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가난한 나의 이름으로 ‘내 삶’을 말하다 : 끝없이 일해도 가난한 삶
‘양동 쪽방’을 공통분모로 모인 이 책의 주인공들은 쪽방뿐만 아니라 여인숙과 고시원, 거리와 병원 등을 오가며 생활해 온 이들이다. 이토록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세간의 관념은 ‘무능한 사람’ ‘게을러서 스스로의 생계조차 꾸리지 못하거나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 ‘국가가 주는 수급비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출생부터 빈곤했던 이들은 대부분이 배고픔과 폭력, 미래가 없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무작정 상경”한 평범한 ‘시골 사람들’로 무일푼으로 시작된 이들의 서울살이는 끝없는 밑바닥 노동 이력들로 점철돼 있다(거리 생활을 오래 했던 김강태 역시 노숙을 하면서도 양계장, 돼지 농장 등을 오가며 끊임없이 일해 온 삶을 보여 준다). 넝마주이, 머슴살이, 새우잡이 배, 염전, 양계장, 돼지 농장, 각종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도로와 빌딩, 댐과 발전소를 짓고 달걀과 돼지, 새우와 소금을 밥상 위에 올려준 이들이 지금은 쪽방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화자 중 장용철은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번 돈으로는 서울 도심에서 비적정 주거나 거리를 떠돌며 하루살이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게다가 (중국집 배달원에서 사장이 되어) 가난의 궤도에서 벗어날 뻔한 문형국조차 IMF의 여파로 다시 일용직 인생으로 추락하는 모습이나 실직과 IMF 위기가 겹쳐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김강태의 삶은 “가진 건 몸뿐인”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안전장치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묻게 한다.
지금도 쪽방촌에서 말년을 살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70킬로그램에 달하는 폐지를 줍거나 “새벽부터 남대문 인력 시장”에 나가 일거리를 찾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받는 돈 75만 원에서 25만 원의 월세를 내고 남는 돈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 가난한 나의 이름으로 ‘내 집’을 말하다
한 평 남짓 쪽방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주방은 물론 화장실조차 공동으로 사용하고, 냉난방은 물론 온수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쪽방에서 주민들은 대개가 목욕은 상담소에서 하고, 식사는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거나 나눠 주는 도시락을 데워 먹는 정도다. 그런데도 월세는 현재 25만 원선. 전기요금은 월세에 포함돼 있지만 밥솥 하나라도 더 갖다 놓을라 치면 전기세를 더 내야 할 정도로 ‘관리’는 철저하다(물론 기반 시설에 대한 관리는 거의 하지 않아서 문형국은 몇 년간 망가진 공용 세탁기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이고, 부실한 시설에서 아픈 몸이 부상을 입어 요양병원행을 앞당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쪽방 주민 대부분은 오랜 노숙 생활 끝에 몸이 망가져 정착하거나 단순 일용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도심에서 가장 값싼 거처를 찾아 들어온 경우에 해당한다. 재개발로 밀려나 쪽방촌을 전전해 온 이들도 상당수다(강성호는 3년간 쪽방촌 내에서만 이사를 다섯 번 했고, 장영철은 후암동 쪽방에서 쫓겨나 양동에 왔으며, 김기철 역시 중림동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들이 지불하는 월세는 타워팰리스의 평당 월세보다 높을 정도로 결코 싸지 않으며, 월 수급비 75만 원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로 큰 부담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한사코 양동에 남고 싶다고 말한다. 왜일까? 노년을 맞은 기초생활수급자가 굳이 도심에 남으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내 사회적 관계가 있는 정든 ‘내 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도심에 거주하려 하는 이유는 그곳이 이들이 당장 ‘내일’이나마 그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대문 일당 소개소가 가까이 있고, 지방보다 수급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으며, 병원이나 일자리로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동 재개발이 확정된 이후 현재 주민의 절반이 이주한 상태다. 대부분은 강제 퇴거가 이루어지면서 법적으로 보장된 이사비나 주거 이전비도 받지 못하고 나갔다.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 빈곤 비즈니스 ver. 2021 / 가난한 자들을 이용해 누가 돈을 버는 이들은 누구인가
쪽방촌 집주인들이 대부분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건물주들이며 가난한 이들의 수급비에서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를 월세로 받아가면서 장사를 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개발이 확정된 양동 쪽방촌은 현재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건물을 사들이고 주민들을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주거 안정성은 훨씬 더 위협받고 있다. 재개발시 세입자에게 보장되는 주거 이전비와 이사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없애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의 가난을 갉아 먹는 ‘비즈니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거리 노숙을 경험한 이 책의 화자들은 하나같이 서울역에 있다가 요양병원이나 정신병원으로 유인당해 입원한 경험을 증언한다. 입원 환자 수를 늘림으로써 병원은 의료 급여를 탈 수 있고, 또 이들이 수급자가 될 경우 그 수급비까지 병원에 귀속되기 때문. 또 몇몇의 증언에서는 수급비를 착복하고 무임 노동을 시키는 복지 시설의 부정부패도 드러난다.
게다가 이 책의 화자들은 대부분이 명의 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정보 부족이나 판단 미숙으로 돈 몇 푼에 신분증을 내줬다가 명의 범죄의 피해자가 아닌 공범이 되어 감옥살이도 하고 듣도 보도 못한 채무를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다니며 수급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물론 그 뒤엔 이들의 ‘못배움’과 ‘어리숙함’을 이용하는 범죄 집단이 있는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카드 발급을 남발한 국가의 금융정책과 핸드폰 구입을 강권한 정보통신 정책이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 복지제도의 허와 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길은 쪽방촌 주민들에겐 ‘구원’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가시밭길이기도 하다. 우선은 ‘가난을 증명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신청이 불가능할 정도다. 대부분은 유인입원당한 병원이나 속아서 끌려간 복지시설에서 수급자가 되거나, 노동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린 몸을 이끌고 구청의 복지사나 상담소 직원, 활동가들 앞에 나타나야 수급을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빈곤과 가족의 해체를 증빙하고, 이를 위한 온갖 서류와 모멸감을 견디고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고 나서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는 것.
게다가 고난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급자들은 수급 이후에도 자신의 노동을 ‘들켜서는’ 안 된다. 소득이 잡히면 수급비에서 차감되기 때문. ‘부정’ 수급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쪽방 주민들은 “몰래” 파지를 줍고, “산재도 기본급도” 보장받지 못하는 더 음지의 일에 내몰린다.
◈ 함께, 곁을 지키는 사람들
가난은 이 책의 화자들을 (‘가족’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시켰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곁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술친구가 돼 주거나 무연고자로 사망한 이웃의 공영장례를 함께하는) 쪽방촌의 이웃들, 이들의 수급 선정을 돕고 도시락을 챙기며 안위를 돌보는 활동가와 복지사들이 그들이다. 이 책은 이런 이들의 목소리를 말미에 담아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보다 깊이 들여다본다.
해피인 신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는 매일 새벽 2~3시에 일어나 오전 중에 생업인 배달일을 마치고 오후에는 해피인 활동을 하는 ‘봉사자’의 일상을 보여 주는 한편, 몇 년간 주민들을 만나며 쌓아 온 통찰들을 드러내 준다. “여태껏 많은 상처를 받아 본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과, “혼자 벽 보고 이야기하는” 정신질환을 가진 주민을 좀 더 일찍 찾아보지 못한 후회도 있다. 그는 “끊임없이 성실히 일한 이들이 끊임없이 가난해야 하는 이유”를 되물으며 “우리도 일을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임을 강조한다.
대학 때부터 쭉 도시 빈민의 곁에서 활동해 온, 이 책의 기획자 이동현 활동가는 “양동 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남겨야겠다 마음먹으면서” 특히 “양동을 떠난 사람”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껏 쪽방 재개발로 이주한 사람들이 옮겨 간 삶들을 보면, “아주 잘해 봐야 수평이동”인데, 그런 이들을 내쫓아 고시원이나 여인숙, 거리로 내모는 재개발에 대해 다시 생각했으면 해서다. 그는 621번지에 살며 집주인 대신 건물을 살뜰히 관리했던 은철 아저씨(지금은 중림동 여인숙에 산다) 같은 “쪽방 주민들이 그동안 마을을 일궈 온 노고와 권리”는 왜 인정되지 않는지 묻는다.
또 노가다로 번 돈이 있는데도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삶이기 때문에) “감각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주기적으로 노숙을 하러 오는 똥파리 형이나 자신에게 일자리를 준 “이명박”을 찍은 의리파 림보 형 등 20년 넘게 활동해 오면서 만났던 홈리스 ‘친구’들의 사연들 역시 가슴을 울린다.
다른 지역 임대주택으로 갔다가 자살한 동자동 주민의 사례나 양동에 살다 구로에 위치한 임대주택으로 가게 됐지만 전혀 연이 없는 곳에서 고립감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석길 님의 이야기는 쪽방촌 재개발이나 이주 대책이 단순히 물질적으로 더 좋은 집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삶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임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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