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20년 미국 대선의 격전지, 러스트벨트에서 터져 나온
여성 철강 노동자의 목소리
* 아마존 추천 ‘최고의 전기 및 회고록’
바이든과 트럼프가 맞붙은 2020년 11월 미국 대선. 유난히 치열했던 선거전 동안 이곳으로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바로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벨트. 4년 전에는 트럼프가 앞섰던 러스트벨트의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의 표를 바이든이 탈환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1970년대까지 미국 제조업의 중흥을 이끌었던 오대호 주변의 이곳 공업지대는 제조업의 쇠퇴와 산업 중심지의 이동 등으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녹이 슬었다(rust)’는 의미의 ‘러스트벨트’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산업 공동화로 인한 높은 실업률과 빈곤,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하는 가난한 백인 노동자 ‘힐빌리’까지 이 지역에 대한 수많은 진단과 담론이 나왔지만 러스트벨트 제철소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국내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음산책 신간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은 남성 중심적인 일터로 여겨지던 제철소에서 마침내 터져 나온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다.
1986년생인 저자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는 러스트벨트의 하나인 클리블랜드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녹슬고 을씨년스러운 클리블랜드의 광활한 공업지대를 마주하면서도 자신에겐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여겼던 그는 교수의 꿈을 안고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학자금 대출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양극성 기분장애 때문에 석사 학위 취득을 포기한다. 애타게 일자리를 찾던 중 친구의 권유로 과거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공업지대, 아르셀로미탈 클리블랜드 제철소에 취직하게 된다. 1040시간의 수습 기간이 끝나면 “먹고살 만한 임금, 좋은 복지 혜택,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이 될 수 있지만 제철소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제철소 현장에서 끊임없이 당하는 성차별, 죽음과 부상의 위험이 상존하는 작업환경에 강도 높은 밤낮 교대 근무까지 그를 괴롭히는 것은 한둘이 아니다. 이뿐 아니라 머리 위에서 덜커덩거리며 움직이는 거대한 크레인과 작업장을 지나다니는 지게차를 항상 조심해야 하고, 뜨거운 열로 아연을 녹여 강철에 입히는 업무는 위험천만하다. 신입 철강 노동자 오리엔테이션부터 제철소 내부의 모습, 업무 과정, 노동자들의 문화, 그들의 정치 성향까지, 저자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동료들과 오랜 시간 일하고 알아가면서 그는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제철소의 의미와 러스트벨트만의 아름다움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밥벌이를 위해 죽어간 노동자들을 열정적으로 추모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품었던 지게차 운전을 직접 가르쳐주는 선임과 관계 맺으며 유대감을 느끼고 철강 노동자로 성장해나간다. 이렇듯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써 내려간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은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삶이 진하게 배어 있는 책이다.
나의 길은 나를 제철소 한복판으로 이끌었고, 제철소 근무는 잠시 나를 무너뜨리긴 했지만 통제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삶에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해주었다. 몇 년간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들─가난, 성폭행, 질병─이 이제는 제어 가능한 것들로 느껴졌다.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부서진 것을 고칠 수 있었다. 조류가 쓰러뜨린 조각들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믿음이 수녀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때로는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은 철강 속에서 믿음을 발견한다.
-본문 410~411쪽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진보주의자, 페미니스트가 되기까지
혐오로 분열된 미국을 생생하게 증언하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미국은 인종뿐 아니라 주마다 특성이 강한 연방 국가로, 또 남북전쟁 등으로 역사상 분열의 뿌리가 깊지만 트럼프가 당선을 위해 이용한 증오 전략은 더욱 깊은 분열의 골을 만들어버렸다. 저자는 삶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불안을 트럼프가 악용해서 그들에게 희생양과 분노의 대상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그 대상은 ‘이민자들, 민주당 지지자, 이슬람교도’와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를 외치는 시위대였다는 것. 혐오와 적대감이 나라를 갈라놓았는데도 사람들이 ‘두 눈을 가린 장막’을 깨닫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신 또한 노동자로서 미국 동부의 화이트칼라, 소위 ‘엘리트’들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대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단지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로서 경험한 보수적 사회뿐 아니라, 분열된 미국의 경계선에 걸쳐 있던 자신의 인생을 증언한다.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 진보주의자가 된 저자의 인생은 그 자체로 분열된 미국의 생생한 초상이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저자는 어렸을 적 수녀가 되기를 꿈꾸면서 스튜번빌의 가톨릭계 대학교로 진학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성폭행 피해를 당하고 강간문화를 경험한 후 자퇴한다. 이후 진보적인 분위기의 대학교에 재입학해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는 진보주의자로 살아가려 하지만 가족, 보수 성향의 동료들과 페미니즘, 임신중단, 총기 등의 주제로 계속 부딪친다.
이를테면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무렵,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총과 탄약을 사 모으는 일화, 오바마가 총을 소지할 자유를 빼앗기 전에 총기 소지 면허증을 따라고 부모님이 저자에게 채근하는 부분에서는 총기를 둘러싼 보수주의자들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저자가 가톨릭계 대학에 다닌 시절, 임신중단권에 반대하기 위해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유세장에서 묵주기도 시위를 했던 경험과, 시간이 지나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의 행진(Women’s March)’에 참여했을 때 과거 자신처럼 임신중단권에 반대하는 맞불 시위대를 보며 느낀 복잡한 심정도 담겨 있다. 집안에서 금기어였던 ‘페미니즘’을 성인이 되어 받아들이고, 제철소 동료에게도 그것을 알려주는 데까지 나아가는 저자의 경험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할 것이다.
나의 적대감이 이 나라를 갈라놓은 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균열은 정당과 경제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국회와 백악관을 넘어섰으며 우리의 주급과 직책을 넘어섰다. 그 균열은 인간의 약점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경계를 풀었다. 우리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장막과 환상을 짜는 이들이 나타나 우리 자신이 초래한 암흑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우리를 사리 판단에 어두운 장님으로 믿고 우리의 두 눈을 신중하게 가렸다. 우리 중 누구도─철강 노동자들도 변호사들도─다시는 세상을 환히 볼 수 없기를 바라면서.
-본문 270쪽
밀레니얼 노동자의 외침
각자도생의 개인을 넘어 연대로 향하다
밀레니얼 세대로서 저자는 자기 인생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어린 시절 ‘나는 특별하고, 꿈꾸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꿈에만 사로잡혀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미국적 열정’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제철소에 들어가게 된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기 세대가 “개인주의의 유독성에 눈을 감았”다고 진단한다. 자신에게만 몰입하면서 타인의 복잡다단한 면을 존중하지 못했고, 뜻이 다른 사람들과는 공동체를 이루지 않았으며, 자신이 꿈꾸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들이라면 간단히 제거하고 무시했다는 것. 그는 ‘정작 세상과 더 연결되어야 하는데도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왔다고’ 고백한다. 또한 “예상치 못한 경기 침체기의 산물”로서 밀레니얼이 “최저임금과 하향 고용의 끔찍한 좌절”을 버티며 ‘샌드위치를 서빙하고 라떼를 따라야’ 했다며 세대의 고통을 토로한다. 같은 처지의 제철소 직원들과 일하면서 그는 동료들, 나아가 밀레니얼의 처지와 아픔에 공감하고 “제철소의 주황빛 불꽃 속에서 벼려진 통합”을 바라보는 법을 터득한다. 산업재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는 곳에서 동료들과 서로 보살피면서 ‘특별한 나’가 아닌, 서로 연결된 ‘우리’라는 감각을 깨닫는다. 그는 제철소에서 공동체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한 후, 다시 진정한 꿈을 향해 인생의 도전에 뛰어들게 된다.
‘공동체’를 향해가는 저자의 성장과, 밀레니얼에게 보내는 진심 가득한 응원은 단지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밀레니얼 독자들한테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이다. 미국 밀레니얼의 정치적 약진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특히 미국 민주당 소속으로 스물아홉 살에 미 역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밀레니얼의 상징으로 떠오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언급하는 부분은 유권자로서만이 아닌 밀레니얼의 정치 참여에 대해 독자에게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50년 전 청년 전태일이 다른 모든 인간을 ‘나의 또 다른 나’라고 부르며 타인과의 일체감을 표현했듯, 골드바흐 역시 노동자들과 교감하며 주변에 ‘나의 또 다른 나’가 있음을 자각한다. “개인주의의 유독성”에 눈을 감는 대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강한 용기와 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이때의 우리란 ‘나의 또 다른 나’들이 모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그녀는 강철 같은 정직한 노동으로 세상과 뜨겁게 하나로 연결된다.
-「옮긴이의 말」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
러스트벨트의 제철소에서 철강 노동자로 일했다. 1986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면서 수녀가 되기를 꿈꿨다. 스튜번빌에 있는 가톨릭 계열 대학인 프랜시스칸대학교 영문학과로 진학했다가 학교를 옮겨 존캐럴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학내의 진보적인 분위기 속에서 앨라이 단체에 가입하고 에이즈 인식 향상을 위한 행진 등 진보 운동에 참여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교수의 꿈을 안고 노스이스트 오하이오 순수예술대학원의 논픽션 연구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열여덟 살에 진단받은 양극성 기분장애가 재발해 석사 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 이후, 일자리를 찾다가 스물아홉 살에 아르셀로미탈 클리블랜드 제철소에 취직했다.
남성 중심적인 제철소의 문화 속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산업재해의 위험이 상존하는 작업 환경과 강도 높은 밤낮 교대 근무로 양극성 장애가 재발하는 등 힘든 시간을 겪는다. 그러나 가족, 동료들의 도움으로 수습 기간을 무사히 끝내고 정규직 사원이 되어 3년 넘게 제철소에서 일했다. 입사할 때는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고 여겼던 동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정치적 성향을 넘어선 연대의 희망을 발견하고, 나아가 삶을 향한 용기를 되찾는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남은 과정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석사 학위를 받게 된다. 현재 존캐럴대학교에서 영문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며 클리블랜드에서 남편 토니와 함께 살고 있다. 매체 <플라우셰어스> <웨스턴 휴머니티스 리뷰> <베스트 아메리칸 에세이> 등에 글을 발표했고, 플라우셰어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오현아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조인스닷컴(Joins.com)에서 서평 전문 기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알리바이』 『작은 공주 세라』 『작가님, 어디 살아요?』 『디어 개츠비』 『사냥꾼들』 『실비아 플라스 동화집』 『도시의 공원』 『실비아 플라스 드로잉집』 『스팅』 『내니의 일기』 등이 있다.
목 차
2 오리엔테이션
3 철강 노동자의 자격
4 제철소라는 세계
5 교통사고
6 제철소, 신성한 땅
7 ‘솥’ 지킴이
8 두 개의 미국
9 대학 시절
10 정신 병동의 노래하는 사람
11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12 밤을 밝히는 불꽃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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