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46세에 죽었지만 천년을 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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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혜정 외
출판사항넥센미디어, 발행일:2025/02/25
형태사항p.566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93796061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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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손귀분의 『존 F. 케네디 46세에 죽었지만 천년을 사는 남자』는 〈존 F. 케네디의 가문〉, 〈군 생활〉, 〈상 ㆍ 하 의원 시절〉 등에 대한 기초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이 수록된 책이다.


서문 - 한국형 케네디를 기다리며…


1960년 미국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 존 F. 케네디 후보가 맞붙은 35대 대통령 선거에서 TV 토론이 처음 도입되었다. 1960년 9월 26일 열린 사상 첫 TV 토론회는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인 7,000만 명이 시청했다. 화면에 비친 두 후보의 이미지는 뚜렷이 대비됐다.

TV 토론 전 구릿빛 피부에 젊고 건강해 보이는 밝은 표정의 케네디와 달리 초췌한 모습의 닉슨은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현직 부통령으로 높은 인지도에 경험과 노련함을 앞세운 닉슨과 상원 의원이던 43세의 정치 신인 케네디의 TV 토론 대결은 결과가 뻔해 보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 득표율 49.72퍼센트 케네디가 49.55퍼센트 닉슨을 불과 0.17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됐다. 11만여 표차 박빙의 승부였다.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후손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였다. 그는 영국 대사까지 지냈으며 보스턴 시장을 역임한 존 피츠제럴드의 딸 로즈와 결혼, 슬하에 4남 5녀를 뒀다. 그의 자손들은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가톨릭 신자이며 수려한 외모와 하버드대를 졸업한 수재들로 민주 당원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물론 후손들 가운데는 몇몇은 유력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불미스런 스캔들에 휘말리거나 비극적 운명을 맞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부부의 장남 조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 폭격 임무를 띠고 출격했다가 영국 근해에 추락해 전사했다. 존 F.케네디는 40대의 젊은 나이로 3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1963년 댈러스에서 총탄에 쓰러졌다. 그 당시 케네디의 진보적 정책에 대해 미국 남부 백인 유권자들은 분노했다. 196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케네디는 남부 유권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선거인단 표가 많은 텍사스를 잃어버리면 케네디는 재선을 자신할 수 없었다. 린든 존슨 부통령이 텍사스 출신이지만 텍사스의 민심은 이미 케네디를 떠나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댈러스를 방문한 케네디는 화를 당했다.

로버트는 존 F.케네디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내고 뉴욕주 상원 의원을 거쳐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어 압도적인 지지 속에 백악관 입성을 목전에 두었다. 그러나 196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유세 도중 암살당했다. 막내인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는 1960년 형 존의 뒤를 이어 20대의 나이에 연방 상원 의원에 당선, 화려한 정치 경력을 펼쳐나갔으나 의문의 스캔들로 대권의 꿈을 이루는 데는 실패했다. 미국 최고의 정치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의 막내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 상원 의원은 암 투병 끝에 2006년 8월 25일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죽음으로 영광과 비운의 케네디가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케네디는 글도 잘 쓰고 연설도 잘했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받은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책에서 케네디는 여러 상원 의원이 자신들의 경력이나 명성에 흠이 가는 것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해 과감한 행동을 취했던 용기가 오늘날 미국의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밝히고 있다. 퓰리처상은 미국의 언론,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높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케네디의 연설 가운데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것은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뉴 프론티어(New Frontier)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미국 역사상 최연소(44세)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이다. 그 연설 중 “미국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에 소련과의 부분적인 핵실험 금지 조약을 포함, 미소 간의 해빙 시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그는 남미 여러 나라와의 ‘진보를 위한 동맹’ 결성, 평화봉사단을 통한 후진국 원조 등 취임 당시의 뉴 프론티어 정신을 계승하는 정치적 노력을 폈다. 그는 국내 문제의 개선과 해외의 후진지역에 대한 민주주의 건설을 강력히 주장해 아이젠하워 시대의 침체된 정치에 싫증을 느끼던 많은 미국 청년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연설 외에도 1962년 쿠바 위기에 대한 대국민 연설, 1963년 민권법안 관련 연설, 1963년 베를린 시청에서 한 연설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필자는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론티어 정신 계승 가운데 평화봉사단(Peace Corps Volunteers)의 후진국 원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평화봉사단 사업은 대통령 취임 이후 평화봉사를 실현하기 위한 조치를 서둘러 추진됐다. 이 봉사단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개발도상국의 발전 지원을 위해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립한 미국 정부의 자원봉사기관이다. 1961년 8월에 국제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평화봉사단원 1기 51명을 가나와 탄자니아에 파견했다. 이후 지금까지 140여 개국에 19만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에는 1966년부터 1981년까지 2,000여 명이 넘는 미국 젊은이가 파견돼 전국 곳곳에서 영어교육, 공중보건, 직업훈련 분야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1975∼1976년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 충청남도 예산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이외에도 김소월 연구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매캔 하버드대 교수도 1960년대 평화봉사단원으로 경북 안동에서 활동했다. 2004∼2005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카메룬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한국은 평화봉사단의 수혜국으로는 유일하게 봉사단을 외국에 파견하는 나라가 됐다. 1991년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해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케네디 전 대통령처럼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하여 존 F.케네디를 특별한 관계라고 느껴왔다고 「워싱톤포스트(WP)」는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케네디 가문 출신 세 명의 대사를 지명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2013~2017) 일본 대사를 지낸 케네디의 딸 캐럴라인에게 또 다른 핵심 우방국인 호주 대사를 맡겼다. 케네디의 종손자인 조 케네디 3세는 북아일랜드 경제 특별대사, 케네디의 제수弟嫂 빅토리아 케네디는 주오스트리아 대사를 맡았다.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은 주로 산간벽지나 농촌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다. 평화봉사단원이 한국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율동을 섞어 가며 영어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

보스턴 해변에 세워진 존 F. 케네디 도서관 및 박물관은 재클린 여사가 이오 밍 페이(I. M. Pei, 1917년 4월 26일~2019년 5월 15일)라는 저명한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에게 의뢰해 건립됐다. 필자는 기념관 한 벽면에 새겨진 다음 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은 죽게 마련이며, 국가는 융성하다가 쇠퇴하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계속 살아남는다.(A man may die, nations may rise and fall, but an idea lives on.)”라는 케네디의 명언이 크게 조각돼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정치적인 후대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전 대통령 클린턴과 오바마이다. 1963년 7월, 케네디가 암살당하기 5개월 전, 클린턴은 고등학교를 다니던 16살 때 각 지역 우수 고등학생 그룹으로 선발돼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다. 단 몇 초간의 짧은 대면이었지만 클린턴은 그 만남으로 자신도 정치인이 되겠다는 희망을 굳혔고 결국 30년 후 대통령이 됐다.

1961년 11월 14일, 동갑내기 케네디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1962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백악관 방문 당시 케네디 대통령을 면담한 것이 평생 공직에 몸담을 결심을 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1963년 7월 24일, 빌 클린턴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다. 클린턴은 American Legion Boys Nation 프로그램에 참석한 16세 소년이었다. 클린턴은 자신의 공직 생활에 영감을 준 것이 바로 그 악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1993년 1월에 제42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솔직함과 진정성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미국인들이 가장 갈구하던 화두 ‘변화’를 내세워 흑색 돌풍을 일으킨 오바마 대통령을 미국인들은 ‘검은 케네디’라고 부른다.

암살당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존 F.케네디 대통령이 미국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은 국민에게 용기와 자신감 넘치는 리더십, 꿈과 희망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편집 손귀분

〈저서〉

ㆍ 「좋은 글의 바다」

ㆍ 「칭찬의 향기」

ㆍ 「바꿀 수 없는 과거, 바꿀 수 있는 미래」

ㆍ 「확신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

ㆍ 「아름다운 국보여행」

ㆍ 「왕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상, 중, 하 편집위원


편집 이남철

ㆍ 서울사이버대학교 객원교수

ㆍ 파라과이 교육과학부 자문관

〈에디터 작품〉

ㆍ 「아름다운 국보여행」 편집위원

ㆍ 「국제이주와 노동정책」

ㆍ 「오바마의 품격」 공편

ㆍ 「삼국유사」 상, 하 편집위원

ㆍ 「왕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상, 중, 하 편집위원


편집 김혜정

ㆍ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학박사

ㆍ 현, 한라대학교 교수

〈저서〉

ㆍ 「이끌림의 비밀」

ㆍ 「미국 대통령의 명연설문 재발견」 공편


편집 배용구

〈에디터 작품〉

ㆍ 「노무현의 품격」 (상,하)편집위원

ㆍ 「미국 대통령의 명연설문 재발견」 공편

ㆍ 「오바마의 품격」 공편

ㆍ 「삼국유사」 상, 하 편집위원

ㆍ 「왕도 보고 싶은 조선왕조실록」 상, 중, 하 편집위원

목 차

서문 - 한국형 케네디를 기다리며 ㆍ 4


chapter 01

암살당한 케네디


- 존 F. 케네디저격 당하다 ㆍ 20

- 냉전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ㆍ 22

- (연설문)암살당하기 전 발표하려던 연설문 - 1963.11.22. ㆍ 23

- 오스왈드는 어떤 사람이었나? ㆍ 24

- 댈러스에 도착하여 딜리 플라자로 가는 길에 저격당하다 ㆍ 26

- 왼쪽에 마지막 총알을 맞았다 ㆍ 27

- 범인을 보았다는 목격자는 없었다 ㆍ 33

- 오스왈드가 경찰관 J. D. 티핏을 살해하다 ㆍ 34

- 오스왈드가 잭 루비에 의해 살해되다 ㆍ 37

- 암살 영상과 사진을 캡처하다 ㆍ 39

- 공식 조사를 하다 ㆍ 41

- FBI가 수사하다 ㆍ 42

- 워렌위원장을 선출하다 ㆍ 43

- 클레이 쇼를 재판하다 ㆍ 45

- 짐 개리슨의 클레이쇼 증명 ㆍ 48

- 록펠러위원회가 재조사하다 ㆍ 57

- 교회위원회가 조사하다 ㆍ 59

- 하원 암살위원회가 설치되다 ㆍ 59

- 「JFK기록법」에 박차를 가하다 ㆍ 60

- 잔디밭의 나무 울타리의 이론은 이렇다 ㆍ 62

- 수많은 의혹과 음모론이 제기되다 ㆍ 63

- 암살 배후 의심 대상은 이러하다 ㆍ 69

- 케네디를 목표로 한 게 아니다? ㆍ 74

- 존슨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다 ㆍ 78


chapter 02

동갑내기 박정희와 케네디


- 동갑내기 박정희가 케네디 초청으로 미국을 첫 방문하다 ㆍ 82

- 박정희는 필요한 부분들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였다 ㆍ 87

- 베트남 전쟁에 한국군을 파병하다 ㆍ 92

- 브라운 각서가 체결되다 ㆍ 96

-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11월 11일 방미 길에 오르다 ㆍ 100

- 1961년 11월 14일 박정희와 케네디가 정상회담을 하다 ㆍ 102

- 한국 고교생 반기문이 케네디를 만나다 ㆍ 114


chapter 03

존 F. 케네디의 가문


- 엄격한 어머니한테서 자랐다 ㆍ 118

- 명문 케네디가의 정치 가족 일원이었다 ㆍ 124

- 케네디 가족 목록 ㆍ 141


chapter 04

군 생활


- 해군에 입대하다 ㆍ 146

-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이 임박하자 대학 진학을 취소하다 ㆍ 148

- PT-109 및 PT-59를 지휘하다 ㆍ 149

-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롤모델이었다 ㆍ 155


chapter 05

상 ㆍ 하 의원 시절


- 공화당 후보를 꺾다 ㆍ 158

- 상원 의원에 출마하다 ㆍ 162

- 케네디가의 저주 ㆍ 173


chapter 06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 시절


-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선언하다 ㆍ 178

- (연설문)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 연설 - 1960년 7월 15일 ㆍ 180

- (연설문)휴스턴 목회자 회의 연설 - 1960년 9월 12일 ㆍ 188

- 닉슨과 함께 텔레비전 토론회를 하다 ㆍ 192

- 최연소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다 ㆍ 193

- 닉슨에 근소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다 ㆍ 197

- 워싱턴 D.C. 무기고에서 취임식 전 무도회를 주최하다 ㆍ 200

- 취임식 전날 많은 눈이 내렸다 ㆍ 201

- 제35대 대통령 취임식이 진행되다 ㆍ 202

- 달변가의 명연설문이 탄생하다 ㆍ 203

- (연설문)케네디 취임연설문 - 1960년 9월 12일 ㆍ 205

- 로버트 프로스트가 취임식에 참여한 최초의 시인이다 ㆍ 212

- 마리안 앤더슨이 「The Star-Spangled Banner」를 부르다 ㆍ 213

- 연설문은 테드 소렌슨이 작성하다 ㆍ 215

- 연설문은 군비 경쟁을 강조했다 ㆍ 216

- 연설의 중심 주제는 의무와 권력의 관계였다 ㆍ 216

- 유명인들을 초대하다 ㆍ 218

- 5명의 전 대통령과 영부인이 참석하다 ㆍ 218

- 백악관까지 행진하다 ㆍ 219

- 20세기에 태어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ㆍ 219

- 프로스트가 「The Gift Outright」를 낭송하다 ㆍ 220

- (연설문)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추모 연설문 - 1963년 10월 7일 ㆍ 235

- 백악관 고위관료를 선출하다 ㆍ 240


chapter 07

국내 정책


- 케네디는 그의 국내 제안을 “뉴 프론티어”라고 불렀다 ㆍ 244

- 행정부가 제안한 54개 법안 중 40개가 의회를 통과했다 ㆍ 245

- 경기부양책을 의회가 통과시키다 ㆍ 249

- 뉴딜 정책 이후 가장 중요한 세제 개혁이 이루어졌다 ㆍ 252

- 근로자에게 유급 초과 근무가 허용되었다 ㆍ 254

- 직업교육 등록을 크게 증가시켰다 ㆍ 255

- 실업급여와 복지혜택이 확대되었다 ㆍ 257

- 의회를 통과한 인두세 반대 수정안을 지지하다 ㆍ 259

- 노인 주택 기금을 증액하다 ㆍ 260

- 직업소개소의 서비스를 확대하다 ㆍ 262

- 지역 사회 서비스 시설의 건설을 위한 연방 지원을 승인하다 ㆍ 263

- 여성의 평등권을 위한 여성지위위원회가 설립되다 ㆍ 265

- 연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다 ㆍ 269

- 농업 정책으로 지역 단체에 대출을 제공하다 ㆍ 269

- 「중요한범죄방지법」안을 통과시키다 ㆍ 270

- 미 해군 특수부대를 창설하다 ㆍ 270

- 민권 운동으로 많은 흑인을 공직에 임명하다 ㆍ 272

- 민권과 인종 차별 철폐를 지지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ㆍ 276

- 앨라배마다대학교 흑인 사건이 발생하다 ㆍ 281

- 인권 메시지를 보내다 ㆍ 285

- 민권법안을 의회에 보내다 ㆍ 292

- 우주에서의 국제 협력을 제안하다 ㆍ 296

- 달에 가기로 결정하다 ㆍ 300

-(연설문)라이스대학교에서 미국의 우주 노력에 관한 연설 - 1962년 ㆍ 300

- 존 F. 케네디 우주센터가 세워지다 ㆍ 308


chapter 08

외교 정책


- 평화봉사단을 출범시키다 ㆍ 312

- 냉전과 유연한 대응으로 방어 전략을 구현하다 ㆍ 313

- 탈식민지화와 비동맹 운동을 창설하다 ㆍ 315

- 유엔 채권 발행 법안에 서명하다 ㆍ 317

- 피그만을 침공하다 ㆍ 319

- 몽구스 작전을 승인하다 ㆍ 321

- 비엔나 정상회담에서 흐루시초프를 만나다 ㆍ 323

- 라틴 아메리카와 공산주의 억제를 위해 진보 동맹을 설립하다 ㆍ 324

-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 ㆍ 327

- 베를린 4개 구역 권리를 주장하다 ㆍ 330

- 소련에 대해 좀 더 유화적인 입장으로 수정하다 ㆍ 331

- 케네디 정서와 유산을 떠 올리게 하다 ㆍ 334

- ‘나는 도넛이다’의 오해가 미디어에 의해 반복되다 ㆍ 335

- (연설문)나는 베를린 시민이다 - 1963년 6월 23일 ㆍ 339

- 1961년 서베를린 연설로 85%의 지지율을 기록하다 ㆍ 341

-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해상 봉쇄를 결정하다 ㆍ 344

- (연설문)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연설문 ㆍ 352

- 라오스에 대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ㆍ 357

- 베트남에 미군 주둔을 확대하다 ㆍ 360

-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는 가정에 기초하다 ㆍ 360

- 오랫동안 미뤄왔던 정치 및 경제 개혁을 단행하다 ㆍ 360

- 베트남 전쟁 공약의 미래에 대해 고심하다 ㆍ 361

- 진압될 때까지 남베트남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다 ㆍ 362

- 이라크에 무기 거래를 승인하다 ㆍ 369

- 이스라엘은 인내하고 번영할 것이다 ㆍ 370

- 이라크에 대한 무기 거래를 승인하다 ㆍ 373

- 조상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방문하다 ㆍ 375

- 아메리칸대학교 졸업식에서 세계 평화 연설을 하다 ㆍ 376

- (연설문)아메리칸대학교 졸업식 연설 - 1963년 6월 10일 ㆍ 377

- 소련과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하기로 결심하다 ㆍ 386

- 소렌슨이 연설문 작성과 특별 고문으로 일하다 ㆍ 387

- 서방 방송사에 대한 방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ㆍ 389

- 부분적 핵실험을 금지하다 ㆍ 392

-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방사능 사건을 초래하다 ㆍ 393

- 원자력 통제에 관한 국제적 논의를 촉구하다 ㆍ 395

- 캐슬 브라보 이후 정지 협정을 촉구하다 ㆍ 398

- 흐루시초프가 모라토리엄을 요구하다 ㆍ 409

- 새로운 노력을 하다 ㆍ 427

- 모라토리엄(지급 유예)을 해제하다 ㆍ 429

- 핵실험 제한에 대해 공통점을 찾다 ㆍ 434

- 전제조건 없는 핵실험 금지 협상을 선택하다 ㆍ 437

- 모스크바 협정 이후 조약을 비준에 서명하다 ㆍ 444

- 평화적 핵폭발을 금지하다 ㆍ 447

- 100개 이상의 국가가 조약에 서명하다 ㆍ 448

- 대기 중 방사성 입자의 양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다 ㆍ 448

- 위반 사고가 일어나다 ㆍ 450


chapter 09

케네디 장례식과 영원한 불꽃


- 시신을 부검하다 ㆍ 454

- 장례를 준비하다 ㆍ 455

- 국가 장례식을 준비하다 ㆍ 457

- 백악관에 안치되다 ㆍ 459

- 공개 관람이 허용되다 ㆍ 462

- 외국 군대가 등장한 유일한 장례식이었다 ㆍ 463

- 케네디 시니어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대성당에서 기다렸다 ㆍ 465

- 「아베 마리아」가 불러졌다 ㆍ 466

- 케네디와 동갑인 박정희가 조문하다 ㆍ 467

- 존 F. 케네디 ‘영원한 불꽃’이 타오르다 ㆍ 469

- 영구 묘지를 개발하다 ㆍ 473

- 새로운 묘지를 만들다 ㆍ 477

- 새 무덤에 봉헌하다 ㆍ 480

- 묘지가 새로운 매장으로 변화되었다 ㆍ 481

- 알링턴 오크의 묘목이 심어지다 ㆍ 483

- 유지보수 작업을 하다 ㆍ 483

- 이주자의 불꽃으로 항해하다 ㆍ 485

- 문화적 영향이 미치다 ㆍ 485

- 하프 달러의 주조를 승인하다 ㆍ 488

- 영웅적인 인물로 신화화 되다 ㆍ 489

- 텍사스 주립 기록 보관소에 유물이 보존되다 ㆍ 492


chapter 10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 매우 영리했다 ㆍ 497

- 34세의 나이에 영부인이 되다 ㆍ 499

-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하다 ㆍ 503

- 6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ㆍ 508


chapter 11

케네디의 평가


- 비극의 케네디 가문이었다 ㆍ 510

- 미국에서 가장 확고한 정치 가문이었다 ㆍ 513

- 폴 화이트상을 수여받다 ㆍ 514

-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 ㆍ 515

- 스캔들에 휩싸이다 ㆍ 518

-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ㆍ 521

- 신화적인 웅장함과 강력한 향수를 반영했다 ㆍ 522

- 대중적 인지도가 매우 높았다 ㆍ 523

- 후광이 과한 대통령 아니냐는 평가도 받았다 ㆍ 524

- 피그만 침공은 역사상 최악의 실패 중 하나였다 ㆍ 525

- 대내 정책은 존슨 대통령 때 극적으로 부활됐다 ㆍ 527

- 진보적인 생각과 능력 자체는 뛰어난 대통령이었다 ㆍ 530

- 대외 정책으로 소련 지도부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뤄냈다 ㆍ 531

- 대내 정책으로 흑인 민권 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ㆍ 533

- 공화당원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ㆍ 534

- 에드워드 무어 케네디 죽음으로 파란만장한 케네디 가문, 역사 속으로 저물다 ㆍ 535

- 형들 사망 후에 케네디는 자신의 13명의 조카와 조카딸들을 위하여 대리 부친의 역할을 맡았다 ㆍ 540

- 여비서 메리 조 코페크니가 타고 가던 자동차가 바다에 빠져 코페크니가 사망한 “채풔퀴딕 사건”으로 논란이 되었다 ㆍ 542

- 상원의 사자였다 ㆍ 544

- 오바마를 지지하다 ㆍ 546

-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다 ㆍ 550

- 케네디의 어록 ㆍ 551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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