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북극’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이 ‘빙산’, ‘북극곰’, ‘온난화’, ‘과학기지’ 정도를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도 북극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일 테지만, 수만 년간 인류가 흔적을 남기며 살아온 곳으로서 북극은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책은 타자의 관점이 아닌, 그곳에 여전히 뿌리박고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또 그들과 함께하는 참여자의 관점에서 ‘새로운’ 북극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중심에 김종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부원장이 있다. 북극 전문가인 저자는 10여 년간 북극을 연구하며 33번 현지 조사를 수행했다.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북극 문제를 논의하는 장인 ‘북극협력주간’ 창설을 이끌었다. 과학과 환경 문제부터 국가 간, 기업 간 이해관계 문제까지 북극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다루며, 무엇보다 “사람 사는 곳”으로서 북극의 매력을 발견했다. 이 여정에 또 한 명의 저자인 최준호 《중앙일보》 과학·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이 동행했다. 현지 조사와 원고 작성을 함께하며, 기자로서의 전문성을 발휘해 낯설지만 매력적인 북극 이야기를 발굴하고 정리했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 ‘세상의 끝’이라 불릴 정도로 불모의 땅인 북극에도 사람은 산다. 그들이 쌓아 올린 삶의 이야기가 북극에 관한 고정관념 너머,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실마리다.
“이 조선 여인을 아시나요?”
낯선 북극에서 느끼는 익숙한 정취
북극은 낯선 곳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단 자연환경이 극과 극이고, 그렇다 보니 역사와 문화도 굉장히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북극과 우리는 알면 알수록 ‘멀지만 가까운’ 사이다.
이역만리 동토에서 살다 간 조선 여인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언젠가 북극을 코앞에 둔 러시아 사하(Sakha)공화국의 노바야시비리(Novaya Sibir)섬에 어느 조선 여인이 도착한다. 북극해로 향하는 고기잡이배에 탔다가 눌러앉은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이야기는 체코 출신 모험가 얀 벨츨(Jan Welzl)의 자서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벨츨과 함께 이누이트 여자아이를 키웠다고 한다.
동구 밖으로 나가는 일조차 드물었을 그때, 지금도 가기 힘든 얼음 바다의 외로운 섬에 조선 여인이 정착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놀랍다. 하지만 그녀는 풍전등화 처지의 조국 대신 이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았을지 모른다. 사하공화국 사람들은 생김새와 문화가 우리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1,300여 년 전 한민족과 발해를 함께 건국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이야기는 북극과 우리의 ‘거리’를 다시 생각해보게끔 한다.
북극과 우리 사이 어딘가, 동토 깊숙이 잠든 매머드를 캐내 상아를 팔아 먹고사는 사냥꾼의 이야기, 급격한 도시화로 생계가 막막해진 원주민의 이야기가 오로라처럼 피어오른다. 우리에게 익숙하든 낯설든,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이 책이 “북극이라는 ‘공간’에서 ‘사람’으로” 독자의 시야를 넓히는 이유다.
“‘단순한’ 온난화는 없다”
위기와 기회의 경계가 된 온난화
많은 사람이 북극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온난화로 지구가 더워지는 만큼 북극은 녹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따른 온갖 부작용, 예를 들어 해수면이 높아진다거나, 북극 생태계가 붕괴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 북극곰이 환경운동의 상징일 정도로, 온난화는 곧 북극의 위기로 여겨진다.
하지만 책이 전하는 현지의 분위기는 약간 다르다. 북극의 극한 환경은 그곳 사람들에게 언제나 도전이었다. 그래서 기후변화도 ‘적응’할 문제, 심지어 ‘기회’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그린란드는 국토를 뒤덮은 얼음이 녹아내리자 수력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지열발전을 하는 국가’라는 교과서 내용을 조만간 고쳐야 할지 모른다. 오랫동안 부동항을 찾아온 러시아도 온난화를 기회로 여긴다. 21세기 들어 북극해에서 1년 내내 얼지 않는 해역이 늘며 북동항로의 진정한 지배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온난화의 어두운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알래스카 최북단의 우트키아비크(Utqia?vik)는 원주민의 높은 자살률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고래를 사냥해 먹고살았는데, 온난화로 고래 개체 수가 감소해 생계가 막막해지자 자살률이 치솟았다. 세기말적 차원에서 온난화를 준비하는 곳도 있다. 노르웨이의 스발바르(Svalbard)제도에 있는 거대한 규모의 종자보관소와 기록보관소다. 온난화든 핵전쟁이든 어떤 이유로 인류의 대부분이 사라져도 몇몇 생존자가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이처럼 온난화는, 정작 그 영향이 가장 크게 미치는 북극에서 전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위기는 국운을 바꿀 정도의 기회가 되고, 어떤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불러온다. 이 책에서 얽히고설킨 온난화의 이면을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북극 탐험은 계속된다”
숨 가쁘게 준비되는 북극의 미래
오랜 세월 만들어져 뜻밖의 매력을 보여주는 역사와 문화, 바로 오늘날 직면한 전 지구적 문제인 온난화의 이면을 소개한 다음, 이 책은 북극의 미래를 살펴본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대결로 짙어진 신냉전의 그림자가 북극에도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북극의 미래,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북극에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기술 발달로 채산성이 높아지고, 이를 운반할 바닷길과 하늘길이 다양해지며 여러 나라와 기업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20세기 북극이 과학 탐구의 최전선이었다면, 21세기 북극은 뜨겁게 충돌하는 이해관계의 최전선이다. 아직 군사적 대결로까지 심화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는 대규모 쇄빙선단을 꾸려 북극에의 접근성을 날로 높이고 있다.
이에 여러 국제기구가 북극 문제를 대화로 풀고자 노력 중이다. 각각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에서 창설된 북극이사회, 북극프론티어, 북극서클의회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북극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2016년 북극협력주간을 창설했다. 비북극권 국가에서 열린 최초의 북극 관련 국제회의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북극의 미래에서 우리의 역할을 찾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이해’를 넘어 ‘관계’를 강조한다. 북극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곳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된다면 ‘얼음’ 너머, 진정한 북극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김종덕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부원장이다. 2011년부터 북극 관련 연구에 참여해, 100여 차례에 걸쳐 국내외 북극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서른세 번의 북극권 현지 조사를 수행했다. 정부의 북극 정책 수립에 참여해 북극기본계획 수립, 북극권 국가 협력 방안 마련, 북극이사회 참여, 북극 전문가 네트워크 구성 등 국내 북극 정책 연구를 이끌었다.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다자간 논의의 장인 북극협력주간을 창설하는 데 이바지했고, 미국, 러시아, 캐나다, 한국, 중국, 일본의 전문가 및 정부 관계자 간 자유로운 논의를 표방하는 북태평양북극컨퍼런스 창설을 주도해 현재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한국과 북극권 학생들 간의 교류 증진을 위한 북극아카데미를 구상, 운영해 현재까지 2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최준호
《중앙일보》 과학·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이다. 고려대학교 학부 시절에 전공으로 독어독문학을, 부전공으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다. 이후 기자 생활 중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과학저널리즘과 미래 전략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는 주로 산업부와 경제부에서 활동하다가 하와이대학교 미래학연구소 연수를 계기로 과학과 미래학 분야에 천착하고 있다. (사)미래학회 창립 멤버이고, 국회미래연구원 설립준비위원을 지냈다.
목 차
머리말│북극의 영혼은 오로라가 된다
짧게 정리한 북극의 긴 역사
1장 흰 사막을 물들이는 사람들
북극의 역사와 문화
북극으로 떠난 조선 여인
시간을 넘나드는 사냥꾼들의 나라
순록의 혀끝을 먹지 않는 이유
얼음과 천둥, 바람의 노래
고립된 얼음 왕국
이누이트의 눈물
썰매개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2장 사라져가는 것의 두 얼굴
북극의 자연환경과 온난화
빙하가 움직이는 속도, 하루 40미터
동토에 폭포가 생기다
기후변화가 가져다준 기회?
신들이 노니는 진달래꽃밭, 바이칼호
인류 멸망을 준비하는 스발바르제도
북극의 밤하늘을 밝히는 고래의 영혼
3장 차가운 땅, 뜨거운 충돌
북극의 정치와 경제
알래스카 매입이라는 ‘뻘짓’
세상의 끝에서 만난 가스 왕국
북극 바다의 지배자, 원자력쇄빙선
산타클로스의 특별한 선물, 북극이사회
북극 탐험의 최전선, 북극프론티어
열린 논의의 장, 북극서클의회
북극 삼국시대의 도래
우리는 북극을 어떻게 만나야 할까
맺는말│세상의 끝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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