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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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장순용
출판사항고려원북스, 발행일:2020/09/15
형태사항p.420 국판:23
매장위치취미예술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454314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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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책소개

우리나라 불교의 주류인 조계종은 선불교, 특히 육조 혜능 대사에서 비롯된 남종선(南宗禪)이 주축이다. 남종선의 가장 큰 특징은 평소에 나뭇짐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던 혜능이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금강경>의 구절을 듣고 단박에 깨달았듯이, ‘단번에 초월해서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들어가는’ 돈오(頓悟)이다. 백봉거사 역시 56세까지는 불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항일 민족운동을 펼치다가, 그리고 광복 후에는 정치에 몸을 담고 있다가 몇 번이나 투옥을 경험했다. 하지만 57세에 화두를 잡은 이래로 1년도 되지 않아 ‘확철대오’를 함으로서 거사는 혜능처럼 돈오를 체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만법의 근원을 철저히 사무친 깨달음이었기 때문에 거사는 깨닫고 나서 생전 처음 <금강경>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열에 넘쳐 하룻밤 사이에 <금강경> 각 분(分)마다 게송을 달아 읊었다(이것은 나중에 거사의 저술인 <금강경강송>에 실렸다). 이처럼 거사는 대승불교, 그 중에서도 선불교의 맥을 충실히 잇는 전승자라고 말할 수 있다.


백봉거사가 대오했다는 소식은 승가에까지 전해졌다. 이때 거사에게 출가를 권유한 청담 등의 스님과 재가 설법을 권유한 혜암 등의 스님으로 갈렸는데, 거사는 “불법(佛法)이 머리를 깎고 안 깎고에 있지 않다”고 하면서 재가에서 법을 펴기로 하고, 이후 85년 열반에 들 때까지 쉼 없는 설법으로 중생들을 제도함으로서 거사로서 한국불교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거사가 남긴 거사풍(居士風)의 족적 중에서 두드러진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먼저 거사는 경전이나 선어록에 대해 자구(字句) 해석이나 전통적인 해설보다는 철저히 자신의 살림살이를 토대로 종횡으로 막힘없이 설법을 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살았던 전통시대와는 패러다임이 전혀 다른 현대인들을 위해 불법의 정수를 알리기 위해 늘 고심하면서 설법하였다. 예를 들면 종래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이해에 머물던 공리(空理)의 방편을 보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개진해서 ‘허공으로서의 나’를 모든 상대성을 넘어선 절대적이고 주체적인 근원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 ‘허공으로서의 나’가 근본적인 바탕이기 때문에 태어나고 죽는 것도 우리의 권리로서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한다(반면에 가짜 나인 에고가 주축이 되면 생사에 피동적으로 쓰여져서 육도(六道)를 윤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사는 이 ‘허공으로서의 나’를 근간으로 삼아서 전통적인 화두의 방편을 개혁하여 새말귀를 제시하고 있다. 새말귀는 새로운 화두라는 뜻인데, 전통적인 화두 수행이 승려를 위한 것이라면 새말귀는 일상생활 속에서 바쁘게 일하는 재가 수행자를 위해 창안된 것이다. 즉 ‘허공으로서의 나’를 철저히 이해하면 법을 먹든, 세수를 하든, 운전을 하든 일상생활 전부를 화두로 들 수 있다는 것이 새말귀의 이념인데, 이는 전통적인 화두를 대체할 뿐 아니라 앞으로 나올 새로운 수행 방법에 대한 토대도 될 수 있다. 거사는 비록 전통적인 화두를 통해 대오하긴 했어도 그 방식을 고집하지는 않았는데, 역설적으로 전통적인 화두로 깨달았기 때문에 그 방식을 새롭게 개혁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거사는 또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서 재가수행자에게 어울리는 계율과 수행 방법을 제시했다. ‘열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계율’이란 뜻을 가진 십물계(十勿‘戒)에서 “비록 아내와 자식이 있다 해도 쏠려보는데 떨어지지 마라(雖有妻子 勿墮愛見)”. “비록 가업을 이어가더라도 잘못된 이익을 탐하지 말라(雖承家業 勿貪非利)”, “‘비록 세상의 법도와 함께 해도 대도를 버리지 말라(雖與世典 勿捨大道)”,.“‘비록 천하에 노닐면서도 법성을 무너뜨리지 말라(雖遊天下 勿壞法性)”. 등 열 가지의 계율을 통해 재가에서 생활하는 거사(居士)로서 가져야 할 근본적인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 할 특징은 경전을 해석할 때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언어의 독창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경전을 가장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고심 끝에 나온 용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령 거사는 <반야심경>을 해석하면서 오온(五蘊)의 색(色)은 우리말 불완전 명사 ‘것’으로, 육경(六境)의 색은 ‘빛깔’로 번역하고 있다. 실제로 육경의 색(色; 빛깔), 성(聲; 소리), 향(香; 냄새), 미(味; 맛), 촉(觸; 접촉), 법(法; 요량)은 우리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뜻과 일대일로 대응하기 때문에 색을 빛깔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오온의 색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 과정을 색-수(受)-상(想)--행(行)-식(識)으로 표현한 것이라서 빛깔만이 아니라 소리, 냄새, 맛, 접촉, 요량 등 모든 감각기관의 대상을 포함하므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번역을 위해 명사가 아닌 불완전 명사 ‘것’으로 번역한 것에서 거사의 독창성과 세밀함을 엿볼 수 있다. 거사는 또 제법공상(諸法空相)의 법은 ‘이 모든 줄의 빈 모습’으로 번역해서 법을 불완전명사 ‘줄’로 번역하지만 앞서 말한 육경의 법은 ‘요량’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또 고집멸도의 도(道)는 통상 방법을 말하는데 역시 불완전명사 ‘수’로 번역하고 있다. 이런 번역은 경전의 내용을 바탕까지 철저히 사무치고 있지 않다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거사의 탁월한 안목을 엿볼 수 있다.


여러분의 몸을 끌고 다니는 그 부처 자리는 죄가 없건만, 여러분이 어쩌다 잘못한 탓으로 여러분 자신이 되돌아서 여러분의 부처를 죽이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저녁부터는 내 부처를 구하러 나갑시다. 부처를 죽이지 말고 구합시다.

- ‘부처를 해방시킵시다’ 중에서


“옛날 부처님 당시에는 유마거사가 있었고, 중국에는 유명한 방거사가 있었고, 우리나라에는 부설거사가 있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백봉거사가 있소.”

- 동광 혜두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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