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제3의 생각’을 집중 조명하다
김종인·이준석·오세훈·유승민과의 대화
대안 찾는 시민을 위한 나침반
금기와 경계를 넘나드는 생각은 의외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단지, 당파적이지 않아 도드라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이 책에 실린 열여덟 번의 대화가 다른 민주주의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위안이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_「들어가며」 중에서(13쪽)
민주주의는 빨간색도 파란색도 아니다. 굳이 색을 고르자면 민주주의는 회색이다. 흑과 백, 적과 청 사이의 중간지대에서 타협점을 찾는 체제를 민주주의라 부른다. 현실은 어떠한가. 한국은 한 갈래를 택하라고 윽박지르는 일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도처에서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이 횡행한다. 나쁜 의미에서 2024년 한국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적대다. 발군의 토론 능력을 갖춘 정치인과 지식인을 볼 일도 점점 줄고 있다. 생산적 논쟁보다 진영을 감별하는 일에 유능한 사람이 주류로 올라서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시민의 환멸도 하루하루 깊어간다. 기성 정당이 모두 싫다는 무당파가 급증하는 배경이다.
『새로운 주류의 탄생』은 이처럼 일상이 된 적대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혐오와 극단에 휩쓸리지 않는 ‘제3의 생각’을 집중 조명하는 책이라 말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저자가 택한 방법은 심층 인터뷰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금태섭 전 의원, 김세연 전 의원, 안철수 의원 등 중도적 시각을 견지해온 정치인들과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제1차관,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라종일 전 주일대사, 김규항 작가,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지식인들이 저자가 청한 대화에 응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현직 기자인 저자가 열여덟 명이 숙성해온 화두를 토대로 만들어낸 대안의 지도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온기가 스민 시대의 진단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열여덟 명의 생각이 지금보다 더 큰 공간을 차지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주류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내가 그리는 세계에 관해 구체적인 언어로 확인할 수 있었다”(14쪽)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렇듯 『새로운 주류의 탄생』은 지금의 민주주의에 절망했지만 아직 대안적 언어를 찾지 못한 시민들에게 새로운 나침반이 될 것이다.
금기와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
1940년생에서 1985년생을 아우르다
문제는 진영이 아니라 해결책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의 목록을 찬찬히 살피다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여럿 엿보인다. 1940년생(김종인·라종일)에서부터 1985년생(이준석)까지 다양한 세대 배경이 우선 눈길을 끈다. 주요 양당의 수장을 모두 경험한 사람(김종인)도 있고 제3당에 속했다가 양당에 돌아간 사람(유승민·안철수·김세연)도 있으며 새로이 제3당 실험에 나선 사람(이준석·금태섭·조성주)도 있다. 최초의 4선 서울시장(오세훈)과 세계적 명문대학의 교수(신기욱)가 포진한 동시에, 아직 선출직에 당선된 적 없는 차세대 정치인(이동학)의 목소리도 실려 있다. 덧붙이면, 공개적으로 날선 말을 주고받고 불화해온 사이(이준석·안철수)도 있다. 배경도 경험도 다른 인터뷰이들을 묶는 공통의 문장은 ‘금기와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김종인은 “시장경제 효율은 최대한 존중하되, 시장이 해결 못 하는 최소한의 간섭은 정부가 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놈의 낙수효과는 옛날얘기지, 지금은 별로 없다”(34쪽)라고 첨언하면서 말이다.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의 그는 좌파다. 그러나 확장재정이 만능열쇠는 아니라고 할 때는 우파의 면모가 돋보인다. 중요한 건 문제해결 능력이지 깃발이 아니다. 금태섭은 스스로 진보에 가까운 사람이라 밝히면서도 “진보·보수가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잖아요. 삶이 이렇게 복잡한데 한 가지 답이 있을 수는 없죠. 어느 때는 보수의 길이 옳고 어느 때는 진보의 길이 옳죠”(91쪽)라고 말한다.
이준석은 “저도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정책의 틀을 보수 안에 가둬놓지 않을 겁니다. 철학이나 이념은 마음속에 담아두되 어떤 의제를 다룰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70쪽)라고 강조한다. 보수 깃발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유승민에게도 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충은 중요한 과제다. 그렇다면 유승민은 진보인가. 그와 같은 진영 감별로 그의 생각을 재단할 수는 없다. 그는 한국의 만성적 저성장을 지적하며 “그런 나라가 나중에 무슨 돈으로 복지를 해결하고 양극화 해소를 합니까”(134쪽)라고 반문한다. 그의 방점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데 찍혀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금기를 언급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정치인이다. 그는 “실제로 핵 만들자고 하기는 어려워요”(110쪽)라면서도 “우여곡절 끝에 북핵 폐기에 실패할 경우 우리도 핵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는 게 중국과 미국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111쪽)라고 한다. 이를 두고 저자는 한반도 비핵화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진보건 보수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쓴다. 원점에선 핵무장을 비롯해 어떤 아이디어도 배제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진보정당의 미래로 꼽혀온 조성주가 “노동조합이 대표하지 못하는 노동을 정당이 대표할 때 불평등 완화 효과가 생길 수 있다”(203쪽)고 주장하고 진보 정책통 최병천이 “‘친기업 진보주의를 하자’가 내 메시지의 핵심”(170쪽)이라 말하는 것도 금기 깨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재미 석학으로 불리는 신기욱은 미국에 대한 오랜 이분법(제국주의 vs 존숭의 대상)의 틈새에서 균형점 찾기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세계가 결국 제국에 의해 운영된다면, 나는 그래도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되죠.”(253쪽) 진보 외교 구루이자 DJ(김대중 전 대통령) 햇볕정책의 설계자인 라종일은 진보진영의 금기로 꼽히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폭탄이 떨어졌는데 평화를 외치겠다고 하면 안 돼요”(302쪽)라고 말하는데, 햇볕정책의 가치를 따르되 군사적 안전 보장을 위한 준비는 철저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고독하게 결단하는 대통령을 넘어
리더십과 처세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주권자 시민과 대리인 정치인이 토론할 책
저자는 열여덟 번의 대화를 종횡무진한 뒤 ‘고독하게 결단하는 대통령을 넘어’라는 글로 책을 끝맺는다. 흔히 ‘지도자의 결단’이라는 표현을 쓴다. 과제가 산적하고 갈등이 첨예해지는 난세에는 집권자의 고독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대선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떠올린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저자의 질문에 윤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 같지만, 정치적 카오스(혼돈) 안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늘 고독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 모두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갔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그중에서도 두 분(박정희·김대중)은 특히 통찰력을 갖춘 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_「나가며」 중에서(404~405쪽)
인터뷰 당시만 해도 저자는 이 발언에 윤 대통령의 명예심이 녹아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에 자기 어젠다를 남긴 두 전직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오르고 싶다는 뜻으로 읽혔다는 것이다. 정작 이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저자는 “내가 중요한 걸 놓쳤다”고 반성한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집무실에 틀어박혀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권력 꼭짓점에 위치한 1인의 말 한마디에 운영되는 국정은 효율적일 순 있어도 민주적이지는 않다. 운이 좋아야 효율이지, 확률적으로는 부작용을 양산할 위험이 다분하다.”(405쪽)
이런 연유로 『새로운 주류의 탄생』은 시민을 위한 책인 동시에 리더십에 관한 책이다. ‘제3의 생각’에 터를 잡은 어젠다를 논하는 동시에 권력자의 처세술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총선에 앞서 주권자인 시민과 대리인인 정치 리더가 함께 토론할 책으로는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시민도 리더도 더는 낙담하지 말고 희망의 끈을 잡아보자. 열여덟 번의 대화를 통해!
작가 소개
고재석
1986년생. 제주의 구도심에서 나고 자랐다. 탑동 바닷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평생의 취미는 읽기다. 무언가에 열광해본 일이 드물다. 그보다는 한발 떨어져 관조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이유로 ‘너는 어느 쪽이냐’라는 질문에 생래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경제 매체에서 유통과 반도체 등의 산업을 취재했다. 2018년 동아일보 출판국 신동아팀으로 옮겼다. 지금은 주로 정치에 관해 묻고 듣고 쓴다. 때로 나의 펜이 정치를 결투장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고 반성한다. 경희대 사학과·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미디어학과 박사과정에 있다. 『세습 자본주의 세대』와 『스무 살, 정의를 말하다』를 썼다.
목 차
들어가며 ―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민주주의 _008
• 주류 속 이방인 - 김종인
권력자가 사람에 너무 집착하면 안 돼요 _016
• 자의식 강한 이단아 - 이준석
보수도 노동·환경·인권 고민할 시기가 왔습니다 _048
• 징계가 키운 리버럴 - 금태섭
저는 진보·보수 중간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_076
• 안보와 안심소득의 기수 - 오세훈
복지는 원래 뒤처진 분들을 보듬기 위해 생겨난 겁니다 _102
• 돈키호테형 소신파 - 유승민
저성장이 당연하다면 밝은 미래는 없는 거예요 _124
• 미래에서 온 보수 - 김세연
기본소득·기후변화가 보수의 핵심 어젠다여야 합니다 _146
• 친기업 외치는 진보 - 최병천
민주당, 억강부약 말고 부강부약 합시다 _164
• 중원에 간 입체적 반골 - 조성주
‘반독재 민주화’ 세계관은 끝났습니다 _186
• 국회로 간 과학기술인 - 안철수
장영실상 받은 사람이 정치하면 좋겠습니다 _210
• 궁벽을 품은 경제관료 - 김용범
양극화, 더는 경제학 변방 용어가 아닙니다 _228
• 밖에서 한국을 보는 석학 - 신기욱
한국의 좌우파 공히 미국을 너무 몰라요 _250
• 민주적 좌파 - 임지현
모든 독재는 적과 아군을 나누는 데서 시작합니다 _272
• 합리적인 진보 외교 구루 - 라종일
무력 위협하에서 평화를 추구하면 안 돼요 _294
• 균형 갖춘 일본 관찰자 - 이창위
죽창부대·토착왜구는 그들대로 두고 日 객관화합시다 _312
• 조세통(通)이 된 노동운동가 - 손낙구
조세 있는 민주주의가 좋은 민주주의입니다 _328
• 견결하고 단호한 좌파 - 김규항
검찰개혁은 진보가 아니라 기득권 싸움입니다 _346
• 쓰레기에 꽂힌 진보 청년 - 이동학
실력으로 86세대 이기고 싶습니다 _362
• 진영 넘어선 혁신 전도사 - 이정동
전 세계가 안 해본 것을 해야 합니다 _378
나가며 ― 고독하게 결단하는 대통령을 넘어 _398
참고문헌 _406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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