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1977년 출간되어 지금도 사랑받는 일본인 및 일본 사회문화론의 고전
국내 저자가 쓴 최고의 일본인론이라 불리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의 문화적 유전인자를 ‘집약’과 ‘축소’라는 키워드로 설명한 책이다. 일본론을 연구한 세계적인 고전이라 불리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양면성을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찬 일본인’으로 규정한 책이다. 전자는 역사의 질곡을 함께해 온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있고,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국무부의 의뢰로 적국인 일본인의 국민성을 일본 답사도 없이 논문과 문헌만으로 조사했기에 두 책 모두 명성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론의 대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1977년에 집필한 이 책 『공기의 연구』는 일본 지식인 스스로가 들여다본 일본인론이자 일본 사회문화론으로서,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론의 교과서로 읽히고 있는 명저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무형의 분위기에 집단적으로 지배당하는 일본 특유의 이유를 ‘공기’와 ‘물’이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설명했다. 말하자면, 일본 사회와 조직은 논리적 이론이나 합리적 근거가 아닌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일상용어로 자주 등장하는 ‘KY(구키 요메나이, 즉 공기를 못 읽는다)=눈치가 없다’라고 할 때의 ‘공기’를 최초로 명명한 사람이 바로 저자다.
일본 사회의 이성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인가?
― 물을 끼얹어도 효과가 없을 정도로 강한 ‘공기’의 힘이 일본을 구속한다
저자는 일본인이 종종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은 있지만, 당시 회의 공기로는……”, “당시 회의장의 공기로 말하자면……”, “그 무렵 사회 전반의 공기를 모르면서 비판하면……”, “그 자리의 공기도 모르면서 잘난 체하지 마라”, “그 자리의 공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등등 온갖 경우에 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공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공기의 구속력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뤄진 국가적, 군사적 차원의 이슈들을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함 야마토의 출격의 결정에 관여한 전문가들이 모두 무모하고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대하지 못했던 모습이 ‘공기’의 지배의 전형적인 사례로 제시되고 있는데, 천황을 앞세운 공기가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심지어 이불 속까지 파고들고 있음을 책 전반에 걸쳐 증명하고 있다.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일본론인 ‘공기론’은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굳이 일본을 공기론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공기에 대한 일본인만이 가진 예민하고도 신속한 반응과 적응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절대적인 공기의 지배·구속력 때문이다. 즉 일본인의 의사 결정은 뭔지 모를 ‘공기’에 지배당하고 있는데, 사람이 진짜 공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공기’는 일본 사회에서의 대화와 논의에서는 누구나 그렇다고 느끼거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것, 나아가 부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다. 때때로 그런 ‘공기’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나오기는 하지만, 저자가 이른바 ‘물을 끼얹는다’고 표현한 그와 같은 발언은 알맞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그 자리의 ‘공기’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고, 모두 그러한 규탄이 두려워 그 자리의 공기에 속박되어 버리는 것이다.
저자가 정의한 일본인은 ‘상황을 임재감적으로 파악하여 역으로 상황에 지배됨으로써 움직이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상황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논리적?체계적으로 논증하더라도 그 때문에 움직이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상황에 대응할 줄 안다는 점에서는 천재적’이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이나 오일 쇼크로 인한 세제 소동 등을 예로 들면서 일본인은 ‘공기’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안 논리적 설득으로도 심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말을 통한 과학적 논증이 무력하게 됨도 지적했다.
독창적인 일본인론으로 본 ‘허구 속에서 진실을 찾는 사회’
― 3편의 소논문으로 구성, 192개 역자 주석의 풍부한 해설이 이해를 돕는다
모두를 휘두르는 이 ‘아무도 보지 못하는 힘’인 ‘공기’는 시시한 일상 회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대목에서, 혹은 국가의 진로에 관한 여론의 형성 과정을 지배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 논의와 적확한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도 이러한 공기가 일본인의 이성을 망가뜨리고 합리적 정책 결정을 방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공기가 지배하는 사고를 피하지 못하고 그것에 속박된 채 의사결정을 하면 누구나 회피하고 싶은 전쟁에 모두가 찬성하고 돌입했던 우를 다시 범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앞서 ‘공기’를 가시화하여 그 존재를 인식하고 그 성질을 객관적, 비판적으로 밝히는 ‘찬물을 끼얹는’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공기’의 연구]에서는 임재감적 파악, 공기의 조성 등을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물=통상성’의 연구]에서는 공기의 지배에 저항하는 ‘물을 끼얹는다’라는 방법, 즉 통상성과, 공기와 물의 관계를 보완하는 일본적 상황 논리와 상황 윤리에 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적 근본주의에 관하여]에서는 ‘현인신과 진화론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의 모순’을 일본적 근본주의로 설명한다.
더불어 한국어판인 이 책에는 옮긴이의 주석이 192개나 달려 있다. 저자가 자신만의 개념을 만들어 보통의 어휘에 그 독특한 의미를 덮어씌우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은 인색한 대목이 등장하고, 일본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인물·사건 등이 등장하는데, 옮긴이가 일일이 자료를 조사하고 자문을 받아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충실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야마모토 시치헤이
山本七平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 작가이자 자신이 창립한 야마모토서점山本書店 출판사에서 각종 성서 관련 서적 및 유대계 번역본을 출판한 경영인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아오야마가쿠인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바 있다. 1942년 그는 아오야마가쿠인 고등상업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징병되어 포병대 소속 간부후보생으로 선발되었으며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포병대 장교로서 필리핀으로 파병, 루손 섬 전투에 참가했으며 일본이 패전한 후 필리핀 마닐라의 포로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1947년에 귀국했다.
이후 1970년 이사야 벤 다산Isaiah Ben-Dasan이란 필명으로 출간한 『일본인과 유대인』이 비교문화론을 다룬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제2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 상을 수상했다. 그 후로도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일본인·일본 문화와 사회 전반적인 현상 및 행동양식을 ‘공기(분위기)의 연구’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독자적인 시각에서 비판적인 분석을 개진해나갔다.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이것이 ‘야마모토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97년 이나가키 다케시가 출판한 『분노를 지배하는 자. 평전. 야마모토 시치헤이』에는 야마모토의 저서 관련 내용이 상당 부분 언급되어 있으며 야마모토학이라는 사상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 및 인간으로서 야마모토의 생애 전반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일본인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자 “새로운 『국화와 칼』”로 소개된 바 있는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한국에서도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한편 그가 사망한 이후 PHP연구소 주관으로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을 제정함으로써 사회·정치·경제·역사·철학 등의 분야에서 관련 학술서 및 논문을 대상으로 매년 수상을 하고 있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1973년 제35회 분게이슌주 독자 상 수상, 1981년 『일본인의 사상과 행동을 고찰한 야마모토학』으로 제29회 기쿠치 간 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에는 와카야마 현 문화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일본인과 유대인』 『일본 자본주의의 정신』 『일본교日本?에 관하여』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공기의 연구』 『논어 읽기』 『제왕학』 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역사로서의 성서』 『구약성서의 사람들』 『성서의 고고학』 등이 있다.
역 : 박용민
1991년부터 외교부에 재직 중인 1966년생의 외교관이다. 대학 때 TV 드라마에서 단역을 맡아 방송국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더러 방배동과 신촌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니기도 했으며, 쌍투스 코러스라는 합창동아리에 몸담고 두 차례 정기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주유엔대표부, 오만, 미국, 인도네시아, 일본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외교통상부 본부에서는 북핵협상과장으로 봉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도네시아 교민 담당 영사 시절에는 인도네시아 외교부 밴드와 함께 '자카르타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의 개인적인 신조는 "아무 것도 하지 말진 말자!" 영화를 즐겨 보는 그는, "영화 관람을 '아무 것도 안하는 것'으로 만들기는 싫어서" 영화 감상문을 쓰곤 했다. 그렇게 써 모아둔 글로 그는 2008~2009년간 「월간 포브스코리아」에 영화 칼럼을 연재했다. 여행 다니기,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 중고 악기 모으기 등을 즐긴다는 그는 분주한 와중에도 짬짬이 일종의 '직장인 밴드'라고 할 수 있는 '외교통상부 음악연주동호회'에 간사로 참여하고 있다.
장차 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붓글씨를 배우고 싶고, 세상 뜨기 전에 시집을 출간해 보고 싶다"고 한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직장에서 희망이 뭐냐?"고 묻자, "퇴임 때 회고해 보니 '듣기 싫은 이야기를 직언해 주던 후배가 최소한 셋은 있더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은 미간에 세로 주름을 만든 것이라는 그는, 현재 외교통상부 북핵협상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영화관의 외교관』, 『별난 외교관의 여행법』 등이 있다.
목 차
‘공기’의 연구
‘물=통상성’의 연구
일본적 근본주의에 관하여
후기
해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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