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변하지 않는 종교는 죽은 종교이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들려주는 종교의 참된 의미
오늘날 종교는 무엇이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가 나날이 화제다. 기독교의 금기였던 동성애에 대해 자비를 촉구한 데 이어, 가톨릭에서 중죄로 간주돼온 낙태에 사면권을 부여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일부 보수적인 성직자들의 말처럼 교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종교의 참다운 정신이 새롭게 빛을 발하는 것일까?
러셀,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일찍이 종교란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며 변치 않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종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고 생성되는 과정 중에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교리의 불변성에 매몰되는 것은 새로운 야만을 가져올 뿐 아니라 종교적 삶을 질식시킨다. 이처럼 그의 책 『종교란 무엇인가』(원제: Religion in the Making)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비독단적 종교관을 제시하며, 인간이 갖는 종교적 경험의 독특한 의미와 그 중요성을 명료하게 말해준다.
나아가 화이트헤드는 종교의 역사, 신과 믿음의 문제, 종교와 형이상학의 관계 등 종교와 관련된 수많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오늘날의 종교가 단순한 사교성을 넘어선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다원화된 시대 상황 속에서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에 응답하고 삶의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화이트헤드의 고전적 저작을 새롭게 번역 출간하는 것으로, 저명한 화이트헤드 연구자인 문창옥 교수가 번역을 맡고 상세한 각주를 달아 원문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종교는 개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고독으로 이루어내는 것이다.” - 공동체적 종교에서 합리적 종교로
이 책 『종교란 무엇인가』는 화이트헤드가 종교에 관해 네 차례에 걸쳐 강의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다. 1926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읽히고 연구되는 고전이다. 화이트헤드는 간명하면서도 문학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며 거침없이 핵심을 찌른다. 고유한 형이상학적 체계의 뒷받침 속에서 종교의 깊은 의미를 길어내는 맛 또한 일품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화이트헤드는 종교적 믿음과 진리에 관한 일치된 의견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종교의 특이성은 인류가 그에 대한 태도를 끊임없이 바꾸어 간다는 데 있으며, 그래서 종교에 대한 물음은 어느 세대나 매번 새로운 형태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변천한다는 사실은 화이트헤드의 근본 주장 중 하나이다.
특히 “1장 역사 속의 종교”는 종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종교가 공동체적 종교에서 합리적 종교로 변천해온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화이트헤드는 종교적 관념이 제의, 정서, 믿음, 합리화라는 형태로 인간의 삶 속에 순차적으로 등장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신화와 집단적 제의, 정서와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원시적 단계의 종교는 배타적인 종족의식이나 공동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편성을 갖춘 종교는 직접적인 환경과의 절연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의 경험이다.
“개화된 인류의 상상력 주위를 맴도는 위대한 종교적 착상들은 고독의 표현들이다.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사막에서 고뇌하는 마호메트, 명상하는 부처, 십자가에 매달린 저 고독한 인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에 의해서조차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종교적 영혼의 내면적 본질에 속한다.”(37쪽)
화이트헤드가 볼 때 고독은 종교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는 “종교는 고독이다. 우리가 고독하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종교적일 수 없다.”(34쪽)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고독이 종교의 출발점인 이유는 우리가 고독의 경험을 통해서만 개체성을 자각할 수 있고, 그런 고독 속에서만 공동체를 넘어서는 보편적 의식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이러한 단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종교를 고독을 치유하거나 고립된 인간을 사회화하기 위한 도구로만 보는 시각은 화이트헤드의 종교관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런 단순한 견해는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경이로운 사실, 즉 자기 자신을 위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식적으로 주목한다는 사실을 도외시”(33쪽)하기 때문이다. 또한 화이트헤드는 신자들 개개인보다 종교 집단이나 신에 대한 기도를 더 중시하는 잘못된 종교적 태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준다. “존재들의 개체성은 그들의 공동체만큼 중요하다. 종교의 주제는 공동체 안에 있는 개체성이다.”(101쪽)
“신앙의 시대는 합리주의의 시대이다.” - 종교와 형이상학의 관계
이처럼 화이트헤드는 고독과 개체성을 종교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본다. 그렇지만 충분히 합리적인 보편 종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넘어선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합리성”이다. 화이트헤드가 역설하는 고독의 경험은 개인성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편의식에 이르는 통로로 기능할 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고독 속에서 정신은 가치의 측면에서 삶의 성취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정신은 자신의 개별적 요구를 객관적 우주의 요구와 융합시키기 전까지는 이러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종교는 세계충성(world-loyalty)이다.”(74쪽)
“2장 종교와 교리”는 공동체의식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종교적 의식이 어떻게 출현하고 어떤 합리성을 갖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보편적 의식이 고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공동체의 규범을 넘어서는 종교의 합리성은 심오한 사색의 산물이다. 화이트헤드가 예시하는 것처럼 불교는 그 어떤 종교보다 뛰어난 실천적 형이상학의 종교이며, 기독교는 언제나 형이상학을 갈구하는 실천의 종교였다. 이처럼 종교는 늘 세상의 사건들, 악의 사실들, 죽음의 문제들에 대한 사유 체계로서 기능하였고, 그러한 사유를 통해 자신의 교리들을 만들어왔다. 이 점에서 “종교의 교리는 인류의 종교적 경험에서 드러나는 진리를 엄밀한 용어로 정식화하려는 시도이다.”(72쪽)
그리고 종교적 교리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것은 바로 “신”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2장에서 화이드헤드는 이 문제와 진지하게 씨름한다. 동아시아적 신 개념, 셈족의 신 개념, 범신론적 신 개념 등 그는 여러 신 개념들의 공통 요소를 추출하고 그들이 어떻게 의미 있는 교설을 구성하는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그는 “합리적 종교가 그 용어들을 엄밀하게 검토하려면 형이상학에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89쪽)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 그 어떤 종교도 순수한 직관과 믿음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없으며, 자신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탐구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 말은 형이상학이나 과학이 종교를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종교적 경험이라는 자신의 독자적 증거를 형이상학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경험이란 무엇인가? 화이트헤드는 이를 가장 광범한 의미에서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종교가 공급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존재가 단순한 사실들의 연속 이상의 것이라는 인식이다. (…) 언제나 단순한 삶의 사실 너머에 존재하는 삶의 질이 있다.”(90쪽) 이처럼 종교는 삶의 가치에 대한 통찰이자 경험이며,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가치 있는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3장 신체와 정신”에서는 2장의 논의를 더욱 구체화한다. 2장이 종교적 경험의 측면에서 종교와 형이상학의 관계를 설명했다면, 3장에서는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형이상학과 종교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는 이후 『과정과 실재』에서 전개되는 화이트헤드 철학의 진수가 소개되며, 압축적이면서도 통찰력 넘치는 종교철학적 논의가 제시된다. 이를 통해 신과 도덕적 질서, 가치와 신의 목적, 신체와 정신, 창조적 과정 등 종교 및 철학과 관련되는 중요한 주제들이 세련된 필치로 서술된다. 이 부분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배경을 숙지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에 역자인 문창옥 교수가 각주를 통해 화이트헤드 철학의 맥락과 그 의미를 친절히 짚어주고 있다.
종교는 발전한다 - 열려 있는 종교의 미래
마지막 “4장 진리와 비판”은 남아 있는 여러 종교적 문제들을 논의하고 앞의 논점들을 다시금 명료히 정리한다. 특히 화이트헤드는 종교적 경험과 교리가 어떻게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면서 발전하는가에 주목한다. 우리가 직관을 통해 느끼는 종교적 경험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연속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시조나 예언자 같은 인물들이 종교의 핵심을 독창적으로 표현해내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 비로소 우리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이처럼 종교는 단순히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어야 하고, 다시 그러한 표현이 타인에게 수용되면서 소통되어야 하는 창조적인 순환 과정임을 화이트헤드는 분명히 한다. 이 창조적 과정을 파악하지 못한 채 독단적으로 자기의 경험만을 고수하거나 불변의 교리에 집착하는 것은 가장 비종교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교리는 그 특성이 단순해야 할 필요도 없고 그 수가 제한될 필요도 없다.”(155쪽)
또한 화이트헤드는 열린 종교의 필요성도 주문하고 있다. 특히 과학이라는 세 번째 전통에 대응하지 못하는 한 기존 보편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교리의 체계는 교회가 역사의 밀물을 따라 안전하게 떠다닐 수 있는 방주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창을 열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 올리브 가지를 찾지 않는다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따금 교회는 게리짐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아라랏 산에 상륙하여 하느님의 영을 향해 새로운 재단을 세우는 것이 실로 좋을 것이다.”(160쪽)
마지막으로 화이트헤드는 세계 속에서의 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자신의 견해를 다시금 분명히 제시한다. 종교는 결국 신과의 관계이며, 신의 본성에 대한 파악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신의 역할에 힘입어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불편부당한 것으로 의식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신은 “우리의 판단이 존재의 사실을 넘어 존재의 가치로 확대될 수 있게 하는 삶의 요소이다.”(173쪽) 요컨대 우리는 신을 통하여 자아와 공동체의 제약을 넘어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소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개방적 종교관은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한 예로 D. H. 로렌스가 그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화이트헤드의 이 저작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이 유명하다. 또한 화이트헤드의 종교 개념을 토대로 ‘과정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 분야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종교가 끊임없이 변천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열린 종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그의 생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의 종교는 충분히 합리적인가? 또 충분히 개방적이며 창조적인가? 화이트헤드의 이 책은 우리에게 이러한 물음을 던질 수 있게 해준다.
추천사
“오늘날 화이트헤드와 함께 사유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에 뛰어드는 것을 뜻한다.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들 중 그 어떤 것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누구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이자벨 스텡거스, 철학자, 『화이트헤드와 함께 사유하기』 저자
▣ 작가 소개
저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후에 동 대학의 특별연구원(Fellow)과 수석 강사(1885~1911), 런던대학의 임페리얼 칼리지 응용수학교수(1914~1924),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1924~1937)를 역임했다. 그는 수학자였지만 고전에도 정통했으며, 새로운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을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 왔다.
그의 수제자 버트런드 러셀과의 공저 『수학 원리』(전 3권, 1910~1913)와 같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 논리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을 계기로, 현대 과학설을 철학에 도입시켜 철학 사상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과학철학자 그리고 “유기체 철학”(philosophy of organism)의 철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리를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부터 탐구”(본문 제2장 중에서) 하는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으며, 오랫동안 수학의 전문가였다. 그의 최초의 철학적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는 그가 63세 때, 대표작 『과정과 실재』(1929)는 68세 때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관념의 모험』(1933)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이 우주에 관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하고 있는 데 놀랐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사물의 유동(流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체계라는 형태의 우주론으로서, 어디까지나 개방된 체계였다. 형이상학을 싫어했던 존 듀이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대하여 “철학에의 혁명적 공헌” 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철학자였던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20세기의 데카르트”라 평하기도 했다.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수로 불리는 질 들뢰즈 같은 이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영미권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로 평하였다.
역자 : 문창옥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이해』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화이트헤드 철학 읽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 『상징활동 그 의미와 효과』 『사고의 양태』(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역자 서문
서문
1장 역사 속의 종교
1. 종교의 정의 / 2. 종교의 출현 / 3. 제의와 정서
4. 믿음 / 5. 합리주의 / 6. 인간의 향상 / 7. 마지막 대비
2장 종교와 교리
1. 역사 속의 종교적 의식 / 2. 종교적 경험에 관한 기술
3. 신 / 4. 신에 대한 탐구
3장 신체와 정신
1. 종교와 형이상학 / 2. 형이상학에 대한 종교의 공헌
3. 형이상학적 기술 / 4. 신과 도덕적 질서
5. 가치와 신의 목적 / 6. 신체와 정신 / 7. 창조적 과정
4장 진리와 비판
1. 교리의 발전 / 2. 경험과 표현
3. 세 가지 전통 / 4. 신의 본성 / 5. 결론
찾아보기
“변하지 않는 종교는 죽은 종교이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들려주는 종교의 참된 의미
오늘날 종교는 무엇이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가 나날이 화제다. 기독교의 금기였던 동성애에 대해 자비를 촉구한 데 이어, 가톨릭에서 중죄로 간주돼온 낙태에 사면권을 부여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일부 보수적인 성직자들의 말처럼 교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종교의 참다운 정신이 새롭게 빛을 발하는 것일까?
러셀,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일찍이 종교란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며 변치 않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종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고 생성되는 과정 중에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교리의 불변성에 매몰되는 것은 새로운 야만을 가져올 뿐 아니라 종교적 삶을 질식시킨다. 이처럼 그의 책 『종교란 무엇인가』(원제: Religion in the Making)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비독단적 종교관을 제시하며, 인간이 갖는 종교적 경험의 독특한 의미와 그 중요성을 명료하게 말해준다.
나아가 화이트헤드는 종교의 역사, 신과 믿음의 문제, 종교와 형이상학의 관계 등 종교와 관련된 수많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오늘날의 종교가 단순한 사교성을 넘어선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다원화된 시대 상황 속에서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에 응답하고 삶의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화이트헤드의 고전적 저작을 새롭게 번역 출간하는 것으로, 저명한 화이트헤드 연구자인 문창옥 교수가 번역을 맡고 상세한 각주를 달아 원문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종교는 개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고독으로 이루어내는 것이다.” - 공동체적 종교에서 합리적 종교로
이 책 『종교란 무엇인가』는 화이트헤드가 종교에 관해 네 차례에 걸쳐 강의했던 내용을 엮은 것이다. 1926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널리 읽히고 연구되는 고전이다. 화이트헤드는 간명하면서도 문학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문장을 구사하며 거침없이 핵심을 찌른다. 고유한 형이상학적 체계의 뒷받침 속에서 종교의 깊은 의미를 길어내는 맛 또한 일품이다.
책을 시작하면서 화이트헤드는 종교적 믿음과 진리에 관한 일치된 의견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종교의 특이성은 인류가 그에 대한 태도를 끊임없이 바꾸어 간다는 데 있으며, 그래서 종교에 대한 물음은 어느 세대나 매번 새로운 형태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변천한다는 사실은 화이트헤드의 근본 주장 중 하나이다.
특히 “1장 역사 속의 종교”는 종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종교가 공동체적 종교에서 합리적 종교로 변천해온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화이트헤드는 종교적 관념이 제의, 정서, 믿음, 합리화라는 형태로 인간의 삶 속에 순차적으로 등장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신화와 집단적 제의, 정서와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원시적 단계의 종교는 배타적인 종족의식이나 공동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편성을 갖춘 종교는 직접적인 환경과의 절연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고독”의 경험이다.
“개화된 인류의 상상력 주위를 맴도는 위대한 종교적 착상들은 고독의 표현들이다.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사막에서 고뇌하는 마호메트, 명상하는 부처, 십자가에 매달린 저 고독한 인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에 의해서조차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종교적 영혼의 내면적 본질에 속한다.”(37쪽)
화이트헤드가 볼 때 고독은 종교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는 “종교는 고독이다. 우리가 고독하지 않다면, 우리는 결코 종교적일 수 없다.”(34쪽)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고독이 종교의 출발점인 이유는 우리가 고독의 경험을 통해서만 개체성을 자각할 수 있고, 그런 고독 속에서만 공동체를 넘어서는 보편적 의식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이러한 단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준다. 종교를 고독을 치유하거나 고립된 인간을 사회화하기 위한 도구로만 보는 시각은 화이트헤드의 종교관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런 단순한 견해는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경이로운 사실, 즉 자기 자신을 위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식적으로 주목한다는 사실을 도외시”(33쪽)하기 때문이다. 또한 화이트헤드는 신자들 개개인보다 종교 집단이나 신에 대한 기도를 더 중시하는 잘못된 종교적 태도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준다. “존재들의 개체성은 그들의 공동체만큼 중요하다. 종교의 주제는 공동체 안에 있는 개체성이다.”(101쪽)
“신앙의 시대는 합리주의의 시대이다.” - 종교와 형이상학의 관계
이처럼 화이트헤드는 고독과 개체성을 종교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본다. 그렇지만 충분히 합리적인 보편 종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넘어선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합리성”이다. 화이트헤드가 역설하는 고독의 경험은 개인성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편의식에 이르는 통로로 기능할 때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고독 속에서 정신은 가치의 측면에서 삶의 성취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정신은 자신의 개별적 요구를 객관적 우주의 요구와 융합시키기 전까지는 이러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종교는 세계충성(world-loyalty)이다.”(74쪽)
“2장 종교와 교리”는 공동체의식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종교적 의식이 어떻게 출현하고 어떤 합리성을 갖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보편적 의식이 고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공동체의 규범을 넘어서는 종교의 합리성은 심오한 사색의 산물이다. 화이트헤드가 예시하는 것처럼 불교는 그 어떤 종교보다 뛰어난 실천적 형이상학의 종교이며, 기독교는 언제나 형이상학을 갈구하는 실천의 종교였다. 이처럼 종교는 늘 세상의 사건들, 악의 사실들, 죽음의 문제들에 대한 사유 체계로서 기능하였고, 그러한 사유를 통해 자신의 교리들을 만들어왔다. 이 점에서 “종교의 교리는 인류의 종교적 경험에서 드러나는 진리를 엄밀한 용어로 정식화하려는 시도이다.”(72쪽)
그리고 종교적 교리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것은 바로 “신”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2장에서 화이드헤드는 이 문제와 진지하게 씨름한다. 동아시아적 신 개념, 셈족의 신 개념, 범신론적 신 개념 등 그는 여러 신 개념들의 공통 요소를 추출하고 그들이 어떻게 의미 있는 교설을 구성하는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그는 “합리적 종교가 그 용어들을 엄밀하게 검토하려면 형이상학에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89쪽)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 그 어떤 종교도 순수한 직관과 믿음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없으며, 자신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탐구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 말은 형이상학이나 과학이 종교를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종교적 경험이라는 자신의 독자적 증거를 형이상학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적 경험이란 무엇인가? 화이트헤드는 이를 가장 광범한 의미에서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종교가 공급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존재가 단순한 사실들의 연속 이상의 것이라는 인식이다. (…) 언제나 단순한 삶의 사실 너머에 존재하는 삶의 질이 있다.”(90쪽) 이처럼 종교는 삶의 가치에 대한 통찰이자 경험이며,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가치 있는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3장 신체와 정신”에서는 2장의 논의를 더욱 구체화한다. 2장이 종교적 경험의 측면에서 종교와 형이상학의 관계를 설명했다면, 3장에서는 형이상학의 측면에서 형이상학과 종교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는 이후 『과정과 실재』에서 전개되는 화이트헤드 철학의 진수가 소개되며, 압축적이면서도 통찰력 넘치는 종교철학적 논의가 제시된다. 이를 통해 신과 도덕적 질서, 가치와 신의 목적, 신체와 정신, 창조적 과정 등 종교 및 철학과 관련되는 중요한 주제들이 세련된 필치로 서술된다. 이 부분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배경을 숙지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기에 역자인 문창옥 교수가 각주를 통해 화이트헤드 철학의 맥락과 그 의미를 친절히 짚어주고 있다.
종교는 발전한다 - 열려 있는 종교의 미래
마지막 “4장 진리와 비판”은 남아 있는 여러 종교적 문제들을 논의하고 앞의 논점들을 다시금 명료히 정리한다. 특히 화이트헤드는 종교적 경험과 교리가 어떻게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면서 발전하는가에 주목한다. 우리가 직관을 통해 느끼는 종교적 경험은 항상 존재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연속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다. 종교의 시조나 예언자 같은 인물들이 종교의 핵심을 독창적으로 표현해내고 우리는 그들을 통해 비로소 우리가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이처럼 종교는 단순히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되어야 하고, 다시 그러한 표현이 타인에게 수용되면서 소통되어야 하는 창조적인 순환 과정임을 화이트헤드는 분명히 한다. 이 창조적 과정을 파악하지 못한 채 독단적으로 자기의 경험만을 고수하거나 불변의 교리에 집착하는 것은 가장 비종교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교리는 그 특성이 단순해야 할 필요도 없고 그 수가 제한될 필요도 없다.”(155쪽)
또한 화이트헤드는 열린 종교의 필요성도 주문하고 있다. 특히 과학이라는 세 번째 전통에 대응하지 못하는 한 기존 보편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교리의 체계는 교회가 역사의 밀물을 따라 안전하게 떠다닐 수 있는 방주일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창을 열고 비둘기를 날려 보내 올리브 가지를 찾지 않는다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따금 교회는 게리짐 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아라랏 산에 상륙하여 하느님의 영을 향해 새로운 재단을 세우는 것이 실로 좋을 것이다.”(160쪽)
마지막으로 화이트헤드는 세계 속에서의 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자신의 견해를 다시금 분명히 제시한다. 종교는 결국 신과의 관계이며, 신의 본성에 대한 파악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신의 역할에 힘입어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불편부당한 것으로 의식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신은 “우리의 판단이 존재의 사실을 넘어 존재의 가치로 확대될 수 있게 하는 삶의 요소이다.”(173쪽) 요컨대 우리는 신을 통하여 자아와 공동체의 제약을 넘어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소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개방적 종교관은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한 예로 D. H. 로렌스가 그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화이트헤드의 이 저작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것이 유명하다. 또한 화이트헤드의 종교 개념을 토대로 ‘과정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 분야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종교가 끊임없이 변천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열린 종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그의 생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의 종교는 충분히 합리적인가? 또 충분히 개방적이며 창조적인가? 화이트헤드의 이 책은 우리에게 이러한 물음을 던질 수 있게 해준다.
추천사
“오늘날 화이트헤드와 함께 사유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험에 뛰어드는 것을 뜻한다.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들 중 그 어떤 것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누구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이자벨 스텡거스, 철학자, 『화이트헤드와 함께 사유하기』 저자
▣ 작가 소개
저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Alfred North Whitehead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였고, 그 후에 동 대학의 특별연구원(Fellow)과 수석 강사(1885~1911), 런던대학의 임페리얼 칼리지 응용수학교수(1914~1924), 그리고 미국 하버드대학 철학교수(1924~1937)를 역임했다. 그는 수학자였지만 고전에도 정통했으며, 새로운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철학을 오랫동안 깊이 연구해 왔다.
그의 수제자 버트런드 러셀과의 공저 『수학 원리』(전 3권, 1910~1913)와 같은 수리논리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 논리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된다. 또 한편으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등 현대 자연과학의 발전을 계기로, 현대 과학설을 철학에 도입시켜 철학 사상사에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 과학철학자 그리고 “유기체 철학”(philosophy of organism)의 철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진리를 그 가장 깊은 뿌리에서 부터 탐구”(본문 제2장 중에서) 하는 작업을 평생 멈추지 않았던 사상가였으며, 오랫동안 수학의 전문가였다. 그의 최초의 철학적 저작인 『과학과 근대세계』(1925)는 그가 63세 때, 대표작 『과정과 실재』(1929)는 68세 때에, 그로부터 4년 후에는 『관념의 모험』(1933)이 출간되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이 우주에 관한 상상적 사유라는 형태로 당당하게 부활하고 있는 데 놀랐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사물의 유동(流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체계라는 형태의 우주론으로서, 어디까지나 개방된 체계였다. 형이상학을 싫어했던 존 듀이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대하여 “철학에의 혁명적 공헌” 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철학자였던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20세기의 데카르트”라 평하기도 했다. 현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기수로 불리는 질 들뢰즈 같은 이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영미권의 마지막 위대한 철학자”로 평하였다.
역자 : 문창옥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이해』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화이트헤드 철학 읽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 『상징활동 그 의미와 효과』 『사고의 양태』(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역자 서문
서문
1장 역사 속의 종교
1. 종교의 정의 / 2. 종교의 출현 / 3. 제의와 정서
4. 믿음 / 5. 합리주의 / 6. 인간의 향상 / 7. 마지막 대비
2장 종교와 교리
1. 역사 속의 종교적 의식 / 2. 종교적 경험에 관한 기술
3. 신 / 4. 신에 대한 탐구
3장 신체와 정신
1. 종교와 형이상학 / 2. 형이상학에 대한 종교의 공헌
3. 형이상학적 기술 / 4. 신과 도덕적 질서
5. 가치와 신의 목적 / 6. 신체와 정신 / 7. 창조적 과정
4장 진리와 비판
1. 교리의 발전 / 2. 경험과 표현
3. 세 가지 전통 / 4. 신의 본성 /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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