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남성 전용’ 우주를 열어젖힌 위대한 패배자들
허락되지 않은 꿈에 도전한 ‘머큐리 13’ 여성들의 놀라운 실화
“이 광활한 우주 전체가 남성에게만 속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성이 제 이름으로 대출을 받을 수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도 없던 시대,
‘사회질서’라는 이름의 편견에 맞서 제 날개로 우주를 비행하려 한 여성들
그들은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시대의 편견에 맞섰다. 그리고 다음 세대 여성들의 우주를 열었다.
우주 비행사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우수한 비행 실력과 강인한 체력, 뛰어난 판단력과 스트레스 적응력,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용기. 그런데 나사가 막 창립되었을 때에는 불문의 규칙이 하나 더 있었다. 백인 남성일 것. 당시 최정예 남성 조종사들보다 더 우주 비행에 적합한 능력과 정부의 판단에 도전할 만한 용기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은 편견과 질투, 그리고 부통령이 휘갈긴 메모 때문에 우주로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훗날 다른 여성들이 제트기를 조종하고 우주 사령관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타냐 리 스톤의 『우주를 꿈꾼 여성들』은 빠른 전개와 생생한 서술,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만평과 사진 등 풍부한 도판을 통해 우주 경쟁이 막 시작된 1960년대 초 미국으로 독자를 이끈다. 변화를 꺼리는 나사와 워싱턴 정가의 권력자들, 여성에 대한 통념을 여실히 보여 주는 언론, 오만한 남성 동료들 사이에서 우주 시대의 진정한 개척자들이 펼쳐 보이는 놀라운 이야기는 하늘 밖 우주를 꿈꾸는 십대 독자는 물론 자신의 자리를 찾고 지키려 애쓰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떨리게 한다.
■ 우주 시대의 여명에 가려진 여성들의 도전과 분투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소련과 미국은 본격적인 우주 경쟁에 돌입했다.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리며 선발하자, 미국은 우주 탐사에서 소련을 제치려 나사를 설립하고 유인 우주 비행을 목표로 머큐리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가려 뽑은 일곱 남성이 ‘머큐리 세븐’(Mercury 7)이라 불리는 미국의 1세대 우주 비행사들이다. 이들은 선발된 순간부터 미국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모두의 환호 속에 우주로 날아올랐다.
영광스러운 무대 뒤에는 이들과 같은 꿈을 꾸는 여성들이 있었다. 우주 비행사의 정숙한 아내가 아니라 우주 비행사가 되려 한 여성들. 제리 코브, 제인 하트, 레아 헐, 머틀 케이 케이글, 버니스 비 스테드먼, 세라 거렐릭, 아이린 레버튼, 월리 펑크, 재닛과 매리언 디트리히, 제리 슬론, 진 노라 스텀보, 진 힉슨, 이들이 바로 ‘머큐리 서틴’(Mercury 13)이다. 물론 정식 명칭은 아니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나사의 머큐리 계획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궁극적으로는 권력을 쥔 누구도 여성을 우주로 보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앞서 베티 스켈턴과 루스 니컬스라는 훌륭한 조종사들이 우주 비행사 테스트 몇 가지를 훌륭하게 통과했다. 비록 대중잡지의 기사 경쟁과 나사의 홍보 활동으로 소비되었지만, 이를 통해 여성 우주 비행사의 특장을 확인한 나사의 러브레이스 박사가 여성 대상의 테스트 계획을 구체화했다. 이들의 계획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첫 번째 후보는 제리 코브였다. 열두 살 때부터 비행을 시작했으며 남녀 통틀어 경비행기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한 코브를 필두로 테스트 후보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머큐리 세븐 남성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랑스럽게 훈련하고 비행하는 동안, 테스트에 자원한 여성들은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야 했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무급휴가를 써야 했다. 직위를 박탈당하거나 직장을 그만둔 여성도, 남편에게 이혼 서류를 받은 여성도 있었다. 모두가 조종사로서 내로라할 기량을 갖추었음에도, 여성의 본분을 망각했다며 눈총 받고 남의 영역을 넘보지 말라는 텃세에 시달리며 남성들이 차지하고 남은 자리에서 부당하게 일하고 있었다. 이토록 열악한 상황에서 이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내하고서라도 “남성들만의 무대에 이제는 여성들이 나설 때임을, 여성도 우주 비행사가 될 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을 보여 주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 우주 문턱에서 벌어진, 우주 비행만큼 흥미롭고 중요한 이야기
‘머큐리 서틴’의 서사에는 우주 배경도, 우주선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앨버커키의 러브레이스 클리닉과 펜서콜라에 있는 해군 기지, 그리고 워싱턴의 청문회장에서 펼쳐진다. 열세 명의 여성은 우주 비행사 훈련도 아닌, 그저 비행에 적합한지를 확인하는 테스트를 계속하기 위해 온몸으로 시대의 편견에 맞서야 했다. 성층권도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는 여느 우주 영화보다 극적이고 파란만장하다. 독자를 피험자로 만드는 생생한 묘사와 사진 자료, 긴박감 넘치는 서술, 회상과 인터뷰 등 다양한 요소를 적소에 배치한 입체적 구성은 ‘머큐리 서틴’ 여성들이 느꼈을 기대와 흥분, 기쁨과 좌절, 슬픔과 분노가 고스란히 내 것처럼 느껴질 만큼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제리 코브는 머큐리 세븐이 한 것보다 제대로 된 테스트에 임해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를 얻었지만, 언론은 ‘감히 여자가’라는 태도로 조롱하거나 테스트 결과 대신 코브의 신체 치수와 외모, 결혼 계획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제리 코브에 이어 다른 여성들이 펜서콜라에서 있을 3차 테스트를 기다리는 동안, 해군은 테스트를 취소했다. 나사가 공식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후보 여성들은 대중 연설과 입장 표명, 탄원 등 온갖 방법으로 싸움에 나섰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의 보좌관 리즈 카펜터가 부통령에게 이러한 상황을 전달하고 그를 대신해 나사 국장을 설득할 편지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린든 존슨은 “이제 그만 좀 합시다!”라는 메모를 휘갈긴 뒤 편지를 봉인해 버렸다. 나사도, 부통령도 당시에는 남성 군인밖에 될 수 없던 ‘제트기 시험비행 조종사’라는 자격 조건을 내세워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여성”이 없다며 여성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한편, 하원의 여성 의원들이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면서 청문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제리 코브와 제인 하트가 증인석에서 설득력 있는 웅변을 펼쳤다. 여성도 국가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라, 그리고 제트기 시험비행 조종사 자격에 상응하는 여성 조종사들의 비행 경험을 인정해 달라. 그러나 제리 코브보다 뛰어난 자신이 프로젝트를 주도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류 조종사 재클린 코크런의 야심과 “여성은 이 분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사회질서”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남성 영웅들의 오만이 판세를 뒤집었다.
“현재 우리가 우선시하는 프로그램이 인류(man)를 달에 보내는 것이기에, 마음씨 착한 숙녀분들께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십사 요청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의 목표를 완수한 후에 여성 우주 비행사를 양성하겠습니다.” 마치 우주여행을 시켜 달라고 떼쓰는 어린애를 달래듯 얼버무리는 것으로 청문회는 끝났다.
■ 성공하지 못한 도전으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
‘머큐리 서틴’은 결국 우주로 가지 못했다. 1998년 나사는 한 번 더 제리 코브를 외면하고 존 글렌을 선택했다. 누구보다 우주 비행사가 되기에 적합했던 여성들은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었고 그중 세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작가의 말마따나 이들은 “자신들에게 과분한 세계 안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가고자 애썼던 생무지가 아니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강건하고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발목이 잡힌 것이다. 원제대로 거의 우주 비행사가 될 뻔했던 여성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통념과 편견, 선입관에 근거한 ‘사회질서’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불합리한지를 보여 주며 의분과 비애를 자아낸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불운한 실패담이 아니다. ‘머큐리 서틴’ 여성들은 “계속해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았고, 자신이 속한 분야의 지평을 확장했다.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 진가를 드러내 보여 주었다.” 각종 항공 분야에서 ‘여성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며 여성이 나설 자리를 확보했고, 여성 동료 및 후배들을 위해 협회를 조직했고, 여성 조종사들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설립했다. 청문회로 유명세를 탄 제인 하트는 여권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그들 자신을 위해서 당장은 바꿀 수 없었던 낡은 ‘사회질서’에 계속해서 맞섰다. 더 많은 여성들이 그들과 함께했다. 사회 전반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나사도 외면할 수 없었다. 마침내 여성이 나사의 우주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1999년 7월, 최초의 여성 우주 사령관이 컬럼비아호의 조종석에 앉아 우주로 날아올랐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머큐리 서틴’이 닦은 길 위에서 같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뤄 가는 후배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는 “‘적합한 자질’을 갖춘 여성에게 ‘잘못된 시대’와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머큐리 서틴’이 더 많은 여성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앞서간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서게 되는 법이니까요. ……누군가는 먼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멋진 점은 제가 최초의 여성이지 마지막 여성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성 최초로 미 공군 특수비행 팀 선더버드의 조종사가 된 니콜 맬러카우스키의 이야기에 아마도 이 책의 핵심이 담겨 있으리라.
작가 소개
지은이 : 타냐 리 스톤
오벌린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편집자로 일했다.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혼북 매거진》 《뉴욕 타임스》 등에 글을 기고한다. 어린이·청소년책을 쓰는 전업 작가로서 특히 역사 속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이 거의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실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용기에는 색깔이 없다』(Courage Has No Color)로 NAACP(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 이미지 상, 『좋은 녀석, 나쁜 녀석, 그리고 바비』(The Good, the Bad, and the Barbie)로 골든 카이트 상을 받았으며, 『우주를 꿈꾼 여성들』로 플로라 스티글리츠 스트라우스 상과 로버트 F. 시버트 메달 등을 받았다. 국내에는 『걸 라이징』 『나는 꼭 의사가 될 거예요!』 『알렉산더 콜더 ― 움직이는 미술 전시회』 등이 소개되었다.
옮긴이 : 김충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와 정치학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유럽지역학을 공부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소년은 멈추지 않는다』 『하얀 폭력 검은 저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놀랍다! 명연설로 배우는 세계의 논술 1~3』 『나도 멋진 프로가 될 거야, 과학』 등이 있다.
목 차
서문 - 마거릿 A. 와이트캠프 10
1. 발사 38년 전 13
2. 저는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21
3. 그다지 의미 없는 테스트 47
4. 우리 엄마는 달에 갈 거야! 63
5. 현실이라기엔 실감이 안 났어요 81
6. 유감스러운 소식입니다만… 93
7. 이제 그만 좀 합시다! 103
8.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건 나란 말입니다! 117
9. 모두 우리 남자들입니다 131
10. 여성을 우주로 보낼 뜻이 없었습니다 145
11. 우리는 여성 승객이 아니라 여성 운전사를 보고 싶습니다 155
12. 저 자신이 살아 있는 증거 같아요 167
작가의 말 182
감사의 말 186
덧붙이는 말 188
옮긴이의 말 190
참고 문헌 194
인용 출처 200
사진 출처 208
찾아보기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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