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시종쉰(習仲勳)은 섬감변구(陝甘邊區) 혁명근거지를
창건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다.”
시종쉰(習仲勳)은 원칙을 견지하고 자신의 입장을 견지 하였으며, 관점은 명확하게 당의 이익을 우선순위에 놓았다. 그는 나라를 위해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힘을 다하였다.
1. 단촌(淡村)고원의 농촌 소년
중국 역사에서 관중(關中)의 대지는 너무나도 많은 찬란함과 무거움을 담고 있다. 진(秦), 한(漢), 수(隋), 당(唐) 등 13개에 달하는 왕조가 이곳에다 도읍을 정할 정도로 왕기(王旗)가 펄럭였지만, 한편으로는 일월(日月)이 늘 상 뒤바뀌곤 했던 곳이었다. 이에 시성 두보(杜甫)마저 걸음을 멈추고 “진중(秦中)은 자고로 제왕의 주(州)라네”라 읊으며 감개무량해 했었다.
산시(陕西)의 중부에 있는 푸핑(富平)은 자고로 “관중의 유명한 고을”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던 지역인데, 북쪽으로는 차오산(橋山)에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위수(渭水)와 손잡고 있으며, 황토고원의 웅장함과 800리 친저우(秦州)의 광활함을 겸유(兼有)하고 있어 “가히 사방의 형세를 파악할 수 있는, 관푸(關輔)의 으뜸 고을”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푸핑은 진려공공(秦厲共公)1) 11년(기원전 456년)에 현이 설치되고서부터 지금까지 무려 2,400여 년이나 지속되어 오고 있다.
푸핑(富平)이라는 이름은 부유하고 태평스럽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고향에 대한 선인들의 소박하고 경건한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남녀노소가 다 아는 노래가 있다.
“문관으로는 양작(楊爵)이 있고, 무관으로는 왕전(王翦)이 있다네. 효자로는 양열(梁悅)이 있고, 충신으로는 장담(張紞)이 있다네. 태보(太保)로는 손비양(孫丕揚)이 있고, 위징(魏徵)은 꿈속에서 용왕의 목을 베었다네.” 천백년 이래 나라와 민족을 위한 뜻을 세우고 기여했던 뛰어난 인물들을 기리는 마음과 아름다운 신화가 어우러진 노래이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또 장칭윈(張靑云), 자오즈징(焦子敬), 장이안(張義安), 후징이(胡景翼) 등 영웅호걸들이 등장하여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길에 앞장서기도 했다. 바로 이런 곳에서 1913년 10월 15일(음력으로 계축년 9월 16일) 한 농가에서 시종쉰(習仲勛)이 태어났다. 시 씨 가문과 푸핑현 서부의 단촌고원(지금은 단촌진 중허[中合]촌 중허조[中合組]에 속함)과의 인연은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쌍의 아들딸을 지게에 짊어지고 허난(河南) 덩저우(鄧州)로부터 서쪽을 향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종쉰의 조부 시용성(習永盛)과 아내 장(張)씨는 1885년(광서(光緖) 11년) 초에 단촌고원의 더우촌천(都村川)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수 년 동안의 떠돌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들은 남의 머슴살이를 하며, 한편으로는 땅 몇 무(畝)를 소작 맡아 경작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중략-
시종쉰은 산간변구 혁명근거지의 주요 창건자이며, 지도자의 한사람일 뿐만 아니라, 중국 개혁개방 사업의 주요한 개척자이며, 추진자의 한사람으로, 그의 위대한 정신은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이다.
2005년 5월 24일 시종쉰 서거 3주년이 되는 해에 그의 유골은 베이징 바바오산(八宝山) 혁명 공동묘지로 부터 고향인 산시 푸핑현에 안치되었다.
관중의 대지는 그가 혁명을 시작한 곳이며, 일생동안 심사숙고하며 지키려하던 지방이다. 그날 수많은 어르신들과 마을 사람들은 사면팔방에서 푸핑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도로 양변에 숙연하게 서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시종쉰의 영령을 맞이하였다. 수 년 후 사람들은 중국 중앙텔레비전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시종쉰』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시종쉰의 영구차 대열이 푸핑에 들어설 때, 당시 중국공산당 저장성(浙江省) 성위원회 서기였던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당기가 덮인 아버지의 유골이 담겨 있는 유골함을 안고 있었다. 시진핑은 차안에서 묵묵히 도로 양변에 숙연히 서있는 고향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이 클로즈업되면서 사람들은 시진핑과 친척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인기리에 방영된 다큐멘터리와 함께 시종쉰의 영령이 고향에 들어서는 이 장면은 오랫동안 중국 인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왜 나의 눈가에 항상 눈물이 맺혀 있는가 묻는다면 그건 내가 이 땅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오!(爲什麽我的眼裏常含泪水, 因爲我對這土地愛得深沉)” 아이칭(艾靑)의 이 시는 중국인들이 선혈들에 대한 경모와 딛고 있는 땅에 대한 위대한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푸른 측백나무가 둘러져 있고, 사계절 푸른 묘지에 시종쉰의 조각 상이 우뚝 솟아 있다. 조각상의 뒷면에는 시종쉰의 부인이 친필로 쓴 “일생동안 투쟁하고, 일생동안 유쾌하였으며, 매일 분투하고, 매일 행복했다.(戰斗一生,快樂一生;天天奮斗,天天快樂)”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것은 시종쉰의 좌우명이며 그가 후세에 남겨준 소중한 정신적 재산이다.
-본문 중에서
약력 소개
약력 시종쉰(習仲勳)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이고, 중공과 중국인 민족해방군의 탁월한 정치공작 영도인이며, 산간변구(陝甘邊區) 혁명근거지의 주요 창건자인 동시에 영도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중국 개혁개방사업의 중요 개척자이다. 간시(陝書) 푸핑(富平)현 사람으로 1926년 공청단(共靑團)에 가입했다. 1928년 옥중에서 공산당원이 되었다. 1932년 량당병변(兩當兵變)을 영도하여 일으켰다. 전쟁시기에는 중국공산당 산간변구 특위(特委)ㆍ군위(軍委) 서기 겸 산간변구 유격대 총지휘부 정위(政委), 산간변구 소비에트정부 주석, 중국 공산당 관중(關中) 특위 서기 겸 보안사령부 정위, 중공 쉬더지위(绥德地委) 서기 겸 경비사령부 정위, 중앙조직부 부부장, 중공 시베이(西北) 중앙국 서기, 시베이 야전군 부 정위, 제1야전군 부 정위, 산간닝진쉬(陝甘寧晉綏)연방 군구 정위, 신 중국 성립 후에는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위원과 중앙인민정부 인민혁명군사위원회 위원, 제1야전군 및 시베이국 제2서기(펑더화이가 지원군을 이끌고 들어온 후 시종쉰으로 하여금 시베이 당정군 업무를 주지하도록 전면에 세움), 정무원(政務院) 문교위원회 부주임, 중앙선전부 부장, 정무원 비서장, 국무원 비서장, 국무원 부총리 겸 비서장을 역임했다. 개혁개방시기에는 중공광동성위 제1서기 겸 광동성 성장 및 광저우군구 제1정위,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정치국 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시종쉰은 중국인민의 해방사업과 신 중국의 탄생을 위하여,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사업을 위하여, 개혁개방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업을 건설하기 위하여 완강히 분투한 위대한 영도자로서 불후의 역사적 공헌을 남겼다.
작가 소개
1955년 생으로 경기 안성(安城)에서 성장하여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대만,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의 유학과 교학생활의 경험을 통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세계의 문화 및 사회경제교류사를 연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正體性)을 재구성 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중국정부로부터 인정받아 2012년에 “중화도서특수공헌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중국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의 국제위원으로 피선되었다.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미래인력연구원 대표이사, 국민대와 동아대 교수 등을 거쳐 현재 동아시아미래연구원 원장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는<한중일 삼국의 근대화 좌절과 성공의 사상적 배경에 관한 비교연구 - 유불사상의 조화와 갈등이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도쿠가와 막부시기, 일본의 조선성리학 수용과 의의> 외 150여 편이 있고 『한민족과 동아시아세계』 『중국혁명의 기원』등 30여 권의 저서와 『모택동선집』 『등소평문선』 『한중관계사』등 130여 권의 역서가 있다. 2017년에는 중국 국가신문출 판광전총국의 “실크로드의 책 향기” 공정 제1기 “외국인이 쓰는 중국 프로젝트”의 출판 지원 대상 책으로 자서 『한국인도 모르고 중국인도 모르는 한중우호교류사(原書名 : 我眼中的韓中關係)』)가 선정되었고, 2018년에는 동 프로젝트의 창작상을 수상하였다.
목 차
2. 옥중에서 공산당원이 되다
3. 량당병변(兩當兵變)의 총소리
4. 류즈단(劉志丹)·세즈창(謝子長)과의 만남
5, 자오진(照金) 혁명근거지의 창건
6. 천자포(陳家坡) 회의에서 위기를 극복하다
7. 변구(邊區)정부의 ‘아기 주석’
8. 잘못된 숙반(肅反)운동과의 조우
9. 서북(西北) 소비에트구역이 홍군 장정의 근거지가 되다
10. 옌안(延安)을 위해 남쪽대문을 사수하다
11. “당의 이익이 첫째이다”
12. 옌안을 위해 북쪽대문을 사수하다
13. 혁명적인 “양지서(兩地書)”
14. 예타이산(爺台山)의 반격전
15. 마오쩌동에게서 온 아홉 통의 편지
16. 헝산기의(橫山起義)를 기획하다.
17. 변구의 각 부대는 “통일적으로 펑더화이(彭德懷)와 시종쉰 동지의 지휘를 받는다.”
18. 토지개혁에서 ‘좌(左)’를 바로잡고, 마오쩌동은 “완전동의”라는 서면지시를 내리다.
19. “모든 것은 전선을 위한 것이고, 모든 것은 새로운 해방구의 확대를 위한 것이다.”
20. 대 서북(大西北)을 다스리다.
21. 중앙인민정부의 특명 대표
22. 마오쩌동은 말했다. “당신은 제갈량보다 대단하구려!”
23. ‘높은 수준의 중선부(中宣部) 부장’
24. 국무원의 ‘대 집사’
25. 저우 총리(周恩來)의 ‘내교부장(內交部長)’
26. 군관 계급장 수여문(授與文)을 읽다.
27. 국무원 신방제도(信訪制度)를 건립하다
28. ‘대약진(大躍進)’의 열조 속에서 명석했던 시종쉰
29. 세 차례나 시안(西安)의 옛 성벽을 보호하다
30. 정(情)으로 이어진 진성(秦?)과 경운(京?)
31. 소설 『류즈단(劉志丹)』사건
32. 누명을 쓴 16년, 두 차례나 뤄양(洛陽)으로 하방(下放)되다.
33. 65세에 남하하여 광동(廣東)의 정무를 주관하다.
34. 억울한 사건, 잘못된 사건들을 대대적으로 바로잡다.
35. 표본겸치(?本兼治), ‘외국으로 탈출’하는 열풍을 제지하다.
36. 중앙에 ‘권리를 요구’하여 광동이 “먼저 앞서 나아가게 하다.”
37. 특별구역을 설치하여 “혈로를 뚫다”
38. 중난하이(中南海)로 돌아가다.
39. 드넓은 흉금으로 중화를 마음에 두다.
맺는말
시종쉰 일생의 대사년표(大事年表)
| 재화 등의 배송방법에 관한 정보 | 상품 상세설명페이지 참고 |
|---|---|
| 주문 이후 예상되는 배송기간 | 상품 상세설명페이지 참고 |
| 제품하자가 아닌 소비자의 단순변심, 착오구매에 따른 청약철회 시 소비자가 부담하는 반품비용 등에 관한 정보 | 배송ㆍ교환ㆍ반품 상세설명페이지 참고 |
| 제품하자가 아닌 소비자의 단순변심, 착오구매에 따른 청약철회가 불가능한 경우 그 구체적 사유와 근거 | 배송ㆍ교환ㆍ반품 상세설명페이지 참고 |
| 재화등의 교환ㆍ반품ㆍ보증 조건 및 품질보증 기준 |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 및 관계법령에 따릅니다. |
| 재화등의 A/S 관련 전화번호 | 상품 상세설명페이지 참고 |
| 대금을 환불받기 위한 방법과 환불이 지연될 경우 지연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 및 배상금 지급의 구체적 조건 및 절차 | 배송ㆍ교환ㆍ반품 상세설명페이지 참고 |
| 소비자피해보상의 처리, 재화등에 대한 불만처리 및 소비자와 사업자 사이의 분쟁처리에 관한 사항 |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 및 관계법령에 따릅니다. |
| 거래에 관한 약관의 내용 또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 | 상품 상세설명페이지 및 페이지 하단의 이용약관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