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한국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불꽃 같은 삶과 죽음의 현장
식품영양학 교수인 천주교 평신도가 정년퇴직하며 성지 순례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자료를 보고는 한국에 이렇게 많은 성지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자신이 가 본 곳이 몇 군 데 안 된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성지를 방문하면 확인 도장을 찍게 되어 있다. 처음 도장을 찍은 곳이 공세리 성당이었다.
명동성당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계산성당, 합덕성당, 여산 하늘의문성당, 용소막성당, 풍수원성당, 가실성당 등을 보고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붉은 벽돌과 높이 솟아오른 종탑을 가진 아름답고 고고한 성당 건물을 올려다보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성당들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고, 프랑스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신자들의 헌신을 벽돌 삼아 한 켜 한 켜 성당을 지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해미성지와 한티순교 성지 등에서 마주한 잔혹한 박해의 흔적은 충격적이었다. 깊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순교자들의 줄무덤은 우리 역사가 이렇게 잔혹했다는 아픔과 함께 그 어둠을 뚫고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놀라움과 경탄을 깨우치게 했다. 성지 순례는 곧 이 땅의 역사에 대한 순례요, 신앙 선조들에 대한 경배의 길이었다.
가는 곳이 늘며 주교회의에서 추천한 성지 167곳을 다 돌아보아야겠다는 열정이 샘솟았다. “천주교는 어떻게 이 땅에서 자생했는가?”,“왜 박해를 받아야 했는가?”,“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순교를 택한 사람들은 누구인가?”하는 의문도 깊어졌다. 그 퍼즐을 스스로 맞추어 보기로 했다.
퍼즐의 단초는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된 역사적 배경이었고, 퍼즐의 조각은 순교자들이었다. 그 퍼즐 조각들을 역사의 현장에 끼워넣자 시대의 현장에서 순교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밤하늘에 펼쳐지는 미리내의 별처럼 신앙으로 반짝이는 그 얼굴들을 되새기며 감동이 차올랐다. 그 감동이 이 책을 쓰게 했다.
주교회의가 추천하는 천주교 성지 167곳의 역사적 설명과 현장 소개
책의 시작은 명나라에 진출한 예수회 소속 이탈리아 신부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가 당시 조선에 전래되면서부터이다. 이후 이벽과 남인 학자들의 서학 공부로 시작해 한국천주교는 젊은 학자들이 스스로 사제가 되어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집행하는 특이한 출발점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을사추조적발사건,진산사건, 신해교난, 기해교난을 거쳐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서품과 순교라는 숨가쁜 격동의 길을 걸어왔다. 책은 모두 14개 장으로 구성되어 참혹했던 대원군 박해시대를 거쳐 일제시대, 한국전쟁 이후까지의 전 과정을 저자가 관련 성지를 순례하며 역사적 배경을 함께 소개했다.
순례지를 도는 가운데 저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혜가 축적되어 갔다. 하느님은 필요할 때 꼭 필요한 사람을 보내어 자신을 인도했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셨고, 영감을 불어 넣어주셨다. 건강이 좋지 못한 남편과 성지 순례를 다니면서 받은 은혜에 대해서는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다고 저자는 말한다.
처음 순례 길에 따라나설 때만 해도 멀찌감치 떨어진 구경꾼이던 남편이 어느새 그의 옆자리에 앉아 기도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남편의 건강이 몰라보게 회복되었으니 이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성지의 유래와 역사를 알고 가면 순례길이 더 풍요롭고 은혜로워진다
저자는 수많은 전란이 휩쓴 이 땅에서 어떻게 이처럼 많은 순교지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경탄을 금치 못한다. 수많은 박해로 순교한 1만 위의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그 이름과 유해가 확인된 곳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도 성지를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바오로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모방, 샤스탕, 앵베르 주교의 유해를 안전한 곳으로 모셨고, 그의 아들 박순집은 병인박해 때 순교한 베르뇌 주교와 브르트니에르, 볼리외, 도리 신부 등의 시신을 새남터에서 왜고개로 안장하고,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남종삼 요한과 최형 베드로의 시신을 왜고개로 이장했다.
이민식 빈첸치오는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왜고개에서 지게에 지고 150리 길을 걸어 미리내까지 가서 모셨으며, 허인백의 아내는 남편과 이양등, 김종륜의 유해를 울산 강변 모래사장에서 파내 진목정 뒷산으로 모셨다.
또한 순교자들의 기록을 남기려고 애쓴 분들이 아니었으면 순교자들의 시복과 시성 작업은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앵베르 주교에서 시작된 선교사들의 증언 기록은 현석문의 <기해일기>를 거쳐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보충 작업이 이루어졌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주교, 칼레 신부 등에 의해 지속되어 성지의 역사성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들의 유해를 발굴 보존하고자 애쓴 뮈텔 주교의 노력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이제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순교자들의 성지를 잘 가꾸고 지키고 현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성지 순례를 나서는 교우들이 성지의 유래와 역사를 알고 가면 순례길이 훨씬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교우 여러분들의 순례길에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 소개
문갑순
인제대학교 식품생명과학부 명예교수.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한국 전통 음식의 과학적 해명에 정진해 김치, 쌀, 콩 등에 관한 연구로 한국식품영양과학회, 한국조리과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했다. 한국콩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영주시에 위치한 콩국제과학박물관 건립에 기여했다. 저서로 《나의 사가독서》 《콩, 내 몸을 살린다》 《사피엔스의 식탁》 《한국콩연구회 35년사》 등이 있다.
목 차
프롤로그 은혜로 넘친 순례길에서
제1장 조선에 스며든 천주학
1 조선의 실학운동
2 이익과 남인 학자들의 서학 연구
제2장 을사추조적발사건과 관련 성지
1 천진암 강학회와 조선천주교회 창설
2 을사추조적발사건과 이벽의 죽음
제3장 진산사건, 신해교난(1791년)과 관련 성지
1 가성직제도와 윤유일 밀사 파견
2 진산사건과 신해교난
제4장 신유교난(1801년)과 관련 성지
1 주문모 신부의 입국과 을묘박해
2 신유교난과 황사영 백서사건
제5장 정하상의 교회 재건 운동과 관련 성지
1 지방으로 퍼진 교우촌
2 2세대 교우들의 교회 재건 운동
제6장 기해교난(1839년)과 관련 성지
1 조선교구의 독립과 초대 교구장 임명
2 중국인 신부 유방제와 프랑스 신부들의 입국
제7장 김대건 신부와 병오교난(1846년)
1 김대건의 신부 수업
2 병오교난과 김대건 신부 순교
제8장 최양업 신부의 입국과 활약
1 철종 즉위와 선교 여건의 호전
2 최양업 신부의 활동과 죽음
제9장 병인박해 이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활동
1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입국
2 프랑스 선교사들의 업적
제10장 흥선대원군과 병인교난(1866년~1873년)
1 대원군의 등장
2 서양의 침입과 천주교 박해
제11장 신교 자유주의 시대의 교회 발전
1 문호개방과 종교 자유 허용
2 신교 자유 허용과 교세 확장
제12장 일제시대의 교회
1 정교 분리 내세워 교세 확장
2 일제 말기의 교회 탄압
제13장 한국전쟁과 관련 성지
1 광복 이후의 교회
2 한국전쟁과 남한 교회의 수난
제14장 휴전 이후의 교회 발전
1 신자 수 증가와 교계제도의 설정
2 순교자 현양 운동
에필로그 역사 공부와 성지 순례를 함께 한 소중한 기회
참고문헌
성지 찾아보기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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