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내 이야기는 오직 나만 쓸 수 있다”
이 책은 1인칭이다.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오리아나 팔라치의 입과 손에서 나왔다. 자서전을 쓴 적이 없는 팔라치에 대한 오마주로 편집된 독특한 ‘자서전’이다. 실제로 팔라치는 “언젠가 내 인생에 관해 누군가 쓴다면,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영미권 등에서 팔라치의 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발행된 이 책의 이탈리아어판 제목은 『내 이야기는 오직 나만 쓸 수 있다』이다.
어느 분야에나 신화 혹은 전설이라는 수식이 붙는 사람이 있다. 팔라치에게는 ‘전설의 여기자’라는 표현이 흔히 따라온다. 종군기자로 전 세계 각지의 전쟁터와 혁명 현장을 누비고 세상의 가장 막강한 인물들을 자신만의 거침없는 스타일로 인터뷰한 팔라치. 하지만 이 책은 이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게 왜 열광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를 둘러싸고 서서히 만들어진 스타덤을 거부한다. 나는 숫기가 없는 데다 수줍음이 많고, 사생활에 집착하며, 비사교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 적어도 내 신화는. -14쪽에서
그렇다면 자신의 신화를 거부하는 팔라치가 저서, 강연, 인터뷰, 메모, 편지 등 자신만의 목소리로 꾸려진 이 책에서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자유에 눈뜬 레지스탕스 어린이
팔라치는 어린 시절, 무솔리니 정권에 맞서 싸운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아버지는 피렌체 레지스탕스 지도부의 한 명이었고 구금, 고문, 총살 위협에 시달렸다. 팔라치 또한 머리를 땋은 어린아이 때부터 연합군 포로들을 국경으로 인도하거나 전단지를 뿌리는 등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모든 폭력과 구속을 거부하는 ‘자유’에 눈뜬다. 그의 저널리즘 정신은 이때 이미 싹을 틔운 것이다.
팔라치는 아홉 살 무렵에 지하신문을 처음 보고 “가판대에서도 파는, 진실을 말하는 신문을 언젠가 만들 거예요!”라고 외쳤으며, 고등학교 졸업 시험의 주제 ‘조국’에 반발하며 자유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답안을 제출해 시험위원회에 소동을 일으킨다.
내 조국은 세상이다. 나는 풍속과 언어와 내가 태어난 영토로 조국을 인식하지 않는다. 영토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에 따라 바뀐다. 얼마 전까지 이탈리아를 조국이라 부르고 이탈리아를 위해 죽이고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지금은 유고슬라비아가 조국이고 유고슬라비아를 위해서 죽이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이스트라 반도처럼 말이다. 때에 따라 달라지는 조국의 개념보다는 자유의 개념에 관한 논술을 우리에게 시험 주제로 제시했어야 한다.
자유는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 따라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두 알고 있다. 자유는 존엄을 의미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억압을 거부하는 것이다. 감옥에서, 고문실에서,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장에서 조국 만세가 아니라 자유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생명들이 그 자유를 기억하게 한다. -46쪽에서
저널리즘이 뺏은 작가
팔라치는 기자로 유명하지만, 어릴 때 유일한 장래희망이 작가였다. 부모님이 할부로 들여놓은 ‘책들의 방’ 작은 소파를 ‘내 침대’라고 부를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이 컸다. 또 작가가 되려면 인간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의학과에 진학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로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다는 어른들의 만류와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그나마 글을 쓸 수 있는 언론사 문을 두드린 것이다.
장래희망이 작가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팔라치의 기사들이 작가의 정체성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팔라치는 자신이 “쓰고 싶었던 모든 책은 저널리즘에 흡수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일화도 플롯을 갖춘 팔라치 특유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나는 일부 우매한 사람들이 나를 정치 인터뷰 기자로 소개할 때 신경이 매우 예민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직업, 내 인생의 정점으로서 호메이니나 키신저 등의 인터뷰를 인용하면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난다. 오, 세상에, 내가 만약 『모비 딕』을 다시 썼더라도 그들은 키신저 인터뷰의 카우보이라는 유명한 표현과 호메이니 인터뷰에서 ‘빌어먹을!’이라고 말하면서 벗은 차도르를 언급하며 나를 소개할 것이다.
그들은 내 인터뷰가 한 리포터의 단순한 인터뷰라고만 이해한다. 내 인터뷰는 내 인격과 문화적 유형에 따라서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인터뷰이기도 하다. 작가의 상상으로 구성되고, 작가의 감수성에 이끌리고, 작가의 인생관으로 형성된 인터뷰들이다. -126쪽에서
전설적인 기자의 인간적인 모습
그의 인터뷰는 ‘팔라치 스타일’이라 불린다. 차도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말라는 호메이니 앞에서 차도르를 찢고, 뺨을 치겠다고 위협하는 덩샤오핑에게 그러는 즉시 기사를 쓰겠다고 대꾸하며 인터뷰이의 깊은 곳을 끌어내는 인터뷰 방식은 그를 인터뷰 저널리즘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인터뷰는 차갑고 완벽한 저널리스트의 면모가 아닌 인간적인 실수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뤄져 따뜻한 인간미가 엿보인다. 호메이니와의 인터뷰를 위해 통역관과 가짜 혼인신고를 하고, 페르시아 왕비와의 약속시간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코란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단둘이 한 방에 있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윤리 감찰을 담당하는 이슬람 율법학자 물라가 들이닥쳤다. 그는 “창피한 줄 아시오. 창피한 줄 알아. 이건 죄악이요. 죄악!”이라며 소리쳤다.
그 순간 체포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는 것이었다. 물라가 우리 얼굴에 들이대며 흔드는 단기 혼인(4개월) 증명서에 서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란인 통역관은 결혼해서 스페인 아내가 있었다. 그의 아내 콘수엘로의 처지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그녀는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을 테니 말이다. 나 또한 누구와도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스페인 아내를 둔 이란인 통역관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호메이니와의 인터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고심해야 했다……. -217쪽에서
하지만 팔라치는 무엇보다 총알이 빗발치고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누구보다 먼저 발걸음을 옮긴 기자였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을 통해 지니게 된 인간의 존엄성을 향한, 자유를 향한 열망 때문이다. 그는 결코 용기가 남다른 전설의 기자가 아니었다. 이 책에는 뜻밖에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전쟁과 위기에서 언제나 두려워했고, 항상 두려움을 느낀다. 지독한 두려움이다. 어떤 이들은 두려워서 화장실로 간다. 내게 두려움은 다른 증세로 나타난다. 위와 장이 수축하고 경련을 일으켜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가 없어진다. 나는 베트남에서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두렵지 않은 날은 없었다.
전쟁에서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비열한 거짓말쟁이, 위선자이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어떻게 전쟁이 두렵지 않겠는가? 모두가 전쟁을 두려워하고, 전쟁에서 두렵지 않은 군인이나 영웅은 단 한 명도 없다. 폭탄에 대한 두려움, 총격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는 모두에게 묻곤 했다. “겁나세요?” 모두가 하나같이 대답했다. “네. 많이요.” 그러면 나는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109쪽에서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
팔라치는 페미니스트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 자신도 신문 지면에서 여성을 특별히 다루는 것에 불편해했다. 남녀평등에 머물렀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말, “너는 나같이 살아서는 안 돼! 아내도 엄마도 무식한 노예도 되어선 안 돼! 넌 일하러 나가! 일해!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을 기억하는 그는 결혼제도, 피임, 임신중절 등의 문제에서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평생 추구한 자유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친 때문이다.
나는 결혼생활에 숨어 있는 소유욕을 혐오한다. 이 족쇄 때문에 달리거나 뛰거나 나무에 오를 수 없다. 국가와 도시, 교회라는 제도권 주인에게, 그리고 이후 어른이 되어 받아들이는 남편이라는 사적 주인에게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다. 나는 그 누구의 주인도 되고 싶지 않은데, 어째서 누군가는 내 주인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통제를 가하는 것도, 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179쪽에서
나는 피임 도구가 성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즐거운 성관계로 이끈다. 그리고 왜 여자들만 피임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단성생식으로 배아가 수정되는 게 아니므로 남자들도 그들의 피임법을 마련해야 한다. 피임도구를 사용하게끔 교육해야 한다. 자연은 남성에게 낙태의 충격, 임신의 고단함, 출산의 고통을 직접 안겨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남성은 피임약에 대한 고민마저 면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성용 피임약이 없다면 개발해야 할 것이다. -189쪽에서
연인 알레코스, 그리고 미공개 원고
앞서 말한 결혼문제를 비롯해 이 책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원고와 메모가 적지 않다. 특히 팔라치의 연인이었던 알레코스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그리스 정치인으로 투옥과 고문 끝에 출소한 알레코스는 인터뷰를 하러 온 팔라치와 연인이 된다. 그후 둘은 이탈리아 망명생활을 함께하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결혼에 준하는 연애를 넘어선 동지애와 형제애의 관계로 발전한다. 알레코스는 권력자들의 비리를 좇다가 테러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팔라치에게 알레코스는 ‘한 남자’였기에 그와의 관계는 팔라치가 어떤 사람인지를 또렷이 보여주는 열쇠가 된다. 사랑보다 개인의 자유가 먼저였던 그도 알레코스가 죽고서 소설 『한 남자』를 쓸 때 3년이나 칩거하며 자신의 깊은 내면을 통과해야 했다.
1975년에 나는 긴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다. 기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형제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자는 알레코스를 언급하며, “당신에게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내 형제’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독일에서 오는 알레코스를 만났을 때, 어떤 기자가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묻기에 ‘내 형제’라고 답했다고 했다. 누이가 아니라 형제라고. 그러고는 알레코스는 폭소를 터트렸다. “어쨌거나 우리는 근친상간 관계로군!” -159쪽에서
오리아나 팔라치, 자유를 향한 끝없는 투쟁
폭격을 피해 뛰어다니고,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에 감명받아 작가를 꿈꾸고, 꼬마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어린 팔라치. 그의 운명은 그렇게 ‘자유를 향한 투쟁’으로 준비되었다. ‘성공한 기자’가 아니라.
밥벌이 글쟁이가 되라는 강압을 뿌리쳐서 첫 신문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절체절명의 멕시코 학생운동 현장에서 다른 외신기자들이 모두 숙소에 머물 때(“여러분도 같이 가시죠.”라고 말하니 그들은 “아닙니다. 당신이 다녀와서 나중에 알려주세요.”라고 대답했다.) 혼자 취재전선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을 뻔한 총상을 입는다.
알레코스와의 사랑도 동지애에 가까웠던 이유는 무솔리니 정권에서 고문당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피렌체에서, 사이공에서, 베이루트에서, 뉴욕에서, 그 역사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자리에서 인간의 모든 폭력에 가슴으로 울부짖었던 팔라치. 그는 알레코스와 부모님의 죽음에 이어 자신이 암에 걸려 투병을 하면서는 마지막 책의 집필과 실존적인 문제에 매달리는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품위에 집착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위 있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나는 품위 있는 삶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품위 있게 죽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고뇌의 진정한 시험대일 것이다. -266쪽에서
이 책은 1인칭이다.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오리아나 팔라치의 입과 손에서 나왔다. 자서전을 쓴 적이 없는 팔라치에 대한 오마주로 편집된 독특한 ‘자서전’이다. 실제로 팔라치는 “언젠가 내 인생에 관해 누군가 쓴다면,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영미권 등에서 팔라치의 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발행된 이 책의 이탈리아어판 제목은 『내 이야기는 오직 나만 쓸 수 있다』이다.
어느 분야에나 신화 혹은 전설이라는 수식이 붙는 사람이 있다. 팔라치에게는 ‘전설의 여기자’라는 표현이 흔히 따라온다. 종군기자로 전 세계 각지의 전쟁터와 혁명 현장을 누비고 세상의 가장 막강한 인물들을 자신만의 거침없는 스타일로 인터뷰한 팔라치. 하지만 이 책은 이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내게 왜 열광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를 둘러싸고 서서히 만들어진 스타덤을 거부한다. 나는 숫기가 없는 데다 수줍음이 많고, 사생활에 집착하며, 비사교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 적어도 내 신화는. -14쪽에서
그렇다면 자신의 신화를 거부하는 팔라치가 저서, 강연, 인터뷰, 메모, 편지 등 자신만의 목소리로 꾸려진 이 책에서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자유에 눈뜬 레지스탕스 어린이
팔라치는 어린 시절, 무솔리니 정권에 맞서 싸운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아버지는 피렌체 레지스탕스 지도부의 한 명이었고 구금, 고문, 총살 위협에 시달렸다. 팔라치 또한 머리를 땋은 어린아이 때부터 연합군 포로들을 국경으로 인도하거나 전단지를 뿌리는 등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모든 폭력과 구속을 거부하는 ‘자유’에 눈뜬다. 그의 저널리즘 정신은 이때 이미 싹을 틔운 것이다.
팔라치는 아홉 살 무렵에 지하신문을 처음 보고 “가판대에서도 파는, 진실을 말하는 신문을 언젠가 만들 거예요!”라고 외쳤으며, 고등학교 졸업 시험의 주제 ‘조국’에 반발하며 자유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답안을 제출해 시험위원회에 소동을 일으킨다.
내 조국은 세상이다. 나는 풍속과 언어와 내가 태어난 영토로 조국을 인식하지 않는다. 영토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에 따라 바뀐다. 얼마 전까지 이탈리아를 조국이라 부르고 이탈리아를 위해 죽이고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지금은 유고슬라비아가 조국이고 유고슬라비아를 위해서 죽이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이스트라 반도처럼 말이다. 때에 따라 달라지는 조국의 개념보다는 자유의 개념에 관한 논술을 우리에게 시험 주제로 제시했어야 한다.
자유는 누가 이기고 지느냐에 따라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두 알고 있다. 자유는 존엄을 의미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억압을 거부하는 것이다. 감옥에서, 고문실에서,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장에서 조국 만세가 아니라 자유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생명들이 그 자유를 기억하게 한다. -46쪽에서
저널리즘이 뺏은 작가
팔라치는 기자로 유명하지만, 어릴 때 유일한 장래희망이 작가였다. 부모님이 할부로 들여놓은 ‘책들의 방’ 작은 소파를 ‘내 침대’라고 부를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이 컸다. 또 작가가 되려면 인간을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의학과에 진학하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로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다는 어른들의 만류와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그나마 글을 쓸 수 있는 언론사 문을 두드린 것이다.
장래희망이 작가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팔라치의 기사들이 작가의 정체성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팔라치는 자신이 “쓰고 싶었던 모든 책은 저널리즘에 흡수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일화도 플롯을 갖춘 팔라치 특유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나는 일부 우매한 사람들이 나를 정치 인터뷰 기자로 소개할 때 신경이 매우 예민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직업, 내 인생의 정점으로서 호메이니나 키신저 등의 인터뷰를 인용하면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난다. 오, 세상에, 내가 만약 『모비 딕』을 다시 썼더라도 그들은 키신저 인터뷰의 카우보이라는 유명한 표현과 호메이니 인터뷰에서 ‘빌어먹을!’이라고 말하면서 벗은 차도르를 언급하며 나를 소개할 것이다.
그들은 내 인터뷰가 한 리포터의 단순한 인터뷰라고만 이해한다. 내 인터뷰는 내 인격과 문화적 유형에 따라서만 작성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인터뷰이기도 하다. 작가의 상상으로 구성되고, 작가의 감수성에 이끌리고, 작가의 인생관으로 형성된 인터뷰들이다. -126쪽에서
전설적인 기자의 인간적인 모습
그의 인터뷰는 ‘팔라치 스타일’이라 불린다. 차도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지 말라는 호메이니 앞에서 차도르를 찢고, 뺨을 치겠다고 위협하는 덩샤오핑에게 그러는 즉시 기사를 쓰겠다고 대꾸하며 인터뷰이의 깊은 곳을 끌어내는 인터뷰 방식은 그를 인터뷰 저널리즘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인터뷰는 차갑고 완벽한 저널리스트의 면모가 아닌 인간적인 실수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이뤄져 따뜻한 인간미가 엿보인다. 호메이니와의 인터뷰를 위해 통역관과 가짜 혼인신고를 하고, 페르시아 왕비와의 약속시간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코란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단둘이 한 방에 있는 것을 금하기 때문에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윤리 감찰을 담당하는 이슬람 율법학자 물라가 들이닥쳤다. 그는 “창피한 줄 아시오. 창피한 줄 알아. 이건 죄악이요. 죄악!”이라며 소리쳤다.
그 순간 체포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는 것이었다. 물라가 우리 얼굴에 들이대며 흔드는 단기 혼인(4개월) 증명서에 서명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란인 통역관은 결혼해서 스페인 아내가 있었다. 그의 아내 콘수엘로의 처지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그녀는 일부다처제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을 테니 말이다. 나 또한 누구와도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스페인 아내를 둔 이란인 통역관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호메이니와의 인터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고심해야 했다……. -217쪽에서
하지만 팔라치는 무엇보다 총알이 빗발치고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누구보다 먼저 발걸음을 옮긴 기자였다.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을 통해 지니게 된 인간의 존엄성을 향한, 자유를 향한 열망 때문이다. 그는 결코 용기가 남다른 전설의 기자가 아니었다. 이 책에는 뜻밖에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용기 있다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두려워도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전쟁과 위기에서 언제나 두려워했고, 항상 두려움을 느낀다. 지독한 두려움이다. 어떤 이들은 두려워서 화장실로 간다. 내게 두려움은 다른 증세로 나타난다. 위와 장이 수축하고 경련을 일으켜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가 없어진다. 나는 베트남에서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두렵지 않은 날은 없었다.
전쟁에서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비열한 거짓말쟁이, 위선자이다. 거짓말쟁이! 위선자! 어떻게 전쟁이 두렵지 않겠는가? 모두가 전쟁을 두려워하고, 전쟁에서 두렵지 않은 군인이나 영웅은 단 한 명도 없다. 폭탄에 대한 두려움, 총격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나는 모두에게 묻곤 했다. “겁나세요?” 모두가 하나같이 대답했다. “네. 많이요.” 그러면 나는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109쪽에서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
팔라치는 페미니스트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 자신도 신문 지면에서 여성을 특별히 다루는 것에 불편해했다. 남녀평등에 머물렀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말, “너는 나같이 살아서는 안 돼! 아내도 엄마도 무식한 노예도 되어선 안 돼! 넌 일하러 나가! 일해!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을 기억하는 그는 결혼제도, 피임, 임신중절 등의 문제에서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가 평생 추구한 자유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친 때문이다.
나는 결혼생활에 숨어 있는 소유욕을 혐오한다. 이 족쇄 때문에 달리거나 뛰거나 나무에 오를 수 없다. 국가와 도시, 교회라는 제도권 주인에게, 그리고 이후 어른이 되어 받아들이는 남편이라는 사적 주인에게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다. 나는 그 누구의 주인도 되고 싶지 않은데, 어째서 누군가는 내 주인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통제를 가하는 것도, 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179쪽에서
나는 피임 도구가 성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유롭고 즐거운 성관계로 이끈다. 그리고 왜 여자들만 피임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단성생식으로 배아가 수정되는 게 아니므로 남자들도 그들의 피임법을 마련해야 한다. 피임도구를 사용하게끔 교육해야 한다. 자연은 남성에게 낙태의 충격, 임신의 고단함, 출산의 고통을 직접 안겨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남성은 피임약에 대한 고민마저 면제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성용 피임약이 없다면 개발해야 할 것이다. -189쪽에서
연인 알레코스, 그리고 미공개 원고
앞서 말한 결혼문제를 비롯해 이 책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원고와 메모가 적지 않다. 특히 팔라치의 연인이었던 알레코스에 관한 부분이 그렇다. 그리스 정치인으로 투옥과 고문 끝에 출소한 알레코스는 인터뷰를 하러 온 팔라치와 연인이 된다. 그후 둘은 이탈리아 망명생활을 함께하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오가며 결혼에 준하는 연애를 넘어선 동지애와 형제애의 관계로 발전한다. 알레코스는 권력자들의 비리를 좇다가 테러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팔라치에게 알레코스는 ‘한 남자’였기에 그와의 관계는 팔라치가 어떤 사람인지를 또렷이 보여주는 열쇠가 된다. 사랑보다 개인의 자유가 먼저였던 그도 알레코스가 죽고서 소설 『한 남자』를 쓸 때 3년이나 칩거하며 자신의 깊은 내면을 통과해야 했다.
1975년에 나는 긴 인터뷰에 응한 적이 있다. 기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형제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자는 알레코스를 언급하며, “당신에게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내 형제’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독일에서 오는 알레코스를 만났을 때, 어떤 기자가 그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묻기에 ‘내 형제’라고 답했다고 했다. 누이가 아니라 형제라고. 그러고는 알레코스는 폭소를 터트렸다. “어쨌거나 우리는 근친상간 관계로군!” -159쪽에서
오리아나 팔라치, 자유를 향한 끝없는 투쟁
폭격을 피해 뛰어다니고,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에 감명받아 작가를 꿈꾸고, 꼬마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어린 팔라치. 그의 운명은 그렇게 ‘자유를 향한 투쟁’으로 준비되었다. ‘성공한 기자’가 아니라.
밥벌이 글쟁이가 되라는 강압을 뿌리쳐서 첫 신문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절체절명의 멕시코 학생운동 현장에서 다른 외신기자들이 모두 숙소에 머물 때(“여러분도 같이 가시죠.”라고 말하니 그들은 “아닙니다. 당신이 다녀와서 나중에 알려주세요.”라고 대답했다.) 혼자 취재전선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을 뻔한 총상을 입는다.
알레코스와의 사랑도 동지애에 가까웠던 이유는 무솔리니 정권에서 고문당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피렌체에서, 사이공에서, 베이루트에서, 뉴욕에서, 그 역사적인 두려움과 공포의 자리에서 인간의 모든 폭력에 가슴으로 울부짖었던 팔라치. 그는 알레코스와 부모님의 죽음에 이어 자신이 암에 걸려 투병을 하면서는 마지막 책의 집필과 실존적인 문제에 매달리는데,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품위에 집착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위 있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나는 품위 있는 삶보다 더 어렵고 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품위 있게 죽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고뇌의 진정한 시험대일 것이다. -266쪽에서
작가 소개
저자 : 오리아나 팔라치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깨달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가치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다.
팔라치는 열여섯 살에 돈을 벌기 위해 피렌체 지역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데에는 언론인이었던 브루노 삼촌의 영향이 컸다. 그는 삼촌의 권유로 종군기자에 지원했고,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주간지 <레우로페오> 특파원으로 1967년 베트남 전쟁에 갔다. 이후 멕시코 반정부 시위, 중동 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방글라데시 전쟁, 걸프전 등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전쟁의 참상을 폭로하며 인간의 잔인함과 어리석음을 증언한 기사는 세계인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팔라치 스타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터뷰 기자로서의 경력은 1954년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팔라치는 로마와 밀라노, 뉴욕에 머물며 할리우드 스타들과 영화계 인사들을 취재했으며, 상대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능숙한 인터뷰 역량을 드러냈다. 이후 그의 인터뷰 상대는 달라이 라마, 야세르 아라파트, 헨리 키신저, 덩샤오핑,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확대되었고 거기서 나온 여러 에피소드는 큰 화제가 되었다.
팔라치는 작가로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취재 경험에서 나온 르포르타주와 자전적인 내용의 소설을 주로 썼다. 대표작 열두 권은 전 세계에서 2천만 부 넘게 팔렸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깨달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가치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다.
팔라치는 열여섯 살에 돈을 벌기 위해 피렌체 지역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데에는 언론인이었던 브루노 삼촌의 영향이 컸다. 그는 삼촌의 권유로 종군기자에 지원했고,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주간지 <레우로페오> 특파원으로 1967년 베트남 전쟁에 갔다. 이후 멕시코 반정부 시위, 중동 전쟁, 아프가니스탄 내전, 방글라데시 전쟁, 걸프전 등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전쟁의 참상을 폭로하며 인간의 잔인함과 어리석음을 증언한 기사는 세계인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팔라치 스타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터뷰 기자로서의 경력은 1954년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하면서 시작됐다. 팔라치는 로마와 밀라노, 뉴욕에 머물며 할리우드 스타들과 영화계 인사들을 취재했으며, 상대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능숙한 인터뷰 역량을 드러냈다. 이후 그의 인터뷰 상대는 달라이 라마, 야세르 아라파트, 헨리 키신저, 덩샤오핑,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확대되었고 거기서 나온 여러 에피소드는 큰 화제가 되었다.
팔라치는 작가로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취재 경험에서 나온 르포르타주와 자전적인 내용의 소설을 주로 썼다. 대표작 열두 권은 전 세계에서 2천만 부 넘게 팔렸다.
목 차
옮긴이의 말
1부. 운명은 그렇게 준비되었다
나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 / 오리아나 아나스타시아 / 행복하지 않은 어린이 / 나의 영웅들 / 학교의 골칫거리 / 이루지 못한 의사의 꿈 / 생애 첫 직장 그리고 해고 / 피렌체를 떠나다 〈에포카〉에서 〈레우로페오〉까지
2부.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 / 페르시아 왕비를 만나다 / 헝가리 혁명, 자유의 죽음을 보다 / 유명인들과의 불쾌한 인터뷰 / 하찮은 성性 / 《전장의 페넬로페》 그리고 미국이라는 꿈 / 인류의 모험을 쫓다 《만약 태양이 죽는다면》 / 뉴욕에서 산다는 것 / 폐허가 된 피렌체 / 베트남 전쟁에서 보낸 7년 / 멕시코 학생운동, 죽음의 목전에서 / 우리는 무엇이 되려고 달에 착륙했을까 / 나의 출판인 안젤로 리촐리 / 헨리 키신저와의 인터뷰
3부. 사랑과 자유를 향한 투쟁
알레코스와의 필연적인 만남 / “우리 둘은 싸우려고 태어났어!” / 한 영웅의 죽음 / 엄마의 죽음, 내 죽음의 예고편 / 알레코스의 죽음을 이용하는 사람들 / 판사 앞에서 알레코스의 죽음을 증언하다 / 나의 이름을 걸고 산다 / ‘유명한 팔라치’는 달갑지 않다 / 형제애처럼 신의를 지킨 사랑 /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 용서할 수 없는 알레코스 가족의 태도 / 알레코스를 위한 나의 침묵 / 미국에서 알레코스를 알리다 / 외국인 첫 명예박사 학위를 받다 / 결혼은 낡은 습관이다 / 임신중절은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한다 / 자유는 꿈이
지만 결코 단념할 수 없다 / 《한 남자》 혹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4부. 그렇게 저널리즘은 인생이 되었다
저널리즘이 빼앗은 작가 / 〈레우로페오〉를 떠나 〈코리에레〉로 옮기다 / 이맘 호메이니와의 인터뷰 / 책을 쓰는 고통 /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 아버지라는 이름의 영웅
5부. 내 인생은 오직 나만 쓸 수 있다
실존적 문제에 답을 찾아 나서다 / 뉴욕에서 살며 글쓰기 / 외계인이라 부른 암과의 투병 / 나는 그리스도교 무신론자이다 / 9?11테러 그리고 《분노와 자긍심》 / 조국에 대한 사랑 / 이슬람을 향한 분노 / 인생은 험난할지라도 아름답다
이탈리어아판 편집자의 말
주
인명
1부. 운명은 그렇게 준비되었다
나는 신화를 믿지 않는다 / 오리아나 아나스타시아 / 행복하지 않은 어린이 / 나의 영웅들 / 학교의 골칫거리 / 이루지 못한 의사의 꿈 / 생애 첫 직장 그리고 해고 / 피렌체를 떠나다 〈에포카〉에서 〈레우로페오〉까지
2부.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녀! 세상을, 마음껏! / 페르시아 왕비를 만나다 / 헝가리 혁명, 자유의 죽음을 보다 / 유명인들과의 불쾌한 인터뷰 / 하찮은 성性 / 《전장의 페넬로페》 그리고 미국이라는 꿈 / 인류의 모험을 쫓다 《만약 태양이 죽는다면》 / 뉴욕에서 산다는 것 / 폐허가 된 피렌체 / 베트남 전쟁에서 보낸 7년 / 멕시코 학생운동, 죽음의 목전에서 / 우리는 무엇이 되려고 달에 착륙했을까 / 나의 출판인 안젤로 리촐리 / 헨리 키신저와의 인터뷰
3부. 사랑과 자유를 향한 투쟁
알레코스와의 필연적인 만남 / “우리 둘은 싸우려고 태어났어!” / 한 영웅의 죽음 / 엄마의 죽음, 내 죽음의 예고편 / 알레코스의 죽음을 이용하는 사람들 / 판사 앞에서 알레코스의 죽음을 증언하다 / 나의 이름을 걸고 산다 / ‘유명한 팔라치’는 달갑지 않다 / 형제애처럼 신의를 지킨 사랑 /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 용서할 수 없는 알레코스 가족의 태도 / 알레코스를 위한 나의 침묵 / 미국에서 알레코스를 알리다 / 외국인 첫 명예박사 학위를 받다 / 결혼은 낡은 습관이다 / 임신중절은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한다 / 자유는 꿈이
지만 결코 단념할 수 없다 / 《한 남자》 혹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
4부. 그렇게 저널리즘은 인생이 되었다
저널리즘이 빼앗은 작가 / 〈레우로페오〉를 떠나 〈코리에레〉로 옮기다 / 이맘 호메이니와의 인터뷰 / 책을 쓰는 고통 / 세계 곳곳의 전쟁터에서 / 아버지라는 이름의 영웅
5부. 내 인생은 오직 나만 쓸 수 있다
실존적 문제에 답을 찾아 나서다 / 뉴욕에서 살며 글쓰기 / 외계인이라 부른 암과의 투병 / 나는 그리스도교 무신론자이다 / 9?11테러 그리고 《분노와 자긍심》 / 조국에 대한 사랑 / 이슬람을 향한 분노 / 인생은 험난할지라도 아름답다
이탈리어아판 편집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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