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논란이 될 사안들도 피하지 않았다. 책에는 박원순의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논란, 학력 위조 논란, 병역 논란, 61평 아파트 논란, 심지어 가장 최근 불거진 서울시 인권헌장 논란까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저자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확실한 사료를 들이대며 근거 없는 비난을 일축하고, 또 때로는 박원순의 잘못을 지적한다.
“보충역으로 복무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형이 있는데 ‘독자’ 판정을 받은 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사할린으로 간 작은할아버지 박두책은 해방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마저 불가능했다. ……박원순이 (13세 때) 작은할아버지의 (제사라도 지내주도록) 양손으로 입적되었다.”(103~104쪽)
“그가 만든 ‘공감’의 변호사들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둘러싸고 한창이던 2014년 12월에……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박원순은 함께해온 변호사들에게마저 비판받는 지경에 처했다. ‘공감’의 항의와 비판은 마땅하다. 박원순은 인권 수호자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인이자 갈등조정자로서의 서울시 수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사이의 시험대에 섰다.”(274~276쪽)
이외에도 책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우연한 만남, 이명박 전 대통령 및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인연(악연),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 여러 정치인과의 일화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박원순이 정치 참여를 택하도록 하는데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박원순이 걷는 길]은 박원순의 지난 행적을 최대한 투명하게 기록했다. 역사학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록한 사실이기에 독자는 ‘정치인 박원순’보다 ‘박원순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박원순의 현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가령 외국 유학 직후 ‘동물권’에 관해 논문을 썼다는 사실을 알면 서울시가 왜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고, 희망제작소 시절 지역 탐방에 몰두했음을 알면 서울시가 왜 마을공동체 사업에 집중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박원순 개인의 삶과 한국의 현대사가 부딪히는 지점에서 그가 어떤 선택들을 했는지 살펴본다면 정치인 박원순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디딜지 예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야말로 역사 본연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자서전, 자전적 에세이는 늘 논란거리가 된다. 그러한 글 대부분이 역사를 담기보다는 정치적 이해를 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인에 관한 책일수록 과오를 아우르며 역사적 시각에서 조망해야 한다. [박원순이 걷는 길]은 역사를 담은 책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 작가 소개
저자 : 임대식
1959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마산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사계간지 [역사비평] 편집주간을 지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10여 년 전부터 강원도 홍천에 거주하고 있다. 역사 공부를 좋아한 박원순과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지만 사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다만 역사 공부에서는 동업자였고, 헌책방 순례에서는 경쟁자였다.
▣ 주요 목차
박원순의 운명을 기록하다 -머리말
1 박원순, 서울시장이 되다
2 가난하지만 부족하지 않았던 유년시절
3 평범하지 않은 박원순표 ''KS마크''
4 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결혼
5 엄혹한 시대를 밝힌 인권변론
6 2년간의 외국 유학과 멈추지 않은 글쓰기
7 참여연대 ''상근'' 사무처장
8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9 Think Tank? Think and Do Tank!
10 ''현실정치'' 박원순의 소명
박원순과 함께 걷는 길 - 맺는말
박원순의 길, 박원순의 말
까다로웠던 ‘기록’ 과정
‘진짜 역사’를 고민하다
임대식은 역사학자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역사문제연구소의 [역사비평] 편집주간을 지내고 몇 권의 책에 짧은 글을 실은 것 외에는 오직 역사공부에만 몰두했다.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는 모든 것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강원도의 움막에서 ‘숨어’ 지냈다.
그런 저자가 박원순을 ‘기록’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물론 박원순은 저자의 관심인물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주로 연구한 저자에게 현대사의 고비마다 모습을 드러낸 박원순은 중요한 공붓거리였다. 하지만 역사학자로서 살아있는 인물을 기록한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박원순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선거기간 동안 그에게 쏟아진 근거 없는 네거티브 공세를 보며 저자는 박원순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막연히 박원순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사실에 근거해 박원순의 삶을 복원하고 공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비난과 거짓 자화자찬은 분열만 일으킨다. ‘진짜 역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 그것도 현실정치인에 대해 책을 쓰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역사학자로 시종하려는 나에게 일탈이고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박원순에 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박원순이란 한 인간을 사실대로 기록하려 고투한 결과물이라고 감히 자부한다.”(8~10쪽)
2014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간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작업에 들어갔다. 현실정치인으로 데뷔한 2011 서울시장 보궐선거일까지를 기록하기로 하고 1년의 작업시간을 설정해 많은 자료를 검토했다. 박원순이 워낙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모은 자료만 ‘수백 권을 상회할’ 분량이었다.
박원순과의 인터뷰도 착실히 진행했다. ‘시청 직원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었지만 자료와 그의 증언을 비교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뿐만 아니라 박원순 본인도 잊고 지냈던 사실을 다시 기억해내기도 했다. 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년기와 청년기 그리고 인권변호사가 되기까지의 내용이었다. 이 모든 사실은 몇 번의 검토를 거쳐 책에 수록될 수 있었다.
출간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었지만 정치공세를 우려해 결국 출간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예상치 못한 부침을 겪었다. 그래도 진실을 기록하는 값이라 생각하고 의지를 꺾지 않았다.
“사마천은 [사기]를 기록하기 위해 궁형의 수모를 감수했다. 사관은 그 기록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 책은 역사공부의 총화이고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내 본연의 일이라고 여기며 감히 공개하기로 결정했다.”(11~12쪽)
“정치인의 자전적 책들이 대부분 대필이라는 것은 암묵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오로지 저자의 것이고 사실 고증에 충실한 기록이다. 여느 정치인의 자서전처럼 수많은 참모와 보좌관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고 자료 정리를 위해 워크숍을 열지도 않았다. 혹시라도 안팎에서 각종 요구가 쏟아질지 몰라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오류가 있을까 봐 두려워하며 고독으로 박원순의 삶을 기록했다. [박원순이 걷는 길]이 한 정치인의 개인적 이야기를 넘어 훌륭한 역사서인 이유다.
개천에서 난 용
사회의 얽힌 매듭을 풀다
저자가 기록한 박원순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 풍족하지 않은 가정환경 때문에 박원순과 형만이 대학교육을 받았다. 박원순은 재수를 거쳐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학생 일부가 유인물을 뿌리고 잡혀간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몇몇 학생이 잡혀간 친구들을 ‘구출’하자며 논의했는데 평소 얌전히 공부만 하던 박원순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른 친구들이 의아해할 정도였다.
역시 재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한 박원순은 한 학기도 다니지 못한다. ‘긴급조치 9호’에 반발한 ‘오둘둘 시위’에 참가했다가 제명당한다. 구치소에서 4개월 만에 출소한 박원순은 법원사무관 시험에 응시해 강원도 정선의 등기소장으로 발령받는다. ‘청년 영감’으로 생애 첫 공직생활을 경험한다.
이후 서울대학교 복학기회를 포기하고 단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한다. 그해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에서 평생의 멘토인 조영래를 만난다. 이듬해 강난희를 소개받아 결혼하는데 박원순은 첫 만남에서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며 “세상의 매듭을 푸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결혼 후 시위전력에도 불구하고 검사로 임용된다. 성격상 누군가를 취조하고 벌주는 일이 맞지 않았던 박원순은 “맞지 않는 옷” 검사직을 일 년 만에 그만둔다. 바로 변호사 사무실을 여는데 오둘둘 시위로 알게 된 선배들과 계속 관계를 가지면서 점차 인권변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민변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김근태 고문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우 조교 성추행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보도지침 사건,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김상원 폭행치사 사건, 노무현 구속사건 등 당시 굵직한 인권변론 사건에 빠지지 않았다. 박원순은 특히 변론서 작성에 뛰어났는데, 대한변협의 [인권보고서] 발간을 주도했고, [국가보안법 연구] 집필을 시작했다.
1990년 조영래가 “이제 좀더 넓은 세상을 살펴보게”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자 박원순은 해외유학길에 나선다. 런던정경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등에서 2년 동안 공부한다.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등 그의 활동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유학 시절 얻어온 것이다.
귀국한 박원순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참여연대를 조직한다. 곧 ‘상근’ 사무처장이 되면서 “욕망의 열차에서 뛰어내린다.”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보장받을 수 없는 시민운동에 투신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공적 영역 개혁, 내부고발자 지원, 부패방지법 제정운동, 자본권력 및 국가권력 감시, 복지와 국민권익 증진에 힘썼다. 특히 낙천낙선운동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참여연대가 안정궤도에 오르자 박원순은 아름다운재단을 창립한다.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국 최초의 공익 변호사 그룹인 ‘공감’과 역시 한국 최초의 재활용 운동 단체인 아름다운가게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필리핀의 막사이사이 상과 만해상, 단재상을 받았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가 일정궤도에 오르자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창립한다. 희망제작소는 지역 활성화에 집중했다. 박원순 본인이 직접 각 지역을 돌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외에도 많은 일을 벌였는데 잘 진행되던 일들이 자꾸 엎어졌다. 국정원의 개입 때문이었다. 결국 박원순은 이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곧 국정원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다. 물론 박원순은 승소했다.
이처럼 어지러운 상황이 지나자 주변에서 정치 참여를 권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피하듯 떠난 백두대간 종주에서 결국 정치 참여를 결심하고 만다.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순 없었다. 단지 “한반도의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한 나 자신의 역할에 대해 묵상하고 또 묵상”했을 뿐이다. 운명 같은 결정이었다.
박원순이 걸었던 길
박원순이 걸어갈 길
박원순은 쉬지 않고 걸어왔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열심히 개척했다. 좌충우돌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저자는 박원순의 이러한 삶을 ‘불가사의’라고 표현한다. 서울대학교 복학기회가 있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 것, 장래가 보장되는 검사직을 일 년 만에 그만둔 것, 변호사로서 가질 수 있는 명예와 부를 포기하고 시민운동에 투신한 것, 자신이 만든 단체가 커지면 늘 물러나 새로운 단체를 꾸리는 것 등 박원순은 삶의 고비마다 불가사의한 선택을 해왔다.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했다.
“이러한 성과를 내고 널리 지지를 받은 것은 그가 공익을 향한 불굴의 헌신과 함께 ‘동행’을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동안 같은 길을 가더라도 남과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었다.”(406쪽)
물론 [박원순이 걷는 길]은 박원순의 ‘공적’만을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논란이 될 사안들도 피하지 않았다. 책에는 박원순의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논란, 학력 위조 논란, 병역 논란, 61평 아파트 논란, 심지어 가장 최근 불거진 서울시 인권헌장 논란까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저자는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확실한 사료를 들이대며 근거 없는 비난을 일축하고, 또 때로는 박원순의 잘못을 지적한다.
“보충역으로 복무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형이 있는데 ‘독자’ 판정을 받은 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사할린으로 간 작은할아버지 박두책은 해방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마저 불가능했다. ……박원순이 (13세 때) 작은할아버지의 (제사라도 지내주도록) 양손으로 입적되었다.”(103~104쪽)
“그가 만든 ‘공감’의 변호사들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을 둘러싸고 한창이던 2014년 12월에……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박원순은 함께해온 변호사들에게마저 비판받는 지경에 처했다. ‘공감’의 항의와 비판은 마땅하다. 박원순은 인권 수호자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인이자 갈등조정자로서의 서울시 수장이라는 엄중한 현실 사이의 시험대에 섰다.”(274~276쪽)
이외에도 책에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우연한 만남, 이명박 전 대통령 및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의 인연(악연),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 여러 정치인과의 일화도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박원순이 정치 참여를 택하도록 하는데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박원순이 걷는 길]은 박원순의 지난 행적을 최대한 투명하게 기록했다. 역사학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록한 사실이기에 독자는 ‘정치인 박원순’보다 ‘박원순의 역사’를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박원순의 현재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가령 외국 유학 직후 ‘동물권’에 관해 논문을 썼다는 사실을 알면 서울시가 왜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고, 희망제작소 시절 지역 탐방에 몰두했음을 알면 서울시가 왜 마을공동체 사업에 집중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박원순 개인의 삶과 한국의 현대사가 부딪히는 지점에서 그가 어떤 선택들을 했는지 살펴본다면 정치인 박원순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디딜지 예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야말로 역사 본연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자서전, 자전적 에세이는 늘 논란거리가 된다. 그러한 글 대부분이 역사를 담기보다는 정치적 이해를 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인에 관한 책일수록 과오를 아우르며 역사적 시각에서 조망해야 한다. [박원순이 걷는 길]은 역사를 담은 책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바란다.
▣ 작가 소개
저자 : 임대식
1959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마산고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사계간지 [역사비평] 편집주간을 지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10여 년 전부터 강원도 홍천에 거주하고 있다. 역사 공부를 좋아한 박원순과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지만 사적으로 만나거나 연락하며 지내지는 않았다. 다만 역사 공부에서는 동업자였고, 헌책방 순례에서는 경쟁자였다.
▣ 주요 목차
박원순의 운명을 기록하다 -머리말
1 박원순, 서울시장이 되다
2 가난하지만 부족하지 않았던 유년시절
3 평범하지 않은 박원순표 ''KS마크''
4 사법시험 합격 그리고 결혼
5 엄혹한 시대를 밝힌 인권변론
6 2년간의 외국 유학과 멈추지 않은 글쓰기
7 참여연대 ''상근'' 사무처장
8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9 Think Tank? Think and Do Tank!
10 ''현실정치'' 박원순의 소명
박원순과 함께 걷는 길 - 맺는말
박원순의 길, 박원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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