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국은 이미 굉장히 앞서가는 선망국”
사상 초유의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 선망국의 시민들
새로운 가능성은 주변에서 나온다
조한혜정은 선망국(先亡國, 먼저 망한 나라)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 가파른 성장 이면에 새겨진 한국사회의 특성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가장 빨리 잘 사는 나라가 된 동시에, 가장 빠르게 ‘망해가는’ 사상 초유의 징후들을 드러냈고, 이를 인지한 시민들은 세계를 놀라게 한 ‘촛불 시위’를 통해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먼저 망하는 선망국으로 남을 것인가, 오히려 주변국의 위치에서 그 ‘망함’을 잘 극복함으로서 비전을 제시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탄핵 정국과 시민 혁명, 신고리 원전 공론화, 저출산과 고령화, 비트코인 광풍, 차별에 찬성하는 청년들, 강남역과 구의역, 기본소득제, 4차 산업 혁명, 미투 운동, 남북정상회담 등 격랑의 시기에 놓인 한국사회를 전환, 미래, 신뢰, 시민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묶은 칼럼들, 그리고 거대한 전환과 긴박한 사건들 앞에서 진행된 인터뷰, 강연록, 대담은 당면한 시대적 현 사안들을 면밀하게 돌아보게 하고, 이 분석과 성찰을 통해 미래에 대한 혜안과 해법을 전한다.
“2016년 가을, 시민들은 6개월에 걸쳐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그를 파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의 시민들은 제국주의적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안락한 지대comfort zone’에 익숙해진 나머지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없다며 부러움을 표시했습니다. 현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자기들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안락하게 죽어가는 개구리 꼴이지만 한국 시민들은 급하게 뜨거워진 물을 감지한 개구리처럼 냄비에서 튀어 올라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비유를 들면서 말입니다. 원래 새로운 가능성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을 인지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살려내기 위해 ‘재활력화 운동revitalization movement’을 벌이게 되고 그것이 거대한 전환을 촉발합니다.” - 15p
“기술이 지배한다면서 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가”
청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한 전환적 사고
인구절벽을 우려한 각종 저출산 대책과 청년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각종 지원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왜 그런 정책은 효과가 없는 걸까? 조한혜정은 그런 식의 정책은 ‘노동력’으로 부를 일으킨 1차 근대의 언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인공지능과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해가는 상황에서, 단지 출산율을 높이자거나 임대주택을 줄 테니 애를 낳으라거나 수당을 줄 테니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대신 청년들이 희망을 품고 즐겁게 작당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기획할 수 있는 창의적 공공지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 분배가 필요하며,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져야 한다. 단지 취업을 위한 지원이 아닌, 피폐해진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졌을 때 청년들은 적극적으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2차 근대는 노동력으로 ‘부’를 일으킨 1차 근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성장 고위험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가 국가/사회에 평생 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례로 저체중아 비율이 10년 사이에 2배가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효율 고비용 입시교육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나 제대로 키우자.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이 노동력을 대체한다면서 왜 청년들에게 기존 일자리를 잡으라고 윽박지르고 결혼도 못 하는데 아이를 낳으라 하는가? 노동중독증에 걸린, 재산권신수설을 신봉하는 1차 근대의 언어는 이제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 137p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는 시대”
국민, 시민, 난민의 정치학
조한혜정은 이 책에서 국민, 시민, 난민의 정치학을 이야기한다. 외세의 침입으로 근대화가 본격화된 한국의 경우, 근대의 역사는 동원된 애국적 국민을 양산하는 과정이었다고 진단하며, ‘국민성’이라는 말은 단일화와 통합을 강조하는 반면 ‘시민성’은 다양성과 연대를 중시하는 용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민은 일정하게 국가와 민족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지역사회의 주민이자 글로벌 시민으로서 세계를 살려낼 공공적 활동의 장을 가진 존재다. 나아가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 인종주의 테러의 급증과 난민에 대한 혐오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적대의 분위기를 우려하며, 한국이야말로 난민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할 가정 적격인 나라라고 말한다.
“남북 대치 상황이나 한국 정부의 핵발전 관련 안전 불감증 등을 고려하면 한국 같은 나라야말로 난민 논의를 시작할 가장 적격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시리아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난민이 되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받아줄까? 동해/일본해에서 보트피플로 죽는 건가? 그 전에 이 나라를 뜨는 편이 나을 건가? 그러나 어디로?”라고 묻는 한 네티즌의 질문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지금과 같은 재난과 재앙과 적대의 질서 안에서는 지구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난민을 돕자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 197p
이제 근대화 과정에서 과잉 주체화된 자신을 내려놓고,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간
신의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게 된 근대화 과정에서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실존적 욕망은 오히려 자신을 소외시키고 외로움과 공허함만 남겼다. 조한혜정은 이러한 근대화 과정에서 과잉 주체화된 자신을 내려놓고, 심심하고 느긋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리를 만들어가자고 말한다. 그 곳은 미셀 푸코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일 것이다.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대신, 어쩌면 지금 바로 내 옆에,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그 ‘어딘가’에서 쉴 곳을 찾고 자신을 편안하게 내려놓은 채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인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시민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는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각자 좀 다른 시간 속에 있을 것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이동 중이라는 것, 그리고 마음속 깊이 다른 시간대로의 이동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내가 밤 10시에 동네 요가원에 가는 것은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숨을 고르며 살고 싶기 때문이고 같은 마음을 가진 선남선녀와 한 시공간을 공유하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현재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인류가 태초부터 해온 몸짓과 숨소리에 잠시나마 젖어보려는 시간 말입니다. 이런 작은 몸짓과 고른 숨소리가 다른 시대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31p
작가 소개
저 : 조한혜정
Cho, Hae-joang,趙惠貞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시대 흐름을 읽고 실천적 담론을 생산해온 학자로서 제도와 생활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문화해석적 시대 탐구를 해왔다. 1980년대에는 ‘또 하나의 문화’와 함께 창의적 공공지대를 만들어 여성주의적 공론의 장을 열어갔으며, 1990년대에는 ‘하자센터’를 설립해 입시교육에 묶인 청소년들이 벌이는 ‘반란’을 따라가면서 대안교육의 장을 여는 데 참여했다. 2000년대부터는 신자유주의적 돌풍에 휘말린 아이들과 청년들 걱정에 서울시 마을공동체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대청마루(범사회적 대화기구)’의 대표를 맡아 관민 협력의 장을 열어갔다. 최근에는 공멸 위기에 처한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서울과 제주도, 동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새로운 학습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 《탈식민지 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 1~3권》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다시 마을이다》 《자공공?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 등을 썼고, 공저로 《탈분단 시대를 열며?남과 북 문화 공존을 위한 모색》 《왜 지금 청소년?》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한류와 아시아의 대중문화》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경계에서 말한다》 《가정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인터넷과 아시아의 문화연구》 《교실이 돌아왔다?신자유주의 대학생의 글 읽기와 삶 읽기》 《노오력의 배신》이 있다.
목 차
서문_선망국에서 선망국으로
1부 - 전환의 시간
‘재美난’ 학교의 마법
청년시민에게 작업장과 활동 수당을
남녀 국방의무제가 아니라 남녀 사회복무제를!
탈석유 시대 비축기지와 비빌 기지
비트코인 광풍과 88만원 세대
‘공시생’ 예나에게
메리디안 180, 글로벌 대학의 실험
‘4차 산업혁명 정책’, 점검이 필요하다
‘포스트 386 세대’의 자리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남긴 숙제
⊙ 인터뷰_한국은 앞서가는 선망국
2부 - 미래의 시간
이번에는 ‘퍼펙트 스톰’이 일기를!
수신제가, 돌봄 민주주의 시대를 열며
저출산·고령화 대책의 ‘골든 타임’
보육 소동과 한심한 ‘아버지들’
‘도시 총각’ 수난 시대
모성, 그 불안과 혼돈의 자리
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질문
가정, 윤리의 싹을 틔우는 곳
고요하고 넉넉하게 늙어가기
연말 안부를 묻는 자리
⊙ 기고문_근대 시민의 탄생
3부 - 신뢰의 시간
강남역과 구의역, 다시 신을 불러오며
적대의 국민’과 ‘환대의 시민’ 사이
송복 선생님께
연애를 허하라!
국민과 난민 사이
파리 테러와 3차 세계대전, 그리고 청년
다음 침공은 어디?
‘코즈모폴리턴 난민’으로 다시 시작하다
즐겁게 살자, 제대로 소환하며
경주를 부탁해
울리히 벡 선생을 기리며
⊙ 강연록_재난의 시대,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
4부 - 시민의 시간
광장에서 익어가는 시민정치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무너지는 마음을 바라보는 힘
이제는 숙제할 시간
대의제에 안녕을 고해야 할 시간
미래 세대를 위한 시간
⊙ 대담_2017, 촛불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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