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문화 담론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권에 꿰뚫는다
문화에 대한 입체적 조망과 대담한 통찰
“문화 개념은 서구 문명 주류와 동의어인 동시에 반의어로 발전했으며,
문명이자 동시에 문명 비판이었다.” _로버트 J. C. 영 (32쪽)
대중문화, 문화산업, 포스트모던 문화비평, 다문화주의… 거창한 개념들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인간 삶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 속한 공동체의 문화적 영향 아래 살며, 누구나 문화의 혜택을 누리고자 하고, 이제 문화는 부흥시켜야 할 산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문학, 정치, 이념, 종교 등 영역을 넘나들며 거의 해마다 주목할 만한 저서를 펴내온 시대의 지성 테리 이글턴이 거장다운 대담함과 촌철살인의 필치로 문화에 대한 통찰을 내놓는다. 이글턴의 장기인 영국식 유머와 문학적 아이러니가 스민 신랄하면서도 명랑한 문장들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다.
19세기 초 유럽에서 ‘문화’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후로, 20세기에 이르러 영화, 텔레비전, 광고, 언론 등을 통해 문화 개념은 활짝 꽃을 피웠고 현재까지 끊임없이 그 의미를 확장해가고 있다. 예컨대 18세기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문화를 권력의 매개체로 바라보았다. 국민을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은 법이나 정치가 아니며, 오히려 정치권력은 문화를 통해 정착해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다수의 철학자가 예술이라는 의미에서의 문화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했고, 탐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 존재의 의미가 자기 자신을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 책은 지난 2세기 동안 문화 개념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탐구하면서, 철학, 인류학, 예술, 문학, 정치 등 다양한 영역의 걸출한 사상가들을 소환한다. 에드먼드 버크,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프리드리히 실러, T. S. 엘리엇, 레이먼드 윌리엄스, 오스카 와일드 등 시대를 대표한 사상가들을 통해 문화라는 주제에 다각도로 접근한다.
지난 2세기 동안 문화 개념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통렬하고도 흥미진진한 21세기 문화 오디세이
“문화는 혁명의 해독제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혁명의 박차가 될 수도 있다.” (101쪽)
‘문화’라는 단어는 애초에는 ‘문명’과 동의어였고, 한동안 그렇게 사용되었다. 문명처럼 문화도 물질적 제도들을 포함하나, 일차적으로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작업들 혹은 인간이 따르는 가치와 관습 등을 일컫는 정신적 현상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문화는 인간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활동들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결국 물질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하여 크게 보면 문화는 “문명이자 동시에 문명 비판”으로서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유럽에서 문화 개념이 발흥하게 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프랑스혁명이라고 할 때, 문화 개념이 그런 정치적 소요에 맞서서 비판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는 18세기 후반에 산업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 낭만적 민족주의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가, 19세기가 시작되자 식민주의와 인류학에 대한 논의에 휘말려들기도 했으며, 공동체의 내면에 깔린 ‘사회적 무의식’으로서 쇠퇴하는 종교의 대체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문화는 주요 산업의 하나로 성장해 대중의 의식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 특히 20세기 중반 다양성과 대중성을 중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면서, 문화는 현재 우리 사회에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갈등을 불러온 이슈가 되었다. 테리 이글턴은 이 책에서 인류의 지성사를 대담하게 훑어내리며 문화의 본질과 그 현 상태를 날카롭게 통찰한다. 특히 우리 시대 문화의 흐름인 포스트모던의 다양성 담론을 중심으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의 의미와 역할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문화는 자본주의의 도구인가 비판자인가
문화 상대주의와 다양성은 무조건 옹호되어야 하는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 모든 의견이 필요하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이 모든 종류의 의견이 한목소리로 아동 매춘의 폐지를 요구하는 일은 바람직하며, (…)
그런 문제들에서 우리는 각양각색이 아니라 만장일치를 필요로 한다.”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인간 존재에 철저히 스며들었고, 이제 문화를 인간 존재의 근간으로 간주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가 도래했다. 포스트모던의 문화 상대주의, 다양성, 소수성에 대한 관심은 물론 우리 사회에 귀중한 성과들을 만들어냈지만, 테리 이글턴은 포스트모던 이후 문화 담론이 어떤 면에서 매우 배타적이라고 진단한다. 예컨대 정치적으로 올바른 학생들은 동성애 혐오자를 대학에서 몰아내는 데 힘을 쏟지만, 노동을 착취하는 자본가들이나 노조 폐기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별달리 힘을 쏟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눌 권리는 존중받지만,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권리는 부정당하는 시대인 것이다. 포스트모던이 차이와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통일성, 총체성, 보편성을 몰아냈고, 어떤 면에서 인간을 더 물질적인 다른 이슈들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글턴에 따르면 “일부 차이는 폐기할 가치가 있는데, 예를 들면 거지와 은행가 사이의 물질적 불평등 같은 것이다.”(53쪽)
문화는 엄연히 사회제도의 일부이고, 문화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조건이 필수적이다. 책을 읽으려면 책이 필요하고, 책을 만들어내려면 제지공장과 인쇄기가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가 더 이상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문화산업’의 핵심 동기 또한 ‘문화’ 자체가 아니라 ‘이윤’이며, 이미지·브랜드·아이콘·디자인·광고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 기술은 자본주의의 ‘미학적’ 형식의 하나일 뿐이다. 기존 질서에 대해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게이, 페미니스트, 서브컬처 문화들 또한 애초부터 자본주의를 전복할 희망조차 품고 있지 않다고 진단한다.문화는 사회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심지어 시민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문화의 본질과 역할이 그것이라면, 지금 우리 시대의 ‘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결국 이글턴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명 비판으로서의 문화는 점차 그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말하며,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이라는 큰 틀 안에서 문화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다양한 범위의 답을 제시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테리 이글턴
1943년 영국 샐퍼드에서 태어났다. 영국 문화 연구의 창시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 연구교수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로 ‘정치적 행위’로서의 비평과 ‘제도’로서의 영문학을 분석해 명성을 얻었다. 19세기 이후 영미 문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사회, 정치, 문화 등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의 문화와 가톨릭 급진주의의 유산을 재평가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비평과 이데올로기》 《문학비평: 반영 이론과 생산 이론》 《이데올로기 개론》 《미학 사상》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문학 이론 입문》 《우리 시대의 비극론》 《성자와 학자》 《성스러운 테러》 《시를 어떻게 읽을까》 《반대자의 초상》 《신을 옹호하다: 마르크스의 무신론 비판》 《이론 이후》 《민족주의, 식민주의, 문학》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악》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등이 있으며, 대담집으로 《비평가의 임무》가 있다.
옮긴이 : 이강선
필명은 이명.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토니 모리슨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중앙대, 성신여대 등에서 영문학과 번역을 가르쳤고, 현재는 호남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 《새들백》 《암의 나라에서 온 편지》 《사랑의 백 가지 이름》 《유쾌한 천국의 죄수들》(프랑스어 번역) 등 10여 권이 있다. 저서로는 《몸이 아프다고 삶도 아픈 건 아니야》가 있다.
목 차
머리말
1 문화와 문명
2 포스트모던의 편견들
3 사회적 무의식
4 문화의 사도
5 헤르더에서 할리우드까지
6 결론: 문화의 자만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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