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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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원영
출판사항사계절, 발행일:2018/06/15
형태사항p.323 A5판:21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6094373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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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 인간의 결핍과 차이와 비참이
 개인적인 체험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법과 제도 속으로,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는 사회적 무대로 확장되어가는 한 편의 긴 변론서 

1급 지체장애인인 김원영은 지난 2010년 불굴의 의지와 희망의 상징인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야한’ 장애인, ‘나쁜’ 장애인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책을 썼다. 열다섯 살까지 방 안에만 있던 자신이 장애인학교를 거쳐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하기까지의 개인적 서사를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소수자들이 세상에 등장할 수 있게 해준 용기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연대의 힘을 증언했다. 당시 스물아홉의 청년이었던 그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언젠가는 증언이 아니라 변론을 할 수 있는 삶, 조금은 더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삶, 다가오는 내 삼십대에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제 삼십대가 된 그는 연구자이자 법률가로서, 자신의 분노와 욕망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삶’, ‘실격당한 인생’이라 낙인찍힌 이들의 삶을 변론하기로 했다. 그들이 자신의 출생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특질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해 고통 속에 살지 않도록,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매력적일 수 있는 증거들을 수집해 한 편의 긴 변론서를 작성했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발견되고 구축되는가 

 저자는 소수자들이 삶에서 만나는 연극적인 순간들, 즉 차별과 배제, 수치와 모욕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노련하게 맞받아치고 우아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놓인 딜레마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취한 이런 마음의 태도는 삶의 모든 순간을 일종의 공연(퍼포먼스)으로 만든다. 뜻밖에도 이는 자신을 모욕했던 이들, 의전을 기획하고 장애인을 동원하는 이들의 연극적인 삶과 어딘가 닮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거짓된 연극을 집어치우라고 하기보다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과 인류학자 김현경의 논의를 빌려와,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연극적인 상호작용이 인간의 존엄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무더운 여름날 모든 아이가 계곡으로 달려갈 때 “나 피부 관리해야 돼”라며 장애가 있는 친구 곁에 남는 한 아이와 그 연기를 이해하고 적당한 말로 친구를 보내주는 또 다른 아이가 연출하는 한 편의 무대. 저자는 이와 같은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홀로 고통을 감내하던 개인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존엄한 인간으로 일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내 친구가 “피부 관리해야 돼”라고 말할 때, 나는 그가 나를 존중하기에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그에게 맞장구를 쳐준다. 나의 맞장구에 그는 내가 자신을 존중함을 알고, 더더욱 나를 존중한다. 그가 나를 존중하는 모습에서 나 역시 스스로를 존중한다. 결국 나는 그가 실제로는 가고 싶어 했던 계곡으로 그를 마음 편히 보내주고, 그는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며 만화책을 건네고 떠난다. 우리는 서로가 욕망과 자존심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라는 점을 깊이 인정한 상태에서 연기를 했고, 이런 퍼포먼스는 우리의 존재를 더욱 밀도 있게 만들어준다. (중략)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극명하게 빛나는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때이다. 품격이 상대방을 적절하게 접대하는 연기에 의해 구성된다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_ 69~71쪽

 부모, 형제자매, 친구, 연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이 존엄한 인간임을 확인한 소수자들은 이제 세상으로 나아간다. 변호사이자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저자는 법의 문지기로서 차별당하는 이들을 만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가 보호와 치료, 복지라는 이름으로 인간 존엄의 가장 기본적 전제인 개개인의 고유한 서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복잡하고 고유한 삶의 이야기, 배경, 몸의 경험이 무엇이든 오로지 법은 (효과적이고 강제적이지 않은)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정신질환자로 스스로를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법의 보호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바로 그 보호가 필요한 이유인 ‘속성’ 또는 ‘배경’ 안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온전히 구겨 넣으라는, 즉 지체장애와 발달장애 그 자체로만 존재를 쪼그라트리라는 요청이다. (중략)
헌법은 개인이 고유한 저자성을 갖기 때문에 존엄하고, 그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권리 보호의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존엄의 핵심인 저자성을 침탈당해야 하는 셈이다. _ 189쪽

 나아가 저자는 그러한 고유성, 자기 삶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저자성authorship을 보장받기 위해 ‘이동권’과 같은 새로운 권리를 발명해나간 장애인들, 소수자들의 오랜 투쟁의 역사를 서술한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엄을 확인하고, 그것을 법과 제도에 진입시키려 노력해온 소수자들은 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아름다움의 문제, ‘나는 법과 도덕, 교양, 인권 의식에 의존하지 않고도 그 자체로 매력적인 존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저자는 ‘초상화 그리기’라는 개념을 통해 한 사람이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온전히 지닌 채 써온 인생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지켜봐줄 수 있는 시선이 있다면, 그런 무대가 모두에게 주어진다면 ‘실격당한’ 존재들도 아름답고 매력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티리온’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피터 딘클리지는 연골무형성증을 가진 장애인이다. (중략)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청자들은 티리온의 삶 전체를 따라가며 스냅사진 같은 한순간이 아니라 그의 연기가 만들어낸 오랜 시간을 캐릭터의 외모에 통합한다. 그는 이제 극 전체에서 누구보다 매력적인 캐릭터로 각인되고 있다. 물론 그런 연기 자체가 피터 딘클리지라는 배우가 자기 삶에서 구축한 ‘서사’가 구현된 결과일 것이다. 티리온의 매력은 피터 딘클리지라는 배우의 매력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중략)
이 모든 실천은 자기를 표현하는 데 제약이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화가’들 앞에 자기 초상화를 맡길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렇게 그려진 초상화는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와 신념, 성향, 몸의 질량과 부피, 비율과 신체의 곡선, 색깔과 향기, 목소리를 모두 종합할 것이다.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이 있다면 적어도 당신과 나의 신체도 얼마간은 아름다울 수 있다. _ 276~285쪽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것: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로스쿨 1학년 민법 수업 시간, 저자는 수강생 가운데 유일하게 휠체어에 앉아 ‘잘못된 삶 소송’ 이야기를 접했다. 자신의 질병 또한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미리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부모가 자신의 출생이 손해라며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성장기 내내 붙들고 있던 ‘나는 추하고 무가치하고 열등한 존재가 아닐까?’라는 질문이 ‘잘못된 삶’이라는 개념으로 수렴되는 느낌이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삶이 손해나 잘못은 아닌지, 아니라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자신처럼 차이와 결핍을 가진 존재가 그것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어떤 인식과 태도가 필요한지를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모은 법적, 사회적, 철학적, 경험적 근거들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2001년 미국에서 한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이 5대째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남성에게 정자를 기증받아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 고뱅을 낳았다. 아이에게 고의로 장애를 물려준 이들의 선택은 엄청난 윤리적 논쟁을 일으켰다. 저자는 묻는다. 나에게 골형성부전증은, 그리고 고뱅에게 청각장애는 손해일까? 골형성부전증이 없는 채로 태어난 아이는 김원영이 아닐 테고, 부모가 청각장애를 고의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고뱅은 존재할 수 없었을 텐데, 세상에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손해란 말인가? 그는 장애든, 추한 외모든, 다른 성정체성이든 내 몸에 완전히 부착되어 내 존재의 일부가 된 조건은 결코 손해나 잘못이 될 수 없으며,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잘못’이나 ‘실격’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수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특수학교에서 다양한 휠체어 사용 기술을 연마하고, 휠체어의 색깔과 디자인까지 신경 쓰는 선배들과 어울리며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경험했다. 나의 장애를 치료하거나 나를 ‘정상’에 가깝게 만들어주려는 부모 세대와는 결코 나눌 수 없는 ‘수평적 정체성horizontal identity’을 공유하며, 자신을 비정상이나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개별성을 지닌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다. 고뱅의 부모는 청각장애인으로서 수화언어를 사용하며 형성해온 자신들의 문화, 삶의 양식을 온전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아이와 공유하려 했다. 장애를 물려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세계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즉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속성을 지닌 채 살아온 사람들이 삶의 여러 도전에 맞서 써온 이야기, 공통의 경험을 내 자아의 중대한 부분으로 삼겠다는 의지이자 내 삶의 전체적인 기획을 그에 맞추겠다는 윤리적인 결단이다.

“샘이나 줄리아나 같은 장애아는 애초에 부모에게 선물이 될 운명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선물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죠.” (중략)
루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아무 근거도 없지만 그 아이가 신의 선물이라 믿고 있다고 가정해보라. 그런데 어느 날 알고 보니 아이의 장애는 치료가 가능했고, 실제로 약물 치료를 받아 장애가 사라졌다. (중략) 이제 루스는 자기 아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그런 장애가 선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자기 운명을 감당하기 위한 ‘전략적’ 믿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스가 장애 그 자체를 수용했다면, 루스의 실천적 선택은 자신의 아이가 장애를 치료받은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루스가 장애를 수용한 것은 단순한 전략적 믿음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근본적인 전제(장애가 있는 모든 아이의 삶은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어떤 면에서는 분명 선물일 수 있다)를 변경하는 실천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_ 140~143쪽


 저항과 투쟁의 한가운데 선 이들에게
“우리는 스스로를 충분히 돌보고 아껴왔는가” 

이 책에는 걷지 못하는 몸,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수용하기 위해 읽고, 쓰고, 싸워온 저자의 사유와 경험이 짙게 녹아 있다. 오랜 시간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분투한 저자는 이제 편안해졌을까,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까? 그는 또 한 번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정체성을 수용하고,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강렬한 투사가 된 당신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데도 성공했는가? 자신을 충분히 돌보고 아껴왔는가? 그는 인정받기 위해,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강하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는 소수자들이 결국 이 모든 일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만큼은 놓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최종 변론은 우리에게 실격을 선고한 이들에게로 향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 말에는 우리가 자신의 어떤 부분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그런 자신을 보듬고 사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괴물이 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자녀나 형제에게 장애가 있고 당신이 그를 수용하기 어려워하더라도, 그들은 어머니, 아버지, 누나, 동생인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당신이 장애를 수용하고 역경을 돌파하는 당당한 삶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부모, 형제, 연인, 친구, 이웃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좋은 이유를 가질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삶이 존중받을 만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투쟁 속에서 어느 순간 강인한 투사의 모습이 아니라면 결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외로운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아도 좋다. 장애를, 예쁘지 않은 얼굴을, 가난을, 차별받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을 지닌 채 살아가면서도 모든 것을 당당히 부정하고, 자신의 ‘결핍’을 실천적으로 수용하고, 법 앞에서 권리를 발명하는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게 서야만 우리가 존엄하고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수용하고 돌보려 노력하지만 결코 완전하지는 못할 이 ‘취약함’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 집단에 속해 있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일 것이다. _ 310쪽


 주요 내용 

 품격을 구성하는 퍼포먼스 VS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정 정도 연기를 한다. 무대 위의 배우처럼 자신에게 요구되는 배역을 수행하며, 그런 자신을 통제하고 조율한다. 이런 능력을 성찰성이라고 한다. 성찰성이 고도로 발달하면 관계에서 노련함을 갖추게 된다. “아이고, 가엾어라. 어쩌다 몸이 그렇게 됐니?”라는 물음에 “장애인 할인을 받기 위해서죠!”라고 위트 있게 받아치거나, 장애인 자녀를 위한 특수학교 설립에 동의해달라며 무릎을 꿇은 부모들에게 “쇼하지 마!”라고 소리치며 똑같이 무릎을 꿇는 식의 노련함. 이런 노련함은 자아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낳기도 한다. 뜻밖에도 저자는 삶의 이런 연극적인 면에서 인간 존엄의 근거를 발견한다. 우리가 인권 규범이나 법률에 기대지 않고 구체적인 일상에서 모든 인간이 존엄한 이유를 찾는다면, 바로 이런 일상의 공연들이 그 발견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단, 권력자를 위한 의전이나 장애인을 동원하는 정치 행사 등 ‘품격을 구성하는 퍼포먼스’가 아닌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가 여기 해당된다.

존엄을 구성하는 퍼포먼스에서는 그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가 실재(진실)를 공유한다. 그 공유하는 실재 위에서 서로가 서로의 연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대등하게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아이가 없는 대학 동기 앞에서 육아가 화제가 되었을 때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친구,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족 앞에서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며 저녁식사를 하는 가족들, 카페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자폐 아동에게 무관심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대학생. 이들은 모두 서로의 연기가 품고 있는 의도를 공유한다. (중략)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재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모르는 척해주는 익명의 대학생이 고마워서 그를 존중하며, 자신을 존중하려 애쓰는 자폐아 부모의 노력을 아는 대학생은 더더욱 무심한 척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된다. _ 66~67쪽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_ 모든 연극을 거두고, 무력한 자신을 선언하는 힘
 저자는 ‘품격을 위한 퍼포먼스’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노련해지려 애쓰던 자신을 고백한다. 내 다리는 조금이라도 길어 보이는가? 나는 빈곤하고 우울한 장애인 같은가? 단 한순간도 성찰의 시각을 거두기 어려웠던 그는 어느 날 이 모든 연극적인 노력을 부정하는 문장들을 만났다. 196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단체 ‘푸른잔디회’의 행동 강령이었다.

1. 우리는 우리가 뇌성마비자라는 것을 자각한다.
2. 우리는 강렬한 자기주장을 행한다.
3.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4.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5.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_ 78쪽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 자신의 가능성과 실천 능력까지 부정하는 이 순수한 부정의 문장들 앞에서 저자는 품격주의자들의 연극에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연극을 펼쳤던 자신을 돌아본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한 번은 이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무력한 자신을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고, 지적이고, 신체적 결함을 보완하는 정신적 매력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압박. 사무실의 생수통을 갈지 못하는 대신 인사성 바르고 동료들의 생일이라도 잘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일이다. (중략)
역설적인 타인 지향적 연극을 극복하는 힘. 때로 무력하고 별 볼 일 없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진 것이 없다는 부정을 선언하는 힘. 거기서 우리는 타인 지향성을 넘어선 진정성의 한 형태를 본다. (중략)
타자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고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결국 나의 몸, 운명, 삶, 실존에 대한 수용을 전제로 한다. _ 91~92쪽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
_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난다면, 나는 그 아이를 적극적으로 환대할 자신이 있는가? 저자는 부모가 자기 아이의 ‘잘못된’ 부분까지 환대하는 것, 우리가 나 자신 혹은 내 가족이나 연인, 친구의 ‘잘못된’ 요소를 진정으로 환대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삶이 존엄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마지막 관문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전까지 국가나 사회가 장애, 질병, 다른 성정체성 등을 대하는 방식은 가능한 한 치료하고, 교정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훈련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한 이런 특질들을 ‘어설픈 정상인’이 되기 위해 감추고 바꾸려는 노력을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가 보여줬던 태도를 제안한다.

장애인인 주인공 조제에게 남자 친구 츠네오를 빼앗긴 츠네오의 전 애인은 조제를 찾아와 뺨을 때린 후 말한다.
“나도 차라리 너처럼 다리가 없으면 좋겠네.”
조제도 상대의 뺨을 때린 후 무표정한 얼굴로 답한다.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 (중략)
할머니는 츠네오와의 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조제에게 “남들 하는 대로 살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할머니는 조제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조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수직적’ 관계에서는 그 정도의 조언이 최선인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할머니와 어머니, 우리를 보호하는 국가와 공동체, 우리를 구원하려는 종교 지도자들과 성서의 가르침은 결코 “너의 욕망대로 살아라, 만약 남들이 그것을 문제 삼는다면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말하라” 하고 가르치지 못한다. 우리는 수평적 정체성을 가진 다른 존재들과 연결될 때에만 정상성의 결여로서의 내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인 자신을 인식하는 정신의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다. _ 123~128쪽

 법은 개인의 인생 이야기를 삭제한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가족 두 사람이 입원을 신청하고, 의사가 그 필요성을 진단하면 누구든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될 수 있다. 그렇게 ‘합법적으로’ 입원한 이상 그곳에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정신질환자임을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법은 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나는 정신질환자가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사회복지사, 판사, 의사, 경찰 등 법의 문지기들은 매뉴얼을 따를 뿐 그들의 인생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아름답게 꾸미고 외출하고 싶어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러 온 발달장애인에게 심사관은 “라면을 끓일 줄 아나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과 반응하며 수십 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은 철저하게 삭제된다. 저자는 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는 법체계를 다소나마 개선할 방법으로 법학자 켄지 요시노가 제안한 ‘논리적 근거를 강제하는 대화reason-forcing conversation’를 소개한다.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고 싶은 장애인이 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팔과 다리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어 밥을 먹거나 용변을 처리하는 일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자. 그렇지만 그는 “머리에 제품을 바르고 넥타이에 짙은 회색 슈트를 입고 외출하고 싶어서” 활동지원인을 신청했다. 그의 손과 발은 넥타이를 맬 정도의 작업을 하기에는 장애가 심하다. 법은 의사와 국민연금공단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물을 것이다.
“아니, 왜 꼭 그렇게 넥타이에 슈트를 고집하십니까? 그 정도에 활동지원인을 제공하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논리적 근거를 강제하는 대화’의 원칙에 따라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활동지원인 보조를 받아 넥타이를 매고 슈트를 입겠다는 게 국민연금공단에게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_ 201쪽

 장애인의 오줌권, 이동권은 복지의 문제인가, 자유의 문제인가
 장애인 학생이 학교에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면,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목적지로 이동할 수 없다면 이는 그의 어떤 권리가 침해된 것인가. 과거에는 국가나 사회는 물론 장애인 당사자도 이를 사회복지 차원의 문제로 여겼다. 국가권력이 그가 화장실에 가지 못하도록, 혹은 지하철을 타지 못하도록 그의 신체를 붙잡고 있거나 위협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진전되고, 「장애인복지법」이 만들어지면서 장애인들은 ‘이동’이 복지나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집 안에 가두고, 내 몸을 계단에 묶어놓는, 즉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을 통해 장애인들은 ‘이동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를 발명해냈고, 그것을 법적,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헌법 소송을 제기하고 지하철 선로에 휠체어를 묶어 전동차를 세우는 등 치열하게 투쟁했다.

장애인이 자신의 이동할 권리를 발명하고, 이를 법제도에 진입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이동해서 거리로 나와야 했던 것이다. 이는 권리가 법제도 안에서 국가권력의 힘을 통해 인정되어야만 실질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 자신의 신체나 정신 혹은 처한 사회적 상황의 문제를 권리의 언어로 표현하고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법제도 안으로 진입시켜 실질적인 힘을 갖도록 정치적, 도덕적, 헌법적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 자체가 ‘잘못된 삶’들의 존엄성이 사회적으로 승인되는 과정이다. _ 231쪽

“절단된 당신의 몸에 끌려요” _ 디보티즘
 법과 제도, 도덕과 윤리가 차별과 불편, 모욕 없는 사회를 구축한다 해도 매력 자원이 부족한 이들이 소외되는 것을 완벽하게 막아줄 수는 없다. 늙고 병든 몸, 걷지 못하는 다리, 남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깊은 우정이나 성적인 결합 등 사회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역시나 그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저자는 우연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성적으로sexually 끌리는 이들, 즉 ‘디보티devotee’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들 중 다수는 장애인의 절단된 신체에 매력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성적 도착이나 병리적 수준의 페티시즘으로 이해하지만, 어떤 선입견이나 모욕적인 시선 없이 장애인의 몸 자체를 욕망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일방적으로 ‘숭고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차라리 낫지 않은가?

구세군에 거금을 쾌척하면서도 막상 그 신체와 5분도 같이 앉아 밥을 먹지 못하고, 그 신체가 버스에 올라타는 잠깐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 신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를 짓는 일에 반대한다면 그 자체로 혐오이며 다른 해명이 필요하지 않다. 근육병과 골형성부전증에 따라 붙는 거창하고 낭만적인 운명 ‘서사시’에 매혹되어 종교적 감수성을 느낀다고 한들 이는 그 존재에 대한 사랑과는 관련이 없다. 몸을 욕망해야 한다. 종교나 도덕, 정치가 뭐라고 하든 너의 ‘신체’와 함께하고 싶다는 선언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욕망이고, 곧 사랑이다. _ 267쪽

 그러나 디보티즘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신체에 대한 욕망이 그 신체를 지닌 채 살아가는 개별자에 대한 욕망,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디보티들은 장애인이 직면한 현실의 어려움을 성적인 욕망의 문제로만 환원하고 차별이나 빈곤, 이동의 문제 등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저 장애인들이 ‘디보티즘’을 더 잘 알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며, 그런 결핍 있는 타자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도취될 뿐이다.

혼자 절망적으로 파 내려가던 동굴이 다른 동굴과 만났을 때
 저자는 아무런 사회적 연결망도 없이 외롭게 장애아를 키우던 1960년대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와 1980년대 자신의 부모를 예로 들며, 이제는 그런 개인적인 체험들이 오랜 시간을 견뎌온 소수자운동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덕분에 서로 조금씩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소수자들이 단 1도라도 방향을 튼다면, 다른 동굴을 만나 하나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아무런 의미망과도 연결되지 못하는, 도움의 손길조차 없어 보이는 수직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듯한 절망의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하지만 수직으로만 파고 내려가는 줄 알았던 굴속에서 어떤 사람은 조금 방향을 트는 데 성공한다. 그가 각도를 틀어 수직 방향을 벗어나면 이제 각자의 동굴은 평행하기를 멈추고, 마침내 두 사람 이상이 특정 지점에서 만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렇게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힘을 합칠 때 (지하에서나마) 비로소 공동체가 건설되는 것이다. (중략)
수직으로만 파 내려가던 동굴은 이제 힘을 합쳐 수평으로 향한다. 곧 수직으로 내려오던 또 다른 동굴들과도 만난다. 격자무늬의 동굴들이 이제 나름의 구조를 이루고 세계를 형성한다. 한순간 여러 곳에 난 격자 구멍들로 햇볕이 들기 시작했다. _ 300~301쪽

작가 소개

저 : 김원영

1982년에 태어났다.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으며,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에서만 생활했다.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의 중학부와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한편에는 장애, 질병, 가난을 이유로 소외받는 동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좋은 직업, 학벌, 매력적인 외모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동료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진동하듯 살면서, 또 사회학과 법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장애인 문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을 여러 매체에 글로 쓰게 되었다. 인제대학교 인문의학연구소에서 펴낸 《인문의학》의 공동 필자로 참여했고, 인터넷 신문 ‘비마이너(beminor.com)’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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