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성역은 없다』 그 후 27년
“용의 목 아래에는 거꾸로 난 비늘, 역린(逆鱗)이 있다. 역린을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다.” (『한비자』)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 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 주길 바란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의 이런 당부를 받은 수사기관이 그 당부에 충실하게 ‘살아 있는 권력’에 칼날을 들이대면 어떻게 될까? 그 답을 지난 2년여 우리 국민은 생생하게 보았다. ‘살아 있는 권력’은 한비자의 ‘역린’의 다른 이름이다.
2019년 대통령 문재인의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하게’는 그보다 27년 전인 1992년 대통령 당선자 김영삼(YS)의 ‘성역 없이’를 떠올리게 한다.
“구시대 정경유착의 무리들을 성역 없이 수사하라.”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귀가 번쩍 뜨이는 한마디였다. ‘성역 없는 수사’라! 수사검사에게 이보다 더한 로망은 없다. 말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3장_ 마지막 혈투, 22쪽)
전임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P’ 주변을 겨냥해 시작한 수사는 뜻하지 않게 청와대 주변의 수상한 돈 흐름으로 옮아갔다. 뜻하지 않게 새 정부의 경제수석(김종인)과 국회 재경위원장(이원조)이 걸려들었다. 금융실명제 실시 전이던 당시 계좌 추적 결과는 더욱 뜻하지 않게 ‘노태우 비자금 4천억 차명계좌’로 비화하여 전두환․노태우 구속과 12․12 및 5․18 재판의 불씨가 된다.
『성역은 없다 II』(함승희 저, 도서출판 오래, 2022)는 당시 수사검사 함승희의 전작 『성역은 없다』(1995)의 후속편이다. 당시 못다 쓴 이원조 수사 비화에서 시작해, 성역을 건드린 괘씸죄로 검찰을 떠나 변호사,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 정책 싱크탱크 대표 등으로 활동해 온 이력이 이어진다.
자유와 민주의 참뜻을 묻다
책은 전작(전 2장)을 잇는 의미에서 3장부터 시작한다. ‘성역 없이’ 수사하려는 의욕에 넘쳤던 검사 말년에서 시작해 검찰 떠난 이후의 공적 삶을 단계별로 장을 나누고, 장마다 당시의 사건들에 2020년대 ‘지금’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그다지 좋지 않은 일로 언급되는 등장인물 상당수를 알파벳 이니셜로 처리했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아하, 그때!” 하며 기억을 되살리며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3장(‘마지막 혈투’)은 전작 『성역은 없다』의 보유(補遺)를 겸한다. “성역 없이 수사하라”를 제일성으로 출범한 YS 정권의 ‘역사 바로잡기’ ‘5․18 재수사’ 등은 대국민 쇼에 불과했으며 사실상 민주주의의 모살(謀殺)이라고 평가했다. 대한민국이 ‘검찰 공화국’이기는커녕 정권마다 검찰을 시녀로 길들이지 못해 안달하는 행태를 ‘검찰 오적(五賊)’으로 정리했다.
4장(‘여의도 기회주의자들’)은 한 차례 국회의원부터 출발한 제도권 정치활동 이력이다. 정치적 신념을 달리하는 김대중(DJ) 대통령이지만 뜻하지 않게 그 당 소속으로 현실정치에 입문한 사연, 노무현 당선에 일조했으나 국회 법사위원으로서 노무현 탄핵의 소추위원이 돼야 했던 기연(奇緣), 다시 박근혜와의 정치적 인연 등이 이어진다. 짧게나마 가까이서 본 국회의원들과 관련․피감(被監)기관들의 행태도 실망스럽지만,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도 자유와 보수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비전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보수주의 민간 싱크탱크로 희망의 싹을 키우려고 ‘오래포럼’이라는 공부모임을 조직했는데, 팔자에 없는 공기업 사장 자리 제안을 받고 고심 끝에 부임한 곳이 내국인 카지노로 유명한 강원랜드다(5장 ‘복마전 같은 공공기관의 환골탈태’). 부패․부실 공기업을 임기중 청렴․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운탄고도’와 ‘정태영삼 투어’ 등을 개발하며 한국의 복합리조트와 마이스(MICE) 산업이 나갈 길을 모색해 본다. 임기중 정권이 바뀌며 감사원의 표적감사, 언론의 적페몰이 대상이 돼 본 경험은 ‘살아 있는 권력’을 제압해야만 제대로 된 자유민주 정치가 가능하다는 지론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된다.
6장(‘정책 싱크탱크와 민주정치’)은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연구하고 정책의제화하기 위한 싱크탱크 ‘오래포럼’의 활동 소개에 할애했다.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작지만 강한 나라’는 500쪽에 이르는 이 책의 사실상 결론이다.
바람직한 국가 형태는 헌법적 가치, 즉 자유민주주의가 잘 구현되는 나라이다. 국가권력 중 어느 하나라도 독주하지 않고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이 잘 이루어지고, 법치가 잘 시행되는 나라이다. 국가는 ‘국가만 할 수 있고, 국가만 해야 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나머지는 개개의 인간, 시민단체,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한마디로 작지만 강한 국가, 이것이 답이다. (431쪽)
결국 ‘제도’와 ‘사람’이다
광장의 ‘촛불과 함성’으로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그 사람은 (레몽 아롱의 말을 빌리면) 마음이 나쁘거나 머리가 나쁜 것이다. 그런 시민의식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은 시민사회의 몫이지 국가나 공권력이 나설 일이 아니다. 부록격인 제7장(‘잔상’)에서는 바로 그 공권력의 비리를 처단하고 부패를 예방할 방책을, 수사검사 경험을 통해 제시했다.
자유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은 공권력이 분수를 지키도록 하는 ‘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요 몇 년 검찰 개혁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온 세력의 실상은 개혁이 아니라 개혁의 탈을 쓴 ‘법비(法匪)’들에 불과하다고 맹공하면서, 구체적으로 조국․추미애 전 법무장관들의 죄과는 “하나하나의 행위가 외견상 정당행위 또는 사소한 위법행위로 보이더라도 일련의 과정을 종합하면 심각한 범죄행위로 구성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제도 개혁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 그래서 결론은 ‘사람’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다. 자유주의가 훼손되면 전체주의가 된다. 시장주의가 훼손되면 사회주의가 된다.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국가주의가 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전자인가 후자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몇 명의 의로운 사람(a few good men)’이 그나마 우리의 희망이고 국가의 미래다.”
작가 소개
함승희
1951년 6·25 전쟁중 피난길에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누대(累代)의 삶의 터전인 강원 양양에서 성장했다. 양정고등학교, 서울법대, 서울대 대학원(법학과)에서 배우고 방황하고 교우하면서 성인이 되었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가 된 후, 13년간 ‘부패범죄·공안범죄와의 전쟁’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국가정체성 확립에 기여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의 뜻밖의 인연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판에 입문하게 되고 그 후 10년 남짓 좌충우돌하면서 국가운영 체계를 경험했고, 정치인들의 위선적 생태계를 알게 되었다.
2014년 강원랜드라는 공기업 사장이 되어 기업 경영의 보람과 난관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직업공무원들의 못된 버르장머리도 체험했다.
그 사이사이 각종 국제회의, 국제학술대회에 수십 차례 참석했고 또 미국의 유수 대학인 스탠포드대와 조지타운대에 유학하면서 특히 선진국 지식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국 유학 시절 눈여겨보았던 싱크탱크 헤리티지를 본받아 2008년 오래포럼이라는 싱크탱크를 설립하고 국가정책의제를 선정하여 연구·토론하고 분야별 전문가들과 학문적 교류를 하면서 삶의 지평을 넓혀 왔다.
검사로서의 삶에서 몸에 밴 옳고 그름에 대한 ‘정의’ 관념과 정치인으로 지녀야 할 좋고 나쁨에 대한 미래지향적 가치관이 하나로 정리되지 못하여 종종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요즘에는 개인의 자유, 시장경제, 강한 국가를 화두로 삼아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과 교류하고 관련 책을 선정하여 독서클럽을 운영하면서 보다 많은 국민이 자유민주주의를 정치적 신념으로 삼아 주기를 기대하면서 살고 있다.
목 차
프롤로그_ 왜 이 책을 쓰는가
제3장_ 마지막 혈투
1 살아 있는 권력과의 일전(一戰)
“성역 없이 수사하라”
대통령 당선 YS의 일성 ․ 노태우 정권 황태자 P ․ 권력과 조폭의 유착 ․ 자금세탁 수사와 국제공조
청와대 차명계좌
금융가의 황제 ․ 민정수석의 수사 방해 ․ 의도치 않은 전·노 비자금 계좌
죽은 권력 vs 산 권력
쓰레기통에서 새 나간 특종 ․ 회유, 압력, 모함 ․ YS 선거자금의 흑기사 이원조 ․ 수사팀이 유도한 이원조 해외 도피 ․ 전경환 vs 이원조 ․ 이원조 놓치고 김종인 구속으로 체면치레 ․ 살아 있는 권력을 제압하는 지혜
2 대한민국에서 칼잡이로 산다는 것은
또 하나의 대국민 사기극
민주주의의 모살(謀殺) ․ 갑작스런 미국 연수 ․ 조폭 정치, 양아치 정치 ․ 좌천성 승진 ․ 집권당 대표를 둘러싼 정치적 흥정 ․ 역사 바로잡기라는 명분 ․ 뜬금없는 5·18 재수사
야인시대
검찰을 떠나다 ․ 언론이 지어낸 ‘판도라의 상자’ ․ 베스트셀러 『성역은 없다』 ․ 태평양 노마드 ․ ‘소통령’ 김현철, 2% 부족한 이회창 ․ 수사 오적(五敵)
제4장_ 여의도 기회주의자들
3 타락한 민의의 전당
“나 김대중이오”
“이념은 달라도 괜찮다” ․ 노원갑 공천, 신문 보고 알아 ․ 양다리와 잔머리 ․ 한 달 선거운동 하고 여의도 입성
공사 구분 못하는 기회주의자들
“내가 의원 돼야 국익도 있는 거지!” ․ 변종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야합 ․ 일본 법정에서 역사 왜곡을 꾸짖다
노무현과의 인연
노무현 당선을 돕다 ․ 노무현 탄핵 소추위원이 되다 ․ 탄핵 역풍으로 재선 고배
국회의원 해 봤더니
인사청문회의 저승사자 ․ 패악질 많은 국정감사장 ․ 사익과 공익의 충돌 ․ 입법권의 남용과 대중독재
4 보수의 민낯
끊지 못한 인연
“저 좀 도와주세요” ․ “박근혜 절대 안 된다”․ 보수를 자처하는 허접한 인간군상들 ․ 내시와 간신배
보수의 핵심 가치는 ‘자유’
인혁당재건위 사건과 헌법적 가치 ․ 박근혜, 보람과 아쉬움 ․ 자유주의·시장경제의 적들
제5장_ 복마전 같은 공공기관의 환골탈태
5 칼잡이가 카지노 사장으로
기득권자들의 탐욕
“공공기관장 한번 해 보지 않겠어요?” ․ 똥개도 밥그릇을 건드리면 ․ 부임 첫해 100억 원 절감 ․ 도박중독자 등쳐 먹는 찰거머리떼들 ․ 폐광 지역 지원금 수조 원 어디다 썼길래 ․ 계륵 같은 자본잠식 자회사들 ․ 데모만 하면 다 된다는 악습 단절 ․ 공기업의 5대 악 ․ 임원 인사에 권력기관 개입 차단 ․ 부정부패 온상에서 깨끗한 공기업으로
언론과 사정기관의 비열한 행태
홍위병들 앞세운 적폐몰이 ․ 감사원의 초법적 갑질 ․ “환영합니다”가 “사장 물러가라”로 ․ 구태를 못 벗어난 감사 행태 ․ 전임자의 대규모 채용 비리 ․ 자체 적발 사건을 정권의 적폐몰이에 악용 ․ 요상한 수사, 수상한 판결 ․ 야당 대표 망신 주기
6 국제 수준의 복합리조트 시설로
리조트의 생명줄은 안전
중증 안전불감증에 빠진 사람들 ․ 청와대 뺨치는 안전시설 ․ 연못 메워 산책길로 ․ 메르스 어떻게 돌파했나
문화와 힐링이 있는 곳
독서문화와 국민의 의식 수준 ․ 카지노에 북카페를 ․ 유럽식 테라스 카페와 햄버거 ․ 최고의 트레킹 코스, 운탄고도와 백운산 오솔길 ․ 정태영삼 투어 코스와 토속음식점 발굴 ․ 파산 직전 자회사를 산림힐링재단으로 ․ 리조트사업의 미래는 MICE에 ․ 호시노 요시하루의 리조트 경영 기법
공기업 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라
제6장_ 정책 싱크탱크와 민주정치
7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싱크탱크의 필요성
국가 정체성의 위기 ․ 척박한 기부문화, 빈약한 싱크탱크 ․ 싱크탱크의 생명인 독립성과 자율성
8 오래포럼,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이명박·박근혜의 인사 참사 ․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등록, 탈정치화 ․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신념으로 ․ 정체성 혼란과 적폐몰이를 딛고 ․ 국제 학술활동 ․ 봉사활동, 정기토론회, 독서모임
9 왜 자유주의 시장경제인가
민주화의 두 얼굴 ․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 ․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 포퓰리즘의 해악과 정치 엘리트의 책무 ․ 작지만 강한 국가를 위하여
제7장_ 잔상(殘像)
10 공권력기관들의 음습한 역사와 ‘A Few Good Men’
검찰·경찰·국가정보원의 흑역사 ․ 축소, 은폐, 조작 ․ 불법사찰 ․ 부정부패 ․ 바로잡는 길 첫째, 제도 개혁 ․ 바로잡는 길 둘째, 사람이 답이다
11 권력형 부패범죄의 실태와 반부패 전략
조선 멸망의 역사적 교훈 ․ 역대 정권의 권력형 부패 실태 ․ 괴물로 변한 부패범죄 ․ 반부패 전략
12 검찰 개혁인가 검찰 농단인가
비열한 정치적 마타도어 ․ 개혁의 탈을 쓴 법비(法匪)들 ․ 조국·추미애 등의 죄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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