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고장 난 정부, 어떻게 고칠 것인가
1년 전 4월, 우리 사회에 큰 슬픔을 안긴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에게 정부의 역할, 국가의 역할에 깊은 의문을 품게 한 사건이었다. 참사에 대처하고 사후 대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어째서 정부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가 하는 회의에 휩싸여야 했다.
정부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솔한 마음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느끼면서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번지르르한 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러나 연말정산 증세 대란을 비롯해서 담뱃값 인상, ‘십상시’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총리 및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등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우리 정부가 전혀 그러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연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있었는지조차도 의심하게 만들었다.(7쪽)
한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 이정전 교수의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는 이처럼 국민의 요구에 정부와 정치권이 번번이 실망을 안기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의사를 완벽하게 수렴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을 짚어보고, 정부와 정치권이 힘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원인을 관료의 행태와 지대추구 행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또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정부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환경세와 토지세를 강화하는 조세 개혁을 제안한다.
한국의 대표 경제학자, 정부의 실패와 정치의 실패에 답하다
이정전 교수는 한국공공선택학회 회장을 지낸, 이른바 ‘주류 경제학’에 정통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자신의 전공인 토지경제학과 환경경제학을 바탕으로 ‘분배의 정의’에 오랜 시간 관심을 기울여온 학자이기도 하다. 학계 밖에서는 경실련환경개발센터 대표 등을 역임하며 시민사회에 힘을 보태온 장본인이며,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로는 자본주의 시장과 주류 경제학의 한계에 대해 성찰하는 『시장은 정의로운가』, 경제학의 눈으로 행복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등 대중을 위한 책을 썼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 열정적으로 개입해온 노장 경제학자가 ‘정치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에 입을 열었다. 다른 분야로의 외도가 아닌, 경제학의 틀을 통해서다. 이정전 교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와 정부에 관해 경제학계에서 쏟아져 나온 이론적?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왜 늘 우리 사회에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만연한지, 정치권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지 그 구조적인 요인을 다양한 경제학의 연구 성과들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모두 섭렵한 드문 경제학 원로는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를 통해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의 주장을 균형 있게 다루고 정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자고 말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가장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론
이 책에 주요한 틀을 제공하는 신정치경제학은 공공선택이론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경제학의 사고방식과 연구 방법을 이용해서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적인 선택을 대상으로 삼는 이론이다. 신정치경제학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는 정경유착,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이 범람하는 현상의 구조적인 요인을 정교하게 파헤쳤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표 주자 미국의 경제학계에서 태동한 신정치경제학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크나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만큼 무수한 반론과 비판을 마주하기도 했다.
이정전 교수는 우리가 신정치경제학을 비판적이고 효과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정치경제학이 기대고 있는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가설은 우리 삶의 일부분밖에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타심이나 공공성 같은, 정통 경제학은 주목하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치경제학은 정치의 비효율이 극에 달한 미국에서 그 원인을 오랫동안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해온 연구 분과이며, 아직도 정부가 재벌에 붙들려 있다는 말이 나오고 선거 제도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는 한국 사회에는 특히나 시사점이 큰 논의다.
시장의 실패, 정치의 실패, 정부의 실패
1부 ‘시장의 실패’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의 장단점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정부가 왜 필요한지, 현대 사회에서 정부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미국은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여겨지며 미국인들은 정치 얘기를 즐기는 국민으로 소문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름을 모른다. 75퍼센트가 국회의원의 임기를 모르며, 70퍼센트가 어떤 정당이 하원의 다수당인지 모르고, 60퍼센트 이상이 상원의 다수당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80퍼센트 이상이 부시 전 대통령의 애완견 이름이 ‘밀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사형 제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권자의 수는 1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반 국민은 정치에 관해 안다고 해봐야 하찮은 것만 알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26~27쪽)
이런 동기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니 약 반세기 전 이들은 오늘날 듣기에도 민망한 여러 가지 충격적인 제안의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예를 들면 투표권의 판매를 허용하자는 주장이다. 우리가 흔히 보듯이 사회적인 이슈를 두고 투표하는 경우 패배한 측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투표권을 자유로이 사고팔게 허용하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 없이 이해당사자 모두 이익을 얻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39~40쪽)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행태가 “열정”과 “공정한 방관자” 사이의 갈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열정은 식욕, 성욕, 분노, 두려움, 고통 등의 감정을 의미하며, 공정한 방관자는 위에서 말한 2차적 선호와 비슷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열정이 인간의 행동을 직접 지배하며 공정한 방관자는 열정에 따른 행동을 조정하거나 교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의 논리에 따르면 국회의원 선거 때 국민의 30퍼센트는 열정의 충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놀러갈 것이며, 70퍼센트는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가 요구하는 대로 투표하러 갈 것이다.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는 비록 하기 싫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이나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56~57쪽)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케인스는 굳게 믿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자본주의 시장은 창의력이 높은 말썽꾸러기 어린애와 같다. 내버려두면 말썽꾸러기 어린애는 충동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큰 사고를 치기 십상이다. 창의력이 높을수록 더욱 더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도 내버려두면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보여주듯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시카고학파의 사고방식에 심취해 있던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조차도 2008년 미국 금융시장이 휘청거리자 “뉴욕 금융가가 술에 만취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109쪽)
2부 ‘정치의 실패’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인 투표 제도가 가진 허점을 다룬다. 국민 개개인의 뜻을 위임하는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이라면 자기를 뽑아준 국민의 뜻을 대리하는 게 당연한데 왜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한지, 과연 민주주의 사회의 투표 제도가 여러 사람의 뜻을 완벽하게 수렴할 수 있는지 따져본다.
그렇다면 공정성 조건을 충족하면서 합리적인 집단선호를 낳는 투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적 수단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의 목적을 원만하게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이것은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신뢰에 큰 타격을 준다. 공산주의 이념은 참으로 옳고 숭고하지만 그 이념을 달성하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했다고 흔히들 말한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가 옳다면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학자가 말했듯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 이념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애로가 증명하였기 때문이다.(222쪽)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을 시민의식이나 공익 정신을 대변하는 변수로 삼고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이것이 다른 어떤 요인보다 유권자의 투표 행위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이 강한 사람 중에는 압도적 다수인 87퍼센트가 투표했는데 이런 의무감이 약한 사람들 중에는 단지 51퍼센트 정도만 투표했다.(249쪽)
3부에서는 ‘정부의 실패’를 낳는 여러 구조적 요인을 살펴본다. 먼저 관료의 행태와 정경유착의 원인이 되는 지대추구 현상을 살핀다. 이어서 바람직한 조세 제도 개혁을 모색하는 대목에서는 토지경제학과 환경경제학 전문가로서 저자의 통찰이 빛난다.
경쟁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경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경쟁을 하지 않고 큰돈을 만지는 아주 좋은 방법은 정부와 정치권에 기대서 독점적 특혜를 따내거나 경쟁자를 따돌리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하였던 자유방임주의는 기대와 달리 늘 거대 독점을 탄생시켰다. …… 이와 같이 경쟁을 회피하려는 강한 유혹에 따라 지대를 획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는 현상을 어느 학자는 “보이지 않는 발”로 표현하였다.(303쪽)
헌법 차원에서 조세 제도를 선택할 경우 국민이 당면하는 문제는 거대 정부에 의한 착취의 가능성을 피하면서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뷰캐넌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늘 나오는 ‘착취’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에 의한 착취’를 주로 얘기한다면, 뷰캐넌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정부에 의한 착취’를 주로 얘기한다.(325쪽)
우리나라의 법인세 세율이 이미 낮기 때문에 법인세 세율을 더 낮추기는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2011년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은 OECD 회원국 평균(15.9퍼센트)보다 0.8퍼센트포인트 낮은 15.1퍼센트에 머물렀다. 미국과 일본의 실효세율은 각각 27.6퍼센트, 27퍼센트 수준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은 이유는 각종 세금 감면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각종 기여금에 기업이 부담하는 부분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작다. OECD 평균으로는 고용주가 피고용자보다 1.59배를 더 낸다. 복지국가로 분류되는 스웨덴은 고용주 부담 몫이 피고용자의 2.5배가 넘는다.(352~353쪽)
▣ 작가 소개
저 : 이정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한국자원경제학회장, 한국환경경제학회 이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경실련환경개발센터 대표,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프레시안〉 등에 행복경제학 및 세계 경제 위기, 부동산 정책, 환경정책 등을 망라한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활발한 기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자는 최근작 『경제학을 리콜하라』에서는 세계 경제 및 한국 경제가 위기를 반복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로 기득권층과 타협하는 경제학자와 시대에 뒤처진 경제학 교과서를 가장 큰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 케인스 등이 이미 그들의 저서를 통해 현대 경제학의 치명적 약점과 그 해결방안을 분명히 제시했음에도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자본주의 시장 유지에만 급급했으며, 위기에 직면한 현재에도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어 “경제학을 리콜하지 않으려면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이 사회에 던진다.
그 밖의 저서로 《두 경제학의 이야기 :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 《위기의 부동산》 《토지경제론》 《분배의 정의》《토지경제학》 《환경경제학》 등이 있고, 논문으로 〈Determination of Income, Production, and Employment under Pollution Control〉〈개발이익 환수제도와 전가의 문제〉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정부가 ‘갑질’ 멈추고 국민의 ‘을’이 되게 하려면
1부 시장의 실패
1장 시장에는 있고 정치에는 없는 것
1. 정치와 정부, 새로 보기
2. 정치와 정부에 관한 새로운 이론, 어떻게 볼 것인가?
3. 투표장 앞에 선 두 마음
2장 시장의 빛과 그림자
1. 시장이란 무엇인가
2. 시장의 실패
3장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1. 시장이 할 수 없는 일
2. 말썽꾸러기 시장 다스리기
3. 정의로운 재분배
4. 집단행동의 문제
2부 정치의 실패
4장 민주주의의 허점
1. 국민의 마음 읽기
2. 다수결의 의미
5장 투표의 역설과 정치의 실패
1. 셋 이상의 의안과 다수결
2. 순환이 정치적 혼란을 낳는다
6장 민주적 수단으로 달성할 수 없는 민주주의?
1. 공정한 동시에 합리적일 수 없다
2. 자유민주주의의 역설
3. 정치를 교란하는 전략적 행위
4. 참여하지 않는 국민들
3부 정부의 실패
7장 거대 정부의 공포
1. 정부 재정 지출의 급격한 팽창
2. 관료의 예산 극대화 추구
8장 지대를 좇는 사람들
1. 지대추구의 현장
2. 고전적 지대추구 이론
9장 조세라는 악마 또는 천사
1. 조세를 보는 새로운 시각
2. 무지의 장막 뒤 조세의 원칙
3. 좋은 조세 늘리고 나쁜 조세 줄이기
맺는 말 시민이 만드는 새로운 시대의 정부
주
찾아보기
고장 난 정부, 어떻게 고칠 것인가
1년 전 4월, 우리 사회에 큰 슬픔을 안긴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에게 정부의 역할, 국가의 역할에 깊은 의문을 품게 한 사건이었다. 참사에 대처하고 사후 대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어째서 정부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가 하는 회의에 휩싸여야 했다.
정부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솔한 마음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느끼면서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번지르르한 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러나 연말정산 증세 대란을 비롯해서 담뱃값 인상, ‘십상시’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총리 및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 등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우리 정부가 전혀 그러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연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있었는지조차도 의심하게 만들었다.(7쪽)
한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 이정전 교수의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는 이처럼 국민의 요구에 정부와 정치권이 번번이 실망을 안기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의사를 완벽하게 수렴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맹점을 짚어보고, 정부와 정치권이 힘 있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는 원인을 관료의 행태와 지대추구 행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또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 정부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환경세와 토지세를 강화하는 조세 개혁을 제안한다.
한국의 대표 경제학자, 정부의 실패와 정치의 실패에 답하다
이정전 교수는 한국공공선택학회 회장을 지낸, 이른바 ‘주류 경제학’에 정통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자신의 전공인 토지경제학과 환경경제학을 바탕으로 ‘분배의 정의’에 오랜 시간 관심을 기울여온 학자이기도 하다. 학계 밖에서는 경실련환경개발센터 대표 등을 역임하며 시민사회에 힘을 보태온 장본인이며,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로는 자본주의 시장과 주류 경제학의 한계에 대해 성찰하는 『시장은 정의로운가』, 경제학의 눈으로 행복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등 대중을 위한 책을 썼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 열정적으로 개입해온 노장 경제학자가 ‘정치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에 입을 열었다. 다른 분야로의 외도가 아닌, 경제학의 틀을 통해서다. 이정전 교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와 정부에 관해 경제학계에서 쏟아져 나온 이론적?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왜 늘 우리 사회에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만연한지, 정치권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지 그 구조적인 요인을 다양한 경제학의 연구 성과들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모두 섭렵한 드문 경제학 원로는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를 통해 보수와 진보 양쪽 진영의 주장을 균형 있게 다루고 정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자고 말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을 가장 과학적으로 분석한 이론
이 책에 주요한 틀을 제공하는 신정치경제학은 공공선택이론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경제학의 사고방식과 연구 방법을 이용해서 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적인 선택을 대상으로 삼는 이론이다. 신정치경제학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되는 정경유착,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이 범람하는 현상의 구조적인 요인을 정교하게 파헤쳤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표 주자 미국의 경제학계에서 태동한 신정치경제학은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크나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만큼 무수한 반론과 비판을 마주하기도 했다.
이정전 교수는 우리가 신정치경제학을 비판적이고 효과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정치경제학이 기대고 있는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가설은 우리 삶의 일부분밖에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타심이나 공공성 같은, 정통 경제학은 주목하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치경제학은 정치의 비효율이 극에 달한 미국에서 그 원인을 오랫동안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해온 연구 분과이며, 아직도 정부가 재벌에 붙들려 있다는 말이 나오고 선거 제도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는 한국 사회에는 특히나 시사점이 큰 논의다.
시장의 실패, 정치의 실패, 정부의 실패
1부 ‘시장의 실패’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의 장단점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정부가 왜 필요한지, 현대 사회에서 정부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미국은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여겨지며 미국인들은 정치 얘기를 즐기는 국민으로 소문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름을 모른다. 75퍼센트가 국회의원의 임기를 모르며, 70퍼센트가 어떤 정당이 하원의 다수당인지 모르고, 60퍼센트 이상이 상원의 다수당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80퍼센트 이상이 부시 전 대통령의 애완견 이름이 ‘밀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사형 제도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권자의 수는 1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반 국민은 정치에 관해 안다고 해봐야 하찮은 것만 알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26~27쪽)
이런 동기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니 약 반세기 전 이들은 오늘날 듣기에도 민망한 여러 가지 충격적인 제안의 보따리를 들고 나왔다. 예를 들면 투표권의 판매를 허용하자는 주장이다. 우리가 흔히 보듯이 사회적인 이슈를 두고 투표하는 경우 패배한 측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투표권을 자유로이 사고팔게 허용하면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 없이 이해당사자 모두 이익을 얻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39~40쪽)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행태가 “열정”과 “공정한 방관자” 사이의 갈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열정은 식욕, 성욕, 분노, 두려움, 고통 등의 감정을 의미하며, 공정한 방관자는 위에서 말한 2차적 선호와 비슷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열정이 인간의 행동을 직접 지배하며 공정한 방관자는 열정에 따른 행동을 조정하거나 교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의 논리에 따르면 국회의원 선거 때 국민의 30퍼센트는 열정의 충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놀러갈 것이며, 70퍼센트는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가 요구하는 대로 투표하러 갈 것이다.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는 비록 하기 싫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이나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56~57쪽)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케인스는 굳게 믿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자본주의 시장은 창의력이 높은 말썽꾸러기 어린애와 같다. 내버려두면 말썽꾸러기 어린애는 충동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큰 사고를 치기 십상이다. 창의력이 높을수록 더욱 더 그렇다. 자본주의 시장도 내버려두면 1930년대 세계 대공황과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보여주듯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시카고학파의 사고방식에 심취해 있던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조차도 2008년 미국 금융시장이 휘청거리자 “뉴욕 금융가가 술에 만취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109쪽)
2부 ‘정치의 실패’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인 투표 제도가 가진 허점을 다룬다. 국민 개개인의 뜻을 위임하는 투표로 선출된 정치인이라면 자기를 뽑아준 국민의 뜻을 대리하는 게 당연한데 왜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한지, 과연 민주주의 사회의 투표 제도가 여러 사람의 뜻을 완벽하게 수렴할 수 있는지 따져본다.
그렇다면 공정성 조건을 충족하면서 합리적인 집단선호를 낳는 투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적 수단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의 목적을 원만하게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이것은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신뢰에 큰 타격을 준다. 공산주의 이념은 참으로 옳고 숭고하지만 그 이념을 달성하는 마땅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이 몰락했다고 흔히들 말한다.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가 옳다면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학자가 말했듯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 이념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애로가 증명하였기 때문이다.(222쪽)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을 시민의식이나 공익 정신을 대변하는 변수로 삼고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이것이 다른 어떤 요인보다 유권자의 투표 행위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이 강한 사람 중에는 압도적 다수인 87퍼센트가 투표했는데 이런 의무감이 약한 사람들 중에는 단지 51퍼센트 정도만 투표했다.(249쪽)
3부에서는 ‘정부의 실패’를 낳는 여러 구조적 요인을 살펴본다. 먼저 관료의 행태와 정경유착의 원인이 되는 지대추구 현상을 살핀다. 이어서 바람직한 조세 제도 개혁을 모색하는 대목에서는 토지경제학과 환경경제학 전문가로서 저자의 통찰이 빛난다.
경쟁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경쟁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경쟁을 하지 않고 큰돈을 만지는 아주 좋은 방법은 정부와 정치권에 기대서 독점적 특혜를 따내거나 경쟁자를 따돌리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이상적으로 생각하였던 자유방임주의는 기대와 달리 늘 거대 독점을 탄생시켰다. …… 이와 같이 경쟁을 회피하려는 강한 유혹에 따라 지대를 획득하기 위해서 열심히 뛰는 현상을 어느 학자는 “보이지 않는 발”로 표현하였다.(303쪽)
헌법 차원에서 조세 제도를 선택할 경우 국민이 당면하는 문제는 거대 정부에 의한 착취의 가능성을 피하면서 공공 서비스의 혜택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뷰캐넌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늘 나오는 ‘착취’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에 의한 착취’를 주로 얘기한다면, 뷰캐넌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정부에 의한 착취’를 주로 얘기한다.(325쪽)
우리나라의 법인세 세율이 이미 낮기 때문에 법인세 세율을 더 낮추기는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2011년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은 OECD 회원국 평균(15.9퍼센트)보다 0.8퍼센트포인트 낮은 15.1퍼센트에 머물렀다. 미국과 일본의 실효세율은 각각 27.6퍼센트, 27퍼센트 수준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은 이유는 각종 세금 감면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각종 기여금에 기업이 부담하는 부분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작다. OECD 평균으로는 고용주가 피고용자보다 1.59배를 더 낸다. 복지국가로 분류되는 스웨덴은 고용주 부담 몫이 피고용자의 2.5배가 넘는다.(352~353쪽)
▣ 작가 소개
저 : 이정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객원교수를 거쳐, 한국자원경제학회장, 한국환경경제학회 이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경실련환경개발센터 대표,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프레시안〉 등에 행복경제학 및 세계 경제 위기, 부동산 정책, 환경정책 등을 망라한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활발한 기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자는 최근작 『경제학을 리콜하라』에서는 세계 경제 및 한국 경제가 위기를 반복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로 기득권층과 타협하는 경제학자와 시대에 뒤처진 경제학 교과서를 가장 큰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데이비드 리카도, 카를 마르크스, 케인스 등이 이미 그들의 저서를 통해 현대 경제학의 치명적 약점과 그 해결방안을 분명히 제시했음에도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자본주의 시장 유지에만 급급했으며, 위기에 직면한 현재에도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어 “경제학을 리콜하지 않으려면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이 사회에 던진다.
그 밖의 저서로 《두 경제학의 이야기 :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 《위기의 부동산》 《토지경제론》 《분배의 정의》《토지경제학》 《환경경제학》 등이 있고, 논문으로 〈Determination of Income, Production, and Employment under Pollution Control〉〈개발이익 환수제도와 전가의 문제〉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정부가 ‘갑질’ 멈추고 국민의 ‘을’이 되게 하려면
1부 시장의 실패
1장 시장에는 있고 정치에는 없는 것
1. 정치와 정부, 새로 보기
2. 정치와 정부에 관한 새로운 이론, 어떻게 볼 것인가?
3. 투표장 앞에 선 두 마음
2장 시장의 빛과 그림자
1. 시장이란 무엇인가
2. 시장의 실패
3장 정부는 왜 존재하는가
1. 시장이 할 수 없는 일
2. 말썽꾸러기 시장 다스리기
3. 정의로운 재분배
4. 집단행동의 문제
2부 정치의 실패
4장 민주주의의 허점
1. 국민의 마음 읽기
2. 다수결의 의미
5장 투표의 역설과 정치의 실패
1. 셋 이상의 의안과 다수결
2. 순환이 정치적 혼란을 낳는다
6장 민주적 수단으로 달성할 수 없는 민주주의?
1. 공정한 동시에 합리적일 수 없다
2. 자유민주주의의 역설
3. 정치를 교란하는 전략적 행위
4. 참여하지 않는 국민들
3부 정부의 실패
7장 거대 정부의 공포
1. 정부 재정 지출의 급격한 팽창
2. 관료의 예산 극대화 추구
8장 지대를 좇는 사람들
1. 지대추구의 현장
2. 고전적 지대추구 이론
9장 조세라는 악마 또는 천사
1. 조세를 보는 새로운 시각
2. 무지의 장막 뒤 조세의 원칙
3. 좋은 조세 늘리고 나쁜 조세 줄이기
맺는 말 시민이 만드는 새로운 시대의 정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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