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때때로 찾아가 에너지를 얻는 ‘나만의 명당’이 있는가?
봄여름가을겨울 계절 따라 염원과 기운이 뭉친 영지와 명당을 찾아가는
조용헌의 강호 인문학 여행
이 땅에 유불선(儒佛仙)이 전래되기 전 투박하고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올려다보며 미래를 내다보고, 바위나 돌 위에 물 한 그릇 떠놓고 현세의 안녕을 빌었으며, 심산유곡에서 마음을 닦았다.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옛사람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공간’이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감각이 퇴화하기 전 인간은 지기(地氣)와 수기(水氣), 천기(天氣)를 수신할 수 있는 장소를 본능적으로 알아보았고, 그곳에서 수행하고 기도하며 영험을 경험했다. 또 좋은 터에 집을 세워 후대에 인물이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이런 곳을 사람들은 명당 또는 영지라고 부른다. 특히나 부드러운 지질을 지닌 육산(肉山)과 험준하고 강한 지질의 골산(骨山)이 두루 분포하고, 내와 하천과 강이 발달한 한반도는 명당과 영지의 보고다.
일찍이 사람을 지(知)의 경전으로 삼아 명문 집안의 가풍과 고수, 고승, 도사들의 가르침에 귀를 열고 삶의 비의를 전해온 조용헌은 이제 전국 방방곡곡을 주유하며 옛사람들이 특별히 여기고 신성시했던 땅으로 떠나는 차원 높은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 『조용헌의 봄여름가을겨울』은 각각의 계절에 따라 찾아가서 머물며 기운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장소를 답사하고 소개하는 품격 높은 여행 안내서인 동시에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장소에 민중의 염원과 바람이 응집되었는지를 추적하는 인문 지리서다.
오늘날에는 직장과 교육, 소비, 의료가 원활하게 공급되는 곳을 두고 입지와 부동산 가치를 이야기하지만, 과거의 선각자들은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기운을 끌어올려주는 대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을 좋은 땅으로 여겼다. 먹고살기 위하여,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더 갖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불길이 치솟는 도시에 자신을 던진 이라면, 때때로 찾아가 마른 장작 같은 삶에 기운과 수분을 공급할 나만의 명당과 영지가 있어야 하리라. 등산화 수십 켤레를 소모하며 직접 찾아가고 체험한 저자의 수고로움이 있으니, 우리는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공간이 인간을 좌우한다!”
직업과 기질, 각자의 사정에 따른 맞춤형 명당 여행
사람이 짐승과 구분되는 가장 큰 분기점은 종교다. 원시 신앙은 의식과 제사라는 삶의 형식을 만들어냈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강력한 매개체였다. 국가의 우두머리는 영험한 기운이 흐르는 땅에서 제사를 지내며 하늘의 뜻을 물었다. 무속이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였던 것이다.
무속 신앙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칠성과 용왕, 산신이다. 메마르고 광활한 사막의 민족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삶의 길잡이로 삼는 칠성 쪽이었고, 배를 타고 무역을 한 해양 민족은 용왕 신앙이 강했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산이 많은 지역에서는 산신에 기댔다.
지형을 중시하는 산신 신앙 계통에서는 산과 물, 방위를 따지는 풍수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풍수는 자연이 숨겨놓은 운과 에너지의 비밀 창고를 찾는 원시 학문이다. 태곳적부터 사람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과 후대의 안녕을 위해, 더 많은 재물을 얻기 원하며, 팔자를 바꾸기 위해, 깨달음을 향한 심안이 열리기를 바라며 곳곳에 숨은 혈(穴)을 찾아 다녔다. 공간이 인간사를 좌우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무속 신앙의 무당들이 기도하던 터는 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하면서 고승들의 수행처가 되었다. 초기의 승려들은 무당이자 도사이며 풍수의 대가였다. 그들은 도력과 불력을 높일 수 있는 장소를 도량으로 삼았고, 조선 시대 들어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산으로 쫓겨난 사찰들은 대개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책의 저자 조용헌은 고승과 도사들이 수행한 도량, 큰 인물이 태어난 마을, 난리를 피해간 고장, 민중의 염원과 뜻이 집결된 장소, 풍수도참의 대가들이 점찍은 터, 자연의 기운이 뭉친 결국(結局), 역사의 패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댄 땅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단순히 이름난 명당과 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풍수와 천문,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곳이 명당이자 영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한편으로는 각자의 사정에 맞는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돈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물가로 가야 하고, 평소 화가 많은 사람은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바위의 기운이 강한 땅이 제격이다.
“그곳에서 그 일이 일어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땅과 사람, 역사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강호 인문학 여행
고려 때만 해도 귀한 신분이었던 승려는 조선 시대에 들어 천민으로 전락했다. 궁궐 근처와 저잣거리에 있었던 사찰들도 죄다 인가와 거리를 둔 산으로 숨어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때부터 승려들과 사찰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영지에 터를 잡게 되었다. 기가 센 도량에서 수행한 승려들은 당취를 형성한다. 당취는 승려들의 비밀 결사 조직으로, 유교를 숭상하는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반정부 세력이었다. 중답지 않은 중을 낮잡아 말하는 ‘땡추’가 바로 이 당취에서 유래했다.
대표적인 조직이 금강산 당취, 묘향산 당취, 지리산 당취다. 잘 알려진 서산 대사, 사명당 등이 당취의 우두머리였다. 당취는 급박한 상황에 소식을 알리기에 적절한 경로를 따라 절을 세우고,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교류했다. 사찰이 앉은 땅의 강력한 기운을 제대로 다스리면 고승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무술승이 된다.
당취의 조직력과 무력이 제대로 발휘된 사건이 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다. 왕과 조정의 대신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의주로 달아났을 때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선 승병들이 바로 이 당취의 승려들이었다. 정치적 탄압으로 쫓겨 간 영지에서 수행하고 수련한 승려들이 호국의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펼쳐졌다.
땅은 사람을 배출한다. 일명 솥바위라고 불리는 경남 의령 남강의 정암바위가 있는 인근에서 삼성과 금성(현 LG), 효성의 창업주가 태어난 일은 풍수의 관점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다. 이 바위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한 도인이 앞으로 이 주변에서 큰 부자 세 명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한 일도 땅과 사람 사이의 신묘한 작용을 따져서 나름 근거를 갖고 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공간은 그저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는 객체가 아니라, 갖가지 묘용을 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다.
저자 조용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 사는 일은 삼간(三間)에서 이루어진다. 시간, 공간, 인간이다. 간(間)은 틈새다. 시간의 틈새, 공간의 틈새, 인간의 틈새에서 우리 한 세상이 씨줄날줄로 교직되는 셈이다. 이 삼간 가운데 우리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공간이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변하고 만나는 인간의 종류가 달라진다.”
제도화된 종교와 학문에 의해 ‘미신’이라는 딱지가 붙은 풍수도참과 음양오행, 사주팔자, 무속은 비문명의 세계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상의 도구였다.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염원과 희망이 뭉친 명당과 영지를 찾아가는 일은 미개한 세계로 발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투박하고 강력한 원시성을 회복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땅에 서린 사람의 역사를 발굴하는 일이다. 『조용헌의 봄여름가을겨울』이 그 길로 이끈다.
작가 소개
조용헌
강단(講壇)과 강호(江湖)를 넘나들며 선학(先學)의 가르침을 흡수하고 민중에서 자생한 염원과 사상을 발굴하여 체계화하는 동양학의 협객. 수천 년의 시간 속에 제도화된 학문과 지식의 세계뿐 아니라 세상이라는 경전을 통해, 초기 인류부터 대자연에 순응하고 일치하고 기대며 쌓아온 수만 년 내력의 원시 신앙과 이치를 독파하기 위해 수십 켤레의 등산화를 소진했다. 문(文), 사(史), 철(哲)의 주류 사상을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사(人事) 등의 비주류 영역으로 해석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실력과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위 말하는 점괘와 예언, 풍수, 운은 공간, 시간, 인간 사이에 놓인 어떤 질서를 파악하고 실현하는 일이다.
지은 책으로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찰기행』 『방외지사』 『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등이 있다.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목 차
저자 서문 _ 공간이 시간과 인간을 지배한다
봄
세계 유명 셰프들이 찾는 사찰의 비밀 _ 서울 진관동 진관사
뱃길 밝혀준 신의 산, 맥반석의 기운이 뭉친 곳 _ 전남 영암 월출산
세 명의 재벌을 낳은 바위 _ 경남 의령 남강 솥바위
서산 대사의 스승들이 공부한 곳 _ 경남 함양 벽송사
미륵 신앙 원조 진표 율사가 선택한 터 _ 전북 김제 금산사 1
백제 유민부터 전라도 민초들이 메시아를 기다린 곳 _ 전북 김제 금산사 2
가지 끝의 열매처럼 북한산 기운 뭉친 명당에 흰 부처가… _ 서울 홍은동 옥천암
지리산에서 가장 기가 센 도량에서 벌어진 전투 _ 전남 구례 화엄사
여름
이곳에 가면 눈 녹듯 고민이 사라진다 _ 전남 여수 향일암
번 아웃이 왔다면 용이 노는 물을 찾아라 _ 지리산 용유담
호리병 구멍 속의 숨겨진 명당 _ 지리산 법계사 1
이천 년 내력을 가진 여산신은 왜 불교 사찰에 둥지를 텄는가? _ 지리산 법계사 2
열 많고 성질 급한 사람이 때때로 찾아가야 하는 곳 _ 경북 울진 성류굴
노고단의 맥이 내려와 멈춘 곳 _ 전남 구례 용호정
삼재도 피해간 명당이 지킨 『조선왕조실록』 _ 전북 무주 안국사
첩첩산중 깊은 곳에 숨은 도인들의 수행 터 _ 지리산 묘향암
절에서 더부살이하는 산신각이 왜 대웅전보다 높은 곳에 있을까? _ 산신각
가을
이성계가 왕의 ‘금척’을 받은 곳 _ 전북 마이산 금당사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이곳으로 가라 _ 달마산 도솔암
때로는 고독을 벗 삼아야 하리라 _ 지리산 세석평전 1
패배한 자의 산, 그러나 목숨을 살리는 산 _ 지리산 세석평전 2
이곳에서 기도하면 신통력이? _ 설악산 계조암
열 받았을 땐 물가의 거북바위에게 물으라 _ 경남 거창 수승대 거북바위
철의 손가락이 지키는 요새 _ 지리산 의신마을과 원통암
도 닦는 이와 혁명 거사들의 아지트 _ 지리산 연곡사
1,700년 전 뻘에 묻혀 있던 나무가 부처로 거듭난 곳 _ 전남 완도 고금도 수효사
겨울
지리산 최고의 뷰포인트 _ 지리산 금대암
암태도 민초들의 강인함을 잉태한 땅 _ 전남 신안군 암태도 노만사
설악산 늑대 소년 통해 속세로 나온 삼천 년 무술의 정체 _ 계룡산 기천문 본문
서른 개의 굴을 거느린 ‘늙은 장수’ _ 지리산 노장대
바위 절벽의 조선 최강 요새, 경상우도민의 피가 뭉친 곳 _ 경남 함양 황석산성
안동 고택 충효당 부엌 8각 기둥에 숨은 비밀 _ 경북 안동시 풍산읍 충효당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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