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언제쯤이면 독자 제현에게 『명추회요(冥樞會要)』 간행에 맞춰 발간사를 쓸 수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이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막상 펜을 들고 보니, 지난달 열반 50주기 추모제를 올린 저의 노스님이신 동산(東山) 대종사께서 평소 후학들에게 경책하셨던, ‘참고 견디며 기다리라’는 의미의 ‘감인대(堪忍待)’의 말씀이 가슴에 아려왔습니다.
성철 큰스님 생전에 스님의 뜻을 받들어 출범한 백련선서간행회의 첫 번째 일은 선어록(禪語錄)을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선림고경총서]의 발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취지와 경위에 대해서는 발간사와 완간사에서 자세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선림고경총서] 번역의 길은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천목중봉(天目中峰) 스님의 『산방야화(山房夜話)』를 시작으로 한 권 한 권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오역이나 오자, 탈자가 없는가 해서 등줄기에 땀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긴 세월의 터널을 지나오는 데는 약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선림고경총서] 완간의 대미를 장식한 『벽암록(碧巖錄)』 상?중?하의 마지막 초고(草稿)글 건네받은 1993년 7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선정해 주신 [선림고경총서]의 번역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어록 번역을 1집으로 한다면 2집은 어떤 어록들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책들 번역한다고 그렇게 분주를 떨었는데 더 하기는 뭘 더 해! 고만해라.”
“그러시면 다른 것은 몰라도 큰스님께서 『선문정로(禪門正路)』 제1장 견성즉불(見性卽佛)에서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종경록(宗鏡錄)』에 대하여 ‘『종경록』 100권은 종문(宗門)의 지침으로 용수(龍樹) 이래의 최대 저술로서 찬양된다. 회당조심(晦堂祖心) 스님은 항상 『종경록』을 애중(愛重)하여, 연로해서도 오히려 손에서 놓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이 책을 늦게 봄을 한(恨)한다]라 하고, 그 중에 요처(要處)를 촬약(撮約)하여 3권을 만들어 명추회요(冥樞會要)라고 이름하니, 세상에서 널리 유전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종경록』 100권은 너무 방대해서 번역하기가 어렵고, 후학들을 위해 『명추회요』 판본을 구해 다음번 어록 번역 불사(佛事)로 정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오등회원(五燈會元)』도 번역했으면 하는데, 큰스님께서 지남(指南)해 주셨으면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는 법안종 3세로 존숭받는 스님이고, 『종경록』은 어려운 책이다. 그러니 『명추회요』라도 번역해서 세상에 유포하면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제. 그러나 제대로 번역이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등회원』은 남송(南宋) 시대의 사대부들 서가에 꼭 꽂혀 있던 전등서(傳燈書)인데, 힘들여 번역한다 해도 우리 시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뜻밖에도 큰스님께서는 “쓸데없다, 하지 마라.”고 꾸짖지 않으시고 번역을 잘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저로서는 내심 ‘큰스님께서 허락을 하셨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큰스님께 “[선림고경총서] 2집으로 『명추회요』와 『오등회원』을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1993년 7월 30일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시(垂示), 본칙(本則)과 착어(着語)·평창(評唱), 송(頌)과 착어·평창을 완역(完譯)한 『벽암록(碧巖錄)』상?중?하 3권을 [선림고경총서] 35, 36, 37권으로 출판함으로써 [선림고경총서] 완간이라는 큰 불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해 9월 21일,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성철스님 법어집] 11권 완간을 회향(廻向)하는 기념법회를 봉행하고, 그간 선서 번역과 출판에 노고가 큰 백련선서간행회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또 10월 초순에는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등 국내외 선불교 학자를 모시고 해인사 보경당에서 「선종사에서 돈오사상(頓悟思想)의 위상과 의의」라는 주제로 국제불교학술회의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채 한 달이 안 된 11월 4일 아침, 큰스님께서는 “이제 나도 떠나야겠다. 참선 잘 하그래이.”라고 당부하시며 열반적정에 드셨습니다. 창황하게 떠나심에 밀려드는 한스러움과 텅 빈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성철스님법어집] 11권의 완간을 보시고 떠나신 것이 다행하고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인산인해로 밀려드는 조문 물결 속에 해인사 연화대에서 7일장의 다비식을 무사히 치르고 백여 과의 사리를 수습하여 ‘성철스님사리친견법회’를 5재까지만 하였습니다. 새벽부터 밀려드는 인파와 추워지는 겨울날씨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기간을 줄였습니다. 49재를 마치고 황망중에 ‘스님을 위해 무슨 일부터 할까?’ 하고 돌아보니, 먼저 『명추회요』와 『오등회원』을 번역해서 [선림고경총서] 2집 불사를 이루는 일이야말로 큰스님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명추회요』는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으로 학계에 정평이 나 있는 책이었습니다. 『명추회요』의 저본(底本)인 『종경록』 100권은 영명연수 선사가 화엄(華嚴)?유식(唯識)?천태(天台)의 교학을 밝히고, 스님 자신이 심종(心宗)의 거울이 되어 선종의 입장에서 공평하게 평가하고, 대승경론 60부와 인도와 중국 스님 300여 명의 말씀을 모아 유심(唯心)의 종지를 증명한 백과사전적인 책입니다. 여기서 요추(要樞)가 되는 것을 회당조심 스님이 3권으로 발췌하여 간행한 것이 바로 『명추회요』입니다. 인용문 가운데 또 인용문이 있어서 문장 정리가 까다롭고, 인용문에 증거된 서적들이 멸실되거나 이름만 전하는 것도 있어서 대조할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명추회요』의 판본(板本)을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일본 동경의 고마자와대학에 유학 가 있는 원충스님과 연락이 닿아서 『명추회요』 판본을 복사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몇 달 후 『명추회요』 상·중·하 판본을 받았고, 역경할 분을 찾던 중 그동안 [선림고경총서] 번역에 도움을 준 고(故) 이창섭 옹에게 부탁을 드려 4년 뒤인 1997년 봄에 초고(草稿)를 받게 되었습니다.
고 이창섭 옹의 초고를 들고 몇 분에게 윤문을 부탁했지만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하고, 그나마 초고를 받아준 분들조차 몇 개월이 지나 찾아와서는 “죄송합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몇 년을 허송세월하고 나서 동국대학교 역경위원 몇 분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출간 계획을 잡고 편집을 마무리하고 있던 중에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중국의 종교문화출판사(宗敎文化出版社)에서 『영명연수선사전서(永明延壽禪師全書)』 상?중?하 3권을 출판하였는데, 그동안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되었던 인용문과 인용문 속의 인용 문장이 표점과 더불어 잘 정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그 전집을 참고하여 지금 윤문해 놓은 원고를 다시 검토한다면 더 완성도 높은 번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무슨 인연인지, 한국고전번역원 출신으로 역경을 소임으로 삼고 불전 연찬(硏鑽)과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대진스님과 선암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 스님은 큰스님과 저의 뜻을 이해하고 선뜻 윤문을 맡아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명추회요』 전반에 걸친 검토(윤문, 교열, 인용문 전거 찾기, 각주 정리 등)를 하고, 아울러 우리에게 맞는 표점 작업도 다시 했습니다. 두 분 스님이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원고를 검토한 결과, 윤문을 맡긴 지 1년여 만에 원고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명추회요』의 해제(解題)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는 1988년부터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한국 불교학 발전에 기대가 되는 젊은 학인들을 추천받아 불교지도자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와 공부를 지원해 왔는데, 1997년도에 젊은 불교지도자로 선정된 5명 중 한 분인 박인석 씨가 그 사이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로 재직중이었습니다. 게다가 박인석 씨는 고등학교 때 이미 백련암에서 큰스님을 친견하고, 아비라기도도 여러 번 동참한 인연이 있어서 『명추회요』의 해제를 선뜻 맡아주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모여 23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 오늘 이렇게 큰스님 말씀대로 “어렵고도 어려운 번역”이었지만 번역을 마무리지어 세상에 널리 펼치는 순간을 맞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함과 안도감 속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선림고경총서]를 완간하면서 종단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경전이나 논서, 선어록 등을 번역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역경가(譯經家) 양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역경이야말로 포교의 첨병이며 전법의 지름길임을 깊이 자각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선림고경총서]의 번역에 있어서도 역경가 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23년 전에 [선림고경총서]를 완간하면서 쓴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한숨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중국학자인 에릭 쥐르허가 쓴 중국의 초기 불교사에 대한 고전적 연구서인 『불교의 중국정복』이란 책에는 인도 불교가 이질적인 중국 문화에 젖어 그렇게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500여 년 동안 중국에서 역경의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팔만대장경 역경 불사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경의 완벽한 한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역경 불사는 역경가와 시간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업이어서 어느 한 곳의 암자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이나 동국대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 가야 할 장기적 사업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최근에는 조계종 교육원과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석?박사 역경과정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한글로 잘 번역하여 온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번역불사야말로 불교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의 불사입니다.
저는 『명추회요』 초고의 윤문을 사제인 원순스님에게도 부탁한 바 있습니다. 원순스님은 송광사 율원스님들과 복사한 판본을 가지고 윤독을 하고, 이창섭 옹을 초청해 강의도 듣고 하여 『마음을 바로 봅시다』라는 제목으로 1998년 5월에 상·하 두 권으로 먼저 출간하였습니다. 일찍이 『명추회요』를 세상에 알리려 애쓴 원순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명추회요』가 간행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처음 번역을 맡아 애를 쓰신 고 이창섭 옹의 영전에 향을 올립니다. 그리고 윤문작업에 참여한 이인혜?박상준?성재헌 님, 마지막으로 원고를 완성시킨 대진스님?선암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해제를 써 주신 박인석 님, 항상 내 일처럼 도움을 주는 전 장경각 출판부장 정길숙 님, 장경각의 편집과 제작을 맡아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선연출판사의 문종남 님과 디자이너 김형조 님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림고경총서] 2집을 기다려 주신 독자 제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명추회요』 번역을 마무리합니다. 눈 밝은 선승이 출현하기를 그렇게도 바라셨던 성철 큰스님의 진영 앞에 이제사 『명추회요』를 헌정하게 되니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전국의 수좌 스님들께서도 함께 격려해 주시고 수행에 큰 지남으로 삼아 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이겠습니다.
각범혜홍(覺範惠洪) 스님의 『석문문자선(石門文字禪)』의 내용 가운데서 『종경록』에 대한 말씀의 끝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수행자들이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고 구름과 산을 벗하며 편안하고 즐거움을 누리니, 밝은 창가 깨끗한 책상에서 향 연기를 피우며, 이 책을 깊이 탐독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를 터득해서 문자 속에 참으로 교외별전의 뜻 아님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말씀 가운데서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의 참뜻을 깨달아 이 종경(宗鏡)에서 자기 본래면목을 깨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5년(불기 2559) 5월 부처님오신날
해인사 백련암 좌선실에서 원택 씀
언제쯤이면 독자 제현에게 『명추회요(冥樞會要)』 간행에 맞춰 발간사를 쓸 수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이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막상 펜을 들고 보니, 지난달 열반 50주기 추모제를 올린 저의 노스님이신 동산(東山) 대종사께서 평소 후학들에게 경책하셨던, ‘참고 견디며 기다리라’는 의미의 ‘감인대(堪忍待)’의 말씀이 가슴에 아려왔습니다.
성철 큰스님 생전에 스님의 뜻을 받들어 출범한 백련선서간행회의 첫 번째 일은 선어록(禪語錄)을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하는 [선림고경총서]의 발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취지와 경위에 대해서는 발간사와 완간사에서 자세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선림고경총서] 번역의 길은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천목중봉(天目中峰) 스님의 『산방야화(山房夜話)』를 시작으로 한 권 한 권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오역이나 오자, 탈자가 없는가 해서 등줄기에 땀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긴 세월의 터널을 지나오는 데는 약 10여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선림고경총서] 완간의 대미를 장식한 『벽암록(碧巖錄)』 상?중?하의 마지막 초고(草稿)글 건네받은 1993년 7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선정해 주신 [선림고경총서]의 번역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어록 번역을 1집으로 한다면 2집은 어떤 어록들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책들 번역한다고 그렇게 분주를 떨었는데 더 하기는 뭘 더 해! 고만해라.”
“그러시면 다른 것은 몰라도 큰스님께서 『선문정로(禪門正路)』 제1장 견성즉불(見性卽佛)에서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종경록(宗鏡錄)』에 대하여 ‘『종경록』 100권은 종문(宗門)의 지침으로 용수(龍樹) 이래의 최대 저술로서 찬양된다. 회당조심(晦堂祖心) 스님은 항상 『종경록』을 애중(愛重)하여, 연로해서도 오히려 손에서 놓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이 책을 늦게 봄을 한(恨)한다]라 하고, 그 중에 요처(要處)를 촬약(撮約)하여 3권을 만들어 명추회요(冥樞會要)라고 이름하니, 세상에서 널리 유전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종경록』 100권은 너무 방대해서 번역하기가 어렵고, 후학들을 위해 『명추회요』 판본을 구해 다음번 어록 번역 불사(佛事)로 정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오등회원(五燈會元)』도 번역했으면 하는데, 큰스님께서 지남(指南)해 주셨으면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는 법안종 3세로 존숭받는 스님이고, 『종경록』은 어려운 책이다. 그러니 『명추회요』라도 번역해서 세상에 유포하면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제. 그러나 제대로 번역이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등회원』은 남송(南宋) 시대의 사대부들 서가에 꼭 꽂혀 있던 전등서(傳燈書)인데, 힘들여 번역한다 해도 우리 시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뜻밖에도 큰스님께서는 “쓸데없다, 하지 마라.”고 꾸짖지 않으시고 번역을 잘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고 계셨습니다. 저로서는 내심 ‘큰스님께서 허락을 하셨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큰스님께 “[선림고경총서] 2집으로 『명추회요』와 『오등회원』을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1993년 7월 30일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시(垂示), 본칙(本則)과 착어(着語)·평창(評唱), 송(頌)과 착어·평창을 완역(完譯)한 『벽암록(碧巖錄)』상?중?하 3권을 [선림고경총서] 35, 36, 37권으로 출판함으로써 [선림고경총서] 완간이라는 큰 불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해 9월 21일,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성철스님 법어집] 11권 완간을 회향(廻向)하는 기념법회를 봉행하고, 그간 선서 번역과 출판에 노고가 큰 백련선서간행회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또 10월 초순에는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등 국내외 선불교 학자를 모시고 해인사 보경당에서 「선종사에서 돈오사상(頓悟思想)의 위상과 의의」라는 주제로 국제불교학술회의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채 한 달이 안 된 11월 4일 아침, 큰스님께서는 “이제 나도 떠나야겠다. 참선 잘 하그래이.”라고 당부하시며 열반적정에 드셨습니다. 창황하게 떠나심에 밀려드는 한스러움과 텅 빈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성철스님법어집] 11권의 완간을 보시고 떠나신 것이 다행하고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인산인해로 밀려드는 조문 물결 속에 해인사 연화대에서 7일장의 다비식을 무사히 치르고 백여 과의 사리를 수습하여 ‘성철스님사리친견법회’를 5재까지만 하였습니다. 새벽부터 밀려드는 인파와 추워지는 겨울날씨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기간을 줄였습니다. 49재를 마치고 황망중에 ‘스님을 위해 무슨 일부터 할까?’ 하고 돌아보니, 먼저 『명추회요』와 『오등회원』을 번역해서 [선림고경총서] 2집 불사를 이루는 일이야말로 큰스님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명추회요』는 번역하기가 매우 어려운 책으로 학계에 정평이 나 있는 책이었습니다. 『명추회요』의 저본(底本)인 『종경록』 100권은 영명연수 선사가 화엄(華嚴)?유식(唯識)?천태(天台)의 교학을 밝히고, 스님 자신이 심종(心宗)의 거울이 되어 선종의 입장에서 공평하게 평가하고, 대승경론 60부와 인도와 중국 스님 300여 명의 말씀을 모아 유심(唯心)의 종지를 증명한 백과사전적인 책입니다. 여기서 요추(要樞)가 되는 것을 회당조심 스님이 3권으로 발췌하여 간행한 것이 바로 『명추회요』입니다. 인용문 가운데 또 인용문이 있어서 문장 정리가 까다롭고, 인용문에 증거된 서적들이 멸실되거나 이름만 전하는 것도 있어서 대조할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명추회요』의 판본(板本)을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일본 동경의 고마자와대학에 유학 가 있는 원충스님과 연락이 닿아서 『명추회요』 판본을 복사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몇 달 후 『명추회요』 상·중·하 판본을 받았고, 역경할 분을 찾던 중 그동안 [선림고경총서] 번역에 도움을 준 고(故) 이창섭 옹에게 부탁을 드려 4년 뒤인 1997년 봄에 초고(草稿)를 받게 되었습니다.
고 이창섭 옹의 초고를 들고 몇 분에게 윤문을 부탁했지만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며 사양을 하고, 그나마 초고를 받아준 분들조차 몇 개월이 지나 찾아와서는 “죄송합니다. 자신이 없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또 몇 년을 허송세월하고 나서 동국대학교 역경위원 몇 분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출간 계획을 잡고 편집을 마무리하고 있던 중에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중국의 종교문화출판사(宗敎文化出版社)에서 『영명연수선사전서(永明延壽禪師全書)』 상?중?하 3권을 출판하였는데, 그동안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되었던 인용문과 인용문 속의 인용 문장이 표점과 더불어 잘 정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그 전집을 참고하여 지금 윤문해 놓은 원고를 다시 검토한다면 더 완성도 높은 번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무슨 인연인지, 한국고전번역원 출신으로 역경을 소임으로 삼고 불전 연찬(硏鑽)과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대진스님과 선암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 스님은 큰스님과 저의 뜻을 이해하고 선뜻 윤문을 맡아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명추회요』 전반에 걸친 검토(윤문, 교열, 인용문 전거 찾기, 각주 정리 등)를 하고, 아울러 우리에게 맞는 표점 작업도 다시 했습니다. 두 분 스님이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원고를 검토한 결과, 윤문을 맡긴 지 1년여 만에 원고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명추회요』의 해제(解題)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인연이 찾아왔습니다.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는 1988년부터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한국 불교학 발전에 기대가 되는 젊은 학인들을 추천받아 불교지도자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와 공부를 지원해 왔는데, 1997년도에 젊은 불교지도자로 선정된 5명 중 한 분인 박인석 씨가 그 사이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로 재직중이었습니다. 게다가 박인석 씨는 고등학교 때 이미 백련암에서 큰스님을 친견하고, 아비라기도도 여러 번 동참한 인연이 있어서 『명추회요』의 해제를 선뜻 맡아주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모여 23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 오늘 이렇게 큰스님 말씀대로 “어렵고도 어려운 번역”이었지만 번역을 마무리지어 세상에 널리 펼치는 순간을 맞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함과 안도감 속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선림고경총서]를 완간하면서 종단에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경전이나 논서, 선어록 등을 번역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역경가(譯經家) 양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역경이야말로 포교의 첨병이며 전법의 지름길임을 깊이 자각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선림고경총서]의 번역에 있어서도 역경가 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23년 전에 [선림고경총서]를 완간하면서 쓴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한숨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중국학자인 에릭 쥐르허가 쓴 중국의 초기 불교사에 대한 고전적 연구서인 『불교의 중국정복』이란 책에는 인도 불교가 이질적인 중국 문화에 젖어 그렇게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500여 년 동안 중국에서 역경의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팔만대장경 역경 불사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경의 완벽한 한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역경 불사는 역경가와 시간과 재정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업이어서 어느 한 곳의 암자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이나 동국대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 가야 할 장기적 사업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최근에는 조계종 교육원과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석?박사 역경과정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한글로 잘 번역하여 온 세대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번역불사야말로 불교 발전을 위한 백년대계의 불사입니다.
저는 『명추회요』 초고의 윤문을 사제인 원순스님에게도 부탁한 바 있습니다. 원순스님은 송광사 율원스님들과 복사한 판본을 가지고 윤독을 하고, 이창섭 옹을 초청해 강의도 듣고 하여 『마음을 바로 봅시다』라는 제목으로 1998년 5월에 상·하 두 권으로 먼저 출간하였습니다. 일찍이 『명추회요』를 세상에 알리려 애쓴 원순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명추회요』가 간행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처음 번역을 맡아 애를 쓰신 고 이창섭 옹의 영전에 향을 올립니다. 그리고 윤문작업에 참여한 이인혜?박상준?성재헌 님, 마지막으로 원고를 완성시킨 대진스님?선암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해제를 써 주신 박인석 님, 항상 내 일처럼 도움을 주는 전 장경각 출판부장 정길숙 님, 장경각의 편집과 제작을 맡아 수고를 아끼지 않는 선연출판사의 문종남 님과 디자이너 김형조 님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림고경총서] 2집을 기다려 주신 독자 제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명추회요』 번역을 마무리합니다. 눈 밝은 선승이 출현하기를 그렇게도 바라셨던 성철 큰스님의 진영 앞에 이제사 『명추회요』를 헌정하게 되니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전국의 수좌 스님들께서도 함께 격려해 주시고 수행에 큰 지남으로 삼아 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이겠습니다.
각범혜홍(覺範惠洪) 스님의 『석문문자선(石門文字禪)』의 내용 가운데서 『종경록』에 대한 말씀의 끝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수행자들이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고 구름과 산을 벗하며 편안하고 즐거움을 누리니, 밝은 창가 깨끗한 책상에서 향 연기를 피우며, 이 책을 깊이 탐독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를 터득해서 문자 속에 참으로 교외별전의 뜻 아님이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말씀 가운데서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의 참뜻을 깨달아 이 종경(宗鏡)에서 자기 본래면목을 깨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2015년(불기 2559) 5월 부처님오신날
해인사 백련암 좌선실에서 원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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