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한 자유주의자의 특별한 시선
고종석은 ‘편 가르기’의 범주에 쉽사리 포착되지 않는 논객이다. 보수적인가 하면 진보적인 듯싶고, 진보적인가 하면 보수적인 듯싶다. 그러나 이는 편 가르기의 시선으로 그를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일 뿐이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자유주의자’였다. 고종석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여기에 입각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논리를 투명하게 펼쳐나간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는 어떤 모습일까?
제가 동의하는 사상에 대해서는 파시스트도 공산주의자도 기꺼이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그들과 다른 점은 제가 증오하는 사상에 대해서까지 너그러운 것이다._198쪽
고종석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적 좌파와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 온건한 우파”라고 규정한다. 우파는 우파이되, 다른 사상적 입장과의 공존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자유주의적인 면모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고종석이 보기에 국가보안법은 진즉에 폐기되었어야 할 악법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 세력이라면 국가보안법 폐기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당장 고종석을 ‘종북주의자’라고 낙인찍을 만하다. 하지만 고종석은 북한 정권에 대해 선을 긋는 정도를 넘어 강한 혐오감마저 드러낸다.
북한 체제는 현존하는 최악의 체제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역사상 최악의 체제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_39쪽
자유주의자 고종석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북한일 것이다. 북한은 좌익 정권도 아니고 사실상 “봉건적 가산국가”로서 나치 체제보다 더 촘촘한 전체주의 국가라는 게 고종석의 진단이다. 동시에 그는 남한의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도 똑같이 ‘자유’의 잣대를 들이댄다.
길게는 18년, 짧게 잡아도 7년간 박정희가 잔인하게 저지른 군사깡패 두목 짓에는 용서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 그는 민족반역자를 넘어선 인륜 파괴자였다._94쪽
전두환 씨에게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됐다는 것은 그가 살인자라는 뜻이다. 그것도 그냥 살인자가 아니라 국헌을 짓밟으며 집단살해를 저지른 인물이라는 뜻이다. 전 씨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반인도죄反人道罪의 당사자이자 반역자인 것이다._267쪽
이렇듯 고종석은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를 합리적 언어로 설득력 있게 비판한다. 자칫 한국 사회의 편 가르기 풍토에서 모두로부터 오해받을 수 있는 주장들이다. 그런 만큼 고종석은 세심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언어를 구사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종석 특유의 문체를 태동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는 좌와 우 이전에 자유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일관되게 고수하며, 한국 사회에 독특하고 매력적인 사유의 결을 제시한다.
개인주의의 확산을 바라며
고종석이 옹호하는 자유는 ‘집단의 자유’라기보다는 ‘개인의 자유’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권리에 제약을 받지 않고 당당한 자유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요원할 뿐이다. 고종석은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는 장면들을 세밀하게 포착하며, 그 문제점을 새삼 환기시킨다. 이와 관련해 특히 그가 여러 에세이들에서 거듭 지적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호남 차별이다.
영남을 정점으로 한 지역적-‘인종적’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 전라도가 있다._375쪽
한국 사회에서 경상도는 말하자면 근본이 있는 집안이고, 전라도는 말하자면 근본이 없는 집안이다._381쪽
일제 때 ‘센징’이 범죄자였듯, 지금은 ‘라도’가 범죄자인 것이다._388쪽
고종석은 전라도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에 의해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그것이 서구의 인종주의에 비견할 만하다고까지 강하게 비판한다. 호남 차별은 그의 자유주의적 심성을 심하게 거스른다. 고종석은 그 장기적 해법으로 개인주의의 확산을 제시한다.
전라도 차별이나 지역주의의 장기적.궁극적 해결은 개인주의의 확산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서 집단의 표상만을 읽는 집단주의가 융성하는 한,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은 사라질 수 없다. 전라도 차별을 떠받치고 있는 집단주의 정서는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동성애자, 이혼녀, 미혼모 등 모든 문화적 소수파를 차별하는 관행의 사회심리적 근거이기도 하다. 집단으로부터 해방된 주체적 개인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파 속에서 늘어날수록, 소수파들 역시 주체적 개인의 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_394쪽
고종석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라도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다. 그가 김현이나 김우창 같은 지식인들의 사례를 들며 격하게 공감하는 것으로 볼 때, 그 역시 ‘전라도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겪은 낭패감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런 곤혹스러움을 사회의 다른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나간다.
그 많은 장애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 그들은 왜 거리로 나오지 않는가? 우선,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거의 없다. 예컨대 휠체어에 몸을 실은 사람은 지하철을 탈 수도 없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없고, 높다란 건물을 쉬이 오를 수도 없고, 지하통로로 길을 건널 수도 없다._302쪽
담배 피우는 여성, 술 잘 마시는 여성, 이혼한 여성, 욕 잘하는 여성, 게으른 여성, 범죄를 저지른 여성, 성적으로 분방한 여성, 탐욕스러운 여성, 시건방진 여성은 동일한 행태를 보이는 남성보다 더 비판받는다. 요컨대 남성에게는 허물이랄 것도 없는 일이 여성에게는 허물이 되고, 남성에게 허물이 될 만한 부정적 가치의 행태는 여성에게는 훨씬 더 큰 허물로 평가된다. 여성이 받는 이런 차별적 시선은 계급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_493쪽
진보정치인이라면, 표를 헤아리기에 앞서 소수자들과 무조건 연대해야 할 테다. 차별 철폐야말로 진보의 핵심 가치이니 말이다._152쪽
고종석은 자신의 경력을 저널리스트로 시작했다. 그리고 서른 해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그만큼 시사 에세이들에는 그의 본원적 관심과 정체성이 잘 녹아 있다. 무엇보다 고종석의 작가적 시선은 시사적 주제를 그저 한순간 소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적실성 있는 생각할 거리로 탈바꿈시켜놓는다.
▣ 작가 소개
저 : 고종석
Koh, Johng-Seok,高宗錫
간결하면서도 냉철한 글로 유명한 고종석은 이 시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이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그는 24세에 한 영어 일간지의 기자가 된 이 후 지금까지 직업적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 왔다. 좋아하는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에릭 시걸, 존 그리셤 같은 영어권의 대중 소설가이고, 저널리즘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운 그가 선택한 신문은 르몽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도이다.
그를 정서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눈물을 훔쳐내며 읽은 심훈의 『상록수』이며, 그를 지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고등학교에서 내쳐져 자유롭던 열 일곱 살 때 골방에서 담배 피우기를 익히며 읽은 노먼 루이스의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다. 그는 자신의 문체에서 에릭 시걸과 김현과 복거일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에서 칼 포퍼와 김우창과 강준만을 느낀다.
「코리아타임스」,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지에서 스물 두 해 동안 기자 노릇을 한 그는 2005년 봄 「한국일보」논설위원직을 끝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멍에와 명예에서 벗어났다. 현재 도서출판 개마고원 기획위원으로 있다. 나이에 걸맞은 가장 노릇을 못하며 살아온 터라, 그는 더러 자신이 객원남편, 객원아비, 객원자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득 자신을 객원한국인이나 객원인류로 여길 때도 있다. ''객원''의 비정규성과 느슨함이 베푸는 자유의 감촉을 그는 무책임하게도 흐뭇해하는 편이다. 언젠가 페르시아어로 ''루바이어야트''를 읽어보는게 꿈이다. 특별히 집착하는 기호품은 디스 플러스 담배와 붉은 포도주와 아스피린이다.
지은 책으로는 사회비평집《서얼단상》《바리에떼》《자유의 무늬》《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경계 긋기의 어려움》, 문화비평집 《감염된 언어》《코드 훔치기》《말들의 풍경》, 한국어 크로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어루만지다》《언문세설》《국어의 풍경들》, 역사인물 크로키《여자들》《히스토리아》《발자국》, 영어 크로키《고종석의 영어 이야기》, 시 평론집 《모국어의 속살》, 장편소설《기자들》《독고준》《해피 패밀리》, 소설집《제망매》《엘리아의 제야》, 여행기《도시의 기억》, 서간집《고종석의 유럽통신》, 독서일기《책 읽기, 책 일기》, 에세이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들이 있다.
▣ 주요 목차
1부 정치의 이성, 이성의 정치
01 김대중 vs 박정희|02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이유 II|03 막말|04 4월 9일|05 김정일 이후|06 앞으로 한 해|07 이명박 외교와 ‘국익’|08 불편한 진실|09 전향轉向|10 헌법을 읽자|11 자궁이 양심을 대신할 순 없다|12 미국에 귀염받는 대통령|13 홍준표의 ‘종북’ 타령|14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이유|15 이승만은 고종, 김일성에 이은 넘버 쓰리|16 인류가 과연 21세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17 도덕 허무주의|18 ‘친일’ 청산은 역사적 정의다|19 보수주의자들이 4대강을 지켜야 한다!|20 대한민국 ‘국격’ 높이는 지름길|21 친일분자 박정희< 폭군 박정희|22 중국의 개운찮은 애국주의|23 마르크스라는 유혹|24 그에 대한 단상|25 증오의 언어|26 ‘북한 문제’라는 짐과 진보정치|27 심상정 생각|28 지난여름의 한기寒氣|29 허물어지는 ‘영광의 20년’|30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31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32 부자들의 문화헤게모니|33 민주노동당, 시간이 없다|34 끔찍한 동심童心|35 민주노동당과 성 소수자|36 브레히트에 기대어|37 ‘중도中道’라는 농담|38 통일보다 중요한 것|39 허영의 용도|40 ‘원산 상륙’이라는 망상|41 ‘안티조선’의 추억|42 ‘버핏의 경기장’을 넘어서|43 사형死刑존치론에도 일리는 있지만|44 다시, 국가보안법에 대하여|45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46 대통령 단임제는 옳다|47 ‘시청 앞 인공기’ 단상|48 삼가 옷깃을 여미며|49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50 북한 인권에 대해 발언하자|51 신기남 사태의 미적 효과|52 기억하라! 기억하라!|53 환멸을 견디는 법|54 장미, 피어나다|55 아무리 바른말일지라도|56 참여정부의 억약부강抑弱扶强|57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58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59 네오콘? 터미네이터!|60 표준적 민주주의를 향하여|61 기억을 회복한 뒤에야|62 유시민, 민주당, 개혁정당|63 추미애가 옳다|64 잔인한 어릿광대의 초상|65 열정의 계절 앞에서|66 원로님, 참으세요!|67 ‘권위주의 체제’ 유감|68 환멸을 넘어서|69 빨강|70 5월|71 특권|72 전라도|73 있어야 할 것, 없어야 할 것|74 장기수|75 진리의 열정에서 해방되기|76 김대중 대통령에게 남겨진 일|77 개헌|78 ‘단군 할아버지’는 없다|79 ‘기념비적 대작’의 정치학|80 친일|81 애국투사|82 무서운 신세계|83 유토피아에 반反해|84 6공 변명|85 박정희의 웃음|86 개인주의적 상상력 II|87 개인주의적 상상력 I|88 위기
2부 소수를 위한 변호
01 신분제로서의 지역주의|02 전라도 생각|03 제비뽑기의 정치학|04 작달막한 시민들의 우람한 보수주의|05 반反생물학을 위하여|06 분열 속에서 좌표 찾기
한 자유주의자의 특별한 시선
고종석은 ‘편 가르기’의 범주에 쉽사리 포착되지 않는 논객이다. 보수적인가 하면 진보적인 듯싶고, 진보적인가 하면 보수적인 듯싶다. 그러나 이는 편 가르기의 시선으로 그를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혼란일 뿐이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자유주의자’였다. 고종석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여기에 입각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논리를 투명하게 펼쳐나간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자유주의자는 어떤 모습일까?
제가 동의하는 사상에 대해서는 파시스트도 공산주의자도 기꺼이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그들과 다른 점은 제가 증오하는 사상에 대해서까지 너그러운 것이다._198쪽
고종석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적 좌파와 함께 살 준비가 돼 있는 온건한 우파”라고 규정한다. 우파는 우파이되, 다른 사상적 입장과의 공존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자유주의적인 면모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고종석이 보기에 국가보안법은 진즉에 폐기되었어야 할 악법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에 족쇄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 세력이라면 국가보안법 폐기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당장 고종석을 ‘종북주의자’라고 낙인찍을 만하다. 하지만 고종석은 북한 정권에 대해 선을 긋는 정도를 넘어 강한 혐오감마저 드러낸다.
북한 체제는 현존하는 최악의 체제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역사상 최악의 체제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_39쪽
자유주의자 고종석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북한일 것이다. 북한은 좌익 정권도 아니고 사실상 “봉건적 가산국가”로서 나치 체제보다 더 촘촘한 전체주의 국가라는 게 고종석의 진단이다. 동시에 그는 남한의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도 똑같이 ‘자유’의 잣대를 들이댄다.
길게는 18년, 짧게 잡아도 7년간 박정희가 잔인하게 저지른 군사깡패 두목 짓에는 용서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 그는 민족반역자를 넘어선 인륜 파괴자였다._94쪽
전두환 씨에게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됐다는 것은 그가 살인자라는 뜻이다. 그것도 그냥 살인자가 아니라 국헌을 짓밟으며 집단살해를 저지른 인물이라는 뜻이다. 전 씨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반인도죄反人道罪의 당사자이자 반역자인 것이다._267쪽
이렇듯 고종석은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를 합리적 언어로 설득력 있게 비판한다. 자칫 한국 사회의 편 가르기 풍토에서 모두로부터 오해받을 수 있는 주장들이다. 그런 만큼 고종석은 세심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언어를 구사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종석 특유의 문체를 태동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는 좌와 우 이전에 자유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일관되게 고수하며, 한국 사회에 독특하고 매력적인 사유의 결을 제시한다.
개인주의의 확산을 바라며
고종석이 옹호하는 자유는 ‘집단의 자유’라기보다는 ‘개인의 자유’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권리에 제약을 받지 않고 당당한 자유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요원할 뿐이다. 고종석은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는 장면들을 세밀하게 포착하며, 그 문제점을 새삼 환기시킨다. 이와 관련해 특히 그가 여러 에세이들에서 거듭 지적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호남 차별이다.
영남을 정점으로 한 지역적-‘인종적’ 위계질서의 맨 아래에 전라도가 있다._375쪽
한국 사회에서 경상도는 말하자면 근본이 있는 집안이고, 전라도는 말하자면 근본이 없는 집안이다._381쪽
일제 때 ‘센징’이 범죄자였듯, 지금은 ‘라도’가 범죄자인 것이다._388쪽
고종석은 전라도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에 의해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그것이 서구의 인종주의에 비견할 만하다고까지 강하게 비판한다. 호남 차별은 그의 자유주의적 심성을 심하게 거스른다. 고종석은 그 장기적 해법으로 개인주의의 확산을 제시한다.
전라도 차별이나 지역주의의 장기적.궁극적 해결은 개인주의의 확산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서 집단의 표상만을 읽는 집단주의가 융성하는 한,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은 사라질 수 없다. 전라도 차별을 떠받치고 있는 집단주의 정서는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동성애자, 이혼녀, 미혼모 등 모든 문화적 소수파를 차별하는 관행의 사회심리적 근거이기도 하다. 집단으로부터 해방된 주체적 개인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파 속에서 늘어날수록, 소수파들 역시 주체적 개인의 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_394쪽
고종석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라도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다. 그가 김현이나 김우창 같은 지식인들의 사례를 들며 격하게 공감하는 것으로 볼 때, 그 역시 ‘전라도 사람’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겪은 낭패감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런 곤혹스러움을 사회의 다른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나간다.
그 많은 장애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 그들은 왜 거리로 나오지 않는가? 우선,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거의 없다. 예컨대 휠체어에 몸을 실은 사람은 지하철을 탈 수도 없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없고, 높다란 건물을 쉬이 오를 수도 없고, 지하통로로 길을 건널 수도 없다._302쪽
담배 피우는 여성, 술 잘 마시는 여성, 이혼한 여성, 욕 잘하는 여성, 게으른 여성, 범죄를 저지른 여성, 성적으로 분방한 여성, 탐욕스러운 여성, 시건방진 여성은 동일한 행태를 보이는 남성보다 더 비판받는다. 요컨대 남성에게는 허물이랄 것도 없는 일이 여성에게는 허물이 되고, 남성에게 허물이 될 만한 부정적 가치의 행태는 여성에게는 훨씬 더 큰 허물로 평가된다. 여성이 받는 이런 차별적 시선은 계급과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_493쪽
진보정치인이라면, 표를 헤아리기에 앞서 소수자들과 무조건 연대해야 할 테다. 차별 철폐야말로 진보의 핵심 가치이니 말이다._152쪽
고종석은 자신의 경력을 저널리스트로 시작했다. 그리고 서른 해 가까이 저널리스트로 살았다. 그만큼 시사 에세이들에는 그의 본원적 관심과 정체성이 잘 녹아 있다. 무엇보다 고종석의 작가적 시선은 시사적 주제를 그저 한순간 소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적실성 있는 생각할 거리로 탈바꿈시켜놓는다.
▣ 작가 소개
저 : 고종석
Koh, Johng-Seok,高宗錫
간결하면서도 냉철한 글로 유명한 고종석은 이 시대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다.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언어학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법학과 언어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이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그는 24세에 한 영어 일간지의 기자가 된 이 후 지금까지 직업적 저널리스트 생활을 해 왔다. 좋아하는 작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에릭 시걸, 존 그리셤 같은 영어권의 대중 소설가이고, 저널리즘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운 그가 선택한 신문은 르몽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도이다.
그를 정서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눈물을 훔쳐내며 읽은 심훈의 『상록수』이며, 그를 지적으로 압도한 최초의 책은 고등학교에서 내쳐져 자유롭던 열 일곱 살 때 골방에서 담배 피우기를 익히며 읽은 노먼 루이스의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다. 그는 자신의 문체에서 에릭 시걸과 김현과 복거일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자신의 생각에서 칼 포퍼와 김우창과 강준만을 느낀다.
「코리아타임스」, 「한겨레신문」, 「시사저널」 등지에서 스물 두 해 동안 기자 노릇을 한 그는 2005년 봄 「한국일보」논설위원직을 끝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멍에와 명예에서 벗어났다. 현재 도서출판 개마고원 기획위원으로 있다. 나이에 걸맞은 가장 노릇을 못하며 살아온 터라, 그는 더러 자신이 객원남편, 객원아비, 객원자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득 자신을 객원한국인이나 객원인류로 여길 때도 있다. ''객원''의 비정규성과 느슨함이 베푸는 자유의 감촉을 그는 무책임하게도 흐뭇해하는 편이다. 언젠가 페르시아어로 ''루바이어야트''를 읽어보는게 꿈이다. 특별히 집착하는 기호품은 디스 플러스 담배와 붉은 포도주와 아스피린이다.
지은 책으로는 사회비평집《서얼단상》《바리에떼》《자유의 무늬》《신성동맹과 함께 살기》《경계 긋기의 어려움》, 문화비평집 《감염된 언어》《코드 훔치기》《말들의 풍경》, 한국어 크로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어루만지다》《언문세설》《국어의 풍경들》, 역사인물 크로키《여자들》《히스토리아》《발자국》, 영어 크로키《고종석의 영어 이야기》, 시 평론집 《모국어의 속살》, 장편소설《기자들》《독고준》《해피 패밀리》, 소설집《제망매》《엘리아의 제야》, 여행기《도시의 기억》, 서간집《고종석의 유럽통신》, 독서일기《책 읽기, 책 일기》, 에세이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들이 있다.
▣ 주요 목차
1부 정치의 이성, 이성의 정치
01 김대중 vs 박정희|02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이유 II|03 막말|04 4월 9일|05 김정일 이후|06 앞으로 한 해|07 이명박 외교와 ‘국익’|08 불편한 진실|09 전향轉向|10 헌법을 읽자|11 자궁이 양심을 대신할 순 없다|12 미국에 귀염받는 대통령|13 홍준표의 ‘종북’ 타령|14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이유|15 이승만은 고종, 김일성에 이은 넘버 쓰리|16 인류가 과연 21세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17 도덕 허무주의|18 ‘친일’ 청산은 역사적 정의다|19 보수주의자들이 4대강을 지켜야 한다!|20 대한민국 ‘국격’ 높이는 지름길|21 친일분자 박정희< 폭군 박정희|22 중국의 개운찮은 애국주의|23 마르크스라는 유혹|24 그에 대한 단상|25 증오의 언어|26 ‘북한 문제’라는 짐과 진보정치|27 심상정 생각|28 지난여름의 한기寒氣|29 허물어지는 ‘영광의 20년’|30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31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32 부자들의 문화헤게모니|33 민주노동당, 시간이 없다|34 끔찍한 동심童心|35 민주노동당과 성 소수자|36 브레히트에 기대어|37 ‘중도中道’라는 농담|38 통일보다 중요한 것|39 허영의 용도|40 ‘원산 상륙’이라는 망상|41 ‘안티조선’의 추억|42 ‘버핏의 경기장’을 넘어서|43 사형死刑존치론에도 일리는 있지만|44 다시, 국가보안법에 대하여|45 언론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하여|46 대통령 단임제는 옳다|47 ‘시청 앞 인공기’ 단상|48 삼가 옷깃을 여미며|49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50 북한 인권에 대해 발언하자|51 신기남 사태의 미적 효과|52 기억하라! 기억하라!|53 환멸을 견디는 법|54 장미, 피어나다|55 아무리 바른말일지라도|56 참여정부의 억약부강抑弱扶强|57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58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59 네오콘? 터미네이터!|60 표준적 민주주의를 향하여|61 기억을 회복한 뒤에야|62 유시민, 민주당, 개혁정당|63 추미애가 옳다|64 잔인한 어릿광대의 초상|65 열정의 계절 앞에서|66 원로님, 참으세요!|67 ‘권위주의 체제’ 유감|68 환멸을 넘어서|69 빨강|70 5월|71 특권|72 전라도|73 있어야 할 것, 없어야 할 것|74 장기수|75 진리의 열정에서 해방되기|76 김대중 대통령에게 남겨진 일|77 개헌|78 ‘단군 할아버지’는 없다|79 ‘기념비적 대작’의 정치학|80 친일|81 애국투사|82 무서운 신세계|83 유토피아에 반反해|84 6공 변명|85 박정희의 웃음|86 개인주의적 상상력 II|87 개인주의적 상상력 I|88 위기
2부 소수를 위한 변호
01 신분제로서의 지역주의|02 전라도 생각|03 제비뽑기의 정치학|04 작달막한 시민들의 우람한 보수주의|05 반反생물학을 위하여|06 분열 속에서 좌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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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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