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
광대무변한 우주적 드라마와 그 실상이 담긴 ‘대방광불화엄경’의 무진세계를 단 210자의 게송으로 드러낸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는 예로부터 한국불교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의상 이후 한국불교의 학풍이 주로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법성게는 『화엄일승법계도』의 게송 부분을 말하며, “법성원융무이상”으로부터 시작해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나는 7언 30구 210자의 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순서도 정확하게 『화엄경』의 내용 전개 순서에 따라 해석되어 왔으며, 이를 당연시해왔다.
그런데 이 책은 법성게에 대한 해석을 전면적으로 재정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글자의 위치까지 변동하는 대담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실로 한국불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획기적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와 논리로 법성게를 이렇게 글자 위치까지 바꾸며 재해석하는 것인가 또한 그것은 과연 합당한 일이라 할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오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2.
이 책은 먼저 ‘글머리’에서 법성게가 위없이 깊고 미묘한 부처님 말씀에 가장 쉬이, 가장 가까이, 가장 온전히 다가갈 수 있는 키워드의 하나이자, 모든 종교의 근본 교리를 변별할 수 있는 척도 내지 준거이자, 바른 종교와 그릇된 사교邪敎의 변별 준거가 된다고 천명한다. 또한 오늘날과 같이 종교와 사상이념체제가 혼란한 인류의 위기상황에서 법성게는 새 시대의 영성을 담지한 무궁한 창조력의 원천이자 핵이라고 파악한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저자는 법성게가 지닌 공능과 쓰임새가 현대 인류의 진정한 복지증진에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여러 대승경론 등을 참고하여 법성게의 전개 순서와 번역을 현대적 상황과 이치에 맞도록 고쳐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제1부에서는 법성게를 고쳐 풀이한 배경을, 법성게가 만들어진 경위와 과정을 중심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고친 내용과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이어 ‘고친 법성게’란 이름으로 법성게의 내용을 새롭게 재배치하여 번역 해석하고 있다. 저자에게 기존 법성게는 첫 구절 첫 대구, 즉 ‘법계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부터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도저히 다음 대구로 의미가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고심 끝에 다른 구절과 순서를 바꾸었더니 법계의 실상을 밝혀주는 법성게 본래의 의미가 살아나면서 논리적으로도 온전한 풀이가 가능해졌다. 아울러 단순한 한자풀이가 아니라, 화엄의 방대한 사상이 210자에 압축되어 있는 만큼, 글자와 글자 구절과 구절 사이에 숨겨진 뜻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함께 읽어내고자 하였다.
제2부에서는 ‘법성게의 공능과 쓰임새’를 검토함으로써 제1부에서 새롭게 풀이한 법성게의 의의와 가치를 현대 인류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유의미하게 활용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인류가 이룩해온 다양한 사상들의 핵심을 소개하고 이를 법성게로 통합하고 승화시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즉 신라시대 명효스님의 해인삼매론을 필두로,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만법귀일萬法歸一 사상을 비교하고, 동학의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법성게의 진성眞性과 대비하며, 선가禪家의 여러 핵심사상과 대승불교의 교과서라 할 『대승기신론』의 사상을 융합하고 있다. 더 나아가 현대 영성가인 크리슈나무르티, 그리고 기독교 성경의 핵심구절들이 기존의 피상적 교리를 뛰어넘어 법성게의 사상과 맞닿을 수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종교간 소통과 화합의 길이 법성게의 원리에 의해 실현 가능함도 보여주고 있다.
3.
1,300여년의 세월 동안 많은 불자들이 봉독하고 수행해오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권위 있는 주석도 많은 법성게를, 어느 한 사람이 글자의 순서까지 바꾸면서 다시 해석해냈다는 사실은 참으로 대담한 일이고, 또한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었으리라는 점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결코 누군가의 한때의 객기나 만용으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진리에의 목마름으로 치열한 수행과 학문적 노력을 기울인 끝에 법성게의 위대한 진면목과 그것이 현대에 지니는 의미를 발견하였으며, 나아가법성게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더욱 유의미한 가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현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작가 소개
저자 : 학송
1944년 출생하여,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젊은 시절 소천 선사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퇴임 후에 출가, 연구와 수행에 힘쓰다가 2016년 입적하였다.
저서로 『구종인간九種人間』, 『하산, 그 다음 이야기』, 『정도령正道令과 정도령正道領』, 『아이고, 부처님』, 『대보부모은중경 총설』, 『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공저), 『좋은 정부란 무엇인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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