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신앙과 지식]
종교전쟁과 종교적인 것의 회귀
1995년 7월부터 10월까지 관용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 모두 8건의 지하철 테러가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5년 11월 파리 11구 바타클랑 극장에서 1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가 또다시 발생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테러 사건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천명한 이래로, 종교는 이성과 빛, 계몽과 거리가 먼 것으로, 심지어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기계와 기술, 과학기술, 원격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 오늘날, 다시 말해 종교를 말하기에는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 시대에 종교가 되돌아오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도 너무나 끔찍한 형태로? 오늘날 전쟁은 다시 종교전쟁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종교전쟁은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부추긴다는 점에서 점점 더 가열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종교적인 것의 회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데리다가 [신앙과 지식]에서 대면하고자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회피하지 않을 문제 중 하나는 종교의 문제다.”
데리다의 해체는 부정신학의 현대적 판본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오늘날 다시 종교에 대해, 아니 보다 정확히 종교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근원적 추상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데리다의 이런 조치는 부정신학을 현대로, 후기근대로 다시 소환한다. 신을 긍정의 방식이 아닌 부정의 방식으로 규정하려는 부정신학의 현대적 판본은 어떤 형태로 전개되는가? 데리다는 종교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신중함, 조심함, 존중 혹은 삼감(religio)의 태도를 갖추고 이른바 ‘사막 안의 사막’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 즉 종교를 그것의 역사로부터,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일체의 지식으로부터 떼어내 ‘종교적인 것’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사막 안의 사막은 모든 기원의 장소, 혹은 장소 자체의 기원 곧 코라에 다름 아니다. 이곳에서 서로 절대 혼동되지 않으면서도 교차하고 얽히고 전염되는 종교적인 것의 두 기원, 두 근원, 두 원천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아무런 의심 없이 라틴어(religio)로, 대개의 경우 미국식 영어(religion)를 통하여 감히 말하고 있는 종교란 무엇인가? 데리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종교(religion)는 대답(response)이며, 책임(responsibility)이다. 요컨대 종교는 타자에게, 타자 앞에서 책임을 떠안는 것이며, 이를 약속하는 것이다. 약속의 행위는 약속의 보증을 담보해야 한다. 그리고 약속의 보증이라는 수행적 행위는 거의 자동적으로 신을 산출해내게 된다. 신탁적 행위 속에서 신은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신의 이름이 거명되었는가 아닌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바로 이 지점이 데리다가 신앙과 지식의 문제를, 종교와 과학을 문제를 다시 사유하고자 하는 부정신학의 포스트모던적 장소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오늘날 종교 혹은 종교적인 것의 회귀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종교를, 비판 혹은 과학과 종교를, 과학기술적인 근대성과 종교를 대립시켜온 순진한 믿음을 버려야만 한다. 종교와 이성은 동일한 원천에서 출발해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와 종교
최근 tvN에서 방영 중인 프로그램 〈오 마이 갓〉 시즌 3의 부제가 “신부, 스님, 목사의 세상살이 응답소”인 것처럼 오늘날 종교행위가 상연되는 장소는 스크린이다. 데리다는 디지털문화, 제트, TV가 없다면 오늘날 그 어떤 종교적인 현시도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현대인의 일상은 종교와 무관하다. 이 일상을 채우는 것은 디지털문화, 제트, TV다. 여기가 바로 데리다가 종교적인 것의 회귀를 재발견하고자 한 후기근대의 지점이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과연 IS가 현재의 모습으로 출현하고 활동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종교를 사유한다는 것은 신앙과 이성의 위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신성성과 기계성의 공모를 풀어헤치는 것이다. 데리다가 보기에 이 공모의 가장 완벽한 형태가 세계화 곧 ‘세계라틴화’이다. 이 신조어는 세계화는 라틴화이며 라틴화는 기독교화이고, 기독교는 신의 죽음을 정식화한 최초의 종교임을 함의한다. 오늘날 죽은 신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기계다. 그런데 기계는 신을 해치기 위해서만 신을 풀어놓는다. 데리다에 따르면 “종교는 이러한 모순적인, 즉 면역적이면서 자가면역적인 이중의 구조에 따라서 자신을 위협하기 위해서만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맞서 끔찍한 전쟁을 수행한다.” [신앙과 지식]에서 데리다가 제기한 질문을 세속화시켜보자. 오늘날 가장 완벽한 방어 시스템은 무엇일까? 그 방어 시스템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데 그 시스템이 면역적일 뿐만 아니라 자가면역적이라면? 신성성과 기계성의 공모로 이루어진 우리 시대의 세계상은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지배하는 스크린의 세계와 무척 닮아 있다.
「세기와 용서」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만을 용서한다.
데리다는 세기말 전(全)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용서의 담화가 갖는 구조를 드러낸다. 그는 얀켈레비치가 [공소시효 없음]에서 제기한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개념을 용서의 맥락에서 재조명하면서, 용서의 한계에 대해,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논한다. 그에 따르면 용서는 모든 교환의 조건적 논리에서 벗어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조건 없이, 절대적으로 용서할 때만 그 이름에 합당한 것이 된다. 즉,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만을 용서”하며, 용서 불가능한 것만이 용서를 부르는 유일한 것이다.
영화 〈귀향〉의 열풍과 절대적 희생자 만들기
그런데 왜 이 문제가 세기의 문제인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위한 조건은 다름 아닌 용서이다. 그렇다면 예컨대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이러한 조건에 부합한 것인가? 데리다는 이러한 계산이 용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새로운 시대는 계산을 통해 여는 것이 아니라 계산 불가능한 것으로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용서 담화의 문제는 무엇인가? 데리다는 ‘절대적 희생자 만들기’라는 음모를 파헤친다. 절대적 희생자는 참된 용서의 기회를 박탈당한 희생자다. 최근의 세계대전 이래로 지정학적 무대에서는 참회와 고백과 용서 혹은 사과의 장면이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공식적으로 용서하는 가운데 침묵당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절대적 희생자다. 국가 혹은 공적기구라는 익명의 실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할 권리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용서할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피해자일 뿐 제3의 기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권 없는 용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분노의 시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용서가 더욱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침묵당한 절대적 희생자에게 어떻게 목소리를 되돌려줄 것인가? 데리다는 [세기와 용서]에서 용서라는 이름에 합당한 ‘순수한’ 용서의 가능성을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권력이 없는 용서, 즉 무조건적이지만 주권 없는 용서이다. 무조건성과 주권을 분리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물론 오늘내일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록 사유를 위한 꿈일지라도 불가능의 가능으로서 광기에 준하는 용서의 담론을 펼쳐보는 것은 데리다의 말처럼 어쩌면 그렇게 미친 짓은 아닐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자크 데리다
1930년 알제리의 엘 비아르에서 유대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해 한때는 축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으나,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열정 또한 남달라 이른 나이에 장 자크 루소, 프리드리히 니체,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등의 작품들을 섭렵했다. 이후 대학 진학을 위해 파리로 옮겨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1952년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쇠렌 키르케고르와 마르틴 하이데거를 비롯한 본격적인 철학 공부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조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데리다는 1964년 에드문트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 카아비예스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65년 고등사범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다음 해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볼티모어 콜로키움에 참가했는데, 이는 이후 데리다가 미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7년에는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등 첫 저작 3권을 출간했다. 1979년 소르본느의 철학 강의를 맡으면서부터 데리다의 정치적 참여는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1981년에는 체코의 지식인들을 돕기 위한 얀 후스재단을 설립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프라하에서 불법적인 세미나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감금되었다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도움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1983년 국제 철학 대학을 창립한 뒤 1984년부터 2004년 10월 9일 췌장암으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고등사회과학원의 철학 교수직을 맡았다.
데리다의 연구는 문학, 언어학, 철학, 법학 그리고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분석 기제가 된 해체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1967년 데리다는 『목소리와 현상La Voix et le phenomene』『기록학에 관하여De la grammatologie』 『기록과 차이L''Ecriture et la differencee』 등의 세 권의 저서를 발표하는데, 이 저서들을 통해 그는 텍스트 읽기에 해체론적인 접근법을 도입했다.
데리다의 초기 작업은 음성 언어가 문자 언어, 기록 행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서양 형이상학의 음성 중심주의와 로고스 중심주의적 한계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되었다. 반면 80년대 이후, 특히 [법의 힘] 이후 데리다는 이전의 작업의 연장선 위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하는 서양의 법적, 정치적 전통에 대한 해체작업을 수행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데리다의 작업은 이론적, 규범적 보편성에 기반한 서양의 정치적 전통을 존중하되, 동시에 이러한 전통이 간과해왔던 개인적 독특성을 법적·정치적 사유의 핵심 주제로 제시함으로써, 정치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역자 : 신정아
프랑스 파리3대학(소르본 누벨)에서 [17~18세기 라신 작품 수용에 관한 사회시학적 연구(1659~1763)]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문학, 프랑스 예술 입문, 프랑스 영화 읽기, 퀘벡 연구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은 현대 사회와 문화를 비평적으로 읽고 분석하는 것이다. 저서로 [바로크](2004), [노랑신호등―포스트모던 비평의 지점](2012, 공저) 등이, 역서로 [번역가의 초상](2007), [페드르와 이폴리트](2013), [정념의 기호학](2014, 공역)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La condition humaine dans Le Temps sauvage: du temps sauvage au temps humain](2012),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에 나타난 폭력과 윤리의 문제](2013), [라신과 바로크](2015) 등이 있다.
[신앙과 지식]
종교전쟁과 종교적인 것의 회귀
1995년 7월부터 10월까지 관용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 모두 8건의 지하철 테러가 있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5년 11월 파리 11구 바타클랑 극장에서 1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테러가 또다시 발생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테러 사건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천명한 이래로, 종교는 이성과 빛, 계몽과 거리가 먼 것으로, 심지어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기계와 기술, 과학기술, 원격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한 오늘날, 다시 말해 종교를 말하기에는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 시대에 종교가 되돌아오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도 너무나 끔찍한 형태로? 오늘날 전쟁은 다시 종교전쟁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종교전쟁은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부추긴다는 점에서 점점 더 가열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종교적인 것의 회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데리다가 [신앙과 지식]에서 대면하고자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회피하지 않을 문제 중 하나는 종교의 문제다.”
데리다의 해체는 부정신학의 현대적 판본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오늘날 다시 종교에 대해, 아니 보다 정확히 종교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근원적 추상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데리다의 이런 조치는 부정신학을 현대로, 후기근대로 다시 소환한다. 신을 긍정의 방식이 아닌 부정의 방식으로 규정하려는 부정신학의 현대적 판본은 어떤 형태로 전개되는가? 데리다는 종교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신중함, 조심함, 존중 혹은 삼감(religio)의 태도를 갖추고 이른바 ‘사막 안의 사막’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 즉 종교를 그것의 역사로부터,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일체의 지식으로부터 떼어내 ‘종교적인 것’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사막 안의 사막은 모든 기원의 장소, 혹은 장소 자체의 기원 곧 코라에 다름 아니다. 이곳에서 서로 절대 혼동되지 않으면서도 교차하고 얽히고 전염되는 종교적인 것의 두 기원, 두 근원, 두 원천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아무런 의심 없이 라틴어(religio)로, 대개의 경우 미국식 영어(religion)를 통하여 감히 말하고 있는 종교란 무엇인가? 데리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종교(religion)는 대답(response)이며, 책임(responsibility)이다. 요컨대 종교는 타자에게, 타자 앞에서 책임을 떠안는 것이며, 이를 약속하는 것이다. 약속의 행위는 약속의 보증을 담보해야 한다. 그리고 약속의 보증이라는 수행적 행위는 거의 자동적으로 신을 산출해내게 된다. 신탁적 행위 속에서 신은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신의 이름이 거명되었는가 아닌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바로 이 지점이 데리다가 신앙과 지식의 문제를, 종교와 과학을 문제를 다시 사유하고자 하는 부정신학의 포스트모던적 장소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오늘날 종교 혹은 종교적인 것의 회귀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과 종교를, 비판 혹은 과학과 종교를, 과학기술적인 근대성과 종교를 대립시켜온 순진한 믿음을 버려야만 한다. 종교와 이성은 동일한 원천에서 출발해 함께 발전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와 종교
최근 tvN에서 방영 중인 프로그램 〈오 마이 갓〉 시즌 3의 부제가 “신부, 스님, 목사의 세상살이 응답소”인 것처럼 오늘날 종교행위가 상연되는 장소는 스크린이다. 데리다는 디지털문화, 제트, TV가 없다면 오늘날 그 어떤 종교적인 현시도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현대인의 일상은 종교와 무관하다. 이 일상을 채우는 것은 디지털문화, 제트, TV다. 여기가 바로 데리다가 종교적인 것의 회귀를 재발견하고자 한 후기근대의 지점이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과연 IS가 현재의 모습으로 출현하고 활동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 종교를 사유한다는 것은 신앙과 이성의 위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신성성과 기계성의 공모를 풀어헤치는 것이다. 데리다가 보기에 이 공모의 가장 완벽한 형태가 세계화 곧 ‘세계라틴화’이다. 이 신조어는 세계화는 라틴화이며 라틴화는 기독교화이고, 기독교는 신의 죽음을 정식화한 최초의 종교임을 함의한다. 오늘날 죽은 신을 다시 불러내는 것은 기계다. 그런데 기계는 신을 해치기 위해서만 신을 풀어놓는다. 데리다에 따르면 “종교는 이러한 모순적인, 즉 면역적이면서 자가면역적인 이중의 구조에 따라서 자신을 위협하기 위해서만 자신을 보호하는 것에 맞서 끔찍한 전쟁을 수행한다.” [신앙과 지식]에서 데리다가 제기한 질문을 세속화시켜보자. 오늘날 가장 완벽한 방어 시스템은 무엇일까? 그 방어 시스템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데 그 시스템이 면역적일 뿐만 아니라 자가면역적이라면? 신성성과 기계성의 공모로 이루어진 우리 시대의 세계상은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지배하는 스크린의 세계와 무척 닮아 있다.
「세기와 용서」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만을 용서한다.
데리다는 세기말 전(全)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용서의 담화가 갖는 구조를 드러낸다. 그는 얀켈레비치가 [공소시효 없음]에서 제기한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라는 개념을 용서의 맥락에서 재조명하면서, 용서의 한계에 대해,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논한다. 그에 따르면 용서는 모든 교환의 조건적 논리에서 벗어나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조건 없이, 절대적으로 용서할 때만 그 이름에 합당한 것이 된다. 즉,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만을 용서”하며, 용서 불가능한 것만이 용서를 부르는 유일한 것이다.
영화 〈귀향〉의 열풍과 절대적 희생자 만들기
그런데 왜 이 문제가 세기의 문제인가?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위한 조건은 다름 아닌 용서이다. 그렇다면 예컨대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는 이러한 조건에 부합한 것인가? 데리다는 이러한 계산이 용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새로운 시대는 계산을 통해 여는 것이 아니라 계산 불가능한 것으로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용서 담화의 문제는 무엇인가? 데리다는 ‘절대적 희생자 만들기’라는 음모를 파헤친다. 절대적 희생자는 참된 용서의 기회를 박탈당한 희생자다. 최근의 세계대전 이래로 지정학적 무대에서는 참회와 고백과 용서 혹은 사과의 장면이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공식적으로 용서하는 가운데 침묵당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절대적 희생자다. 국가 혹은 공적기구라는 익명의 실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할 권리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설령 그렇다고 한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용서할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피해자일 뿐 제3의 기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주권 없는 용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용서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분노의 시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용서가 더욱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하는가? 다시 말해 침묵당한 절대적 희생자에게 어떻게 목소리를 되돌려줄 것인가? 데리다는 [세기와 용서]에서 용서라는 이름에 합당한 ‘순수한’ 용서의 가능성을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권력이 없는 용서, 즉 무조건적이지만 주권 없는 용서이다. 무조건성과 주권을 분리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물론 오늘내일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록 사유를 위한 꿈일지라도 불가능의 가능으로서 광기에 준하는 용서의 담론을 펼쳐보는 것은 데리다의 말처럼 어쩌면 그렇게 미친 짓은 아닐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자크 데리다
1930년 알제리의 엘 비아르에서 유대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해 한때는 축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으나, 학문에 대한 관심과 열정 또한 남달라 이른 나이에 장 자크 루소, 프리드리히 니체,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등의 작품들을 섭렵했다. 이후 대학 진학을 위해 파리로 옮겨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1952년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해 쇠렌 키르케고르와 마르틴 하이데거를 비롯한 본격적인 철학 공부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조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데리다는 1964년 에드문트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 카아비예스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65년 고등사범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다음 해에는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볼티모어 콜로키움에 참가했는데, 이는 이후 데리다가 미국을 자주 방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7년에는 『글쓰기와 차이』,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등 첫 저작 3권을 출간했다. 1979년 소르본느의 철학 강의를 맡으면서부터 데리다의 정치적 참여는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1981년에는 체코의 지식인들을 돕기 위한 얀 후스재단을 설립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프라하에서 불법적인 세미나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감금되었다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도움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1983년 국제 철학 대학을 창립한 뒤 1984년부터 2004년 10월 9일 췌장암으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고등사회과학원의 철학 교수직을 맡았다.
데리다의 연구는 문학, 언어학, 철학, 법학 그리고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분석 기제가 된 해체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1967년 데리다는 『목소리와 현상La Voix et le phenomene』『기록학에 관하여De la grammatologie』 『기록과 차이L''Ecriture et la differencee』 등의 세 권의 저서를 발표하는데, 이 저서들을 통해 그는 텍스트 읽기에 해체론적인 접근법을 도입했다.
데리다의 초기 작업은 음성 언어가 문자 언어, 기록 행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서양 형이상학의 음성 중심주의와 로고스 중심주의적 한계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되었다. 반면 80년대 이후, 특히 [법의 힘] 이후 데리다는 이전의 작업의 연장선 위에서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하는 서양의 법적, 정치적 전통에 대한 해체작업을 수행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데리다의 작업은 이론적, 규범적 보편성에 기반한 서양의 정치적 전통을 존중하되, 동시에 이러한 전통이 간과해왔던 개인적 독특성을 법적·정치적 사유의 핵심 주제로 제시함으로써, 정치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역자 : 신정아
프랑스 파리3대학(소르본 누벨)에서 [17~18세기 라신 작품 수용에 관한 사회시학적 연구(1659~1763)]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프랑스 문학, 프랑스 예술 입문, 프랑스 영화 읽기, 퀘벡 연구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요 관심은 현대 사회와 문화를 비평적으로 읽고 분석하는 것이다. 저서로 [바로크](2004), [노랑신호등―포스트모던 비평의 지점](2012, 공저) 등이, 역서로 [번역가의 초상](2007), [페드르와 이폴리트](2013), [정념의 기호학](2014, 공역)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La condition humaine dans Le Temps sauvage: du temps sauvage au temps humain](2012),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에 나타난 폭력과 윤리의 문제](2013), [라신과 바로크](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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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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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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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