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의 노래-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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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홍은전
출판사항오월의봄, 발행일:2023/04/20
형태사항p.401 A5판:21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6873055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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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될 때

세계는 다시 시작된다


버스, 지하철, 수용시설 그리고……

마침내 이 사회 전체를 멈춰 세운 이들의

생生을 건 싸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분주한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에 출몰해 한순간 도시의 리듬을 마비시킨 이들. 세상은 이들을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라고 불렀다. 한때 거대 양당의 당 대표였던 이는 이들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잡는 비문명적 시위’로 몰아세우며 공격했고, 그사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수차례 ‘무정차’ 대응을 개시하며 장애인의 탑승을 거부했다.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몸을 던져 기어서 열차 탑승을 시도하려는 이들을 서울교통공사 보안관과 경찰들은 시종일관 폭력적으로 저지했다.

이 책은 2021년 12월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시위의 기원을 더듬어보는 기록이다. 몇십 년간 지속해온 매일의 투쟁을 통해 거대하고 견고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낸 싸움꾼 6인(박길연,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박경석, 노금호)의 생애가 인권기록활동가 홍은전의 글 속에서 뜨겁게 빛을 발한다. 이 여섯 개의 생애사들은 장애인이 승강장에 서기까지, 시설에서 혹은 집구석에서 지역사회로 나오기까지 걸린 22년이라는 시간을 감각하도록 한다.

전장연 혹은 장애인들의 시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급작스러웠지만, 전장연은 늘 해오던 투쟁을 여전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투쟁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며, 수십 년에 걸친 장대한 역사를 뚫고 오늘날의 이곳에 ‘사건’으로 당도했다. 이들이 버스, 지하철, 수용시설, 그리고 마침내 ‘이 사회 전체’를 멈춰 세워 만들고자 했던 가장 낮고 가장 약한 자들을 위한 세계를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한편으로 이 책은 《비마이너》가 기획한 ‘진보적 장애인운동 기록 시리즈’의 첫 권인 《유언을 만난 세계》(2021)의 후속작이기도 하다. 장애해방운동에 온몸을 바친 열사들의 ‘죽음’에 ‘삶’으로서 응답하며 고군분투해온 여섯 명의 생애사인 셈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휘청이며 저항했던 무수한 이들의 이야기에 이제 이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숙명宿命의 기록: 차별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될 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1년에도 장애인들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버스를 멈춰 세운 적이 있었다. 쇠사슬로 서로의 몸과 휠체어를 묶은 채 버스를 에워싼 중증장애인들은 이렇게 외쳤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동권을 보장하라!’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는 언뜻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이 구호에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문제 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수십 년간 장애인은 자기 삶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한 채 집 혹은 시설에 철저히 유폐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컨베이어 벨트인 지하철에서 가장 먼저 치워진 자들의 이름이 바로 ‘장애인’이다. 하지만 어떻게? ‘버스조차’ 타지 못하는 불구의 몸으로 이 세상 전체와 맞서 싸운다는 건 얼마나 막막하고 답이 없는 일인가.

놀랍게도 그 불가능한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차별과 배제라는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세계의 모든 것을 문제 삼는, 실패할 것이 분명한 싸움. 2001년, 그렇게 비장애인 중심의 질서와 문명을 온몸으로 들이받는 장애인 권리 투쟁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웠다. 당장 가야 할 길이 막힌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며 우리가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참 이상한 말이었다.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벼랑 끝인 이들에게 이 사회는 신호를 지키라고 했다.”(홍은전, <기록의 말>)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기본값을 뒤흔든 변화의 시작은 참으로 초라하기만 했다. 싸움을 시작할 어떠한 자원도 없던 시절이었다. 장애인들은 고작 ‘불구’로 낙인찍힌 몸뚱아리 하나로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를 낚아채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그곳에 묶었다. 배제와 차별의 근거가 됐던 불구의 몸이 싸움의 근거이자 토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대체 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시간을 거쳐 이곳 우리 앞에 당도했던 것일까?


낮달 같던 시간들: 집구석에서 혹은 시설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인터뷰이들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장애해방운동가이다. 인천 장애인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인천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이자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동하는 박길연, 장애여성공감을 만들었고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공동대표를 지냈으며 현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로 활동하는 박김영희,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교장을 거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는 박명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에서 활동하며 탈시설운동과 자립생활 지원에 헌신하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된 이규식, 24년간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을 지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하고 센터장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초석을 마련하고 공동대표를 맡아 대구 지역 장애인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노금호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싸움꾼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투쟁판에 뛰어들기 전, 이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집이나 시설에 남겨지는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다. 박김영희, 박명애, 이규식, 노금호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 특정 질환 때문에 장애를 입게 된 경우로,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거나 집과 시설을 오고가며 지냈다. 그런 탓에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종종 학교 다니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곁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나 형제들이 있었고, 시설이나 장애인 공동체에서 훌륭한 어른 혹은 좋은 친구들을 만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제한된 일상 속에서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삶이 ‘무언가 부당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밤마다 울었어요. 나는 낮달 같은 존재였죠. 떠 있는데 아무도 내가 거기 떠 있는지 몰랐어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나가서 살 방법은 없는 걸까?”

중도장애인인 박길연과 박경석은 질병 혹은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후 집 안에만 머물러 있던 시절에 대해 사뭇 다른 방식으로 회상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전신에 퍼져 걷지 못하게 된 박길연은 극도의 통증 때문에 아들을 제대로 보살펴줄 수 없었던 게 뼛속 깊이 마음 아팠다고 이야기하며, 동시에 자신을 돌보느라 오랜 시간 고생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내비쳤다. 반면 행글라이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박경석은 사고 직후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해버린 시간을 외려 어떤 고통도 감각하지 못하는 ‘시체의 경험’으로 설명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니 사람이 무감각해지더라고요. 가장 큰 절망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같아요.”


마침내 세상 밖으로: 투쟁의 희열과 동지라는 곁


일상에 단단히 뿌리박힌 차별 때문에 절망을 절망으로 느낄 수조차 없었던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이 겪는 삶 전반의 문제들, 그러니까 학교에 배우러 갈 수도,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도,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수도 없는 그 모든 상태가 ‘차별’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대단한 사건을 일으킨 건 동지와의 만남이었다. 동지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가 문제임을 일깨워줌으로써 단숨에 이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었다. 동지를 만나 세상으로 나온 이들은 과거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또 다른 장애인들을 동지로 조직해 싸움을 확장해나갔다.

이규식은 노들장애인야학을 통해 장애인운동에 입문했다. 시설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지내던 어느 날 아차산 초입 부근에 있는 정립회관에 우연히 들어갔다 노들장애인야학과 접속하게 된 것이다. 야학 교사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청각장애인 시설 에바다복지회의 폭력과 비리에 맞선 투쟁에 참여하게 된 그는 점차 ‘집회의 맛’을 알아간다. 1999년 혜화역에서 리프트 추락 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입었을 때는 야학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공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국장으로 열띤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2006년 탈시설운동으로 활동 영역을 전환했고, 2011년에는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해 10년간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했다. 이때 그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2박 3일 정도 바깥에 나와 지역사회를 체험하는 ‘이음여행’을 만들었다. “위축되어 있던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권리를 알아가고 탈시설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을 통해 나도 자신감을 얻고요. 활동가로서 내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죠.”

행글라이더 사고로 장애인이 된 박경석의 곁에도 동지는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착한 장애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는 직업훈련을 위해 들어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전산과에서 박흥수와 정태수라는 ‘나쁜 장애인’들과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어머니에게 보답하는 ‘보통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꿈은 ‘일상이 곧 데모’인 두 친구와 어울리며 점차 희미해져간다. 그렇게 그는 노들야학에 눌러앉았고, 1997년 교장이 되어 2021년까지 무려 24년간 교장을 지냈다. 죽기 직전까지 ‘조직하라’고 했던 정태수와 늘상 ‘현장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라’고 했던 박흥수. 그 두 동지에게 조금씩 물들어간 박경석은 나쁜 장애인들과 어울리며 거리에서 싸우는 희열을 알아갔다. 그 희열은 그를 이동권 투쟁, 활동지원서비스 투쟁, 탈시설 투쟁,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과 같은 굵직한 투쟁들로 이끌었다.

“태수는 내가 처음 만난 장애인이었는데 그 장애인이 사람으로 보였어요. 불쌍한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 ‘아, 이것도 삶이구나’ 그런 느낌을 처음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 장애인이 데모까지 하는 사람이었죠. 태수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걸 충격적으로 알게 해준 사람이에요.”


지역 장애인운동의 꿈을 길어 올리다: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의 물결


대구의 질라라비야학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박명애 역시 투쟁 현장에 나가게 되고부터 10년의 세월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재미나게 살았”다고 했다. 그 원동력으로 주저 없이 훌륭한 동지들을 꼽았다. 두 아이를 가르치는 빠듯한 살림에 어렵게 준비해둔 택시비를 움켜쥐고 나간 야학에서 그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이 싸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싸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야학이 소름 돋을 만큼 좋았다며 애정을 고백했다. 2006년 야학에 나간 지 5년 만에 그는 대구장애인지역공동체 대표가 되어 대구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을 이끄는 주축 세력이 된다. 2007년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된 이후로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도입을 요구하는 농성과 대구시립희망원 비리 및 인권유린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참말로 악착스럽게 싸웠어요. 힘드니까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오히려 평생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던 한을 투쟁하면서 다 풀었죠. 투쟁 현장에 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했어요.”

대구 지역은 전국에서 제일 잘 싸우는 활동가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노금호는 대구의 장애인운동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확장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노금호와 그의 동지들은 전선이 어딘지를 이해했고, 어떻게 싸워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이해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선배가 부재하는 상황에서도 죽자 사자 사람들을 조직함으로써 더 낮고 더 급진적인 운동을 개척해왔다. 대구대학교 재학 시절 꾸린 장애인권 동아리 ‘레츠’를 통해 삶과 투쟁의 공동체를 다져온 그는 2006년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꾸려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을 조직하게 된다. 2005년에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대구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은 박명애와 노금호를 비롯해 현재 대구에서 가장 치열하게 활동하는 주요 활동가들을 조직하고 단련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싸움이다. 2006년 시작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된 데는 대구 활동가들의 힘이 컸다. 지방정부가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앞다퉈 약속하자 중앙정부가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고, 이듬해 활동지원서비스는 전국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에서 활활 타오른 투쟁의 불꽃을 이어받아 대구에서 다시 불을 지핀 사람이 바로 노금호와 그의 동지들이다. 이들은 투쟁 끝에 대구시로부터 활동지원서비스 시범사업 약속을 받아냈으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전장연의 지역 조직으로 정착시켰다.

박길연은 인천 지역 장애인운동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2006년 인천에서 활동하던 박기연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 선로에 투신해 사망했을 때 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투쟁 현장에 발을 들였다. 활동지원서비스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던 박기연 열사의 못다 이룬 꿈을 이어받아 인천 지역에서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후 사비로 직접 민들레장애인야학을 꾸렸고, 야학에서 동료들의 활동지원을 맡은 경험을 바탕으로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지원했다.

“중증장애인 한 사람을 탈시설시킨다는 것, 분명 보통 일이 아니죠.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때 나는 왜 이 사람들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너무 화가 났어요. 대책 없이 그렇게 사람들 데리고 나왔던 거,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절대 후회 안 해요.”


억압된 천사에서 자유로운 마녀로: 장애여성운동의 계보


장애여성공감이 열어젖힌 한국 장애여성운동의 역사는 이 책 《전사들의 노래》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주춧돌이다. 남성 중심적이고 비장애인 중심적인 운동사회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온 박김영희의 삶은 그 자체로 장애여성운동의 탄생을 생생히 증언한다. 그는 배복주, 김은정 등을 비롯한 아홉 명의 동료와 여성주의 세미나를 진행하며 장애여성공감을 창립했다. 장애우권익연구소 산하의 장애여성 모임 빗장을여는사람들은 이들이 처음 만나게 된 계기로, 그 시절 그들은 빗장의 이름으로 한국 최초로 여성장애인대회를 개최하고 ‘장애여성과 성’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러나 1998년 이내 빗장에서 독립해 나와 장애여성공감을 꾸린다.

박김영희와 동료들은 장애여성공감을 통해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서로 다른 두 정체성의 교차에 대해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했다. 단체를 운영할 비용도, 학연이나 지연 같은 사회적 자원도 갖지 못한 상황에서 낮에는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밤이 되면 세미나를 열고 글을 쓰는 날들이 계속됐다. 박김영희는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가 낯설어 “내 존재를 나 스스로 탐구하고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것에 대해 직접 표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장애여성인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도 나를 모르고 사람들도 장애여성을 잘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00년 장애여성공감은 강릉에서 한 지적장애여성이 7년간 동네 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에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성폭력 상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해당 사건을 통해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장애여성 성폭력 문제가 최초로 공론화되었고, 박김영희는 공감이 성폭력 상담에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직접 상담원 양성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내부 활동으로 내공을 탄탄히 다진 공감은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장애여성 성폭력 상담소 사업에 당선되어 공식적으로 상담소를 운영하게 되었고, 사무실을 열고 상근 체계로 전환했다.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가 된 박김영희는 이동권연대 내부의 남성 중심적 문화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이동권 투쟁 현장을 새로 써나간다.

“폭력의 배경에 대해 알았다고나 할까, 나에게 향하던 이름 붙일 수 없었던 시선들이 어디에 기반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장애여성들은 무성적 존재로 여겨지면서도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무시당하고 차별받아요. 사람들이 나를 ‘박영희’로 보는 게 아니라 여성 그리고 장애인으로만 인식하고 반말하고 무시해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생애사의 의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주하는 기록


한편으로 《전사들의 노래》는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인 장애인 활동가들의 생의 조건을 가시화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장애해방운동가 6인의 생애사를 엮는 이 기획은 애초 동료의 건강 악화 혹은 죽음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에서 출발한 것이다. 책을 기획한 《비마이너》 강혜민 편집장은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을 마주했던 기억의 알맹이들에서 비롯된 죄책감, 무력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것은 다름 아닌 죽음이었다. ‘진보적 장애인운동 기록 시리즈’의 첫 권인 《유언을 만난 세계》가 죽음이라는 사건 자체에서 촉발된 죽음 이후의 기록이라면, 《전사들의 노래》는 지금 여기의 투쟁 현장에서 가장 뜨겁게 장애해방을 외치고 있는 동지들의 생을 소중히 다루고 기억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주류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가장 낮고 약한 곳에서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내겐 소중한 사람이 언론에선 ‘불쌍한 장애인’ 정도로 취급됐다. 그것은 무척 모욕적이었다. 그러한 세상의 말과 글에 반격하고 싶었다. 내게 장애인운동은 싸우는 만큼 세상이 나아지고, 가장 약한 곳에서 세계가 확장된다는 믿음을 안겨줬다. 이 싸움에서 《비마이너》의 몫은 무엇일까. 그 물음에 오래 시달렸다.”(강혜민, <기획의 말>)

2008년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해 탈시설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박길연 역시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는 제도적 지원이 충분했다면 얼마든 막을 수 있었을 죽음도 있었다. 일례로 전신마비 중증장애인이었던 권오진씨는 박근혜 정부 당시 24시간 활동지원이 중단되어 욕창이 온몸에 퍼졌고, 건강 상태가 악화해 급기야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병 때문에 시설에서 나와 2년도 채 못 살고 떠난 한민희씨도 떠올렸다. 박길연은 그가 “살아서도 외로웠는데 떠날 때도 너무 외롭게 갔”다며, 동료들의 죽음을 마주할 때면 힘이 들다가도 도무지 지칠 수가 없다고 했다.

“활동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어서 도망갈 구멍을 찾기도 하지만 이런 죽음을 겪으면 슬픔과 분노가 차올라서 다시 힘을 내게 돼요. ‘나는 살아 있으니까 이렇게 지치기라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지칠 수가 없어요.”


운동은 삶을 구할 수 있을까: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들


투쟁판은 장애가 있는 몸으로도 차별과 배제 없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을 쟁취하기 위한 현장이지만, 때로 이곳에는 역설적으로 몸의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는 억압 아닌 억압이 존재하기도 한다.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투쟁 현장에서 정작 활동가들의 건강 문제와 통증이 부차적 문제로 다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종종 투쟁을 위해 자신의 몸 상태를 감춰야만 한다.

박길연은 질병과 장애로 인한 통증이 온전히 자신의 몫임을 이야기하면서도, 동료들에게 그 지점을 이해받지 못할 때 외롭고 화가 난다고 털어놓았다. “집회를 하는데 어떤 활동가가 발언을 요청했어요. 치아 때문에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 활동가가 내가 자꾸 핑계를 댄다는 식으로 툴툴거리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너무 마음이 상해서 다 때려치우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내가 통증을 참는 건 미련할 만큼 독종이어서예요.” 더불어 그는 “어떤 사람이 자기 몸이나 장애를 이유로 뭔가를 거절하거나 부탁할 땐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몸이 아픈 동료에게는 세심한 관찰과 질문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21년 이 책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던 당시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을 받은 노금호는 전장연이 주도하는 진보적 장애인운동에 어렵고도 심대한 질문을 던진다. 치료제인 스핀라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더라도 첫해에 자부담이 5000만 원이고, 매년 1000만 원씩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데, 그러려면 만 3세 이전에 발병했다는 걸 본인이 증명해야 했다. 이를 증명한 뒤에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건강보험공단 측에서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급여 적용을 중단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그는 사회와 공동체가 더 이상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에 답답함과 외로움을 토로했다. “국가와 사회, 조직과 공동체는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나를 돌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존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느끼게 됐어요.”

노금호는 전장연이 투쟁의 대의를 넘어 “더 처절한 밑바닥, 삶의 어떤 지긋지긋함”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싸움 그 이후에 상황을 수습하고 세밀하게 챙겨야 할 것들” 말이다. 투쟁 현장에서 활동가들의 안전과 건강은 특히 중요한 문제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중증장애인들의 삶을 위해 더욱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장애인운동 안에서 느꼈을 소외감을 지금 제가 느껴요. 저의 손상이 진행되는 속도에 비해 사회의 성숙도는 너무 느린데 그 의미를 확장하는 운동 조직 안에서조차 제가 깰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것 같아요. 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어떻게 나의 존엄을 지키면서 이 사회에서 생존해갈 것인가예요.”

2022년 1월 전장연은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알렸다.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등에 이어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장애인의 건강권 문제로 싸움을 확대한 것이다. 노금호의 질문이 촉발한 그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시 한번, ‘운동은 삶을 구할 수 있을까’. 

작가 소개

지은이 : 홍은전

스물셋에 우연히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 장애인운동을 시작했고 서른여섯부터 인권기록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존엄이 짓밟히는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 문제 그 자체보다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노란들판의 꿈》 《그냥, 사람》을 썼고, 《유언을 만난 세계》 《집으로 가는, 길》 등을 함께 썼다.


그린이 : 훗한나

스물셋에 우연히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 장애인운동을 시작했고 서른여섯부터 인권기록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존엄이 짓밟히는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한다. 문제 그 자체보다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노란들판의 꿈》 《그냥, 사람》을 썼고, 《유언을 만난 세계》 《집으로 가는, 길》 등을 함께 썼다.

목 차

기획의 말 4

‘시작’을 만들고 ‘다음’을 조직한 전사들의 노래 | 강혜민(《비마이너》 편집장)

기록의 말 9

우리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 | 홍은전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 박길연 이야기 17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까지 | 박김영희 이야기 69

내 삶을 내 손에 움켜쥐고 | 박명애 이야기 139

나의 쓸모 | 이규식 이야기 193

싸우는 인간의 탄생 | 박경석 이야기 245

운동은 삶을 구할 수 있을까 | 노금호 이야기 315

장애해방운동이 걸어온 길 400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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