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국가는 ‘인구’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 인구는 통계와 과학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사실 정치의 문제다
2016년 정부가 가임기 여성 수에 따라 각 지방자치체에 순위를 매긴 ‘대한민국 출산지도’에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한국 정부가 출산율에 대해 얼마나 맹목적이고 안이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국가는 출산율 감소로 인한 ‘인구 절벽’ ‘국가 위기’ 등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정작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기본 인식이다. 최근 낙태죄 위헌 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 논의되면서 낙태죄를 둘러싼 찬반 논의가 활발해졌는데 여기서도 출산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50여년 전, 국가는 출산율 문제에 대해 현재와 반대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개입했다. 1960~70년대에는 임신중절 수술이 산아제한을 위한 방법으로 권장되었으며, 1972년에는 과밀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출산율과 인구조절 정책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듯 보이는 국가의 모순적인 태도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가족과 통치』의 저자 조은주는 2000년대 초반 저출산이 문제화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생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가족이 통치의 도구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1960~70년대 가족계획사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십수년에 걸친 연구가 집대성된 이 책은 당시의 가족계획사업이 단지 출산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일종의 근대화 프로젝트(151면)였음을 보여주면서, 국가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국민의 사적영역을 재구성함으로써 어떻게 통치의 실천을 수행했는지 면밀히 따져본다. 당시의 잡지, 각종 정책과 통계자료, 국내외 조사연구 프로젝트 등을 샅샅이 분석하면서 ‘인구’ 문제가 당시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연관을 맺으며 부상했음을 극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출산율, 사망률 등과 같은 인구 문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국가의 발전 정도에 따라 통치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박정희 정권, 성생활·임신·출산을 정치적 장에 도입하다
박정희 정권기, 산아제한은 일상이었다. 1961년 10월 박정희는 기자회견을 열어 산아제한을 위한 계획은 강제성을 띤 “입법으로써 단행할 것이 아니라 국민운동을 통한 계몽으로써”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19면). 피임술을 보급하기 위해 양장 차림의 가족계획계몽원이 전국의 읍·면 단위로 배치되었고(83~87면), 텔레비전에서 피임술 중 하나인 루프 광고가 방영되기도 했다.
군부독재 시절에 이루어진 가족계획사업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평가할 때 품기 쉬운 오해는 이러한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정부가 국민을 국가감시 시스템으로 포섭했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와 논의들 역시 대체로 재생산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적 개입이라는 관점에서 가족계획사업을 주목해왔다. 하지만 가족계획사업은 개인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조작하는 국가의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았다. 피임술을 홍보하는 양장 차림의 가족계획 계몽원, 전국의 출산율을 집계하기 위해 가구원의 수를 묻는 조사원, 불임술 시술 과정을 훈련하는 의사, 루프 광고를 보여주는 텔레비전, 행복한 부부의 성생활에 관한 칼럼을 게재한 기독교 잡지, 이 모든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겨냥한 통치의 실천이었다.
조은주는 국가권력의 구체적인 실천과 성격, 그 효과를 분석하면서 가족계획사업이 이른바 국가의 통치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이었음을 주목한다. 푸꼬의 ‘통치성’ 논의(1장 참조)를 경유한 저자의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이 연구가 기존의 논의와 차별되는 탁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저자의 분석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폭압적인 군사정권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 또다른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결혼하고 노동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저축하고 소비하는 모든 과정을 인구의 통치라는 차원에서 정치권력의 장에 도입한 것이 바로 박정희 정권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60년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인 기원이다.”라는 지적은 되새길 만하다(263면).
정상가족의 탄생: 가족계획사업, 낭만적 사랑과 연애결혼을 옹호하다
가족계획사업에서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가족계획 담론에서 재생산과 분리된 쾌락적 섹슈얼리티가 일관되게 추구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73년 가족계획 계몽 부채에 그려진 만화가 ‘음탕’하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는가 하면(175면), 가족계획을 위해 출판된 각종 책과 잡지에는 종교, 의학 등 각계 전문가가 부부의 즐거운 성생활에 대해 조언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는 글을 게재했다(181~191면, 195~204면). 기존의 여러 연구가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국가발전을 위해 통제되는 대상이 되었다고 평가하는 데 반해 조은주는 가족계획사업이 피임술의 보급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을 기술적으로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성의 쾌락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면서 성행위를 생식의 목적과 분리된 ‘사랑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의미화했다(202면)고 분석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대한가족계획협회의 기관지인 『가정의 벗』에서 다양한 기사, 만화 등을 풍성하게 인용하면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이 잡지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의식과 충분한 성지식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욕망을 강조하는 부분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진보적인 면이 있다.
이처럼 가족계획사업은 통제와 감시 아래 여성들을 단순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성과 사랑, 결혼에 관한 담론들을 통해 여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주체화했다. 낭만적 사랑, 연애결혼, 합리적으로 가계를 운영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의 주체성과 자율성 등이 강조되었지만 그러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삶은 가족관계와 남성의 일대기에 더욱 종속되었다(257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을 설명해내기 위해 조은주는 때로는 개인의 삶에 밀착해서, 때로는 국가의 통치라는 거시적 관점을 넘나들며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가족과 통치』는 가족이 국가와 개인, 젠더와 계급이 교차하는 한복판이자 재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힘들이 경합하고 대결하는 장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정상가족’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한다.
작가 소개
저 : 조은주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생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주목하면서 통치성의 맥락에서 가족 및 인구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통치-과학의 결합과 지식의 사회적 형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연구로 「인구의 출현과 사회적인 것의 구성」 「인구의 자연성과 통치 테크놀로지」 「인구통계와 국가형성」 「비서구의 자기인식과 역사주의」 “Making the ‘Modern’ Family: The Discourse of Sexuality in the Family Planning Program in South Korea” 등이 있다.
목 차
1장 가족, 통치의 모델에서 통치의 도구로
죽게 하는 권력과 살게 하는 권력
근대 정치의 두 계열
가족, 인구, 통치
1960~70년대 한국의 가족과 국가
2장 인구의 부상
국제노동기구 전문위원의 충고
인구의 출현
인구의 자연성과 사회의 실증적 발견
제3세계, 인구학적 타자
정치적 상상과 인구: 한국의 가족계획
3장 가족계획사업
어느 면서기의 기록
근대적 출산조절
대한가족계획협회
피임술의 보급
가족계획어머니회
4장 국가의 통치화
인구에 관한 지식
통치와 과학
수와 통치: 가독성의 효과
국가형성과 인구
5장 역사주의와 가족
짐승의 삶과 인간의 삶
농민과 노동자
제2의 시야: 의사들
역사주의: 시대착오와 수치의 계몽
6장 근대가족 만들기
음탕한 부채
가족계획의 성 담론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의 결합
가족의 정상화
7장 여성의 주체화
피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낭만적 사랑과 성찰적 주체
가정의 관리와 아동의 양육
전업주부: 성과 계급의 교차로
여성의 주체화: 자유와 권력
8장 가족과 통치
왕의 목을 자르기
국가효과
가족, 통치의 도구
길 위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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