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 무대에 서다-여섯 몸의 삶이 펼쳐지기까지-(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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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나드, 다리아, 박목우 외
출판사항오월의봄, 발행일:2022/01/19
형태사항p.339 46판:19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9042231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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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아픈 몸’들이 마이크를 쥘 때 세상은 변한다


2만 명 관객들과 뜨겁게 호흡한 화제의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끝나지 않은 여정


‘완치’라는 허상을 깨고 ‘아픈 몸’의 동료들을 찾아 나선
여섯 배우들이 생생히 써내려간 질병 그리고 연결의 경험


선언 하나: 의심과 몰이해에 맞서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참여한 여섯 명의 시민배우들은 각기 다른 아픈 몸을 가지고 있다. 병명도 증상도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은 종종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 언제 어디에서나 의구심이 이들의 몸을 둘러싼다.
수영은 근육병으로 인한 경련 때문에 얼굴 표정과 움직임을 자신의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몸이 좋지 않은 날 더 많이 웃게 된다. 입꼬리나 눈 주변 근육을 통제할 수 없어서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는 웃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영의 표정과 감정을 너무도 손쉽게 동일시하고, 그를 오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며 떠나간다. 무지한 건 사람들인데, 그 무지 때문에 수영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얼굴 하나, 표정 하나를 갖고 싶어서 헤맸던 시간들. 경련이 웃음으로 변하고, 그 어떤 웃음도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다. 나를 스치듯이 보고 스치듯이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 수영에게 가장 기쁜 순간은 누군가 어색한 악수 대신 이런 말을 건넬 때다. “우리 내일 만날래요?” “다음 주에 또 볼까요?”
크론병과 살고 있는 대학생 희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증세 때문에 학교에 병결 신청을 하는 일이 잦은 그는 겉보기에 멀쩡하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는다. 교수나 조교, 친구들에게 자신의 몸에 대해 설명하고 또 설명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는 “건강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기랑 비슷한데 자꾸 아프다고 하고, 장애인들이 보기에는 불편해 보이지 않는데 자꾸 힘들다고 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평생 질병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몰이해는 그 자체로 하나의 ‘통증’이 된다. 이 통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단 하나, “우리 사회의 다수가 다양한 질병서사에 노출되고, 다른 아픈 몸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현대의학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희제는 몸의 증세에 따라 다양한 의료과를 전전하지만, 의사들은 오진을 거듭하고 다른 과에 책임을 전가할 뿐이다. 그럼에도 의학은 스스로의 오류와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환자의 몸을 ‘오류’로 만든다. 그 오만함에 대해 희제는 이렇게 일갈한다.
“내 두통조차 설명 못하고, 팔에 생긴 염증 하나에 쩔쩔매면서 자신은 틀렸을 리 없고 내 몸이 특이하다고 말하는 뻔뻔함. 의학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제 발이 진료과들 사이를 헤맨 이유는 의사들의 혼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헤맨 건 내가 아니라 의학이죠. 의학이 완벽하다는 착각을 버릴 때, 비로소 의학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선언 둘: 낙인과 추방, 도구화에 맞서
한편 어떤 몸은 그 존재 자체를 철저히 부정당한다. 이런 몸들은 사회 밖으로 추방된다. 20년 넘게 조현병과 살며 환청을 듣는 목우의 존재를 사회는 손쉽게 삭제하려 한다. 환청은 목우 자신에게는 ‘실재’하는 소리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정상’의 증표로 강제입원과 약물치료의 근거가 된다. 현대 정신의학이 볼 때 환청은 약물로 제거해야 할 위험한 목소리일 따름이다. 결국 반복된 강제입원과 그를 부끄러워하는 가족들의 태도에 목우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게 된다.
목우는 자신의 몸, 즉 “잠이 쏟아져 간단한 문서 작성을 할 수도 없고, 강박 때문에 몸을 움직여 물건을 정리할 수도 없고, 설거지조차 물소리가 말을 거는 환청으로 들려 할 수 없는 그런 몸들”이 갖는 의미를 사회에 나와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몸들이 “쓸모없는 몸으로 버려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시설에 수용”되거나 가족에게조차 무시와 침묵을 당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연극 무대에서 그는 “연약한 것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던 내 마음”이라고 환청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긍정한다. 오랜 세월 자신에게 ‘비정상인’의 낙인을 씌웠던 환청에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그 낙인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목우가 덧붙인 정의는 환청에 대한 전복적 해석이자 현대 정신의학과 의료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다리아의 경우, 자신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몸의 특정 기능으로 환원/도구화되는 폭력을 겪었다. 난소낭종으로 수술을 받았던 그는 자신의 질병 회복을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 한켠에 ‘시댁’에 ‘손주’를 안겨주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절망하고 분노한다.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몸(자궁)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간주한다. 즉 “다리아의 자궁 건강은 그 자신을 위한 신체 기관이 아니라 손주를 안겨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취급된다. 이처럼 대상화된 몸들은 특정 기능(출산)을 수행해야만 사회적으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며,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된다.
다리아는 연극 무대에서 이렇게 외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지우고 자신을 출산을 위한 ‘자궁’과 동일시하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의지를 표명했다. “내 몸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인력을 생산하는 출산 도구가 아니에요. 그러니 모두들! 내 난소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선언 셋: 지금의 삶을 잠식하는 것들에 맞서
나드와 쟤의 이야기는 질병에서 생존한다는 것이 단지 ‘사망하지 않음’ 그 이상의 의미임을 보여준다. 완치 혹은 실패라는 이분법 사이에 무수히 다양한 삶과 일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사회는 보려 하지 않는다. 발병부터 재활, 재발로 이어지는 나드의 20년 세월에서 우리는 질병에 점유되지 않고 삶의 주체성을 끈질기게 지켜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나 동시에 어떻게 가능한지 생생히 보게 된다. 나드는 두 번이나 수술했던 턱관절이 재발하며 대학원 생활과 유학·취직에 대한 꿈은 물론 친구들과 놀러가는 평범한 일상도 모두 접어야 했다. 수시로 밀려오는 통증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들이 수년간 계속되었다.
몸 때문에 마음까지 병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으면서도 자신이 “어떤 성취의 계단에도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아프기 전의 몸을 되찾는다는 목표 이외의 것들은 모두 미래에 저당잡힌 채 삶은 질병에 점유되었던 시간들. 연극을 통해 나드는 그 시간들을 뒤로하고 “완전한 치유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함으로써 아픈 몸으로 ‘현재’를 살기로 결심한다. ‘질병을 극복한 건강한 몸’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치유에 대한 집착에서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아픈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픈 사람의 책임은 낫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완치란 허상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이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압박 속에 더 이상 스스로를 가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제, 완전한 치유가 아닌, 완전한 치유로부터의 자유를 원합니다.”
4기 유방암 생존자로 살아가는 쟤는 유방 절제 수술 이후 비교적 안정된 단계에 이르렀지만, 그와 무관하게 겪어야 하는 금전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치료 이후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사회제도 탓이다. 그에게 암보다 무서운 것은 ‘가난’이다. 집중 치료가 끝난 뒤에도 경구용 항호르몬제 및 항암제(대부분 비급여 항목에 해당한다) 처방과 이에 필요한 검사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암 환자를 위한 국가와 지자체 지원금 또한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 같은 초기 집중 치료에 모든 지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 노동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픈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기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인 데다, ‘아픈 몸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겠냐’는 의심과 ‘아픈 사람이 쉬어야지 왜 일을 하느냐’는 꾸짖음과 훈계에 둘러싸인다.
건강중심사회는 회복을 종용할 뿐, 아픈 몸 역시 엄연히 일상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픈 몸이 어떻게 일상으로 복귀하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쟤는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대신 “매번 수십 개의 서류더미로 가난을 증빙”하게 하고, 그렇게 해도 작은 복지 혜택 하나 받기 어려운 제도를 또렷하게 지적한다. “암 치료로 몸은 살아 있지만 삶을 꾸려낼 조건은 갖지 못하잖아요. 저에겐 암 때문에 죽는 두려움보다 당장 내 힘으로 먹고살 수 없다는 두려움이 더 커요. 저는 아픈 몸으로도 제 삶을 온전히 스스로 꾸리는 삶을 살고 싶어요.”


연습과 준비: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 머문 시간들
나드, 다리아, 목우, 희제, 쟤, 수영 여섯 명의 시민배우들이 모두 함께 무대에 올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내고, 위와 같이 당당히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은 3개월이라는 연습 기간 덕택이었다. 그 3개월은 배우들이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각자의 고통에 다가가는 시간이자, 타인의 고통을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리아는 동료가 앓고 있는 병을 여전히 잘 모르고, 그 고통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의 어떤 간절함과 절실함만은 너무도 잘 알 것 같았다고 털어놓는다.
수영은 첫 워크숍에서 배우들끼리 사전 논의나 계획 없이 즉흥극을 창조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의 현재 상태와 앞으로 변화하고 싶은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진 두 장을 골라 설명을 덧붙이면, 그이가 표현한 열망을 다른 배우가 몸짓 혹은 언어로 받아 이어가는 작업이었다. 배우들은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고, 창조적으로 기능하며, 서로의 몸짓들을 뒷받침하고 엮어나갔다”.
“다른 사람이 어떤 움직임으로 나의 경험을 묘사하는지, 지금 내 마음이 그런 묘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충실하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완결되는 기묘한 안정감과 함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타인의 체온처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수영은 자신을 포함한 배우들이 연극에서 서로의 관객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연극을 통해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개인 경험의 일부들이 수용되는 경험을 하며 관계적 무능력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연습을 하는 동안 배우들은 “바깥 세상”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가두었던 “가장 내밀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 번의 워크숍이 지나도록 병명이나 질병 경험에 대한 세부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수영에 따르면 이는 연출자 빠빠의 세심한 배려였다), 오히려 그것이 배우들로 하여금 그들의 “몸을 관통했던 가장 진실한 경험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배우들은 그들이 느꼈던 감정 그 자체에 몰입해보기도 하고, 동료의 에피소드에서 다른 배역을 맡으며 누군가를 가로막았던 장벽과 편견의 얼굴이 되어보는 경험 또한 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의도치 않게 상처 주는 역할을 맡아 괴로워해야 했고, 그 상대인 다른 누군가는 “상처만 남긴 채 떠나간 사람들이 던진 몰이해의 말들”에 다시 정면으로 부딪혀야 했다. 이는 “절망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당사자가 내뱉지 못했던 멍든 언어들을 추출”해내는 과정이었다.


당신의 악역: ‘공감하지 않음’의 연대
아픈 수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에게 상처를 주는 전 연인 역할을 맡은 이는 희제였다. 질병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고 의심을 사며 사람들과 멀어진 경험을 공유하고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수영의 에피소드에서 희제는 수영에게 상처 주는 말을 내뱉는 사람(전 연인)이 되어야 했다. 희제가 뱉어야 하는 그 대사는 과거 아픈 희제에게 상처를 냈던 바로 그 말이기도 했다.
희제는 “수영의 나을 수 없는 몸이 낫기만을 바라며, 애인의 질병이 티가 나지 않는 모습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결코 이입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희제가 계속해서 이입에 실패했던 탓에 수영 역시 반복해서 그 말을 들어야 했지만, 그는 끝까지 그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는 다름 아닌 ‘자신의 그 기억’을 직면하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희제는 이른바 ‘악역’을 소화하며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막연하게 ‘아픈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어떤 표정과 말투가, 몸짓과 분위기가, 넌지시 건넨 말과 눈빛이 상처를 주었는지”. 그리고 그만큼, 자신이 상대방의 상처에 대해서도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희제와 수영의 연습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같은 아픔’ 혹은 ‘비슷한 경험’이 공감과 위로를 가능하게 한다는 착각을 잠시 접어두게 한다. 빠른 공감과 이입 저편에서 도리어 상대방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했을 때, 두 사람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진실에 다다랐던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아픈 사람들은 경험을 나눌 사람이 너무도 적어서 때로는 성급하게 나의 상처를 상대에게 투영한다. 나를 확인받으려는 그 공감과 위로 속에 당신의 눈과 뒤통수는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내가 당신이 되어 건네는 공감과 위로가 아니라, 당신의 악역이 되어 표정과 말의 무게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온몸으로 느끼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연대”란, 어쩌면 그런 것일까.


아파도 미안하지 않고,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제작 현장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진정한 의미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는 질병/장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극의 내용뿐 아니라 준비·연습 과정과 제작 현장에도 고스란히 녹여냈다는 데 있다. 희제의 언급처럼, 이 연극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배우들은 연습 단계에서부터 “질병이 환대받는 경험”을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초반 연습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도 눈치 볼 필요가 없었고, 실제로 작업에서 배제되지 않았다. 연습 시작 전에는 모두 함께 모여 요가매트를 깔고 몸을 풀며 자신의 몸 어디가 뭉쳤는지 관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오랜 시간 재활을 했던 나드가 다른 배우들의 몸 풀기를 도왔다. 몸 풀기가 끝난 후에도 요가매트는 치워지지 않았고, 푹신한 곳에 앉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을 위해 방석이 깔리기도 했다. 누구든 원할 때 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픈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요가매트와 방석은 “언제든 누울 수 있는 규칙” 그 자체였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어떻게 하면 아픈 동료를 도울 수 있을지 매 순간 진심으로 고민했다.
다양한 소수자들의 특성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소수자의 일부 조건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공연 하루 전 리허설 날 배우 수영은 너무 밝은 빛/조명에 쇼크가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배우의 안전을 고려해 무대 위 조도를 전반적으로 낮게 조정했고, 무대 바로 옆에 서 있는 수어통역사를 비추는 조명 역시 전반적인 무대 조명에 맞춰 낮췄다. 그러나 비교적 어두운 조명이 화면에 수어통역사의 표정을 섬세히 담아내기 충분치 않았던 데다, (예산과 시간이 더 허락되지 않아) 좋은 화질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연극과 책의 기획자인 조한진희는 화질이 아쉽긴 하지만 대사 전달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라는 조언을 수렴해 무대 위 배우의 안전과 건강을 우선으로 고려하기로 선택했다. 그는 각기 다른 소수자들을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한다.
“어떤 한계에 부딪혔는지 설명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중요하며, 그 또한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은 각기 다른 소수자의 필요와 특성에 맞춰 제공해야 하는 편의를 그저 ‘병렬적’으로 늘려가는 일이 아니다. 소수자 각자의 현실은 다양하게 ‘교차’하고, 서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앞서 말했듯 ‘충돌’하기도 한다. 정해진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면 그만인 일이 아니라, 파도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균형을 잡는 행위와 같다.”
제작 현장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된 것은 스태프들의 노동권이었다. 인권을 말하는 작품이라면 제작 과정에도 인권적 실천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무대나 스크린 위에서 인권을 말하”면서 “정작 그 무대나 스크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스태프들의 인권은 쉽게 저버리는” 그런 작업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스태프들의 노동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이를테면 노동 제안과 계약을 할 때 노동시간을 정확히 명시하고, 법정 최저임금을 준수하고, 노동의 전 과정이 종료된 뒤 늦어도 일주일 안에 임금을 지급하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무임금 노동은 없다는 규칙들이다.”
그러나 재정이 넉넉해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규칙들을 빠짐 없이 지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한동안 빚더미에 올라앉기도 했지만, 기획자는 결국 스스로 정한 그 원칙들을 모두 지켜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불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태프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연극을 기획하고 제작한 것에 조금의 후회도 없다.”
또한 관객들이 보낸 뜨거운 호응은 이 연극이 꿈꾸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 소수자의 편의, 스태프들의 노동권, 더 나아가 배우들에게 펼쳐질 새로운 일상을 위한 자리를 넓히고 완성시켜주었다.

작가 소개

나드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스물여섯에 특별한 백수가 되었다. 졸업하고, 취직하고, 유학 가고 싶다는 계획은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대신 성실한 환자가 되었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가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 바뀌었다. 밥벌이에 대한 고민은 늘 있지만,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제대로 아프고, 정확하게 슬퍼하고, 넉넉하게 감사하고, 빠짐없이 감탄하고 싶다. 《여기서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 됩니다》를 함께 썼다.

목 차

연극과 책에 쏟아진 찬사 4
기획의 말 • 조한진희 12
배우 소개 34


1막 조명이 켜지기 전
여섯 개의 창들, 나의 첫 관객 • 홍수영 38
‘쓰고 있고, 쓸 수 있는’ 서사 • 나드 47
석연치 않고,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 다리아 63
나의 일상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 쟤 71
억눌렀던 슬픔이 처음 몸 바깥으로 흘러나올 때 • 안희제 83
첫 봄비 바다를 두드리는 날에는 • 박목우 93


2막 막이 오르고
거울 안에는 가만히 내려앉은 평화가
당신의 얼굴처럼 비춰들고 • 박목우 108
당신의 악역 • 안희제 122
세심한 존중의 무대 만들기 • 쟤 139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 다리아 155
시선들 • 홍수영 168
우리의 삶이 연극이 될 때 • 나드 181


3막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춤추는 삶이 될 때까지 • 나드 210
다시 글을 쓰기로 하며 • 다리아 227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연극 • 안희제 236
모두를 위한 일터는 가능할까 • 쟤 249
싸늘함 속에서도 나는 보았지, 번져가는 꿈결을 • 박목우 264
일상을 건넬 이들의 존재 • 홍수영 276


부록
ㅁ대본 290
연극 제작기 • 조한진희 326
시민연극〈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가 걸어온 길 338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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