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8020 이어령 명강-생각의 축제’의 내용과 성격
1. ‘8020 이어령 명강-생각의 축제’는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수의 세계에 언어와 상상력의 세계를 불어넣는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생년월일이 부여받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받는다. 효율성의 차원에서 학번이나 군번 등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개성에게 끊임없이 숫자를 부여한다. 이처럼 근대 이후 수는 우리의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왔다. 숫자 속에서 살면서 우리는 ‘진짜 자신’을 잃어버렸다. 숫자 속에 파묻혀버린 나, 매몰된 나. 숫자 속에 그 집단 속에 고유한 세상에 하나뿐인 지문, 나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소실되는 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수의 세계는 필연일지도 모른다.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어왔던 이어령 선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를 허물었던 ‘디지로그’를 창안했듯이, 수의 세계와 언어의 세계를 아우른 생각의 발상을 전해준다.
2.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라는 질문 안에서 온 세계 어린이의 사랑을 받은 한 귀여운 캐릭터의 손가락 개수를 넘어선 풍성한 의미를 찾아감으로써 수라는 것이 단순히 무언가를 계량화하는 것 이상을 넘어선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음을 전한다. 이육사 같은 작가는 수인번호 ‘264’를 자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여 수의 세계를 언어의 세계로 적극적으로 끌어와 깊은 저항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풍부한 상상력으로 수의 세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메마른 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어떻게 수라는 과학적 미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숫자의 언어성을 회복하는 것. 우리가 잃어버린 감성의 세계, 아날로그의 세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숫자, 언어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숫자를 언어화하느냐 언어를 숫자화하느냐 즉, 셀 수 있는 세계를 셀 수 없는 세계로 나타내느냐, 셀 수 없는 세계를 셀 수 있는 세계로 나타내느냐. 이 숫자와 언어가 서로 오고가는 또 하나의 길. 숫자세계와 언어세계가 두 개로 딱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 또 뒤범벅이 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는 것이다. 숫자가 언어의 세계와 만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함께하는 숫자의 의미를, 숫자가 가지는 도깨비 같은 허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4. 이어령 선생은 이처럼 숫자의 세계와 이름의 세계의 혼융하는 새 문명의 모델 초합리주의를 역설한다. 명확하게 떨어지는 숫자, 분리와 분열의 숫자가 아닌 숫자야말로 새 문명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을 살다 보면 세상에는 저울로만 달 수 없는 삶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초의 오차도 1밀리의 여유도 없이 합리성과 기능성만을 추구하다가 삶의 아귀가 맞지 않을 때 정신이 놓아버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서구문명이었다. 이제 ‘~셈치고’의 초합리주의, 흘러내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몇 번씩이나 쌀을 더 퍼서 됫박에 올리는 한국인의 그 문화가 새 문명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령 선생의 수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와 창조적 상상력은 수의 세계에 함몰되지 않고 유유하게 항해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8020 이어령 명강-생각의 축제’는 젊은 벗들에게 창조력과 상상력을 알려주고 싶어 하며, 편견과 고정관념의 창살 속에서 자기가 갇힌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삶을 벗어나 자유로운 초원의 노마드가 되어 맘껏 뛰어놀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작가 소개
이어령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성의 오솔길』 『젊음의 탄생』 『한국인 이야기』, 문학평론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문명론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가위바위보 문명론』 『생명이 자본이다』 등 16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목 차
책머리에
이야기 속으로
수의 비극
첫째 허들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 _수의 탄생
둘째 허들
이름의 세계
셋째 허들
숫자와 이름이 혼융하는 세계
넷째 허들
0의 발견
다섯째 허들
질서와 균형의 숫자 8
여섯째 허들
상대·관계성의 숫자 2
일곱째 허들
8020 이어령 명강
여덟째 허들
새 문명의 모델 초합리주의
숫자의 허들을 넘어 푸른 바다로
자크 플레베르의 『작문 노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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