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반란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참혹한 고문을 견디고
특별사면으로 출옥한 뒤,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꿈꾸며 집필한 『군주론』,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의 시대를 예견한
마키아벨리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1512년 3월,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두 달 뒤, 오늘날 외교안보수석쯤 되는 제2행정위원회 서기장으로 있던 마키아벨리도 자리에서 해임된다. 이듬해 2월, 마키아벨리는 반(反) 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어 투옥되고, 지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감옥에 있는 동안 받은 ‘스트라파도(strappado)’라는 고문(일명 ‘날개꺾어 거꾸로 매달기’)은 가죽끈으로 두 팔을 뒤로 묶어서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가 갑자기 떨어뜨려 땅에 닿기 전에 멈추는 것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고문은 여러 차례 받기 힘든 고문이다. 이 고문을 두 번 정도 받으면 어깨와 팔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어깨가 부서지고 기가 꺾이면서 정신을 잃고 만다. 탈골이 되면 줄을 확 풀어서 맨바닥에 처박아버린다. 그 정도 되면 어깨와 팔의 기능이 마비될 뿐만 아니라, 머리가 깨져서 죽거나 결국 폐인이 된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이 고문을 여섯 차례 당하고 살아남았다. 그해 3월, 마키아벨리는 레오 10세 교황이 선출된 뒤 단행된 특별사면으로 출옥, 피렌체 외곽에 은둔하며 장작을 패고 새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면서 『군주론』을 썼다. 1513년에 집필을 마친 『군주론』은 필사본으로 사람들에게 읽히다가 20년이 지난 153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살았던(1469~1527) 시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들을 배출하는 등 그의 조국 피렌체에서 꽃피웠던 르네상스가 저물어가던 때이자,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분열을 겪으며 자체 군대도 없이 외교술과 용병에 안보를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마지막 장인 26장에서 당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들보다 더 노예 생활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종살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아테네인들보다 더 흩어져 살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없고 질서도 없었던 이탈리아인들은 이리저리 치이고, 약탈당하고, 괴롭힘당하고, 유린당하고, 갖가지 몰락을 다 당해야 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조국이 놓인 바로 이 참담한 현실 인식으로부터 『군주론』을 집필했다.
“나는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꿈꾸며 이 책을 썼다.” 마키아벨리가 뒷날 친구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에게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 편지 내용처럼,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극복할 뿐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수 있는, 역량 있는 정체로서의 공화국’에 대한 꿈과 이를 이루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군주’에 대한 절절한 바람을 담아 전하고자 썼던 것이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의 시대를 예견한 기념비적 저작,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초석을 놓은 『군주론』-
‘구조분석 독법’을 통해 오늘 우리 시대를 읽는다!
시민을 위한 정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위한 조건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의 조건을 논증한다.
1) 군주의 권력 기반은 반드시 인민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인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가 명령할 수 있는 군주라고 한다면, 역경의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었다면, 용기와 통치로 대중의 정신을 견인하고 있다면, 그는 인민에게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토대들을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342쪽)
2) 권력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서는 인민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인민을 확실하게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억압하기를 원하지만 인민은 억압받지 않기를 원할 뿐이므로, 인민의 목적은 부자들의 목적보다 믿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자들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적대적인 인민에게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민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부자들에게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그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326쪽)
3) 어떠한 군대나 무기도 인민의 호의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지킬 수 없다
“어떤 경우이든 당신에게 가장 좋은 요새는 당신의 신민이 당신을 증오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민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요새는 당신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민이 무기를 든다면 인민은 자신들을 도와줄 외국 세력을 반드시 찾아내기 때문입니다.”(705~706쪽)
4)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는 인민이 아니라 부자와 귀족(오늘날의 기득권층)이다
“부자들의 도움으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는 인민의 도움을 받아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보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군주와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부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부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없고 부자들을 마음대로 다루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326쪽)
5) 『군주론』이 꿈꾸는 군주(오늘날의 최고권력자)는 철저히 자신의 역량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계속 구조해 주러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서 몰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발생한다 해도 당신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 해결 능력은 비열할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는 방책만이 훌륭하며, 확실하며, 지속을 보장합니다.”(784~785쪽)
마키아벨리는 “인민을 중시하라”(1부)는 혁명적인 선언과, “좋은 법보다는 훌륭한 군대가 더 중요하다”(2부)는 폭탄 발언을 한다.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고 한 이 선언과 발언은 마키아벨리 이전의 상식과 충돌하고, 마키아벨리 당대의 지성·종교와 충돌하고, 마키아벨리 이후의 우리 교양과도 상충한다. 마키아벨리는 또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3부, 4부)라는 연구 방법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시도한다. 과거의 모든 연구 방법, 이에 영향을 받은 모든 종교적 사유,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과학·철학 등에 적용되는 연구 방법을 세계 밖으로 밀쳐내 버린다.
『군주론』은 인간의 상식에 도전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구석구석에서 인간의 흔한 상식을 뒤집어엎는다. 우리가 『군주론』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존의 가치관, 통념으로 유포되는 생각,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도덕관을 그는 가차 없이 전복한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마키아벨리 당대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실례와 의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과 이를 이루기 위한 지도자(군주)의 상(像)을 ‘다면적 심층 독서법’을 통해 살펴볼 수 있게 한다.
▣ 작가 소개
저 :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철학자, 음악가, 시인 그리고 희곡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운동이 최고봉에 달했던 15세기 중반, 1469년 5월 3일. 마키아벨리는 ‘유럽의 꽃밭’이라 불린 피렌체에서 법학자인 베르나르도 마키아벨리와 바르트로메아 데 네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98년 약관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 주로 외교업무를 담당했다. 1500년 7월에 처음으로 외교사절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 루이 12세의 궁정에 파견되었던 그는 3년 뒤에 로마로 파견되어 체사레 보르자의 도움으로 교황에 선출된 율리우스 2세가 무모할 정도의 단호한 행동으로 세력을 직접 확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512년 스페인에 의해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해 메디치 정부를 몰아내려다 실패로 끝난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고 투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메디치 가의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에 즉위하자 특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것은 실제 정치 이론을 반영 묘사한 그의 단편 The Prince [군주론]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그의 사후인 1530년대 초반에 인쇄되었는데,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친구들에게 작품을 돌렸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6세기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을 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을 받는 등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던 책, 군주론으로 인해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은 후대에 냉혹한 정치, 술수 그리고 권력 추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위대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며, 군사전략가이자 사상가이며, 저술가이자 문학가였다.
정치가로서의 그의 명성은『군주론』을 통해 형성되었다.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프랑스의 루이 12세,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황제, 교황 율리우스 2세,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를 직접 만난 그는 강력한 힘을 지닌 군주가 이탈리아의 내부 분열을 종식시키고 조국의 안정을 찾아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기대를『군주론』이라는 정치사상의 고전으로 탄생시켰다. 무릇 정치사상이란 그 사상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는 올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살던 피렌체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 그가『군주론』을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 즉 혼란했던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세의 질서가 차츰 무너지고, 근대국가의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군소 국가들 간의 대립, 외세의 침략 등 어지러운 상황에서 메디치 가문이 강력한 군주로 등장해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 피렌체를 구해 줄 것을 염원하는 바람이 마키아벨리의『군주론』에는 담겨 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문예의 토양을 바탕으로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대표적 문학작품인 희곡 『만드라골라』를 통해 부패한 지도층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만드라골라』는 이탈리아 연극 사상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내 영혼보다 조국 피렌체를 더 사랑했다.”고 고백한 그는 관대하고 열정적이며, 정직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였으며, 성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마키아벨리는 1520년 『피렌체사』집필을 시작하여, 1527년 메디치 군주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복원되었으나 6월 21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여러 나라로 분열되고 외세의 지배를 개탄, 강력한 군주 아래 통일되기를 열망하며 『군주론』, 『전술론』, 『로마사론』등의 명저를 남겼다.
역자 : 이남석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사상사와 문화정치론을 강의하고 있다. 《차이의 정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책으로 《참여하는 시민 즐거운 정치》, 《알바에게 주는 지침》을 썼고, 《세대문제》, 《페미니즘정치사상사》,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지도자 선출》 등을 번역했다. 십여 년 넘게 매주 토요일 플라톤, 니체, 프로이트 등의 주요 저작을 읽는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내면서
들어가는 말
1. 《군주론》 백배로 즐기기
2. 전문가의 독서를 넘어서기
3. 나만의 《군주론》를 위하여
최고의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올리는 글
1부. 군주와 인민의 관계
1장 다양한 유형의 군주국과 그 군주국들의 형성 과정
2장 세습 군주국
3장 병합 군주국
4장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했던 다리우스 왕국은 왜 그가 죽은 후에 그의 계승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5장 정복되기 전 독자적인 법을 유지하며 살던 국가 또는 군주국은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가
6장 자신의 군대와 능력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들
7장 다른 사람의 무력에 의지해, 그리고 행운을 통해 획득된 신흥 군주국들
8장 사악한 행위들로 군주국을 획득한 자들
9장 “시민형 군주국”
10장 군주국 종류에 관계없이 군사력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11장 교회형 군주국
2부. 군주와 군대
12장 다양한 유형의 군대: 용병들
13장 원군, 연합군, 그리고 자국군
14장 군사 업무에 관한 군주의 의무
3부. 군주의 역량
15장 사람들, 그리고 특히 군주들이 칭찬받거나 비난받은 그러한 이유들
16장 활수와 인색
17장 잔인함과 인자함: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나은가?
18장 군주는 자신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19장 군주는 반드시 경멸과 증오를 피해야 한다
20장 요새와 군주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많은 일은 유용한가 또는 해로운가
21장 군주가 더 좋은 평판을 얻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22장 군주가 신뢰할 만한 신하들
23장 아첨꾼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4부.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제언
24장 이탈리아 군주들은 왜 나라를 잃게 되었는가
25장 인간사에서 행운의 여신의 힘, 그리고 행운의 여신을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
26장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야만인들에게서 해방하기 위한 권고
목차에 대해서
참고문헌
찾아보기
반란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참혹한 고문을 견디고
특별사면으로 출옥한 뒤,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꿈꾸며 집필한 『군주론』,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의 시대를 예견한
마키아벨리가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1512년 3월,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두 달 뒤, 오늘날 외교안보수석쯤 되는 제2행정위원회 서기장으로 있던 마키아벨리도 자리에서 해임된다. 이듬해 2월, 마키아벨리는 반(反) 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어 투옥되고, 지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감옥에 있는 동안 받은 ‘스트라파도(strappado)’라는 고문(일명 ‘날개꺾어 거꾸로 매달기’)은 가죽끈으로 두 팔을 뒤로 묶어서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가 갑자기 떨어뜨려 땅에 닿기 전에 멈추는 것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고문은 여러 차례 받기 힘든 고문이다. 이 고문을 두 번 정도 받으면 어깨와 팔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어깨가 부서지고 기가 꺾이면서 정신을 잃고 만다. 탈골이 되면 줄을 확 풀어서 맨바닥에 처박아버린다. 그 정도 되면 어깨와 팔의 기능이 마비될 뿐만 아니라, 머리가 깨져서 죽거나 결국 폐인이 된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이 고문을 여섯 차례 당하고 살아남았다. 그해 3월, 마키아벨리는 레오 10세 교황이 선출된 뒤 단행된 특별사면으로 출옥, 피렌체 외곽에 은둔하며 장작을 패고 새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면서 『군주론』을 썼다. 1513년에 집필을 마친 『군주론』은 필사본으로 사람들에게 읽히다가 20년이 지난 153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1559년 교황 파울루스 4세에 의해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살았던(1469~1527) 시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들을 배출하는 등 그의 조국 피렌체에서 꽃피웠던 르네상스가 저물어가던 때이자,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분열을 겪으며 자체 군대도 없이 외교술과 용병에 안보를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마지막 장인 26장에서 당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들보다 더 노예 생활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페르시아인들보다 더 종살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아테네인들보다 더 흩어져 살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없고 질서도 없었던 이탈리아인들은 이리저리 치이고, 약탈당하고, 괴롭힘당하고, 유린당하고, 갖가지 몰락을 다 당해야 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조국이 놓인 바로 이 참담한 현실 인식으로부터 『군주론』을 집필했다.
“나는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꿈꾸며 이 책을 썼다.” 마키아벨리가 뒷날 친구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에게 『군주론』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 편지 내용처럼,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극복할 뿐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수 있는, 역량 있는 정체로서의 공화국’에 대한 꿈과 이를 이루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군주’에 대한 절절한 바람을 담아 전하고자 썼던 것이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의 시대를 예견한 기념비적 저작,
근대 현실주의 정치사상의 초석을 놓은 『군주론』-
‘구조분석 독법’을 통해 오늘 우리 시대를 읽는다!
시민을 위한 정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을 위한 조건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의 조건을 논증한다.
1) 군주의 권력 기반은 반드시 인민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인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그가 명령할 수 있는 군주라고 한다면, 역경의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었다면, 용기와 통치로 대중의 정신을 견인하고 있다면, 그는 인민에게 배신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토대들을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342쪽)
2) 권력의 안전과 유지를 위해서는 인민의 지지가 절대적이다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인민을 확실하게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억압하기를 원하지만 인민은 억압받지 않기를 원할 뿐이므로, 인민의 목적은 부자들의 목적보다 믿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부자들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적대적인 인민에게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민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인민의 지지를 받아 군주에 오른 자는 부자들에게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그 수가 적기 때문입니다.”(326쪽)
3) 어떠한 군대나 무기도 인민의 호의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권력을 지킬 수 없다
“어떤 경우이든 당신에게 가장 좋은 요새는 당신의 신민이 당신을 증오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요새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민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요새는 당신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민이 무기를 든다면 인민은 자신들을 도와줄 외국 세력을 반드시 찾아내기 때문입니다.”(705~706쪽)
4)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는 인민이 아니라 부자와 귀족(오늘날의 기득권층)이다
“부자들의 도움으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는 인민의 도움을 받아 군주의 지위에 오른 자보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군주와 동등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부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부자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도 없고 부자들을 마음대로 다루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326쪽)
5) 『군주론』이 꿈꾸는 군주(오늘날의 최고권력자)는 철저히 자신의 역량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계속 구조해 주러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서 몰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발생한다 해도 당신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문제 해결 능력은 비열할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는 방책만이 훌륭하며, 확실하며, 지속을 보장합니다.”(784~785쪽)
마키아벨리는 “인민을 중시하라”(1부)는 혁명적인 선언과, “좋은 법보다는 훌륭한 군대가 더 중요하다”(2부)는 폭탄 발언을 한다.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고 한 이 선언과 발언은 마키아벨리 이전의 상식과 충돌하고, 마키아벨리 당대의 지성·종교와 충돌하고, 마키아벨리 이후의 우리 교양과도 상충한다. 마키아벨리는 또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3부, 4부)라는 연구 방법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시도한다. 과거의 모든 연구 방법, 이에 영향을 받은 모든 종교적 사유, 그리고 대부분의 사회과학·철학 등에 적용되는 연구 방법을 세계 밖으로 밀쳐내 버린다.
『군주론』은 인간의 상식에 도전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구석구석에서 인간의 흔한 상식을 뒤집어엎는다. 우리가 『군주론』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존의 가치관, 통념으로 유포되는 생각,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도덕관을 그는 가차 없이 전복한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마키아벨리 당대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실례와 의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꿈꿨던 ‘시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공화국’과 이를 이루기 위한 지도자(군주)의 상(像)을 ‘다면적 심층 독서법’을 통해 살펴볼 수 있게 한다.
▣ 작가 소개
저 :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철학자, 음악가, 시인 그리고 희곡가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운동이 최고봉에 달했던 15세기 중반, 1469년 5월 3일. 마키아벨리는 ‘유럽의 꽃밭’이라 불린 피렌체에서 법학자인 베르나르도 마키아벨리와 바르트로메아 데 네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498년 약관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 참여, 주로 외교업무를 담당했다. 1500년 7월에 처음으로 외교사절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 루이 12세의 궁정에 파견되었던 그는 3년 뒤에 로마로 파견되어 체사레 보르자의 도움으로 교황에 선출된 율리우스 2세가 무모할 정도의 단호한 행동으로 세력을 직접 확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512년 스페인에 의해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의 군주정이 복원되자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다음해 메디치 정부를 몰아내려다 실패로 끝난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고 투옥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메디치 가의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 레오 10세에 즉위하자 특사를 받고 석방되었다.
마키아벨리가 유명해진 계기가 된 것은 실제 정치 이론을 반영 묘사한 그의 단편 The Prince [군주론]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그의 사후인 1530년대 초반에 인쇄되었는데,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친구들에게 작품을 돌렸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16세기 이후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을 하면서도 동시에 비판을 받는 등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었던 책, 군주론으로 인해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은 후대에 냉혹한 정치, 술수 그리고 권력 추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위대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며, 군사전략가이자 사상가이며, 저술가이자 문학가였다.
정치가로서의 그의 명성은『군주론』을 통해 형성되었다.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프랑스의 루이 12세,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황제, 교황 율리우스 2세, 그리고 체사레 보르자를 직접 만난 그는 강력한 힘을 지닌 군주가 이탈리아의 내부 분열을 종식시키고 조국의 안정을 찾아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기대를『군주론』이라는 정치사상의 고전으로 탄생시켰다. 무릇 정치사상이란 그 사상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는 올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살던 피렌체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 그가『군주론』을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 즉 혼란했던 당시의 이탈리아 반도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세의 질서가 차츰 무너지고, 근대국가의 틀이 갖추어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군소 국가들 간의 대립, 외세의 침략 등 어지러운 상황에서 메디치 가문이 강력한 군주로 등장해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 피렌체를 구해 줄 것을 염원하는 바람이 마키아벨리의『군주론』에는 담겨 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 문예의 토양을 바탕으로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그의 대표적 문학작품인 희곡 『만드라골라』를 통해 부패한 지도층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만드라골라』는 이탈리아 연극 사상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내 영혼보다 조국 피렌체를 더 사랑했다.”고 고백한 그는 관대하고 열정적이며, 정직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였으며, 성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마키아벨리는 1520년 『피렌체사』집필을 시작하여, 1527년 메디치 군주정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복원되었으나 6월 21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여러 나라로 분열되고 외세의 지배를 개탄, 강력한 군주 아래 통일되기를 열망하며 『군주론』, 『전술론』, 『로마사론』등의 명저를 남겼다.
역자 : 이남석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사상사와 문화정치론을 강의하고 있다. 《차이의 정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시민불복종》,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책으로 《참여하는 시민 즐거운 정치》, 《알바에게 주는 지침》을 썼고, 《세대문제》, 《페미니즘정치사상사》, 《행정의 공개성과 정치지도자 선출》 등을 번역했다. 십여 년 넘게 매주 토요일 플라톤, 니체, 프로이트 등의 주요 저작을 읽는 책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책을 내면서
들어가는 말
1. 《군주론》 백배로 즐기기
2. 전문가의 독서를 넘어서기
3. 나만의 《군주론》를 위하여
최고의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올리는 글
1부. 군주와 인민의 관계
1장 다양한 유형의 군주국과 그 군주국들의 형성 과정
2장 세습 군주국
3장 병합 군주국
4장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했던 다리우스 왕국은 왜 그가 죽은 후에 그의 계승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5장 정복되기 전 독자적인 법을 유지하며 살던 국가 또는 군주국은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가
6장 자신의 군대와 능력으로 획득한 새로운 군주국들
7장 다른 사람의 무력에 의지해, 그리고 행운을 통해 획득된 신흥 군주국들
8장 사악한 행위들로 군주국을 획득한 자들
9장 “시민형 군주국”
10장 군주국 종류에 관계없이 군사력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11장 교회형 군주국
2부. 군주와 군대
12장 다양한 유형의 군대: 용병들
13장 원군, 연합군, 그리고 자국군
14장 군사 업무에 관한 군주의 의무
3부. 군주의 역량
15장 사람들, 그리고 특히 군주들이 칭찬받거나 비난받은 그러한 이유들
16장 활수와 인색
17장 잔인함과 인자함: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나은가?
18장 군주는 자신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19장 군주는 반드시 경멸과 증오를 피해야 한다
20장 요새와 군주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많은 일은 유용한가 또는 해로운가
21장 군주가 더 좋은 평판을 얻으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22장 군주가 신뢰할 만한 신하들
23장 아첨꾼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4부.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제언
24장 이탈리아 군주들은 왜 나라를 잃게 되었는가
25장 인간사에서 행운의 여신의 힘, 그리고 행운의 여신을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
26장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야만인들에게서 해방하기 위한 권고
목차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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