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태안에서 태백까지,
종교학자와 함께 떠나는 한국 종교문화 횡단기
이 책은 우리 국토 곳곳에 남아 있는 종교문화의 흔적을 따라간 답사의 기록이다. 이 책의 지은이인 서울대 종교학과 최종성 교수는 흔히 알려진 대단한 명승지나 손꼽히는 유적지가 아닌, 한국의 종교문화가 생생히 녹아 있는 숨은 장소들을 답사하며 태안에서 태백까지 한반도를 횡으로 관통해나간 1년여에 걸친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의 답사지들은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빗겨나 있는 곳들로, 한국의 종교문화에서 풀꽃과도 같은 존재감을 지닌 곳들이다. “손수 발품을 팔아가며 모호한 것에 멋지고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주는, 찾아가는 작명소”라는 답사의 정의에 충실하게 이 책은 그러한 풀꽃들의 존재와 의미를 되새기며 각지의 종교문화와 의례를 통해 한국인의 종교적 열망을 발견해나간다. 종교가 있건 없건,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바라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삶을 살아간다. 우리 땅 각지에 얽힌 종교의 역사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한국의 종교사와 민속사 속에서 잊혀가는 조상들과 그들의 명맥을 이어가는 후손들의 삶과 더불어 곳곳에 서려 있는 한국의 기도 문화 및 그 속에 깃든 정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정 속에서 만난,
종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평소 종교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책상에 앉아 문헌만을 탐구하기보다는 현장에서 발로 직접 뛸 것을 강조하는 지은이는 ‘연구년’을 맞아 직접 현장으로 나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여정의 큰 줄기는 유교, 동학과 이를 계승한 천진교, 천주교 그리고 천제와 산제와 같은 민속신앙이다. 지은이는 단순히 종교문화의 현장을 방문하고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종교적 의례를 거행하는 주체들 속으로 들어가 의례를 몸소 체험하며 그 속에 깃든 정신을 직접 느껴본다. 이를테면 화순 해망서원의 제사에서 제관의 명단인 분정기(分定記)에 이름을 올리고, 청양의 동학(천진교)을 찾아 사흘간 이어지는 주문 수련을 위한 합숙에 동참한다. 여기에 더해 지은이는 각지의 종교문화 답사를 통한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을 ― 천진교의 주문으로부터 어릴 적 자신의 두드러기를 가라앉혀주었던 어머니의 주문에 대한 기억을, 창명대에서의 영부 수련으로부터 처음으로 붓글씨를 익힌 초등학교 때의 기억을, 한국의 기독교 전래로부터 청소년기 자신의 교회 입문기를 ― 이끌어내 풀어냄으로써 독자들이 다소 낯설고 생소할 수도 있는 소재를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장에서 발로 뛰며 생생한 지식을 얻기 위한 여정은 태안을 거쳐, 청양, 진천, 제천, 정선, 삼척까지 이어진다. 거기서 지은이가 마주친 것은 각 종교문화만의 특별한 제장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의례, 그리고 의례가 주목하는 신들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옛 가치를 수호하며 종교문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 ― 조상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당을 찾는 후손들, 하느님을 모시며 때를 기다리는 동학도, 마을의 옛 전통을 이어 천제를 올리는 주민들, 순교자를 기억하는 순례자들 ― 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무엇보다 종교가 인간사의 근원에 유구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한국 종교학 연구의 다양성을 넓히는 작업
국내의 종교 연구는 불교와 기독교와 같은 외래에서 유입된 세계종교에만 치우쳐 있으며 한국에서 자생한 신종교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미비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은이가 발로 뛰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녹여낸 이 책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태안과 화순의 숭의사는 기존의 서원 연구에서 소외되어 있고, 청양의 창명대 또한 동학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진천의 천제는 지역 문화 당국의 관심에서 비껴나 있고, 정선의 적조암은 유허비만이 홀로 깊은 산속을 지킬 뿐 일반인의 뇌리에서 잊힌 지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직접 찾아가 거기서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 이 책의 시도는 한국 종교학 연구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이바지하는 뜻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
태안에서 시작하는 첫 여정(「2. 숭의사: 제관 정주영을 찾아서」)에서는 조선 시대 유교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당과 서원을 다루며 거기서 피어나는 인물들의 행적에 주목한다. 나라와 부모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유교의 장소이니만큼 의리와 절의를 대표하는 조선 시대의 사림들과, 명나라와 왜나라 출신이지만 조선에서 공적을 인정받아 사당에 기려진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청양(「3. 창명대: 동학의 잉걸불」)에서는 동학을 계승한 천진교의 터전인 창명대를 방문하고 그들의 수도와 의례를 직접 체험한다. 이러한 답사와 체험을 통해 지은이는 그간 동학은 교리와 사상을 중심으로, 즉 머리로써만 이해되어왔고 주문이나 수행과 같은 몸짓으로 터득하는 의례학을 경시해왔는데 이제 그 균형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의암 손병희를 종통으로 내세우는 천도교와 달리 천진교는 구암 김연국을 내세운다는 것에 주목하고, 그의 생애를 추적함으로써 천도교에 치우진 기존의 동학 연구의 균형추를 바로잡는다.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하늘에게 제사를 올리는 천제가 거행되는 진천의 금한동 마을(「4. 진천 금한동 천제: 하늘을 부르는 기도」)로 떠나서는 고대사에도 기록이 남아 있는 제천의례에 대해 살펴보면서 종교와 정치의 독특한 관계에 주목한다. 그리고 금한동 천제를 천제로 승인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의를 따져보며, 종교학자로서 마을 의례의 자발성과 주체성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진천(「5. 배론 성지: 숨어 살며 지킨 신앙, 죽어가며 지킨 믿음」)에서는 배론 성지를 방문해 천주교 박해가 이어졌던 조선 말기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수많은 순교자의 피와 땀을 기린다.
정선(「6. 적조암: 동학의 산실 태백」)에서는 수운 최제우에 이어 초기 동학을 이끌었던 해월 최시형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적조암에 방문하고, 해월의 수행의 기록들을 살펴본다.
삼척(「7. 산멕이: 산으로 나들이 간 조상」)에서는 산 정상에 올라 산신에게 잔치를 베풀며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멕이에 참가하고, 그 경험으로부터 민속신앙을 유지하는 동력이 일상을 지켜내려는 소박한 정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 소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역사민속학회장을 역임하였다.
지은 책으로 『동학의 테오프락시』, 『기우제등록과 기후의례』, 『역주 요승처경추안』, 『조선조 무속 국행의례 연구』, 『고려시대의 종교문화』(공저), Korean Popular Beliefs(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세계종교사상사 2』(공역), 『국역 차충걸추안』(공역), 『국역 역적여환등추안』(공역) 등이 있다.
목 차
2. 숭의사
3. 창명대
4. 진천 금한동 천제
5. 배론 성지
6. 적조암
7. 산멕이
8. 답사를 끝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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