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풍요로운 미래라는 원자의 약속이 세계를 어디로 인도했나?
미국 주도 원자력(핵기술)의 국제사에서 남북한은 어디쯤 있을까?
『저주받은 원자』는 1950년대 이후 지난 70년 동안 미국 주도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계획이 아시아(한국·일본·인도·파키스탄), 아프리카(가나·남아공), 라틴아메리카(브라질·아르헨티나), 중동(이스라엘·이란·이라크) 등지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다룬 최초의 국제사 저작이다. 특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원자의 약속에 매료되었던 한국과 북한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핵기술을 발전시켜 온 한반도의 원자력 현실을 역사적인 안목으로 통찰할 수 있게 해줄 특별한 책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평화적 핵기술’을 이용해 온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는 미국이 그러한 핵기술(원자로)을 가지고 석유 생산국들을 상대로 지정학적 영향력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려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무척 역설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평화적 핵기술이란 것은 결국 잠재적인 핵무기 개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라는 수사를 내걸고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설정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핵무기의 확산을 주도했다.
원서의 제목 중‘저주받은wretched’이라는 단어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The wretched of the Earth』로 영역된 프란츠 파농의 1961년 저작 『Les Damnes de la Terre』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전에 노예나 짐승 취급을 당하며 주변화된 피식민지 사람들이 기술적 해결책을 제공 받았을 때 벌어지는 통렬한 역설을 ‘원자’에 적용한 것이다. 제이콥 햄블린 교수(미국 오리건주립대 역사학과)는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기술적 해결책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 패권과 신식민지, 인종주의 문제와 연계하여 볼 것을 제안한다. 원자를 둘러싼 지구적 다툼은 동서 진영 간이 아니라 핵기술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이었다. 요컨대 이 책은 20세기 후반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 체제가 확대된 국제정치적 맥락, 핵 비확산 질서에 내재된 인종주의와 신식민주의 요소, ‘깨끗한 에너지’로서 핵기술이 갖는 상상에 대한 비판적이고 입체적인 서술을 통해 미국의 핵기술 ‘도박’이 만들어 낸 현재진행형 지구사를 생생하게 해부한다.
지난 세기 한국은 평화적 원자라는 약속을 받아들였다. 일부 사람들의 문제제기는 무시한 채 국가적 지원으로 선도적인 원자력 발전 국가로 거듭났다. 2011년 후쿠시마 재난은 원자력의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꿔놓았고 지난 정부는 원자력에서 벗어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2년 새로운 정부가 다시 원자력에 전념하겠다고 회귀 선언을 하며 현재 원자력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논쟁이 요동치고 있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원자가 앞으로 상당 기간 확고부동하게 자리할 것으로 내다본다. 깨끗하고 안전한 원자력이라는 구호에 가린 본질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실체를 파헤치는 이 책은 이 논쟁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천 년을 일 년으로’ 원자력의 약속과 미국의 핵기술 도박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파괴한 원자폭탄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원자’를 세상에 내놓았다.‘평화를 위한 원자력’계획은 한국전쟁과 닿아 있다. 한국전쟁에서 원폭 사용을 주장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거대한 열핵무기(수소폭탄)를 실험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쏟아질 세상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 원자는 질병을 치료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고, 사막을 꽃피우고, 모두에게 풍족한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었다. 이 원자의 운명은 과거 식민지였고, 최근까지 점령지의 신세였고, 프란츠 파농이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이름 지은 유색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원자가 가진 선전상의 잠재력은 실로 컸다. 자연의 맥박을 빠르게 하고, 경제개발 도상에 있는 나라들의 발전을 가속화하고, 그 나라들이 질병, 기근, 에너지 부족의 마수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것이라 했다.
『저주받은 원자』는 이 과도한 풍요의 수사, 원자의 약속이 미국의 지구적 권력 행사를 위한 정치적 무기였다는 것을 그 역사적 전환 단계를 따라가며 잘 보여준다. 아이젠하워 이후 모든 미국 대통령은 1950~60년대에는 방사선 동위원소를, 1970년대 이후에는 원자로(핵기술)를 가지고 각국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계의 우라늄과 토륨 시장을 장악했으며 특히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이 약속을 채택했다. 다른 여러 나라들도 각국의 전략적 필요에 의해 이 약속을 포용하며 원자로를 지었고 전문가들을 훈련시켰다. 원자력의 약속들은 전후 일본의 회복, 가나의 범아프리카주의, 생존을 향한 이스라엘의 추구, 인도에 대한 파키스탄의 벼랑 끝 전술, 이란의 원자력 자립에 내장되었다.
이 책이 보여주듯이 민수용 원자력의 홍보는 엄청난 도박이었고, 평화를 위한 원자는 결코 평화로운 적이 없었다. 미국은 평화만큼이나 같은 정도의 폭력을 수출했다. 평화와 풍요를 약속하는 동시에 종속의 씨앗을 뿌렸고, 한편으로는 오늘날 핵무기 보유국의 출현을 가속시켰다.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에너지 필요와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기술적 선택지로만 여기는 것은 지구적 핵질서의 불신을 가리는 프레임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에도 식량·물의 풍부한 보급, 살충제 없는 구충, 암 같은 질병의 치료처럼 원자의 약속은 계속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대안, 깨끗한 에너지라는 담론은 훨씬 강화되어 현재에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2011년 최악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고도 핵기술이 수많은 인간의 불행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미국의 태도는 확고했다. 버락 오바마의 에너지장관 스티븐 추는 원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이라고 다시 확언했다. 그러나 『저주받은 원자』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젝트가 순전히 선전에서 시작되었고, 개발과 풍요에의 열망을 자극했으나 예컨대 인도에서 기적의 곡식과 이스라엘에서 사막의 변신 프로젝트처럼 실현되지 않은 신기루였음을 지적한다. 오로지 그 약속들은 정치적 도구로서 지정학적 권력과 영향력의 지속적 강화 같은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했음을 밝혀낸다.
제이콥 햄블린은 21세기 여명에서 벌어지는 지구적 원자력의 분규는 냉전기의 동서 간의 대립이 아니라 대부분 백인 나라들과 이른바 개발도상의 나라들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했다. 세계 핵질서는 지구의 북반부와 남반부를 분리한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여러 주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IAEA(세계 원자력 기구)를 비롯한 국제기구·조약의 진화다. IAEA는 시초부터 인종주의적 정치학이 침투했으며 한때 이집트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1997~2009)를 제외하면 미국과 유럽에 권력을 집중시키는 장치였다.
결론적으로 『저주받은 원자』는 원자력 발전을 단순히 에너지 필요와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기술적 선택지로만 여기는 것은 지구적 핵질서의 불신을 가리는 프레임이라고 말한다. 원자력 발전을 지정학적 영향력, 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 인종주의적 분리, 군비 확산, 전쟁 같은 지구적 사안과 연계하여 우리의 이해를 심화하고 국제적인 시야를 확보하길 촉구한다.
최초로 쓴 원자력의 국제사
옮긴이 우동현 박사(UCLA, 북한사)는 이 책의 큰 미덕 가운데 하나로 미국과 서구 중심의 전략이 해당 지역에서 타협과 절충으로 나타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점을 든다. 저자는 국제사의 렌즈를 통해 구식민지·저개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핵기술 이전을 최대화하기 위해 미국의 수사를 받아들이면서도, 핵무기 비(非)확산 질서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일본처럼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면서도 철저히 미국의 하위 파트너를 자처하거나, 이스라엘·파키스탄처럼 강대국의 간접적 비호 아래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이라크처럼 핵무기 개발을 철저히 숨기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은 우리에게 단순한 친핵/비핵의 이분법이 아니라 원자력을 다층적으로 볼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 준다.
“한반도에서 원자는 앞으로 상당 기간 확고부동하게 자리할 것”
제이콥 햄블린이 제시하는 이러한 ‘평화적 핵기술’의 국제사에서 한국과 북한의 위치는 어디쯤 있을까? 저자가 쓴 한국어판 서문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한국은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가 제시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계획에 깊이 매료된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1950~60년대 미국의 좌절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인도나 이스라엘, 파키스탄이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핵보유국의 도움으로 핵기술을 이전 받았고, 1978년 고리원전을 가동하면서 풍요로운 미래라는 원자력의 약속을 실현한 듯했다.
북한은 한국만큼이나‘평화를 위한 원자력’ 수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제 핵질서 수호라는 측면에서는 미국의 하위 파트너인 소련은 전력 생산이 아닌 농업, 의학에 초점을 맞춘 연구용 원자로만 북한에 주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IAEA(1974)와 NPT(1985)에 가입하면서 소련에 원전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우동현 박사는 핵기술을 매개로 한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이 책의 주요한 주제인 인종주의, 신식민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제이콥 햄블린
미국 오리건주립대Oregon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 교수. 과학과 기술, 환경의 국제적 차원들을 연구하며, 특히 핵역사, 환경사, 해양사 분야의 전문가다. 이 책을 포함해 『해양학자들과 냉전: 해양과학의 신봉자』Oceanographers and the Cold War: Disciples of Marine Science,『우물 안의 독: 원자력 시대의 여명기 바닷속의 방사능 폐기물』Poison in the Well: Radioactive Waste in the Oceans at the Dawn of the Nuclear Age, 『대자연을 무장시키기: 파국적 환경주의의 탄생』Arming Mother Nature: The Birth of Catastrophic Environmentalism 등을 썼다. 냉전사의 전개와 냉전기 미국의 학지(學知) 형성을 환경사적 맥락에서 다루는 탁월한 학자이다.
옮긴이 : 우동현
서울대 국사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Leveraging Uneven Cooperation: Socialist Assistance and the Rise of North Korea, 1945-196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북한 핵개발 계획의 “평화적” 기원을 밝힌 「The Peaceful Origins of North Korea’s Nuclear Programme in the Cold War Period, 1945-1965」가 있으며, 역서로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2020), 『플루토피아』(2021)가 있다.
목 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서론
1부 원자력의 약속
1장 가지지 못한 자들
2장 천 년을 일 년으로
2부 원자력의 선전
3장 과거의 나쁜 꿈 잊기
4장 유색 원자와 백색 원자
5장 영역 다툼과 녹색혁명
3부 원자력의 금지
6장 물, 피 그리고 핵무기 보유국 집단
7장 원자력 모스크와 기념비
8장 불신의 시대
결론 풍요라는 환상
옮긴이 후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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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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