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디지털 기술의 범람 속에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탈진실(Post-truth) 시대’,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허망한 거짓에 매혹되는가.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저자가 펴낸 『욕망의 덫, 오보와 가짜뉴스』는 가짜뉴스를 단순한 정보의 오류나 특정 집단의 일탈로 보는 기존의 시각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관통하는 역사적 통찰과 언론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이 책에 녹여냈다. 여기에 거짓 정보의 수요·공급에 관한 경제학적 분석을 더해, 가짜뉴스가 확증 편향과 권력의 전략, 뉴스 시장의 메커니즘을 타고 ‘사회적 진실’로 둔갑하는 생태계를 낱낱이 해부한다. 아울러 가짜뉴스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 전, “우리는 왜 거짓을 믿고 싶어 하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으로 독자들을 성찰과 지적 각성의 길로 인도한다.
인간의 욕망, 진실을 삼키다
이 책은 거짓 정보의 시작을 ‘언론’이 아닌 ‘인간’에서 찾는다. 우리는 흔히 거짓 뉴스가 외부에서 주입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을 정해두고 있으며, 정보는 그 욕망에 따라 선택적으로 소비되고 해석된다. 즉, 진실이 왜곡되는 첫 번째 순간은 정보를 생산할 때가 아니라, 수용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이때 거짓의 가장 큰 에너지원은 인간의 확증 편향이다.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는 진위를 떠나 쉽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의심한다. 또, 위험한 거짓일수록 ‘새빨간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교묘하게 빼닮는다. 그리하여, 진실을 빼닮은 거짓일수록 더 널리 퍼지고 더 오랫동안 진실 행세를 하며, 더 큰 폐해를 낳는다.
이를테면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뒷받침한 거짓 정보나 천동설 같은 거짓은 수천 년간 진실인 양 행세했다. 그보다 짧은 기간 진실 행세를 한 거짓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가짜뉴스의 본질은 단순히 ‘틀린 정보’라는 현상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정보를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인지 구조와 욕망’에 있다.
오보는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
사람들은 오보를 특정 기자의 실수나 무책임 혹은 부도덕성에서 비롯된 일탈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는 일면적 인식이다. 오보나 가짜뉴스는 모두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뉴스 시장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뉴스는 소비자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수요가 있으면 반드시 공급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뉴스의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뉴스 공급자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정보로 뉴스 소비자를 잡으려 든다. 소비자는 누구나 인지적 한계 속에서 자신의 기대와 욕망에 부합하는 뉴스를 찾는다. 이런 뉴스 소비자와 공급자가 만날 때, 검증되지 않은 정보는 물론, 새빨간 거짓조차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간다. 이렇듯, 오보나 가짜뉴스는 ‘뉴스와 정보 시장의 산물’이다. 공급자인 언론과 소비자인 대중이 서로의 욕망을 반영하며 만들어낸 합작품이 바로 오보와 가짜뉴스라는 것이다.
권력과 언론의 위험한 공생
정보를 독점하는 권력과 자본은 여론을 형성해 사람들로부터 지지와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유혹에 늘 노출되어 있다. 조작된 정보나 선택적으로 공개되는 정보가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가 되는 이유다.
역사적으로 정치권력은 전쟁, 정치적 갈등, 사회적 위기를 정당화하려 정보를 조작하고 선택적으로 공개하며 거짓 정보를 언론과 대중에게 전했고, 언론은 앵무새처럼 이를 증폭했다. 이에 따른 오보는 권력과 자본에 이익을 안겼지만, 세상이 치른 대가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거짓 정보라도 공신력을 지닌 정부가 제공할 때 대중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때 언론이 비판적 검증을 수행하지 못하면, 거짓 메시지는 ‘공식적 진실’로 자리 잡는다. 권력은 언제나 정보 독점력을 이용해 유권자를 속이고, 언론은 거짓을 전파하는 그릇된 경쟁을 벌인다.
언론은 왜 거짓을 검증하지 못하는가
언론이 실패하는 원인은 도덕적 타락보다 더 근본적인 구조적 한계에 기인한다. 세상에서 오보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첫째, 속보 경쟁이다. ‘정확성’보다 ‘속도’가 우선시되는 환경은 오보의 온상이 된다.
둘째, 정보 접근의 한계다. 특히 정보 독점자인 위정자나 군, 정보기관, 혹은 수사기관 등이 사실상 유일한 정보 출처가 될 때, 언론은 제공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검증도 그만큼 더 요원해진다.
셋째, 언론들의 동조 현상이다. 주요 언론이 특정 방향으로 보도하면, 다른 언론들도 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며, 오보는 순식간에 ‘모든 언론의 오보’로 확대된다
소셜 미디어와 정보 민주화의 역설
디지털 기술과 인프라로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시대가 열렸다. 정보 민주화가 비약적으로 진전됐다.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그 안에 포함된 거짓 정보의 양과 확산 속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소셜 미디어는 사실이 아닌 ‘반응’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정보일수록 더 빨리 더 널리 퍼진다. 정보 민주화는 진실뿐 아니라 거짓의 확산 가능성도 함께 키우는 양면성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과 거짓, 진위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정보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거짓만큼 진실된 정보도 더 늘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가짜뉴스는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해온 현상이다. 고대 사회에서도 권력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퍼뜨렸고, 전쟁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는 거짓 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종교 전쟁, 근현대의 혁명 등 세계사적 국면에서 가짜뉴스는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사회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이는 거짓 정보가 인간 사회와 구조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과거에는 정보의 확산 속도가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단 몇 시간 만에 전 세계로 퍼진다. 발현되는 양상은 달라져도 본질은 반복되는, 가짜뉴스의 ‘변하지 않는 변화(unchanging change)’다. 하지만,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속도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잊히는 속도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빨라졌다. 가짜뉴스 문제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가짜뉴스 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인간과 사회의 본태적 속성에 더해 현대 미디어 기술의 특성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피해자인가, 공범인가
이 책이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은 “가짜뉴스는 외부에서 우리에게 강요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선택한 결과인가”이다. 믿고 싶은 정보, 욕망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택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거짓을 키우는 ‘능동적 공범’이 되고 있지는 않느냐는 물음이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은 가짜뉴스의 피해자라는 그간의 생각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정보를 소비하는 우리 스스로 자신의 판단 방식을 점검하는 것, 그것이 가짜뉴스라는 덫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다.
해결책은 ‘거짓의 제거’가 아닌 ‘진실의 가속(加速)’이어야 하고, ‘규제’가 아니라 ‘인식의 변화’여야 한다.
오보와 가짜뉴스에 관해 저자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시간’이다. 거짓이 퍼지는 속도와 진실이 밝혀지는 속도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사회는 더 큰 혼란과 피해를 겪는다. 이미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뒤에는,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짜뉴스에 대처하는 첫째 과제는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의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가이다. 거짓을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들기보다 진실이 더 빠르게 드러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처벌은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이런 부작용은 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정보 유통 환경의 개선을 통해 거짓의 실체가 드러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가짜뉴스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가짜뉴스가 생겨나고 만연하게 되는 사회적 요인의 개선에 있다. 인간 본성의 발로인 가짜뉴스는 박멸할 수 없는 세균 같은 존재다. 어디서든 습도와 온도만 맞으면 무럭무럭 자라난다. 건강한 사회일수록 가짜뉴스가 발붙일 여지는 적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환경, 즉 여론의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하나의 관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거짓이 한 번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면, 전 사회가 거짓 속에 빠져들고, 그 피해는 그만큼 막대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가짜뉴스 문제는 기술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인식 수준에 달려 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제안하는 이유다. ‘나는 왜 이 뉴스를 믿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순간, 당신은 거짓의 세계에서 한발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 소개
양상우
대한민국의 저널리스트, 언론사 전문 경영인, 경제학자.
6만여 국민주주들의 뜻을 모아 창간된 한겨레신문에서, 사원 직선으로 선출된 대표이사를 두 차례(2011~2014, 2017~2020) 역임했다. 2021~2026년 네이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멘토에 이어 2026년 3월부터 YTN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언론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언론인의 길을 걸을 때도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직접 겪은 언론의 현실을 경제학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천착해왔다. 언론이 권력과 자본 앞에서 점점 더 취약해지는 구조, 포털이 언론의 정파성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그의 연구들은 Information Economics and Policy를 비롯한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다수 실렸다.
『언론본색-가려진 진실, 드러난 욕망』(2025년), 『감춰진 언론의 진실-경제학으로 읽는 뉴스 미디어』(2023년)를 펴냈고, 세계 최대의 학술출판사 Elsevier와 함께 뉴스 미디어 경제학 분야 최초의 교과서 『The Economics of News Media』를 집필했다.
기자 시절에는 ‘쌍용양회 사과상자 비자금’(1996), ‘북파공작원 실종·사망 7,726명’(1999), ‘북한 시베리아 벌목공 르포’(1994) 등 저널리즘의 본령을 보여준 탐사보도를 남겼고, 민주언론상 특별상(2007), 한국가톨릭매스컴상(2006), 삼성언론상(2004) 등을 수상했다.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때는 오랜 자본 결손 상태를 해소한 데 이어 누적 흑자를 바탕으로 첫 주주 배당을 시행했다.
목 차
프롤로그 거짓 정보에 실망하고 분노하기 전에……
1부 위험한 ‘합작’, 오보
1장 진실을 삼키는 블랙홀, 인간의 욕망
1.1. 베를린 장벽 붕괴 오보
- 뉴스 소비자의 ‘확증 편향’과 뉴스 공급자의 ‘경쟁’
1.2. 한반도 신탁통치 오보
- 뉴스 소비자의 ‘확증 편향’과 뉴스 공급자의 ‘진영 논리’
2장 위정자의 기만술에 속수무책인 언론
2.1. 북베트남 통킹만 오보
내부고발자, 그리고 반전 | 같은 듯 달랐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오보
2.2. 강기훈 유서 대필 오보와 드레퓌스 사건
사라진 여론 다양성 | 19세기 말 프랑스와 20세기 말 한국
2.3. 정보를 조작하는 권력, 편향을 주입하는 언론
오보의 방아쇠, 유권자를 배신하는 정치권력 |
정보 통제, 그리고 뉴스 소비자의 무지와 일시적 무편향 |
편향은 ‘나쁜’ 것인가 | 편향을 주입하는 뉴스 미디어 |
저널리스트는 언제나 신뢰할 만큼 프로페셔널한가
3장 뉴스 공급자의 일탈이 빚는 ‘거짓’
3.1 현대판 ‘황금 섬 지팡구’,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북한 관련 오보가 반복되는 이유
3.2. 확증 편향을 악용한 제노비스 오보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의 ‘날조’
〈1부 부록 - 오보의 바벨탑은 어떻게 지어지는가〉
실제보다 더 생생한 디테일로 창조되는 거짓들 | 오보의 메커니즘 |
진실은 언제나 늦게 온다
2부 오래된 현실, ‘가짜뉴스’
4장 무엇이 가짜뉴스인가
4.1. ‘풍자’에서 ‘날조’까지
4.2. 분별하기 어려운 ‘과실’과 ‘고의’
5장 가짜뉴스는 왜, 어떻게 세상에 범람하게 됐을까
5.1. 인간의 본성
돈 | 선정성 | 부주의와 확증 편향
5.2. 가짜뉴스를 키우는 비옥한 토양
정치적 양극화 | 민주주의 토대를 잠식하는 악순환
5.3. 가짜뉴스를 위한 ‘고속도로’ - 탈진실
대중과 포퓰리스트는 ‘잉크와 펜’ | 무기력한 전통 언론
6장 전통 언론의 시대착오와 소셜 미디어의 ‘두 얼굴’
6.1. 소셜 미디어의 역기능과 순기능
역기능 | 생각해봐야 할 것들 | 순기능
6.2. 진화해야 할 소셜 미디어
7장 가짜뉴스는 새로운 현상인가
7.1. 대중 미디어 시대 이전의 가짜뉴스
로마를 불태운 네로 황제 | “짐은 곧 국가다”라고 말한 절대군주, 루이 14세 |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 하세요” | 나폴레옹의 키는 유난히 작았을까 |
실존 인물, 드라큘라
7.2. 대중 미디어 시대의 가짜뉴스
달에 관한 거대한 날조 | 화성에서 온 원숭이 |
플랑드르 분리독립 날조 | 황색 언론
8장 정보 민주화의 역설, 가짜뉴스
8.1. 인쇄 혁명기의 정보 민주화
경제성장을 이끄는 미디어 기술 혁명
8.2. 500년 전의 가짜뉴스 전쟁
민중을 대변한 “가짜뉴스” | 16세기에도 등장한 소셜 미디어 |
‘가짜뉴스 전쟁’의 충분조건
9장 가짜뉴스는 진짜 위협적인가
9.1. 쏟아진 인상 비평, 부풀려진 영향
9.2. 상존하는 위험
전통 언론의 쇠퇴가 낳는 우려
9.3. 진실과 거짓을 섞는 레시피, 만들어지는 진실
뉴스와 정보를 마주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
에필로그 거짓을 믿고 싶은 사회, 가짜뉴스를 다루는 법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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