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아시아 여성 노동 현장과 이론의 충실한 결합,
여성주의의 눈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을 해명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다. 최근 보도([경향신문] 2015년 5월 25일 자 기사, “남녀 임금 격차, 가장 큰 이유는 ‘그냥’”)에 따르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62.2%)이 근속 연수, 교육 수준, 직종 등에 따른 남녀 차이(37.8%)보다 더 크다고 한다. 성별 임금 격차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전 세계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현실이 향후 7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고, 재취업하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성별 분업의 논리와 함께 여성 노동의 착취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이 있다.
피터 커스터스의 [자본은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아시아의 자본 축적과 여성 노동]은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여성 노동이 자본주의 축적의 발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론과 실증 자료를 결합하여 탁월하게 분석한 책으로 1997년 처음 출간되었다. 2012년 개정판에서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자야티 고시가 서문에서 커스터스의 논의를 2011년 현재 상황으로 이어서 보충 설명하고 있다. 커스터스는 “남성 지식인들이 만든 경제 이론의 특징인 여성 노동에 대한 무지”에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일본에서의 오랜 현장 연구와 다양한 여성주의의 이론적 틀이 결합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아시아 경제에서 자본 축적이 가속화되는 데 여성 노동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것이 세계 경제의 흐름과 변화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커스터스의 책은 성별 관계의 많은 특징 그리고 가부장제가 취하는 특정한 양식이 자본주의 축적 과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간명하게 기술한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 그의 분석은 여성의 지위와 보편적 사회 해방의 가능성을 밝혀내고 특히 현대 자본주의의 복잡한 본질을 해명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의의가 있다.” (자야티 고시, 개정판 서문 24
커스터스의 기본 입장은 현대 자본주의와 여성의 노동을 이해하는 데 특히 맑스주의 이론이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 곳곳에서 분업,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 노동일, 노동예비군 등의 맑스주의 이론과 개념은 여성의 생산 및 재생산 노동에 대한 착취를 설명하는 데 매우 적절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맑스의 이론이 현대 여성주의 사상과 연구를 통해서 수정,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발전여성주의, 생태여성주의, 독일여성주의 학파, 사회주의 여성주의와 같은 다양한 여성주의 이론이 지닌 문제의식과 한계를 살펴보면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공생 관계를 맺고 함께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509.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여성 노동 담론
세 아시아 국가(인도, 방글라데시, 일본)의 경제에서 여성의 노동 경험을 돌아보기 전에 저자는 유럽 국가들에서 있었던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일어난 여성 노동에 관한 논쟁의 주요 측면들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19세기 유럽에서 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참여한 긴밀한 지적 논쟁과 함께 성장했다. 특히 프랑스에는 플로라 트리스탕이나 잔 드로앵과 같이 남성/여성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옹호한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지적 논쟁은 대부분 가부장적 편견을 지닌 남성 사상가들이 주도해 왔다. 대표적으로 프루동은 엄격한 성별 분업과 여성의 완전한 종속을 주장했으며, 맑스는 여성의 해방이 사회 진보의 척도라고 보았으나 그 역시 여성이 주부로서 수행한 노동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는 성별 분업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한계가 있었다.
1890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독일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여성 임금노동자와 가정주부의 운동을 조직하는 소중한 경험을 남겼다. 이때의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의 실천은 운동의 이론적 성숙보다 훨씬 앞서 나가 있었으며, 부족했던 이론은 이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 가사노동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발전하게 된다. 전통적 맑스주의 관점에서는 가사노동을 비생산적이라고 보지만, 2세대 여성주의자들은 가사노동이 직접적 소비를 위한 단순한 사용가치의 생산과 더 중요하게는 특별한 상품인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까지 수행한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며,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간접적으로는 산업 자본가들이 이윤을 벌어들이는 데도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던 여성의 노동을 드러내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가사노동 논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가사노동과 자본주의 경제의 공적 영역을 분리하면서 여성의 임금노동을 간과하는 경향은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한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과 농업에서 여성의 노동
저자는 2세대 여성주의에서 얻은 교훈을 비유럽적인 아시아 경제에서의 여성 노동에 적용하여 인도의 서벵골과 안드라프라데시 여성 가내노동자들의 노동을 분석한다. 이들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노동 조건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임금노동과 함께 가사노동을 전담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서벵골의 두 지역 모헤슈톨라-산토슈푸르와 둠둠-파이크파라를 비교해 볼 때 지역에 따라 여성의 지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이 감수해야 하는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이중 과업은 마찬가지이다.
성별 분업에 의한 착취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성별 분업의 양상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서벵골의 의류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소규모 작업장이나 집에서 하청을 받아 일하며 성과급제로 임금을 받는다.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업 여성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반숙련 혹은 미숙련 업무에 종사하며 시간급을 적용받는다. 모헤슈톨라-산토슈푸르 지역의 사례를 보면 기계 소유를 통해 남성 권력을 보호하려는 필요에 따라 성별 분업 구조가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남성과 여성 간의 노동 분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남성 지배를 유지할 필요에 맞춰 결정되며 의류 산업 분야의 진화에 따라 변화한다.
안드라프라데시 레이스 산업의 사회적 생산관계를 연구한 마리아 미스에 따르면, 여성 레이스 노동자들은 생산관계의 밑바닥에 위치하며 극단적 저임금으로 빈곤해지는 반면에 남성은 여성보다 많은 임금을 받거나 자본 축적 과정을 거쳐 신분 상승에 성공하는 등 계급과 성차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남성을 ‘생계 부양자’로, 여성을 ‘주부’로 보는 사회적 정의는 이러한 양극화에 영향을 미친다.
근세 초기 영국에서 일어난 공유지의 사유화(인클로저)처럼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10년 동안 농민이 빚을 갚지 못하고 토지에서 쫓겨나고 홍수 조절 계획이라는 명분하에 수자원과 어자원이 사유화되면서 자본의 시초 축적 과정이 진행되었다. 공유 자원을 이용할 수 없게 된 농민은 빈곤해지고 이에 따라 농촌 빈민 여성의 농업 노동 참여가 늘어났다. 방글라데시에서 근대화 과정은 여성에 대한 잔혹 행위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진행되었다. 결혼할 때 신부가 신랑 가족에게 주는 지참금은 남성에게는 자본금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시초 축적’의 한 형태로 활용되는데 여성은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살해되기도 한다.
일본화와 노동예비군으로서의 여성 노동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컨베이어 벨트와 스톱워치라면 일본식 관리 방식은 대표적으로 ‘품질관리조’와 ‘하청 구조’로 특징지어진다. 품질관리조는 노동시간은 물론 자유시간까지 생산을 위해 노동자들을 규율화하며, 하청 구조는 생산을 더 작은 단위로 이전함으로써 이윤은 기업으로 집중되고 노동자들의 결속력은 약화된다. 이러한 ‘일본화’(전형적인 일본식 자본 축적 방법)는 산업 노동자의 노동조합 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간반, 품질관리조, 하청과 같은 자본가들의 전략에 대응하려면 집단적 노동자 중심에서 벗어나 계절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특히 전 세계 노동예비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노동조합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한동안 일본이 ‘종신 고용’이라는 말로 대표될 때도 있었지만 이는 적어도 (종신 고용이 존재하지 않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단기 고용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생산 과정에서 일회용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일본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예비군’이라는 맑스의 개념으로 적절히 설명할 수 있다. 초기 섬유 산업부터 전자 산업에 이르기까지 일본 산업화의 역사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언제나 자본 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견사 방적 공장에서 일한 어린 농촌 여성들은 열악한 공장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당했으며, 전자 산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반숙련 또는 미숙련 노동을 담당했다. 출산과 육아를 여성의 책임으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성별 분업에 의해 노동시장을 떠나 있던 기혼 여성은 파트타임 노동자로 다시 노동시장에 흡수된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 정규직 노동자나 남성 노동자에 비해 추가 수당도 없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며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다.
맑스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
저자는 맑스주의적 개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자본 축적 과정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분석하는 데 유효적절하다는 점을 곳곳에서 분명히 드러낸다. 예를 들어 6장에서 다루는 방글라데시의 수출 주도형 의류 산업 부문은 노동일의 무제한적 연장으로 ‘절대적 잉여가치’를 추출한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관한 맑스의 명제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8장에서는 방글라데시에서 농민의 토지와 공유 자원의 손실에 대해 다루면서 자본의 ‘시초 축적’에 대한 맑스의 관점을 참고하고 있다. 11장에서는 ‘자본의 회전기간’에 대한 맑스의 분석에 기초하여 일본의 자동차회사 도요타의 운영 방식이 자본의 회전기간을 단축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2장에서는 일본 중년 여성이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자로 자본의 이해에 따라 고용되거나 해고되는 현상을 ‘노동예비군’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맑스주의적 경제 개념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맑스 이론의 약점인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지적한다. 맑스가 노동자의 노동력 가치를 측정할 때 여성의 가사노동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남녀 간 성별 분업을 간과했다는 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저자는 여성주의 이론가들이 제안한 개념들을 받아들여 맑스주의 경제 이론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실제로 이 책에서 그러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의 균형 잡힌 시각은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이었던 가사노동 논쟁의 한계를 지적하고 제3세계 농촌 여성의 생산 활동이 거의 무시되어 온 현실을 치밀한 현장 연구와 이론으로 타개하려고 시도하는 데서도 발휘된다. 저자의 결론대로 “생산의 비자본주의적 영역을 요구하면서도 결국 비유럽, 전(前)자본주의 경제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문어발처럼 움켜쥐고 통합하게 되는 자기모순적인 자본의 팽창 과정을 살피지 않고서는 여성의 노동 활동에 대해 온전한 평가를 내릴 수 없을 것”(479이며, 이러한 작업으로부터 여성 해방, 보편적 사회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피터 커스터스
1970년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국제법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이어서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국제관계 3년 과정을 이수했다. 1995년 네덜란드 네이메헌 가톨릭 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초반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방글라데시에 머물면서 네덜란드와 국제 신문 등에 많은 글을 기고해 왔다. 또한 소작농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사회상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배우게 된다. 이후 1980년대에는 핵전쟁의 위협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지난 20년간 유럽연합 의회와 각종 유럽의 기관들을 상대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등 남반구 문제와 관련하여 다양한 국제운동을 주도하고 지원해 왔다. 대표적으로 세계은행의 후원을 받은 ‘홍수 조절 계획’(FAP)과 아프리카의 무역 자유화(EPAs)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2010년에는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인권 옹호자 상’과 ‘방글라데시의 친구 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일간지인 『프로톰 알로』와 『데일리 스타』의 특파원과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박소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와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동남아시아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인도네시아 사나타달마 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어(들)와 역사를 공부했다. 아시아를 비롯한 주변부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 회원. 서울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일하고 공부한다.
역자 : 장희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조직이론 및 비판조직이론을 전공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조직행동론, 인적자원관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울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며 ‘맑스주의와 여성주의’, ‘자본론 1권 강독’ 등의 세미나를 진행했다.
▣ 주요 목차
개정판 서문
서문
감사의 말
1장 _ 여성주의 그리고 아시아 경제의 여성 노동 개념화
1부 _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여성 노동에 관한 담론
2장 _ 노동계급 이론가들의 가부장적 편향 : 맑스와 프루동
3장 _ 독일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과 여성 노동
4장 _ 2세대 여성주의의 유산 : 가사노동 논쟁에 대한 재고
2부 _ 인도와 방글라데시 여성의 산업 노동
5장 _ 서벵골 의류 산업의 여성 가내노동자
6장 _ 방글라데시 공장제에서 여성 의류 제조 노동자 중 임금 노예
7장 _ 독일여성주의 학파와 가정주부화설
3부 _ 농업 생산자로서 여성의 역할
8장 _ 발전여성주의와 방글라데시 여성 농민의 노동
9장 _ 인도의 생태여성주의 담론
10장 _ 독일여성주의 학파와 생계노동설
4부 _ 일본화와 여성 노동
11장 _ 일본식 경영과 포드주의 비교
12장 _ 대규모 노동예비군으로서 일본 여성
13장 _ 결론 :? 현대 아시아의 자본 축적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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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 노동 현장과 이론의 충실한 결합,
여성주의의 눈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본질을 해명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남녀 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다. 최근 보도([경향신문] 2015년 5월 25일 자 기사, “남녀 임금 격차, 가장 큰 이유는 ‘그냥’”)에 따르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62.2%)이 근속 연수, 교육 수준, 직종 등에 따른 남녀 차이(37.8%)보다 더 크다고 한다. 성별 임금 격차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전 세계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 현실이 향후 7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고, 재취업하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성별 분업의 논리와 함께 여성 노동의 착취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이 있다.
피터 커스터스의 [자본은 여성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아시아의 자본 축적과 여성 노동]은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여성 노동이 자본주의 축적의 발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론과 실증 자료를 결합하여 탁월하게 분석한 책으로 1997년 처음 출간되었다. 2012년 개정판에서는 세계적인 경제학자 자야티 고시가 서문에서 커스터스의 논의를 2011년 현재 상황으로 이어서 보충 설명하고 있다. 커스터스는 “남성 지식인들이 만든 경제 이론의 특징인 여성 노동에 대한 무지”에 문제의식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일본에서의 오랜 현장 연구와 다양한 여성주의의 이론적 틀이 결합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아시아 경제에서 자본 축적이 가속화되는 데 여성 노동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것이 세계 경제의 흐름과 변화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커스터스의 책은 성별 관계의 많은 특징 그리고 가부장제가 취하는 특정한 양식이 자본주의 축적 과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간명하게 기술한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다. 그의 분석은 여성의 지위와 보편적 사회 해방의 가능성을 밝혀내고 특히 현대 자본주의의 복잡한 본질을 해명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의의가 있다.” (자야티 고시, 개정판 서문 24
커스터스의 기본 입장은 현대 자본주의와 여성의 노동을 이해하는 데 특히 맑스주의 이론이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 곳곳에서 분업,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 노동일, 노동예비군 등의 맑스주의 이론과 개념은 여성의 생산 및 재생산 노동에 대한 착취를 설명하는 데 매우 적절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맑스의 이론이 현대 여성주의 사상과 연구를 통해서 수정,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발전여성주의, 생태여성주의, 독일여성주의 학파, 사회주의 여성주의와 같은 다양한 여성주의 이론이 지닌 문제의식과 한계를 살펴보면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떻게 공생 관계를 맺고 함께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509.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여성 노동 담론
세 아시아 국가(인도, 방글라데시, 일본)의 경제에서 여성의 노동 경험을 돌아보기 전에 저자는 유럽 국가들에서 있었던 여성해방운동과 함께 일어난 여성 노동에 관한 논쟁의 주요 측면들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19세기 유럽에서 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참여한 긴밀한 지적 논쟁과 함께 성장했다. 특히 프랑스에는 플로라 트리스탕이나 잔 드로앵과 같이 남성/여성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옹호한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지적 논쟁은 대부분 가부장적 편견을 지닌 남성 사상가들이 주도해 왔다. 대표적으로 프루동은 엄격한 성별 분업과 여성의 완전한 종속을 주장했으며, 맑스는 여성의 해방이 사회 진보의 척도라고 보았으나 그 역시 여성이 주부로서 수행한 노동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기본적으로는 성별 분업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한계가 있었다.
1890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독일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은 여성 임금노동자와 가정주부의 운동을 조직하는 소중한 경험을 남겼다. 이때의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의 실천은 운동의 이론적 성숙보다 훨씬 앞서 나가 있었으며, 부족했던 이론은 이후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 가사노동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발전하게 된다. 전통적 맑스주의 관점에서는 가사노동을 비생산적이라고 보지만, 2세대 여성주의자들은 가사노동이 직접적 소비를 위한 단순한 사용가치의 생산과 더 중요하게는 특별한 상품인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까지 수행한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며,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간접적으로는 산업 자본가들이 이윤을 벌어들이는 데도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던 여성의 노동을 드러내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가사노동 논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가사노동과 자본주의 경제의 공적 영역을 분리하면서 여성의 임금노동을 간과하는 경향은 문제가 있었다고 비판한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과 농업에서 여성의 노동
저자는 2세대 여성주의에서 얻은 교훈을 비유럽적인 아시아 경제에서의 여성 노동에 적용하여 인도의 서벵골과 안드라프라데시 여성 가내노동자들의 노동을 분석한다. 이들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노동 조건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임금노동과 함께 가사노동을 전담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서벵골의 두 지역 모헤슈톨라-산토슈푸르와 둠둠-파이크파라를 비교해 볼 때 지역에 따라 여성의 지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이 감수해야 하는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이중 과업은 마찬가지이다.
성별 분업에 의한 착취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성별 분업의 양상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서벵골의 의류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소규모 작업장이나 집에서 하청을 받아 일하며 성과급제로 임금을 받는다. 방글라데시 의류 제조업 여성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반숙련 혹은 미숙련 업무에 종사하며 시간급을 적용받는다. 모헤슈톨라-산토슈푸르 지역의 사례를 보면 기계 소유를 통해 남성 권력을 보호하려는 필요에 따라 성별 분업 구조가 바뀌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남성과 여성 간의 노동 분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남성 지배를 유지할 필요에 맞춰 결정되며 의류 산업 분야의 진화에 따라 변화한다.
안드라프라데시 레이스 산업의 사회적 생산관계를 연구한 마리아 미스에 따르면, 여성 레이스 노동자들은 생산관계의 밑바닥에 위치하며 극단적 저임금으로 빈곤해지는 반면에 남성은 여성보다 많은 임금을 받거나 자본 축적 과정을 거쳐 신분 상승에 성공하는 등 계급과 성차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남성을 ‘생계 부양자’로, 여성을 ‘주부’로 보는 사회적 정의는 이러한 양극화에 영향을 미친다.
근세 초기 영국에서 일어난 공유지의 사유화(인클로저)처럼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10년 동안 농민이 빚을 갚지 못하고 토지에서 쫓겨나고 홍수 조절 계획이라는 명분하에 수자원과 어자원이 사유화되면서 자본의 시초 축적 과정이 진행되었다. 공유 자원을 이용할 수 없게 된 농민은 빈곤해지고 이에 따라 농촌 빈민 여성의 농업 노동 참여가 늘어났다. 방글라데시에서 근대화 과정은 여성에 대한 잔혹 행위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진행되었다. 결혼할 때 신부가 신랑 가족에게 주는 지참금은 남성에게는 자본금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시초 축적’의 한 형태로 활용되는데 여성은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살해되기도 한다.
일본화와 노동예비군으로서의 여성 노동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컨베이어 벨트와 스톱워치라면 일본식 관리 방식은 대표적으로 ‘품질관리조’와 ‘하청 구조’로 특징지어진다. 품질관리조는 노동시간은 물론 자유시간까지 생산을 위해 노동자들을 규율화하며, 하청 구조는 생산을 더 작은 단위로 이전함으로써 이윤은 기업으로 집중되고 노동자들의 결속력은 약화된다. 이러한 ‘일본화’(전형적인 일본식 자본 축적 방법)는 산업 노동자의 노동조합 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간반, 품질관리조, 하청과 같은 자본가들의 전략에 대응하려면 집단적 노동자 중심에서 벗어나 계절노동자, 임시직 노동자, 특히 전 세계 노동예비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노동조합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한동안 일본이 ‘종신 고용’이라는 말로 대표될 때도 있었지만 이는 적어도 (종신 고용이 존재하지 않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단기 고용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생산 과정에서 일회용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일본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예비군’이라는 맑스의 개념으로 적절히 설명할 수 있다. 초기 섬유 산업부터 전자 산업에 이르기까지 일본 산업화의 역사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언제나 자본 축적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견사 방적 공장에서 일한 어린 농촌 여성들은 열악한 공장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당했으며, 전자 산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반숙련 또는 미숙련 노동을 담당했다. 출산과 육아를 여성의 책임으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성별 분업에 의해 노동시장을 떠나 있던 기혼 여성은 파트타임 노동자로 다시 노동시장에 흡수된다. 그러나 이들은 여성 정규직 노동자나 남성 노동자에 비해 추가 수당도 없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며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다.
맑스주의와 여성주의의 결합
저자는 맑스주의적 개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자본 축적 과정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분석하는 데 유효적절하다는 점을 곳곳에서 분명히 드러낸다. 예를 들어 6장에서 다루는 방글라데시의 수출 주도형 의류 산업 부문은 노동일의 무제한적 연장으로 ‘절대적 잉여가치’를 추출한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관한 맑스의 명제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8장에서는 방글라데시에서 농민의 토지와 공유 자원의 손실에 대해 다루면서 자본의 ‘시초 축적’에 대한 맑스의 관점을 참고하고 있다. 11장에서는 ‘자본의 회전기간’에 대한 맑스의 분석에 기초하여 일본의 자동차회사 도요타의 운영 방식이 자본의 회전기간을 단축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2장에서는 일본 중년 여성이 저임금 파트타임 노동자로 자본의 이해에 따라 고용되거나 해고되는 현상을 ‘노동예비군’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맑스주의적 경제 개념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맑스 이론의 약점인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지적한다. 맑스가 노동자의 노동력 가치를 측정할 때 여성의 가사노동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남녀 간 성별 분업을 간과했다는 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저자는 여성주의 이론가들이 제안한 개념들을 받아들여 맑스주의 경제 이론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실제로 이 책에서 그러한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의 균형 잡힌 시각은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이었던 가사노동 논쟁의 한계를 지적하고 제3세계 농촌 여성의 생산 활동이 거의 무시되어 온 현실을 치밀한 현장 연구와 이론으로 타개하려고 시도하는 데서도 발휘된다. 저자의 결론대로 “생산의 비자본주의적 영역을 요구하면서도 결국 비유럽, 전(前)자본주의 경제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문어발처럼 움켜쥐고 통합하게 되는 자기모순적인 자본의 팽창 과정을 살피지 않고서는 여성의 노동 활동에 대해 온전한 평가를 내릴 수 없을 것”(479이며, 이러한 작업으로부터 여성 해방, 보편적 사회 해방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피터 커스터스
1970년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국제법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이어서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국제관계 3년 과정을 이수했다. 1995년 네덜란드 네이메헌 가톨릭 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 초반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방글라데시에 머물면서 네덜란드와 국제 신문 등에 많은 글을 기고해 왔다. 또한 소작농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사회상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배우게 된다. 이후 1980년대에는 핵전쟁의 위협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지난 20년간 유럽연합 의회와 각종 유럽의 기관들을 상대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등 남반구 문제와 관련하여 다양한 국제운동을 주도하고 지원해 왔다. 대표적으로 세계은행의 후원을 받은 ‘홍수 조절 계획’(FAP)과 아프리카의 무역 자유화(EPAs)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2010년에는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인권 옹호자 상’과 ‘방글라데시의 친구 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일간지인 『프로톰 알로』와 『데일리 스타』의 특파원과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역자 : 박소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와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동남아시아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인도네시아 사나타달마 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어(들)와 역사를 공부했다. 아시아를 비롯한 주변부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 회원. 서울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일하고 공부한다.
역자 : 장희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조직이론 및 비판조직이론을 전공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조직행동론, 인적자원관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울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며 ‘맑스주의와 여성주의’, ‘자본론 1권 강독’ 등의 세미나를 진행했다.
▣ 주요 목차
개정판 서문
서문
감사의 말
1장 _ 여성주의 그리고 아시아 경제의 여성 노동 개념화
1부 _ 역사적 관점에서 본 여성 노동에 관한 담론
2장 _ 노동계급 이론가들의 가부장적 편향 : 맑스와 프루동
3장 _ 독일 프롤레타리아 여성운동과 여성 노동
4장 _ 2세대 여성주의의 유산 : 가사노동 논쟁에 대한 재고
2부 _ 인도와 방글라데시 여성의 산업 노동
5장 _ 서벵골 의류 산업의 여성 가내노동자
6장 _ 방글라데시 공장제에서 여성 의류 제조 노동자 중 임금 노예
7장 _ 독일여성주의 학파와 가정주부화설
3부 _ 농업 생산자로서 여성의 역할
8장 _ 발전여성주의와 방글라데시 여성 농민의 노동
9장 _ 인도의 생태여성주의 담론
10장 _ 독일여성주의 학파와 생계노동설
4부 _ 일본화와 여성 노동
11장 _ 일본식 경영과 포드주의 비교
12장 _ 대규모 노동예비군으로서 일본 여성
13장 _ 결론 :? 현대 아시아의 자본 축적
참고문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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